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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상 프로방스는 얼마나 프랑스적일까?

[프랑스여행②] 샘과 분수로 유명한 마을

등록|2017.07.24 15:25 수정|2017.07.24 15:25
5월 초 어느 날 파리 리옹 역(Gare de Lyon)에서 약 세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남프랑스의 액상 프로방스 TGV 역(Gare de Aix-en-Provence TGV)을 나오니 파란 하늘 아래 한 낮의 역 주변은 참으로 한적했다. 서둘러 미리 예약한 '오베르주 드 죄네스 자 드 부팡(Auberge de Jeunesse Jas de Bouffan)'이라는 긴 이름의 호스텔을 찾아가야 했지만, 어디서 어떻게 버스를 타야 하는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한 채 한참을 우왕좌왕 하던 끝에 결국 눈물을 머금고 택시를 타기로 했다.

유럽 여행 중엔 비싼 택시 따윈 결코 타지 않으려 했기에, 과연 얼만큼의 요금 폭탄이 떨어질지 모를 불안감에 미터기도 없는 택시 뒷자석에 앉아 있는 내내 좌불안석이었다. 게다가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던 택시는 점점 인적 드문 산 속으로 진입하는 듯했고, 호스텔이 이렇게 외딴 곳에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내 머릿 속엔 갖가지 섬찟한 시나리오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가장 가능성이 큰 건 분명 아무것도 모르는 아시아인 여성을 태우고 일부러 멀리멀리 돌아서 최대한 바가지를 씌우려 한다는 것이었는데, 나는 걷잡을 수 없이 뛰어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제발 최대 100유로만 넘지 말아달라고 맘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30분 가까이를 외진 도로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 이젠 얼굴마저 점점 화색이 된 채로, 최악의 경우 택시에서 탈출할 방법까지 모색하며 전전긍긍하던 중에 택시는 갑자기 변두리의 어떤 멋없어 보이는 낡은 건물 앞에 멈췄고, 기사 아저씨는 친절한 어투로 요금이 35유로라고 했다.

▲ 시 외곽에 떨어져 있어 나를 식겁하게 했던 유스호스텔 ⓒ 최성희


대중교통 요금으로는 여전히 큰 액수긴 하지만 내가 상상했던 나쁜 시나리오가 아니었음에 안도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시내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이곳은 단체 학생들이 주로 묵는 비교적 저렴한 유스호스텔인데, 비수기라선지 영업을 하긴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썰렁했다.

체크인을 하고 직원의 안내대로 숙소 앞 정류장에서 시내로 가는 2번 버스를 기다리며 노선을 살펴보다가, 마침 거기 있던 한 프랑스 인 아가씨에게 2번 버스를 타고 다운타운으로 가려면 이 중 어느 정류장에서 내려야 하냐고 물으니 영어를 전혀 못 알아 듣는다. 그래서 "레스토랑, 쇼핑..." 했더니 '아!' 하면서 'Rotonde Post'를 가리킨다. 메인 거리인 미라보 거리(Cour Mirabeau) 초입의 대표적인 분수 '로통드 분수(Fontaine de la Rotonde)' 근처인 듯했다.

▲ 화창한 날의 미라보 거리 ⓒ 최성희


▲ 미라보 거리의 분수 ⓒ 최성희


▲ 미라보 거리의 또다른 분수 ⓒ 최성희


'물의 마을'이라는 뜻의 액상 프로방스(Aix-en-Provence)는 이름처럼 예로부터 100여 개의 샘과 분수로 유명한데, 과연 모든 분수를 다 본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시내 곳곳에 다양한 형태의 수많은 분수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화가 폴 세잔(Paul Cezanne)의 도시로도 유명한 이곳 길바닥 곳곳에 박혀 있는 동판에 새겨진 표식들을 따라가면 그의 생가, 다녔던 학교 등 많은 관련된 자취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작은 도시는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뉘어 있는데, 번잡스럽고 지저분한 파리와는 대조적으로 깨끗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구시가지를 걸으며 진짜 프랑스적인 무언가를 느껴보려 노력했다.

▲ 구시가지(1) ⓒ 최성희


▲ 구시가지(2) ⓒ 최성희


▲ 길 바닥에 새겨진 화가 폴 세잔의 표식 ⓒ 최성희


남프랑스는 라벤더로 유명해서 거리마다 각종 아로마 제품을 파는 가게들이 많다. 발길이 닿는 한 곳에 들어가 비누들을 구경하다가 하나에 2유로씩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선물용으로 나눠주려고 다양한 향의 비누 4개를 골랐다. 그랬더니 주인 여자가 다가와 불어로 뭔가를 얘기하는데, 영어를 전혀 못하는 그녀와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배운 불어 실력으로 손짓발짓 해가며 겨우 대화를 해보니 다섯 개를 사면 하나를 덤으로 준다는 거였다. 괜찮은 제안인 듯해서 선뜻 다섯 개를 샀다.

산뜻한 기분으로 고풍스런 골목골목을 누비며 분위기에 젖어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한 한국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가 그 사탕가게 아이가?"

단체 관광객으로 오신 듯한 그 걸걸한 경상도 아주머니 덕에, 얼마나 유명한 덴가 싶어 나도 그 가게에 들어가 프랑스 전통 과자 칼리송(Calisson) 몇 개를 사 먹어 보았다. 너무 달지 않은 깊고 달콤한 맛이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 견과류를 넣어 만든 프랑스 전통 사탕 누가(Nougat) ⓒ 최성희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지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 사이 한 무리의 프랑스 초등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수학여행을 왔나보다. 한적하던 숙소가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4인실에 손님은 나 혼자라 간만에 누구의 방해도 없이 편히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더니 하필 아이들이 바로 옆 방에 묵는 바람에 쉴 새 없이 쿵쾅거리고 떠들썩이다.
덧붙이는 글 추후 개인 블로그 http://arinalife.tistory.com/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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