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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싸더라니' 파리에서의 잊지 못할 샌드위치

[프랑스 여행①] 파리 어느 변두리의 주말 오후

등록|2017.07.18 10:21 수정|2017.07.18 10:21
4월 말의 어느 아침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를 타고 파리 북역(Gare de nord)에 도착한 후, 지하철로 크리메(crimée) 역으로 이동하려는데 도대체 역 어디에도 지하철 노선도가 보이질 않는다. 이렇게 넓은 역에 노선도 하나가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저쪽에 서 계시는 안내원으로 보이는 한 할아버지께 여쭤보니 손에 들고 계시던 꼬깃꼬깃 찢어질 지경인 노선도를 펼쳐 설명해 주셨다. 자원봉사자이신지 유급 직원이신지는 모르겠지만 노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일부러 노선도를 설치 안 한 건가 의아스러웠다.

5년 만에 파리 지하철을 탔다. 전엔 거의 대부분이 손잡이를 돌리던 수동식이었던 지하철 문이 지금은 버튼식으로 많이 바뀌어 있었는데, 그래도 열 대 중 하나쯤은 아직도 손잡이 식지만 어쨌든 많이 개선된 걸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예약한 숙소가 생 마르탱 운하(Canal Saint Martin)가 있는 19구의 크리메 거리에 있는데, 지하철 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와보니 동네 분위기가 이민자들 일색에 우중충하고 지저분한 게 번잡스럽기 이를데 없었다. 알고보니 변두리인 19구 지역이 원래 좀 우범지역으로 알려져 있다는데 그래선지 어떤 날은 숙소 근처 골목길에 무장한 군인들이 다니기도 했다.

사실 이번이 파리 두 번째 방문인데, 루브르, 에펠탑, 샹젤리제 거리 등을 정신없이 섭렵하며 오랫동안 품어왔던 파리라는 도시에 대한 로망과 환상을 한껏 충족시켰던 5년 전에 비해, 이번엔 좀 더 여유롭게 차분하고 진지한 시각으로 이 도시를 느껴보리라 다짐했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동네의 첫 이미지는 알쏭달쏭했던 5년 전에 비해 파리의 그늘을 꽤 생생하게 체험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솔직히 여기뿐 아니라 그동안의 여러 테러 사건의 여파로 파리 전체의 분위기가 많이 무거워진 것도 사실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역 근처로 나왔다. 식당이나 바는 많았지만 육식을 안 하는 내가 들어갈 만한 곳이 쉽게 눈에 띄질 않았다. 배는 고팠지만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지하철을 타기에는 너무 지쳤기에 가까운 곳에서 끼니를 때우기 위해 한참을 헤매다 할 수 없이 어느 너저분한 노천 카페로 들어갔다. 안이나 밖이나 손님들로 인해 비좁고 지저분했고 서빙 직원 하나 없이 프랑스인 주인 아저씨 혼자 주문과 서빙을 다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홀 안쪽에서는 젊은 아시아계 여성 하나가 로또 판매까지 하고 있어 더욱 번잡스러웠지만, 꿋꿋이 줄을 서서 카운터에 있는 메뉴판을 탐색한 후 저렴한 가격의 프로마쥬(Fromage) 샌드위치 하나를 주문했다. 과연 이런 곳에서 만드는 샌드위치는 어떨까 궁금했던 것도 무색하게 주인 아저씨는 주문을 받자마자 바게트 빵 하나를 가른 후, 프로마쥬 치즈 몇 장을 쓱쓱 썰어넣더니 바로 저런 걸 내어준다. 어쩐지 싸더라니... 황당했지만 너무 배가 고팠던 터라 물 한 잔 없이 덩그러니 놓인 이걸 결국 꾸역꾸역 다 먹어치웠다. 파리에서 이런 걸 먹어보는 것도 재밌는 추억이라 스스로 위로하면서.

▲ 프로마쥬 샌드위치 ⓒ 최성희


▲ 파리 동네 공원에 만개한 4월의 벚꽃 ⓒ 최성희


식사를 마치고 숙소 주변을 산책했다. 암스테르담에서 내내 지독한 날씨로 괴로웠던 내게 있어 파리의 봄 날씨는 감사할 정도로 맑고 상쾌했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운하 주변으로 나들이 나온 인파들도 많았다.

▲ 세느 강 주변에서 주말 오후를 보내는 주민들 ⓒ 최성희


▲ 공원에서 게임을 즐기는 젊은 파리지엥들 ⓒ 최성희


이곳에선 젊은 남녀가 삼삼오오 팀을 이뤄 게임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팀을 이뤄 막대기나 은색의 쇠구슬을 던지는 게임 등을 하는 게 요즘의 트렌드인 듯한데, 화창한 주말 오후에 이렇게 다들 즐거운 표정으로 야외 게임을 즐기는 파리지엔들의 모습은 오직 파리만의 특별한 멋으로 느껴졌다.

▲ 동네 놀이터에서 노는 파리의 아이들 ⓒ 최성희


▲ 세느 강을 바라보며 삼삼오오 모여 앉아 먹고 마시며 수다를 떨고 때로는 진지한 토론을 하며 여유로운 주말 오후를 즐기는 파리의 젊음 ⓒ 최성희


그렇게 세느 강 운하 주변을 거닐며 유유자적 파리의 봄을 만끽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렀다. 하늘이 어둑해질 무렵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http://arinalife.tistory.com/에도 추후 게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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