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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집단 성폭행 피해자, 왜 도봉경찰서로 가야했나

경찰의 미온적인 대응에 신고 접수 과정 순탄치 않아... 수사기관 인식 변화 필요

등록|2017.07.21 14:47 수정|2017.07.21 14:47

▲ 2012년, 전남의 한 모텔에서 여자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집단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MBN 취재진과 인터뷰에 나선 피해자. ⓒ MBN 인터뷰 갈무리


여기 하나의 사건이 있다. 그런데 하나의 사건이 다른 과정을 거쳐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았다. 무슨 이유일까. 사건은 하나인데 결론이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2012년, 전남의 한 모텔에서 여자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집단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피해자는 지난해 가족에게 피해 사실을 밝히고, 경찰 민원 콜센터 등에 사건 대응 방법을 문의한다.

하지만 콜센터를 통해 연결받은 전남 지역 경찰서는 "피해자 본인이 관할 경찰서를 방문해 조사받아야 한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는다. 신고 접수는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도 '증거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접수를 하지 못한 피해자는 결국 직접 서울 도봉경찰서를 찾아간다. 도봉경찰서에서 집단 성폭행 사건을 처리한 적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도봉서는 신고를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했고, 최근 피의자 7명을 모두 검거했다.

이 소식이 언론보도를 통해 전해지자, 경찰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여론을 의식한 듯, 지난 19일 전남지방경찰청은 성폭력 상담을 부실하게 대응한 경찰관을 징계하겠다고 밝혔다. 범죄 혐의를 인지하고도 수사에 착수하지 않는 등 직무를 태만했으며, 피해자에게 2차 상담을 유도하거나 해바라기 센터(성폭력피해자 통합지원센터)를 방문하도록 안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똑같은 사건을 두고 어떤 경찰서는 신고조차 접수하지 않았고, 또 다른 경찰서에서는 수사를 진행했다.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결국, 성폭력 사건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가 처음 만나는 경찰'이 되는 건가.

성폭력 상담소에 찾아온 피해자들은 대부분 경찰 고소를 꺼린다. 성폭력 사건 가해자의 70~80%가 아는 사람, 원래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이다. 이 관계에 대한 고민은 물론이고, 피해를 밝혔을 때 '네가 잘못한 게 아니냐' 혹은 '네가 꼬리친 것 아니냐'는 편견 어린 시선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주여성민우회 소속으로, 성폭력 지원 상담을 하는 필자는 '가해자의 명확한 처벌이 또 다른 피해자의 발생을 막을 수 있으며, 이 사건은 피해자의 잘못으로 일어난 게 아니'라고 설득하며 고소를 권유한다. 고소로 모든 일이 끝나는 건 아니다. 경찰, 검찰, 법원 등 사건 해결을 위한 전 과정에 동행하며, 피해자가 얼마나 힘겹게 일련의 과정을 통과하는지 지켜본다.

피해자 비하하고, 고소 막는 경찰?

"고소를 하러 갔는데 경찰이 '가해자가 가족들도 있는데 일부러 만졌겠느냐'면서 실수로 그런 것이고 가게에 CCTV가 없으니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말로 오히려 저를 설득하려 했어요." (2017년 6월, <여성신문>, 소주판촉 알바노동자 성추행 사건 피해자)

성범죄 사건을 대하는 경찰의 반응이다. 성범죄 사건을 다루는 경찰의 왜곡된 시선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이다. 이 사건의 경우, 수사과정에서 2차 피해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한두 건이 아니다.

"피해자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는 경찰 내부보고 문건을 기자들에게 유출하고, 수사담당자였던 경찰이 노래방에서 피해자를 비하하며 사건을 떠들어대고, 집단 성폭력 피의자들 앞에서 가해자들을 직접 지목하게 하고, 여성경찰관 조사 및 배석, 진술녹화 등을 하지 않고, 식사와 휴식시간 없이 밤샘조사를 하고, 다른 부서 경찰이 피해자에게 개인적인 비난을 가한 것 등 그 내용도 다양했다." (2007년 8월,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처럼, 수사 과정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겪는 문제는 다양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2012년에 쓴 논문 <성폭력 2차 피해를 통해 본 피해자 권리>에서 2차 피해 사례를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① 피해자 비난, 화간 의심: 72회
② 무시, 무성의, 불친절, 부정적 견해: 54회
③ 합의 강요: 47회
④ 사생활 침해, 신변 위협: 24회
⑤ 절차고지 안내 부족: 23회
⑥ 반복진술, 신뢰관계인 동석거부, 무고 위협: 19회

▲ 2012년, 전남의 한 모텔에서 여자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집단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MBN 취재진과 인터뷰에 나선 피해자. ⓒ MBN 인터뷰 갈무리


여성가족부 2010년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체적 성폭력 피해자 중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비율은 고작 2.9%에 불과했다. 경찰에 신고했을 때 11명 중 4명이 수사를 진행하였으나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또 경찰의 조치에 대해 10명 중 7명이 불만족한다고 답했다.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물론 이런 문제를 시정하려는 노력이 없는 건 아니다. 많은 여성단체가 성폭력 2차 피해 문제를 지속적으로 공론화하자, 2014년 경찰청은 '성폭력범죄의 수사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칙'을 제정했다. 이 규칙에 따라 전담조사관이 성폭력 범죄 피해자를 담당하는 등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

필자 또한 최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18년 전 강간살인 사건을 다시 조사해서 결국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을 지켜보며 그들의 수고에 감동하고, 진심어린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여전히 수사 과정에서 상처 받는 피해자를 만난다. 피해자들은 과중한 사실 입증 책임을 떠안고, "그 남성을 좋아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으며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 모든 걸 그만두고 싶다'고 말한다.  

제도 개선 이어지고 있지만... 수사관 태도 중요해

피해자는 경찰 조사 단계에서 끔찍한 사건을 복기하고, 재경험하는 힘겨운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때 그 전쟁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바로 담당 수사관일 것이다. 수사관의 눈빛과 말 한마디가 중요한 이유다. 그들의 언행은 피해자에겐 더할 나위 없는 용기가 되기도 하고, 때론 더 큰 폭력으로 다가오기도 할 것이다.

경찰 조직 또한 현 사회의 인식과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또 조직의 성과와 직접적으로 관련한 '사건 해결'에 최우선적인 가치를 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역할을 소홀히 한 것도 사실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보호 조치가 법과 제도로 보완되어 왔지만, 이것으로 피해자들의 아픔을 모두 껴안을 수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성폭력 피해에 대한 이해, 그리고 성폭력 통념들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대한민국에 저같은 여성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잘못한 줄 알고, 자기 자신을 구박하고 살 텐데 그렇게 안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2017년 7월, 전남 집단 성폭행 피해자 인터뷰, MBN)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김미리내씨는 광주여성민우회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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