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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극장이 <스파이더맨>만... 뒤에서 우는 한국 감독들

1965개 스크린 차지하며 영비법 개정안 비웃는 <스파이더맨 : 홈 커밍>

등록|2017.07.11 16:26 수정|2017.07.11 16:53

▲ <스파이더맨 : 홈 커밍>의 한 장면 ⓒ 소니픽쳐스


스크린 1965개. 상영횟수 10679회. 매출액 점유율 83.1%, 상영점유율 63.1%, 공급좌석 194만석.

지난 주말 <스파이더맨: 홈 커밍>의 대단한 흥행 성적이다. 스크린을 거의 싹쓸이하며 박스오피스를 장악한 <스파이더맨 : 홈 커밍>은  주말 이틀 동안 206만 관객을 동원했다. 초반 기세로만 보면 천만 도달도 가능한 흐름이다.

이 같은 스크린독과점 흥행에 한국영화, 아니 영화계는 속수무책이다. 독과점 논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예상은 있으나 별다른 반응은 안 나오고 있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워낙 고질화된 탓에 대부분 흥행 성수기엔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실제로는 스크린을 뒤덮은 '거미줄'에 마땅한 대책이 없는 셈이다 

최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원적인 처방으로 동일한 영화의 상영을 일정비율로 제한하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지만, 2000개에 가까운 스크린 장악은 마치 이런 시도를 비웃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트라우마에 갇힌 창작 욕구

스크린 독과점은 영화관의 특정영화 밀어주기의 대표적인 폐해로 10년 이상 고질화되고 있지만 해결책이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대기업이 스크린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영화산업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으나, 수혜자들도 있는 탓이다.

대기업 멀티플렉스는 특정영화 몰아주기에 대해 관객들의 선택권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특정 영화의 선택을 관객들에게 강요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 제작 배급 관계자는 "스파이더맨 개봉 전날 한국영화를 보면 전체영화관에서 총 관객수가 22만 명이 안 되었기에 성수기에 들어선 영화관의 입장도 이해가 되나 상영시간표를 접하는 관객들의 표정에선 스파이더맨만 상영하니 강요당하는 느낌일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주말에 극장을 찾은 관객들의 경우 스크린의 3분의 2를 차지한 영화 앞에서 선택의 여지가 좁아지는 건 당연하다.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해 한국영화의 질적 수준이 하락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초반 흥행성이 약한 영화들은 가차 없이 스크린에서 내리는 탓에 작품성 있는 영화들이 시들고 있고 제작에 어려움이 많아지고 있다는 우려다. 최근 한국영화가 천편일률적이고 새로운 면이 약하다는 평단의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 기인한다.

▲ 2015년 전주영화제 기간 중에 열린 스크린독과점 토론회. ⓒ 전주영화제


실제로 올해 개봉했던 영화에서 좋은 흥행성적을 내지 못했던 한 감독은 트라우마를 언급하며 창작욕구의 저하를 말한다. 작품성 있는 영화로 흥행 감독 반열에 오른 적도 있으나 신작이 흥행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느낀 아픔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그는 "관객들에게 제대로 보여줄 기회도 못 가진 채 자식 같은 작품이 비명횡사하면서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은 엄청난 상처를 받는다'며 "링위에서 죽더라도 정당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강퇴 당하는 것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트라우마"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심적 내상은 마인드 콘트롤이나, 운좋게 다시 성공한다고 해서 치유되지 않는다"면서 "그렇게 만든 원인인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작년에 평단의 호평을 받은 한 감독도 비슷한 처지다. 국내외 영화상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주목받는 작품을 만들기는 했으나 흥행 실패의 여파가 매우 크다. 개봉 1주차부터 퐁당퐁당(교차상영)되며 흥행하지 못한 이후 감독은 "앞으로 영화를 할 수 있을까, 극장에도 못 걸리는데 만들면 뭐하나 싶어 지난 1년간 아무 것도 못하고 멍하니 살았다"고 아픔올 토로했다.

괴물로 성장한 스크린 독과점

현재로서는 법적 규제가 유일한 해결방법이다. 정부가 적극적인 자세로 바뀌면서 영비법 개정안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대기업의 상영과 배급 분리가 핵심 쟁점이라 원만히 처리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이 때문에 영화계 일부에서는 '동일영화의 극장 상영을 일정 비율로 제한하는 방안 등'이라도 먼저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다른 부분들도 중요성이 큰데, 쟁점 부분을 놓고 지체하다가는 법안 개정 자체가 또 다시 표류할 수 있다는 우려다.

스크린 독과점은 2006년 647개로 시작한 것이, 10년이 경과하며 2000개에 육박하는 괴물로 성장했다. 경고와 우려, 비판이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으며 덩치를 키웠다. 갈수록 상대하기 힘들어지는 현실에서,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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