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갑' 박주민 아닙니다, '돈 달란 남자' 박주민 입니다
[게릴라칼럼] 직접 SNS를 통해 정치후원금 모금 나선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 "돈 달라는 남자" 영상 속 박주민 의원. ⓒ 박주민의원실
"말이 많네. 뭘 구구절절 설명해? 그냥 돈 좀 부치라고 하면 되는 거지. 이따 퇴근할 때 보낼게요."
아니, 누가 돈을 그리 급하게 달라고 했기에 내일도, 모레도 아니고 퇴근 직후 돈을 송금한다는 걸까. 그런 남자가 있다. 일명 '돈 달라는 남자'가. 전직 인권 변호사에 현직 국회의원인데 그렇게 돈을 요구한다. '법 읽어 주는 남자'에서 '돈 달라는 남자'로 변신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바로 그 남자다.
그렇게, 14일 오후 '박주민 의원실' 페이스북 계정에 달린 댓글 속 주인공은 흔쾌히 박주민 의원에게 돈, 아니 '정치후원금'을 송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실제 후원 여부야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박주민 의원에게 후원금을 전달하겠다는 댓글들이 '박주민 의원실' 페이스북 계정에 답지하고 있다.
그게 다 "돈 달라는 남자 박주민입니다"라는 제목의 동영상 때문이다. 이 영상 속 박 의원은 "법 읽어주는 남자의 번외편 돈 달라는 남자 박주민입니다. 추경 얘기 아닙니다, 정치자금 얘기입니다"라고 운을 뗀 뒤, 직접 후원금 모금을 독려하고, 후원금의 사용처와 용도를 친절하고 상세히 밝히고 있다.
한데 이 영상, 꽤 유익하고 재미까지 있다. 박주민 의원이 올해에만 MBC <무한도전>과 JTBC <잡스>에 연이어 출연하며 '예능감'을 연마한 탓일까. 업로드된 지 채 하루가 안 된 15일 오후, 이 '돈 달라는 남자 박주민입니다' 영상은 조회 수 20만을 돌파, 21만에 육박했고(오후 2시 현재), 2300여 회 넘게 공유됐다. 도대체 국회의원 박주민이 어떻게 돈을 달라고 했기에 이런 열광적인 반응이 일어난 걸까.
"작년에 모아주신 1억 원 넘는 후원금, 다 썼다"
▲ 박주민 의원실이 "거지갑이 아니에요"라는 문구와 함께 최근 SNS 계정에 올린 사진. ⓒ 박주민 의원실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액수를 모아 주셨습니다. 그 이후 7개월이 지났습니다. 돈이 그대로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돈을 어디에 썼느냐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설명 드리고 돈 좀 달라 부탁드리려고 나왔습니다."
맞다. 딱 7개월 만이다. 작년 12월, 박주민 의원이 단 4일 만에 후원금계좌의 한도를 '완판' 시킨 것이. (관련 기사 : '거지갑' 박주민, 그의 수첩은 박근혜 것과는 달랐다) 그리고, 이번엔 박 의원이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영상 속 박 의원은 칠판 앞에서 서서 '구구절절' 왜 본인에게 후원금이 왜 필요한지, 그 후원금은 어디에 쓰이는지, 또 다른 의원들은 대개 후원금을 어디에 쓰는지 친절하게 설명한다. '인강'(인터넷 강의) 강사 같기도, 직업 설명에 나선 방송인 같기도 하다. 게다가, 쉽다.
"받는 자는 1억 5천까지 받을 수 있고, 선거가 있는 해 총 3억까지입니다. 주는 자, 아니 주는 분은 1인당 연 5백만 원 한도로 기부가 가능하고, 10만 원까지는 세액 공제가 가능하고, 초과분은 초과분은 소득 공제가 안 됩니다. 10만 원을 후원하시면 거의 돌려받게 되는 효과를 봅니다."
여기까진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래도 유독 '10만 원 소득공제'를 강조한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다음부터가 걸작이다. 박 의원은 한 달에 얼마가 드는지, 그 비용에 왜 인건비 비중이 제일 높은지, 또 사무실 임대료는 얼마인지, 임대료 외에 또 통상적인 유지비가 얼마나 드는지 깨알같이 보고회를 열기 시작한다. 오죽했으면, 후원하겠다는 지지자가 "말이 많네. 뭘 구구절절 설명해?"라는 댓글을 달았겠는가.
박 의원이 밝힌 내용은 이러하다. 제일 높은 인건비 비중은 여타 의원들이 급여를 잘 주지 않는 입법보조원을 포함해 통상 530만 원이 소요된단다. 의정활동 영상 등을 만드는 정책 활동 콘텐츠 제작자들의 인건비를 포함한 액수다.
여기에 지역 사무실 임대료 250만 원, 복사기 17만 2천 원, 정수기 임대료 월 10만 원, 전기요금과 전화요금(50만 원), 사무실 비품 등을 포함해 통상적인 사무실 유지비가 80만 원이란다. 본인도 계면쩍었는지 "너무 세세하게 알려드리나요?"라던 박 의원은 근조·축하비를 포함 통상 비용이 월 1000만 원이 소요된다고 밝혔다.
여기에 법안 발의를 위해 발의 전후 토론회, 시민·전문가가 참여하는 간담회를 여는 데도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계좌를 닫았던 작년 12월 3일 이후 박주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총 41개에 달한다. 이를 위해 총 30여 회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더불어 동별 의정보고회를 수시로 개최했고, 의정보고서도 2회를 발간했다. 박 의원은 "특히 의정보고서가 돈이 많이 든다"고 강조했다. 또 낡아서 지역민들이 찾아오기 꺼려했던 지역사무실 리모델링 비용도 발생했다. 이러한 비통상 비용 역시 500만 원 정도 된단다. 이 통상과 비통상 비용을 합하면 한 달에 1500만 원이 소요되는 것이다. 박주민 의원은 "작년에 모아주신 1억 원 넘는 후원금을 다 썼다"며 깔끔히 정리했다. 아래와 같이 날씨 걱정(?)까지 곁들이며.
"혹자는 박주민은 정치후원금 걱정 없는 거 아니냐고들 하신다. 사실 제가 그런 말씀 들으면서 속을 좀 앓았다. 그렇지 않다. 많이 필요하다. 사실 입이 안 떨어지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이라서, 손을 내밀었다. 어여삐 봐 달라. 사실 의정활동에 국회의원들이 꽤 많은 돈을 쓴다. 다른 의원들도 같은 상황, 어려운 상황일 거다. 오늘 같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더 이상 안 될 거 같아서 이번 기회에 설명을 하게 됐다."
'돈 달라는 남자'에 앞선 적극적인 SNS 의정활동
▲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작년 9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황교안 총리에게 정부가 세월호특조위 조사활동을 강제 종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유성호
"문자요? 국민들이 국회의원한테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국민들이 할 수 있는 법적 제도나 장치가 없으니까 문자도 보내고 하시는 거 아니에요? 근데 그것도 하지 말라고 하는 건 좀 너무하잖아요."
'문자폭탄'인가, '문자행동'인가 논란이 정치권을 휩쓸던 지난달 26일, 박주민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위와 같이 말했다. 이에 앞서 SNS에 게시한 '국회의원도 리콜이 되나요?'라는 동영상에서 "전화, 문자를 넘어 이제는 국회의원을 중간에 파면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가 필요하다"며 국민소환제 법안의 취지와 내용을 10여 분 동안 설명하기도 했다. '돈 달라는 남자'에 앞선 적극적인 SNS 의정활동이라 할 만했다.
"탄핵 정국 당시 탄핵에 찬성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해도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아서 국민들이 불만도, 걱정도 많으셨어요. 그때 국회의원 소환에 대한 목소리들 많이 있었고... 최근에 또 야당 국회의원들에 대한 불만이 커져서인지 국민소환제법이 다시 거론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최근 국민들로부터, 유권자들로부터 열띤 호응을 얻고 있는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법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 중이다. 어디 이뿐인가. '거지갑'이란 별명으로 불리던 박 의원이 <무한도전> 출연 이후 '박주발의'란 별명을 새로 얻기까지, 지난 7개월 간 41개의 법안을 발의했고, 그에 앞서 2016 대한민국 모범국회의원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세월호 관련 법안을 비롯해 그의 성실한 의정활동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화제가 되고 있다.
이쯤 되면, 누군가 떠오르는 얼굴이 있지 않은가. 최근 막말 논란으로 국민적 공분을 산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 말이다. 누구는 성실한 의정활동을 바탕으로 돈을 '걷어도' 호응이 쏟아지고, 또 누구는 '국민소환제'의 당사자로 지목되며 의원직 사퇴를 요구받고 있는 중이다. 이 차이는 어디서 기인하는가.
더군다나 역시 변호사 출신인 이언주 의원과 고작 1살 차이다. 굳이 더 비교하자면, 대기업을 위해 뛰었던 이언주 의원의 국민과 노동자를 보는 눈높이와 작금의 박주민 의원이 맞추고 있는 국민들의 눈높이는 과연 다른 걸까. '돈 달라는 남자'에게 왜 관심과 후원이 쏠리는가에 대한 답은 바로 이 '국민의 눈높이'라는 측면에서 이미 답이 나와 있지 않을까. 과거 불투명했던 정치후원금 문화를 스스로 혁파하고 있는 박주민 의원에게 후원금이 답지하는 이유 말이다.
세월호 유족들을 위해 발벗고 뛰었던 인권변호사로 출발해 초선 의원으로서 성실히 활동 중인 '젊은' 박주민 의원. 혹자들은 그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력을 보며 '우리 시대의 노무현'이란 수사까지 부여하는 기대를 보내기도 한다.
한 국회의원에게, 정치인에게 어떤 수사를 붙이고, 어떻게 관심을 가지느냐는 개별 언론과 유권자에 따라 온도 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돈 달라는 남자'를 향한 관심은 앞으로도 쉬이 식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거지갑'에서 '박주발의'로, 다시 '돈 달라는 남자'로 변신하는 이 초선 의원의 향후 정치 행보가 계속 궁금하지 않겠는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