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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낳은 게 유세냐" 욕설·손가락질 참았지만...

[인터뷰] '아수라장' 장애인학교 설립 토론회서 눈물 흘린 엄마 이은자씨

등록|2017.07.12 14:59 수정|2017.07.12 16:10
지현 엄마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소맥'을 말았다. 한 잔을 들이킨 후에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그에게 지난 6일은 맨 정신으로 보내기 힘든 밤이었기 때문이다.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토론회가 설립 반대 측 주민들의 항의로 무산된 날이었다. 지현 엄마 이은자(48)씨는 "XX 낳은 게 유세냐"라는 욕을 먹고 손가락질 당하는 건 참고 또 참았다. 아수라장이 된 토론회를 뒤로 하고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그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난 11일 밤 이씨의 집을 찾았다. 이씨의 딸인 고3 지현이가 우리를 맞아줬다.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아아녕"이라고 말한 지현이는 소파 바로 옆 자리에 서서 비닐 파일을 두 손으로 잡은 채 일정 속도로 휘저었다. 자폐 아이들이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행동을 하는 '상동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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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다른 애들과 달랐다

▲ 이은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와 딸 지현양이 대화를 하고 있다. ⓒ 이희훈


이은자씨는 평범한 엄마였다. 4살이 된 지현이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채기 전까지 말이다. 아무리 불러도 지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예", "아니요" 외에는 말하지 못했다. 자폐 1급 판정을 받았다. 처음엔 그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장애 신청도 지현이가 6살 되던 해에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입학식 날, 그녀는 자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인정이 안 되더라고요..."라고 말문을 연 이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이어나갔다.

"초등학교 입학하는 날, 아이들이 명찰 붙이고 서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 아이가 너무 다른거에요. 질서를 지켜야 하는 학교라는 사회에 처음 간 건데... 우리 아이만 다른 세계에 있는 거죠."

그는 "선생님 통솔에 아이들이 따르고 그 뒤를 엄마들이 따라 다니는데, 우리 아이를 보고 엄마들이 '어?', '쟤 좀..'이라고 하는데 그 시간이 얼마나 안 가던지"라며 "입학식 그 두 시간이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었다"라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집에 와서 그날 다른 학교에 입학하는 엄마한테 전화를 했어요. 서로 '어 누구야'라고 말한 다음에 둘이 계속 울었어요"라며 "그 엄마도 똑같은 걸 겪었을 거라 서로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라며 울먹였다. 휴지로 눈물을 훔치는 엄마 뒤로 소파에 앉아 두 팔을 흔들거리며 "아아"라고 읊조리는 지현이가 보였다.

이렇게 힘겨운 입학식을 견디며 들어간 초등학교였지만 지현이는 버거워했다.

"아이도 비장애인 친구와 자기가 다른 것을 아는 것 같았어요. 일반학교 가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했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 지현이가 학교 교문 앞에만 가면 안 들어가려고 했어요. 말을 못 하니까 계속 서서 저를 쳐다보고. 그렇게 실랑이를 한참 하고 울면서 들어갔어요."

지현이가 5학년이 되던 해, 특수학교로 옮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강서구에 있는 유일한 특수학교인 교남학교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구로구에 있는 정진학교로 옮길까도 생각했지만 접었다. 정진학교에 다니기 위해선 초등학생인 지현이가 오전 6시에 일어나 7시에 학교 셔틀버스를 타야했기 때문이다.

중학교라도 특수학교로 보내고 싶어 이씨는 왕복 3시간을 감수하고 정진학교에 원서를 냈다. 하지만 탈락했다. 지현이를 포함해 강서구에 있는 30여명의 또래 장애인 학생들은 강서구도 아닌 구로구 특수학교에 지원했지만 탈락해 일반고로 가야했다.

셔틀버스 타러 가는 10분이라도 줄이고자 이사 택한 엄마

▲ 이은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 ⓒ 이희훈


▲ 이은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는 지현양이 4살 되던 해 다른아이들과 다름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 이희훈


고등학교는 다행히(?) 정진학교로 갈 수 있었다. 그 결과 고등학생 지현이는 학교에 가려고 왕복 3시간을 도로에서 보낸다. 오전 6시쯤 일어나 7시 30분에 셔틀버스를 타도 9시쯤 학교에 도착한다. 아침, 저녁으로 1시간 30분을 도로에서 보내니 아이는 지칠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 알림장에 '오자마자 잔다', '1교시부터 잔다'라고 적으신 일이 많았어요. 애가 아침에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는 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씨는 셔틀버스 타러 가는 시간 10분을 줄이기 위해 지금 아파트로 6개월 전에 이사를 왔다. 하루 3시간을 버스에서 보내는 지현이에게 셔틀 타러 가는 시간만이라도 줄여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대부분 특수학교 학생들은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뒤 특수학교에 있는 직업훈련, 사회적응 훈련 등을 받는 전공과에 진학하는데, 지현이는 통학이 너무 힘들어 진학하지 않을 예정이다.

"서진학교 개교하는 날, 춤 출 거예요"... 엄마에게 쏟아진 응원의 전화

▲ 이은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를 딸 안지현양이 촬영 했다. 기자가 카메라를 다루는 방법을 알려 주고 엄마를 찍어보라고 제안하자 기뻐하며 찍은 결과물이다. ⓒ 안지현


▲ 이은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와 상동행동을 보이는 딸 지현양. ⓒ 이희훈


특수학교 부족으로 고통을 겪은 엄마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같은 처지의 엄마들과 모여 교육청, 시청 가리지 않고 농성을 했다. 삭발도 서슴지 않았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도 맡았다. 지난 6일엔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토론회에 설립 찬성측 토론자로 나서기도 했다.

평범한 엄마가 해내기 쉬운 일은 아니다. '특수학교 설립'을 외쳐 욕도 먹고 손가락질도 당했다. 가슴에 쌓인 울분을 소맥으로 겨우 내려 보내야 잠들 수 있는 날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학교가 작든 크든 가까이에서 아이들이 질 높은 교육을 받아야지 국민들이 부담하는 비용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해요. 교육을 잘 시키면 아이들이 소액이라도 벌 수 있어 사회에 기여 할 수 있는데 지금은 그냥 학교에 가둬두는 거예요. 졸업하고 나와도 시설 가는 게 보통인데 시설들은 대부분 국가보조로 운영돼 국민 부담이 늘어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엄마들의 싸움을 응원해주는 시민들이 있어 힘이 난다고 이씨는 말한다. 이씨에 따르면 토론회가 파행된 다음 날 강서구 시민단체들로부터 전화가 쏟아졌다.

"강서구 일인데 본인들이 너무 안 나선 것 같다, 미안하다. 강서구 주민 전체가 반대하는 게 아닌데 그렇게 보여지는 것 같아 토론회가 다시 열리는 9월 5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시민단체들이 알려왔어요. 전화를 받느라고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못 할 정도로 전화가 많이 와서 큰 힘이 됐어요."

계획대로라면 서진학교는 2019년 3월 개교할 예정이다. 서울시에는 2002년 이후 17년 만에 특수학교가 세워지는 것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장애인학교 설립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설립 반대 쪽 주민들이 특수학교가 들어서기로 한 부지에 국립한방의료원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서울 강서구을)이 앞장서고 있다.

이씨는 삭발의 흔적인 단발 머리를 만지며 "서진학교가 생기면 우리에게는 상징적인 곳이 될 것이다. 우리 힘으로 지은 학교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서진학교가 문을 여는 날 그 앞에서 춤을 출 거다"라는 공약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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