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베를린 구상'에 첫 반응... 정부당국자 "나쁘지 않다"
노동신문 논평, "선임자와 다른 입장 다행"이라면서 "궤변" 비판도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오후(현지시간) 구 베를린 시청 베어 홀에서 쾨르버 재단 초청으로 한반도 평화구축과 남북관계, 통일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독일 베를린에서 발표한 '신한반도 평화구상'에 대해 9일 만에 첫 반응을 내놨다.
북한은 15일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의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진로가 무엇인지 똑똑히 알아야 한다'는 제목의 개인 논평에서 베를린 선언에 대해 "전반 내용들에는 대결의 저의가 깔려 있으며, 평화와 북남관계 개선에 도움은커녕 장애만을 덧쌓는 잠꼬대 같은 궤변들이 열거돼 있다"고 비난했다.
노동신문 논평은 앞 부분에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존중, 이행을 다짐하는 등 선임자들과는 다른 일련의 입장들이 담겨져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긍정 평가한 점이 눈에 띈다. 그러나 바로 그 뒤에 "평화의 미명하에 늘어놓은 전반 내용들에는 외세에 빌붙어 동족을 압살하려는 대결의 저의가 깔려 있으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북남관계 개선에 도움은커녕 장애만을 덧쌓는 잠꼬대같은 궤변들이 열거되어 있어 세인의 개탄을 자아내고 있다"는 대체적으로 베를린 선언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북 "비핵화·평화협정 체결, 이미 때는 늦었다"
논평은 또 "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 북남관계 개선에 대한 그 어떤 구상이 있다면 왜 하필 자기 땅이 아닌 남의 나라 땅에서, 자기 민족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 앞에서 밝혔는가"라고 연설장소를 문제 삼았으며, "도이췰란드(독일)식 통일이란 다름 아닌 전형적인 '흡수통일'이며 이러한 방식을 우리나라 통일에 적용해야 한다는 망발은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체제통일'을 공공연히 추구하겠다는 것을 선포한 것이나 같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지금 남조선 당국자는 베를린에서 하루아침에 장벽이 무너지고 서도이췰란드(서독)의 주도하에 통일이 이루어진 것을 환상적으로 대하면서 그러한 '기적'이 조선반도에서 일어나기를 고대하지만 그야말로 노루잠에 개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핵 문제와 비핵화를 위한 대화와 관련해서는 "미국 본토에 둥지를 틀고 있는 침략자 미제의 눈깔까지도 파먹을 수 있게 정밀화되고 다종화된 우리의 자위적 핵무장력은 세계정치지형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가져오고 있으며 오늘날 조선반도평화보장의 조건과 가능성도, 평화협정 체결의 분위기와 환경도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괴롭더라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우리가 핵을 포기하기만 하면 국제사회와 함께 '평화체제 구축'에 나설 것이라느니 뭐니 하며 가소롭게 놀아대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 "비정치 분야부터"... 노동신문 "근본문제인 정치군사 분야부터"
문 대통령이 비정치적인 분야부터, 쉬운 것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 것에 대해서도 "반통일의 적폐를 가시고 제2의 6.5시대로 가는 노정에서 북과 남이 함께 떼여야 할 첫발자국은 당연히 북남관계의 근본문제인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를 해소하는 것"이라면서 "남조선집권자가 선차적인 문제로 들고 나온 비정치적 교류협력이라는 것은 북남 사이에 대결상태를 해소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연히 논의되고 실천되게 돼 있다"고 반박했다.
8600자가 넘는 장문으로 구성된 이 논평은 공식 대남기구가 아닌 매체의 개인 논평이라는 점과 부분적이나마 베를린 선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 당국이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분석된다. 마지막 문장도 "남조선 당국은 겨레의 지향과 대세의 흐름에 역행하여 외세 의존의 길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동족이 내민 손을 잡고 북남관계 개선과 자주통일을 위한 옳바른 길에 들어서야 할 것이다"라고 나름의 기대감을 담은 '권고' 형태로 끝냈다.
북한은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의 물꼬를 튼 2000년 3월 9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에 대해서도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15일자 노동신문 논평을 평양방송을 통해 보도하는 형태로 첫 반응을 나타낸 바 있다. 당시 논평도 선언 장소 문제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비판 기조를 보인 가운데 "낡은 대결정책에서 벗어나 실제 행동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보인다면"이라는 전제 아래 "원칙적 입장에 부합된다면 아무 때나 북남 당국 사이에 대화와 접촉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논평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북측 특성상 매체의 대남 논평에 긍정적인 평가를 쓰기는 어렵다"면서 "베를린선언 내용 하나하나를 비판했는데, 거부 입장이 분명하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평가하면서 "북측이 우리 정부가 이후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움직이겠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라는 점에서, 나름의 기대감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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