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하고 찍었다? 배우 기죽이는 '미친' 영화, 그럼에도
[감독열전⑧] 특유의 광기 어린 스타일로 승부하는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
한 편 한 편의 영화로는 알 수 없는 영화감독만의 세계가 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국내외 영화감독들을 집중 조명합니다. 관심 있는 여러분의 참여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내 영화 속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결점투성이다. 그릇된 선택을 하고 스스로 인생을 망쳐버리는 캐릭터에 동질감을 느낀다." (한겨레)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인터뷰 그대로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어딘가 뒤틀려 있거나 미쳤다. 때로는 이런 생각까지 든다. 항간의 우스개처럼 감독이 마약을 하면서 영화를 찍으면 이런 모습일까.
▲ 영화 <고백> 촬영 현장에서 마츠 다카코에게 연기 지도를 하는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 ⓒ 도호
▲ 영화 <고백> 스틸 사진 ⓒ 도호
몸은 21세기 일본에 있지만 마음만은 프랑스 로코코 시대에 가있어 치렁치렁한 드레스에 과하게 집착하는 모모코(<불량공주 모모코>)나 단 한순간의 선택으로 인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이후로도 계속 나쁜 선택을 반복하다 결국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마츠코(<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는 어떨까.
자신의 딸을 죽인 학생이 마시는 우유에 HIV 바이러스를 넣어두었다고 고백하는 교사(<고백>)나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어놓고는 그 즉시 나락으로 밀어버리는 '악마' 카나코(<갈증>) 같은 인물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현실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인물이며 한결같이 과하게 어리석고 단단히 미쳐있다. 그렇기에 딱히 동정하거나 정을 붙이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지극히 과장된 모습을 보여주는 그들은 인간의 어느 한 단면을 비춘다. 우리는 종종 삶의 극한 상황에서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과 비슷한 선택을 하거나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비록 어리석고 잘못된 선택이라고 해도 말이다. 결국 그것이 인간의 한계이고, 우리가 속한 세계의 문법인지도 모른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인간의 한계를 보며 한숨을 푹 쉬는 대신 더 집요하게 한계의 한계까지 파고 내려가 그가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을 건져올린다. 감독의 영화 속 인물들은 과장됐으나 나는 그들 속에서 가장 '열정적인' 인간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매번 이런 게 결국 '인간'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기괴하게 뒤틀린 모습에 계속 눈길이 간다. 마치 징그럽거나 싫은 것을 계속 지켜보고 싶은 심리 같다고 해야 할까.
▲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스틸 사진. ⓒ 도호
▲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스틸 사진. ⓒ 도호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행동만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데 여기에 영화적 미장센은 과하기가 짝이 없다. 화려한 색감을 꾸역꾸역 밀어넣은 장면들, 광기에 가득 찬 배우들의 에너지, 템포가 미친 듯 빠른 사운드에 CF 감독 출신의 영상 문법의 파격까지 더해졌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에게 독보적인 면이 있다면 '제대로 미친 인물들'을 제대로 미친 화면으로 담아내기 때문이다. 화면 위로는 자주 꽃이나 빛이 날아다니고 극중 인물들은 영화 속에서 자주 현란한 상상 속을 헤맨다.
화면 위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개인적 인장이 그대로 찍혀 나온다. 때로는 그 영화가 너무나도 화려한 탓에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종종 내용은 실속이 없고 화려한 색감으로만 영화를 만든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 정도로 미친 인물들을 구현해내는 방식은 그의 화면과 색감이 최선이라는 것을.
배우를 기죽이는 괴짜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 눈에 들어온 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인생 연기'를 보여준 일본의 배우 나카타니 미키의 인터뷰에서였다. (실제 제30회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여우주연상을 포함해 이 작품은 9개의 상을 휩쓸었다.) 분명 높은 수준의 연기를 선보인 배우라면 응당 보일 자부심과 자신감이 나카타니 미키의 인터뷰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나카타니 미키는 어딘지 모르게 주눅이 든 표정으로 문장의 시작마다 "천재이신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작품을"이라는 표현을 반복했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마츠코를 연기할 수 있다면 미움 받아도 좋았다. 마츠코를 연기하기 위해 배우를 계속해 온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불량공주 모모코>를 만든 천재 나카시마 감독님과 함께 일을 하는 건 너무나도 고된 일이라 나 같은 범재는 감독님의 지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머리론 이해해도 감정이 따라갈 수 없거나 몸이나 목소리가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몇 번이나 해도 OK가 나지 않았다. 그러면 감독님이 화가 나서 '바보! 죽여버린다! 몇 번 말해도 똑같잖아!'라고 화를 냈다."
(관련 링크: https://youtu.be/aDeuZdRHT6o)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촬영하던 당시의 나카타니 미키는 이미 일본에서 최고 수준의 배우였다. 그런 배우에게 연기 지도를 하면서 면박을 주는 감독을 상상하기 어렵다. 영화 촬영장에서 감독과 사사건건 부딪혔다는 소문이 들렸고 비록 이후 <갈증>에 출연하기는 했어도 당시 나카타니 미키가 두 번 다시는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과 작품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 영화 <불량공주 모모코> 스틸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 영화 <갈증> 스틸 사진. ⓒ Wild Bunch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없고 면죄부도 주기 어렵지만 그 영화가 한 인간의 인생을 제대로 담은 수작이라면 어떨까. 그래서인지 그 고집과 독선을 마냥 비판하거나 미워하기도 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 원하는 세계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이 배우나 스태프들과도 불화를 빚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인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그 난해하고 과한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결과물은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 특유의 폭발적인 에너지로 넘친다.
나카시마 테츠야는 그렇게 꾸준히 자기만의 독창적인 장르 세계 속에 있는 사람이다. 그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세계는 많은 '나카시마 테츠야' 마니아들을 양산해냈다. 이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2016년 '나카시마 테츠야의 고백'이라는 이름의 특별전을 연 바 있다. 그의 장편 영화는 일본 아카데미상을 비롯해 세계 영화제에서 경쟁과 비경쟁 부문을 넘나들며 상관없이 후보에 오른다.
영화는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드는 공동 작업이고 따라서 대체로 적당한 타협의 결과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게 때로는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적어도 이 감독에게는 해당 사항 없는 일처럼 보인다. 미친듯이 달려가 그 결과물이 어떻든 끝을 보고야 마는 감독. 그런 이유에서 그의 독창적이고 '미친' 영화 세계를 계속 지켜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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