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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보고 '또라이'라는데..." 이언주의 탈당은 자충수였나?

[인물탐구] '막말' 논란 일으킨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

등록|2017.07.12 11:45 수정|2017.07.12 11:45

'밥하는 동네 아줌마' 발언 사과한 이언주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 학교급식 노동자에 “밥하는 동네 아줌마” 발언에 대해 “기자에 전하는 과정에서 오간 사적 대화가 몰래 녹음돼 기사화 된 부분에 강한 유감을 표하지만, 경위가 어찌 됐든 부적절한 표현으로 상처 받은 분들이 계시다면 사적 통화라 하더라도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 유성호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를 맡고있는 이언주 의원(경기 광명을)이 학교급식노동자 폄하 발언과 관련해 연거푸 사과했다.

10일 오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데 이어 11일 오전에는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사과했다. 오후에는 국회 정론관 마이크 앞에서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나오는 길에 마주친 학교비정규직노조 간부 2명에게 다시 머리를 숙여야 했다.

이 의원은 지난달 30일 SBS 기자와의 통화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학교급식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밥하는 아줌마들이 왜 정규직이 돼야 하나", "미친 X들"이라고 표현했다.

연이은 사과에도 불구하고 이 의원의 발언은 짙은 여진을 낳고 있다. 그가 한때 몸담았던 민주당에서는 "공천 과정이 허술해 (이언주 의원을) 공천해 당선까지 시켰다. 민주당도 (이언주 발언에) 책임이 있다. 국민에게 죄송하다"(홍익표 정책위 수석부의장)는 말까지 나왔다.

여기서 말하는 '허술한 공천'은 2016년 20대 총선 공천을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2012년 19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처음 입성했을 때만해도 그에 대한 평가는 이렇지 않았다. 지난 5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정치 입문 동기는 어머니의 죽음, 강금실 전 장관이 '조언'

이 의원은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91학번으로, 1997년 사법시험(37회)에 합격했다. 대학 입학과 함께 사회 현실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급진적인 대안을 찾았던 90년대 초반 학생운동권 출신 정치인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그는 르노삼성자동차 법무팀장, 에스오일 최연소 법무총괄 상무 등을 지냈다. 이 때문에 이번 발언이 불거진 후에는 "이언주는 대기업 자본의 마름 역할을 하며 부를 축적해왔다"는 민주노총의 비난에 휘말렸다(이 의원은 6억 4000만 원 상당의 서울 강남 아파트를 비롯해 25억 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2012년 4월 24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내 삶의 질 측면에서는 대기업 임원을 하는 게 훨씬 편하고 좋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2011년 10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은 뒤 정치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고 밝힌다. 민주당 원내대변인이었던 2012년 11월1일 오전 브리핑에서는 이 의원은 이렇게 회고했다.

"저는 IMF로 몰락한 집안에서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비정규직으로 고생하시다가 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고 자랐다. 자식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로 평생을 지내다가 뒤늦게 일할 수 있는 길은 박봉과 임금차별,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밖에 없다."

이 의원은 훗날 기자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사람의 생명과 관련해 대한민국 국민은 평등한가, 이런 고민을 하다가 정치를 시작했다. 정말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 몸담았던 인사들 중에서는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그의 진로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이 의원의 국회 입성 과정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 민주당의 전략공천으로 비교적 손쉽게 후보가 되는 듯싶더니 통합진보당 후보와 '야권 단일화' 경선을 치러야 했고, 본선에서는 3선의 장관 출신 여당 후보(전재희)와 겨뤄야 했다.

▲ 2012년 3월 29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운데)가 경기도 광명시 유세에서 이언주(왼쪽), 백재현 후보와 손을 맞잡고 총선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 유혜준


선거기간 동안 'OUT! MB정권 4년 전재희 18년'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지역구에 걸었다가 선거 막판 '막말'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1994년 관선 광명시장을 시작으로 지역구에서 18년간 경력을 쌓은 새누리당 전재희 후보를 겨냥한 표현이었지만, 전 후보가 실제로 지역구에서 시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기간은 13년 6개월 정도였기에 욕설을 연상시키는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2012년 민주당 대선 패배 후 '비문재인' 색채 강해져

그러나 논란은 선거 승리와 함께 가볍게 가라앉았다. 이 의원은 2012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30,40대 유권자들이) 내게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엄마이자, 아내이자, 딸이자, 며느리' 이런 느낌을 받은 것 같더라"고 승리 요인을 내놓았다.

2012년 12월 대선 당시 이 의원의 행적에 대해서는 민주당 내에서 평가가 분분하다. "초선 의원으로서 유세장에서 안무도 열심히 하고 누구보다 후보(문재인)를 위해 열심히 뛰었다"는 호평과 "문 후보 부인과 지역구를 함께 돌 기회가 있었는데 부인은 젖혀놓고 '지역구 이언주 의원입니다'라고 유권자들에게 자기 먼저 소개하더라"는 악평이 함께 나오기 때문이다.

막상 그해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하자 "이번 대선에 책임이 있는 세력(친노친문)이 다시 당권을 쥐겠다고 나서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하게 됐다. 이후 그는 김한길·이종걸 등과 함께 민주당 '비문재인 세력'으로 분류되게 된다.

"(주승용 최고위원이) 사퇴할 것처럼 해놓고 공갈치는 것이 더 문제"라는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 발언으로 당내 계파 갈등이 한층 고조된 2015년 5월 8일에는 "주승용은 유일한 호남 지역구이며 비노계 최고위원이다. 정당의 최고위원이 선배 최고위원에게 감당할 수 없는 막말을 퍼부었다는 사실은 차마 믿기 어려울 지경"이라고 정 최고위원을 공격했다(정 전 최고위원은 이언주 발언 논란이 불거지자 11일 트위터에 "가식적인 사과는 사과가 아닙니다. 대선때처럼 '국민이 이깁니다' 팻말들고 울면서 사과하세요"라고 비꼬았다).

이 의원의 민주당 탈당은 길지 않은 그의 정치이력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국민의당이 안철수 대통령후보를 선출한 다음날(4월 5일) 아침부터 "이 의원이 곧 탈당할 것"이라는 얘기가 국회에 돌기 시작했다. <오마이뉴스> 기자가 이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 탈당하나요?
"마음이 기울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안철수로는 대선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엄청나게 성장했더라. 한 번 더 희망을 걸어볼 만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 의원의 처지에서는 2016년 국민의당 창당 국면에 합류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고 한다. 비호남권 의원 20여 명이 동반탈당을 논의하는 와중에 문재인 당시 대표가 전격적으로 대표직을 김종인에게 넘기면서 기회를 놓쳤다는 설명이었다.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서 소속 당이 총선에 이기고, 자신도 재선에 성공했지만 마음을 둘 곳을 찾지 못했다. 같은 해 8월 경기도당 위원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문재인 핵심측근' 전해철 의원에게 더블스코어에 가까운 격차로 완패했다.

최순실 사건으로 인해 조기 대통령선거가 확정되고 민주당이 후보 경선으로 달아오른 연초에 김종인 전 대표가 의원직을 던지고 탈당했다. 그와 가까우면서도 경선 캠프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당 의원들 일부는 결국 당을 떠날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는데, 이 의원과 최명길 의원이 탈당계를 내고 국민의당으로 옮겼다.

이 의원은 안철수 선대위의 뉴미디어본부장으로 활약했지만, 선거 결과는 그의 기대와는 정반대였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원내수석부대표로 중용됐지만, 새 정부와의 기 싸움에 선봉에 선 이 의원은 자주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인사청문 정국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에 대해 "물건이 너무 하자가 심해 도저히 팔아줄 수 없는 딜레마에 봉착했다"(5월 26일)고, 강경화 외교장관에 대해 "지금은 안보 현안이 중요한 만큼 이번에는 국방을 잘 아는 남자가 해야 한다"(6월 6일)고 한 발언이 문제가 됐다.

'스스럼 없는 소통방식'이 급식노동자 발언을 낳았다?

이언주 사과에 등 돌린 학교급식 노동자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노동자들과 만나 자신의 막말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자, 노동자들이 “가식적인 사과 같고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며 등을 돌리고 자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거듭되는 구설에도 그는 "지역구 주민들이 나를 보고 '또라이'라고, 왜 거기 가서 고생하냐고 하는데 아무리 크고 번드르르한 회사에 있으면 뭐하나, 자기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 정신만 차리면 언제든 일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의 '급식노동자' 발언은 이 의원의 정치 이력에 치명타를 입힐 것으로 보인다. 양당 구도를 깨보겠다며 그가 힘을 실어주겠다던 국민의당까지 어려움에 처했다.

돌이켜보면, 이 의원의 '스스럼없는' 소통 방식이 이번 사태를 자초한 측면도 있다. 이언주 의원의 경우 중량감 있는 인사는 아니었지만 "편하게 하는 얘기"라는 단서를 붙여 정치권 현안을 논평하곤 했다.

민주당 탈당의 소회를 처음 밝힌 전화통화(4월 5일) 당시에는 "친문패권 세력이 장악한 당에서는 숨 막혀서 못 살겠다. 마치 벌레 취급을 받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통화가 된 신문기자가 온라인판에다 이 말을 보도하자 이 의원은 해당 기자에게 항의했다. 문제의 발언은 기사에서 삭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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