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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마을에 사는 '이리떼 3마리'를 아시나요?

[2017 전국일주 - 대구·경북 ⑫] 선거철이면 느꼈던 이질감... 그러나 민심은 변해간다

등록|2017.07.23 17:51 수정|2017.07.23 17:51
우리나라 언론에는 소위 '중앙'이라는 '서울발' 기사만 차고 넘칠 뿐 내가 사는 곳을 다룬 기사는 찾기 어렵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지역이 희망'이라는 믿음으로 지역 시민기자를 만나러 가면서 해당 지역 뉴스를 다룹니다. 첫 행선지는 대구입니다. [편집자말]

▲ 구미 상모동 생가 주변에는 5미터 높이의 박정희의 청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 공간에서 그는 자신의 영욕의 삶 가운데서 영광으로만 소환된다. ⓒ 장호철


거친 들판에 마을이 하나 있다. 이리떼의 습격을 막기 위해 마을 전체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고 망루 위에 파수꾼을 세운다. 이리떼가 출몰할 때마다 파수꾼들은 양철북을 두드려 마을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리떼는 존재하지 않았고, 이 모든 것은 공포심을 유발하여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촌장의 계략이었음이 드러난다. 이강백의 희곡 <파수꾼>의 줄거리 일부다.

TK라는 마을이 있다. 그 마을에서는 보수라는 이름만 내세우면 모두 우러러본다. 죄를 지어도, 흠이 있어도 보수라는 '딱지표'만 있으면, 그 사람은 손쉽게 촌장이 되어 권력을 휘두른다. 촌장에 욕심이 있는 사람들은 보수의 적자라는 명분을 쌓기 위해 갖가지 꼭두각시 짓(친박, 진박, 비박, 참진박 등 흥보가 기가 막힐 정도의 박타령 따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공천이라는 딱지표를 받는다.

물론, 이러한 현상들은 TK라는 마을에서만 관찰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력이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럼에도 굳이 TK 마을을 예로 드는 것은 이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이리떼의 존재를 믿는 70년대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TK마을에서 살아간 지 어느새 십 년이 넘었다. 태어난 고향은 충청도고, 전라도에서 대학과 군 복무를 마치느라 십여 년을 살았다. TK마을에 와서 결혼하고 애를 낳았으니 지역주의에서는 비교적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십 년의 세월 동안 제법 친구도 사귀었다. 말끝에 약간의 사투리도 묻어나고, 막창의 맛에 푹 빠져들었다. '대프리카'로 표현되는 이 지역의 뜨거운 날씨에도 적응되었다. 다만 한 가지, 선거철이 되면 여전히 이질감을 피부로 느낀다.

'이리떼'의 다양한 모습

▲ 연극 <파수꾼>의 한 장면 ⓒ 이정혁


선거의 계절이 돌아오면,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리떼에 대한 공포가 어김없이 생겨난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몸에 익은 듯 눈과 귀를 막고 한 방향만 쳐다본다. 이리떼로부터 보호해주고, 지금의 살기 좋은 새마을을 만들어 냈다는 누군가의 동상은 마을 사람들을 단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리떼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해서 나타나는데, '안보', '경제' 그리고 '지역주의'의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안보의 위협부터 들여다보자. 좌파, 종북, 진보라는 용어는 마을 사람들에게 강한 공포심을 유발한다. 6.25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 층들도 마찬가지다. 좌파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그저 '빨갱이'라는 말이 전부다. 그 이상의 철학과 깊이는 없다. 형체도 없고 개념도 없는 보수에 의문을 제기하면 모두 좌파고 종북으로 낙인찍힌다.

안보라는 이름의 이리떼는 효과가 즉시 발현되고 파급력이 막강하다. 촌장 자리를 노리는 권력의 하수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시도 때도 없이 꺼내서 흔드는 이유다. 문제는 거기에 속고 또 속는 마을 주민들이다. 사드 배치는 반대하면서도 투표율은 보수정당이 압도적으로 나오는 기이한 현상, 미스터리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두 번째는 지역경제라는 이리떼다. 스스로 보수라 칭하는 작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정권이 바뀌면 우리 마을은 망한다고.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하던 사람이, 하던 당이 해야 한다고. 지켜내는 것이 바로 보수라고. 허나 지난 십 년, 보수를 내세운 지역 출신 대통령 두 명이 나라를 맡는 동안 경기가 회복되었다거나 마을이 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단 한 명에게도 듣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경제라는 이리떼로 인해 득을 보는 건 늘 그렇듯, 개발에 대한 기대를 이용하는 투기 세력들이었다.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고, 뛰어오른 임대료로 소상공인들이 하나씩 쓰러져갔지만, 자신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의 탓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 정도나마 밥이라도 먹고 사는 게 다행이지, 정권이 바뀌면 우리는 폭삭 망한다"는 말을 하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선거가 돌아오면 불만도 후회도 없이 같은 자리 같은 인물에 도장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지역주의'라는 이리 떼를 십분 활용했다. 전 정권의 실세였던 자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우리가 남이가'. 지역주의는 그 어떤 장벽보다 견고했다. 어느 때는 이리떼보다 더 경계하고 증오하는 대상이 이웃마을 사람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독재 정권이 만들어낸 허상에 누구보다 강하게 세뇌당한 마을이 TK마을이었다.

지역주의를 단순히 TK마을의 문제만으로 국한시킬 수는 없다. 사실,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악용하는 일부 통치 세력들이 원흉이다. 그럼에도 TK마을의 지역주의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렇다 할 명분이 없는 지역주의기 때문이다. 5.18의 아픔이 배어 있는 타 지역과는 달리 TK마을의 지역주의는 차라리 배타주의에 가깝게 느껴진다. 실리만을 위해 울타리 안에서 똘똘 뭉치는 그네들의 모습은 때론 슬프고 때론 비겁하다.

'희곡'과 현실은 다르길...

▲ 대구2.28기념공원에서 약 3km를 거리행진한 대구 시민들이 지난 8일 오후 자유한국당 앞에서 '자유한국당 해체' 피켓을 들고 있다. ⓒ 조정훈


이상으로 TK마을을 위협하는 세 종류의 이리떼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마을 출신인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나라를 혼탁하게 만드는 바람에 주민들도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유일한 업적이라 할 만하다. 국채보상 운동을 시작하고 2.28민주 운동으로 이승만 하야의 도화선을 만든 자랑스러운 지역의 심장이 조금씩,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TK마을의 중심부에서 야당의 국회의원이 당선되고, 바뀐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50%를 넘고 있다. 물론, 여전히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당수 주민들이 '도대체 그녀가 뭘 잘못했느냐'며 항의하는 모습이 종종 언론에 비치기도 한다. 허나 그 외침과 옹호에 이미 맥은 빠져 있고 그렇기에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사는 TK마을은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파수꾼>의 결말은 이러하다. 촌장에게 겁박과 회유를 당한 신참 파수꾼은 진실을 숨기고 이리떼가 나타났다고 외친다. 그렇게 마을은 다시 평화 아닌 평화 상태로 돌아가고 촌장은 권력을 유지한다. 작품 속의 결말과 현실 세계는 다르기를. 진실을 알게 된 마을 주민들이 이리떼의 공포에서 벗어나 자유와 행복을 마음껏 누리기를 마을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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