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욕 듣고 코피 터지는데 최저임금도 안 주겠다니
[최저임금 사각지대 ①] 최저임금 적용, 이주노동자는 빼자? 사업자의 이율배반적 태도
지난 15일 최저임금위원회가 2018년 최저임금을 7530원으로 결정했습니다. 올해 대비 16.4% 인상한 금액입니다. '최저임금 1만 원'이라는 노동계의 목표에는 못미치지만, 11년 만에 두 자릿수 인상률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터지는 축포 속에서 마냥 웃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저임금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일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 A씨는 여성 이주노동자다. ⓒ pixabay
"때릴까봐 무서운데 신고할 수 없어요"
A씨는 동남아에서 온 여성 이주노동자다. 경기도에 있는 한 농장에서 작물재배와 포장 일을 하고 있다. A씨는 요즘 사장이 너무 무섭다. 사장에게 야간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손찌검을 당할 뻔했다. 주먹을 머리 위로 올리고 버럭 소리 지르던 사장은 동네 할머니들이 손짓으로 말리자 그만뒀다.
A씨는 하루라도 빨리 농장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고향에서 진 빚을 다 갚으려면 하루라도 더 일을 해야 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A씨는 임금체불과 회사 부도 때문에 근무처를 두 번이나 옮겼다. 지금 일하는 곳은 실직 후 구직활동 기간이 길어지면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할 때,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 믿고 일하기로 했다. '지혜롭다'의 이름을 가진 A씨는 조급하게 일자리를 찾은 자신이 어리석었다며 자책한다.
농장에서 일하기 전, 사장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고 점심까지 제공해 월 140만 원을 준다고 했다. 토요일은 격주로 쉬고, 휴게시간은 점심시간 포함해서 하루 80분을 약속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하루 10시간 근무에 휴게시간은 20분밖에 주지 않았다. 점심 또한 약속과 달리 제공되지 않았다. 단지 식대로 월 5만 원이 지급될 뿐이었다.
같이 일하는 한국인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은 6시가 되기 전에 장갑을 벗고, 허리를 펴고 한참 수다를 떨다 시간에 맞춰 퇴근한다. 하지만 A씨를 비롯한 이주노동자들은 감히 그럴 수 없다. 매일 야근을 강요받으면서도 잔업 수당조차 받지 못한다.
A씨는 같이 일하는 한국 할머니들로부터 일손이 빠르다는 칭찬을 곧잘 듣는다. 하지만 사장은 툭하면 고함을 지른다. 근무처를 옮기겠다고 하면 쌍욕을 하며 그냥 나가라고 내몰기 일쑤다. 사장은 이주노동자들이 고용주 동의 없이는 근무처를 옮길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한번은 같이 일하는 동료가 사장을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노동청에 진정하자고 A씨를 설득했다. 잔업수당을 제대로 계산하면 월급이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둘은 곧 포기해야 했다. 근로기준법 제63조 1항이 문제였다. 근로시간과 휴식, 휴일 근무 등에 있어서 농업 종사자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토지의 경작, 개간, 식물의 재식, 재배, 채취 사업, 그 밖의 농림 사업에 해당하는 근로자에 대하여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사장은 툭하면 "밥값까지 주는 농장 있는지 알아 봐. 기숙사비도 우리 농장처럼 적게 받는 데 없어.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140만 원도 많아"라며 외국인들이 최저임금보다 많이 받는다고 툴툴거렸다. 손찌검을 하려 들고, 쌍욕 한다고 노동청에 진정할까 하는 생각도 해 봤지만, 그러다 일이 틀어지면 사장이 어떤 난리를 피울지 몰라 진정도 할 수 없다.
▲ B씨는 직업소개소의 도움으로 완도에 있는 전복 양식장에 취직했다. 전복 양식장 일은 만만치 않았다. B씨가 일하던 곳은 다른 양식장들과 달리 비오는 날도 작업을 했다. ⓒ pixabay
일요일에도 일하는 양식장, 월급은 150만 원
중국동포인 B씨는 7년 전 방문취업제(H2)로 처음 입국했다. 중국에서는 학교 선생으로 육체노동을 해 본 적 없는 B씨였지만, 벽면 타일 시공 일을 하면서 건설현장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국내 인력 부족이 심각한 특정업종에서 장기 근속한 동포들을 대상으로 장기 체류가 가능한 동포 비자(F4)를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농축산업·어업·지방소재 제조업체 동일 사업장에서 2년이상 근속하면 주는 제도였다. 단, 인구 20만 미만 도시라는 조건이 있었다. B씨는 직업소개소의 도움으로 완도에 있는 전복 양식장에 취직했다.
전복 양식장 일은 만만치 않았다. B씨가 일하던 곳은 다른 양식장들과 달리 비오는 날에도 작업을 했다.
"다른 양식장은 비오는 날은 사료를 주지 않는다는데, 우리 사장은 그런 걸 상관 안 해요. 남들은 경치 좋다는데, 그걸 쳐다 볼 시간도 없어요. 여름 되면서 쉬는 날이 없으니 골병들겠더라 말입니다. 그래서 그만둔다 했어요."
그곳에서 B씨는 휴무없이 일하고 월 150만 원을 받았다. 양식업은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와 휴게 시간 예외 업종이라 동포를 비롯한 이주노동자들의 급여는 열악했다. B씨는 힘들어도 비자 변경 자격을 얻기까지만 참으려고 했다. 비록 사장이 최저임금도 지키지 않았지만, 버텨보려고 했다.
하지만 체력이 견디지 못한다는 걸 아는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처음 한국에 와서 타일 시공을 할 때 쌍코피를 흘리며 병원 신세를 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B씨가 떠난 양식장엔 비자 변경을 목적으로 이를 악물고 일하는 동포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B씨는 그들이 2년을 어떻게 버틸 낼지 의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이주노동자 공격?
매해 그랬지만 올해는 유독 심하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예년보다 높게 책정되자, 재계를 대변하는 경제지는 물론이고 보수언론은 사측 주장을 받아쓰며 이주노동자를 공격한다.
최저임금의 역설... 외국인 근로자 더 우대 (매일경제, 2017.07.17)
최저임금 미달 근로자 느는데... 외국인엔 숙식비까지 제공 (머니투데이, 2017.07.18)
부산·울산 중소기업 60% "외국인 근로자 최저임금 낮춰야" (한국경제, 2017.07.23)
"최저임금 급등에 中企 내년 외국인근로자 추가부담 1兆" (문화일보, 2017.07.18)
100만 외국인근로자, 최저임금 인상 최대 수혜... 年 15조 국부유출 (뉴데일리, 2017.07.17)
"외국인 근로자 임금도 상승"... 영세 제조업 위기 (MBC, 2017.07.20)
이젠 새로울 것도 없다. 경제지와 보수 언론의 이주노동자 공격은 너무나 이율배반적이다. 그들은 매해 고용노동부가 외국인력 정책을 수립할 때마다 재계 입장을 대변하면서 이주노동자 쿼터를 늘릴 것을 주문해 왔다. 그런데 최저임금이 오르자 이주노동자들을 마치 공공의 적인 것처럼 몰아붙이고 있다.
어디 언론만 그러겠는가? 2년 전, 당시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 후생복리가 과도하게 좋아진다"며 이주노동자는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시켜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보다 잘 사는 선진국도 숙박비용을 최저임금에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가 싼 맛에 외국인 근로자를 쓰듯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한국같이 외국인근로자들을 잘 보호하는 나라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사실일까? 당연히 아니다. 우선 이주노동자는 대부분 적정 주거 기준에도 못 미치는 환경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기숙사비와 식비를 공제 당하고 있다. 기본적인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국에는 고용허가제라는 문제적 제도가 있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엄격하게 사업장 변경을 제한받고 있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하려면, 고용주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회사가 망하거나, 상당한 임금체불이나 폭행 등의 인권침해가 일어나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인권침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 보자.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업체들은 힘들고 위험하고, 작업환경은 좋지 않은데다 임금은 적어서 내국인들은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든다. 그런데 그런 사업장이 견뎌낼 수 있도록 정부가 힘을 보태준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3년이라는 장기근로계약을 최저임금 기준으로 작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를 노예처럼 고용할 수 있는 고용주들만 횡재하는 구조다. 그래서 고용주들은 이주노동자를 더 많이 고용하게 해 달라고 늘 아우성이다. 이러한 고용주들의 주장이 관철되면 이주노동자가 내국인 일자리를 잠식하는 건 시간 문제다.
진정한 보수라면 들고 일어나야 한다. 내국인 일자리가 잠식되는 것을 눈 뜨고 쳐다봐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입을 닫으라고 한 것도 아닐 텐데, 이주노동자를 고용하지 말자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주노동자를 더 고용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다만, 최저임금을 적용시키지 않으면서 말이다. 차별을 당연하다고 보기 때문에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그런데도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이 특혜나 시혜인 것처럼 말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대한민국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자본과 자신들의 밥그릇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 지난 2016년 5월 1일 오후 대구 반월당에서 열린 노동절 집회를 마친 노동자들이 거리행진을 벌인 가운데 이주노동자들도 '노동자는 하나다' 등의 손피켓을 들고 거리행진에 나섰다. ⓒ 조정훈
또 '100만 외국인근로자, 최저임금 인상 최대 수혜... 年 15조 국부유출'이라는 기사의 논리대로라면 이주노동자는 내수성장에 전혀 기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다. 이주노동자도 소비자다. 그들도 국내에서 먹고 마시며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문화생활을 한다. 국내 재래시장과 지방 소도시 터미널 가운데 이주노동자가 없다면 운영이 어려운 곳이 한둘이 아니라는 걸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2016년에 IOM이민정책연구원은 '국내 이민자의 경제활동과 경제기여효과' 보고서에서 이주민 생산유발효과 55.3조 원, 부가가치유발효과 18.8조 원으로 총효과가 74.1조 원이라고 발표했다. 이 수치를 무시한 채 연 15조 국부가 유출된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최저임금 인상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주노동자이니 최저임금에서 배제시키자는 것은 인종차별이기도 하다. 막대한 부가가치를 생산하며 우리 경제의 한 축을 떠받치고 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근거없는 반감과 차별 조장은 당장 중지되어야 한다. 이주노동자를 차별하거나 차등 대우함으로써 이득을 취하려 하는 유아적 태도를 버리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지름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고용허가제 독소조항 폐지와 근로기준법 제63조의 예외 조항 등에 대해 이주노동자가 배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가 재계의 이율배반적인 이주노동자 공격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보여줘야 할 때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