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60시간 미만 근무도 '과로'일 수 있다
[너무나도 피곤한 노동자들 ③]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저자 김형렬 교수 인터뷰
▲ 안양우체국 소속의 한 집배원이 지난 10일 우중에 업무를 보고 있다. ⓒ 김종훈
지난 6일, 안양 우체국 앞에서 한 집배원이 자신의 몸에 불을 당겼다. 9일에는 고속도로에서 버스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발생해 시민 2명이 죽었다. 지난 2016년 7월에도 영동고속도로 상행선 봉평-둔내터널에서 버스기사의 졸음운전으로 버스가 앞서가던 차량을 덮치면서 4명이 숨졌다.
이 사고들은 '과로'라는 문제에서부터 시작됐다. 집배원은 담당구역 확대로 업무가 과도하게 늘어났지만 인원 충원이 없었고, 버스기사들은 하루 16시간이 넘도록 운전대를 잡았다. 과로는 우리 사회의 일상이고, 과로사는 우리 곁에 있는 죽음이다.
▲ 직업병에 대해 다룬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 나름북스
책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은 직업병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들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머리를 맞대 펴낸 책이다. 책 제목은 자본주의 초기 굴뚝 청소를 해야 했던 어린이들에게 나타난 직업병을 밝혀낸 이야기에서 따왔다고 한다. 책에는 유해물질로 시력을 잃고, 하반신이 마비된 노동자들부터 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노동자들, 과로하는 노동자들 이야기가 담겨 있고, 직업병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중 우리 사회 과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 김형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를 지난 19일 만나 우리 사회의 과로·과로사와 직업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아래는 인터뷰를 재구성한 것.
직업병을 찾아 나서는 '탐정 의사'들
▲ 지난 1991년 5월 원진레이온 공장 전경. 당시 국회노동위 원진레이온 직업병 및 작업환경 실태조사 소위원회의 의원들이 미금시 원진레이온 공장을 방문, 작업환경등 실태를 조사했다. ⓒ 연합뉴스
"1988년에 원진레이온 사건이 있었다. 원진레이온에서 근무하던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이황화탄소 중독이 된 것이다. 이 일을 통해 사회적으로 직업병에 대한 인식이 생겼다. 직업환경의학과에서는 그러한 사건들 이후 전문의 과정이 만들어졌다. 많은 의사들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다가 직업환경의학을 선택했다."
직업환경의학과는 책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에서 '탐정'으로 묘사된다. 단순히 병·의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직접 현장을 방문해 직업과의 연관성을 찾아내기도 하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한다. 김형렬 교수 역시 자동차 회사와 각종 사업장에 주기적으로 방문한다. 환자 상담과 작업환경 설명, 개선안 지도 등을 하기 위해서다. 이에 더해 유가족을 만나 진술을 들으면서 죽음의 원인을 추적하고 산재 지원을 돕는, 활동가적 면모를 띠고 있는 의사다.
"누군가에게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적 요인이 있는데 이것이 잘 드러나지 않도록 땅에 묻고 매일 흙으로 덮어주고 발로 밟아 준다고 해보자. 그런데 비가 많이 와서 흙이 쓸려내려갈 수 있다. 한 달 째 비가 올 수도 있고, 태풍이 올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흙속에 있었던 그 유전적 요인이 드러난다고 해보자. 그 유전적 요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원인이냐, 비가 오고 태풍이 분 것이 원인이냐 한다면 둘 다 원인일 수 있다. 다만 우리는 그 유전적 요인을 드러내게 하는 장마나 태풍과 같은 직업적 환경에 주목한다."
"원래 약해서 죽은 것?" 과로사는 다양한 요인에서 발생
▲ 살인적인 초과 근무에 시달리던 광고회사 '덴쓰'의 여사원 다카하시 마쓰리의 자살 사건을 보도하는 NHK 뉴스 갈무리. ⓒ NHK
지난 2016년 10월 일본의 유명 광고회사에서 한 직원이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자살한 일이 있었다. 과로사는 심혈관계 질환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 광고회사 직원의 사례처럼 자살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노동자가 자살했을 때 빠지지 않는 반응이 있다면 "정신력이 저렇게 약한 게 애초에 문제"라는 비난이다. 하지만 직업환경의학과에서는 다시 묻는다. 자살로 이어진 결과가, 우울증을 만들어낸 원인이 정말로 노동자의 개인 문제인지 아니면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였던 것인지.
"과로사에 대한 규정이 있는 나라가 많지는 않다.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과로사 관련 법을 통과시켰다. 그 법이 선진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과로라는 개념에서 노동시간뿐만 아니라 노동 밀도·강도·책임감 등의 다양한 과로의 질적요소를 고려했다는 점은 배울 필요가 있다."
일본 역시 과로사·과로자살을 겪었고, 2014년에 관련 법안까지 마련됐다. 우리나라는 관련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주 60시간 이상 근무했다면 과로라는 기준도 있다. 김형렬 교수는 과로와 과로사를 다양한 관점으로 봐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노동자가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는 과정이었을 수도 있고, 동료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리더의 역할을 맡아 책임감이 노동자를 짓눌렀을 수도 있다. 야간 근무라면 시간이 적더라도 그 강도가 강했을 수밖에 없다. 날씨 영향을 받는 옥외에서 수행하는 일이라면 여름과 겨울에 더 힘들 수도 있다. 과로로 자살한 노동자를 "원래 약한 것"으로만 볼 수 없듯이, 과로라는 개념도 더 넓은 차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과로사를 직업병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과로를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런 과정들이 인정되면 기본적으로는 돌아가신 분들에게 위로가 된다. 동시에 유족들이 이어나가야 할 실질적 삶에 도움이 된다. 더해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 '예방의 메시지'다. 더 이상 이러한 죽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작업환경을 바꾸고, 과로가 일어나지 않도록 법·제도·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주는 것이다."
어떻게 과로사의 원인을 따질 것인가
▲ 김형렬 교수는 "많은 나라에서 산재처리에서 원인주의적 성격을 줄이려고 하는 게 그 이유다. 그 비용으로 차라리 더 지원하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 pixabay
"사회보장은 대부분 결과주의다. 독거노인이 몹쓸 잘못을 해서 가족에게 버려졌다고 하더라도 지원하는 거다. 원인을 따지는 게 아니라 '지금 지원이 필요한가'를 따진다. 반대로 산재보험은 철저히 원인주의다. 일 때문에 아픈 게 맞는지 조사하는 거다.
그러나 이러한 원인주의는 원인을 따지는 과정에 비용이 과도하게 들어간다. 조사하러 다니는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검증할 전문가가 필요하다. 아픈 사람들도 산재보험의 혜택이 확실하게 주어질지 몰라 치료를 미루게 된다. 치료가 늦어지면 치료기간은 더 길어지고 장애도 남게 되니, 사회 전체의 비용은 증가하게 된다. 많은 나라에서 산재처리에서 원인주의적 성격을 줄이려고 하는 게 그 이유다. 그 비용으로 차라리 더 지원하자는 것이다."
경찰청의 '자살 동기' 통계를 보면 2015년에 '직장 및 업무 상 문제'가 559명으로 4.2%를 차지한다. 평균으로 따지면 하루에 한 명 이상 자살을 택한다. 집배노조는 올해에만 5명의 집배원이 자살했다고 밝혔다.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근로복지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업무상 과로사의 산재 승인율은 2016년에 25.9%다. 업무상 자살의 산재 승인율은 38.7%다. 과로사·과로자살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산재를 비롯한 지원이 시작된다.
"노동시간을 계산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출·퇴근 카드를 찍지 않는 사람도 있다. 요새는 집에 일을 가져가는 경우도 흔하다. 출근을 하자마자로 계산할 것인지, 업무를 시작한 것으로 계산할 것인지도 모호하다. 노동시간이 기준보다 낮다면 과로가 아니냐는 질문도 있을 수밖에 없다."
김형렬 교수는 현재의 과로 노동시간 기준인 60시간 대신 '52시간'을 제시한다. 일단 시간부터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시간을 예시적 기준으로 둘 것을 이야기한다. 52시간을 넘기면 무조건 과로인 것이고 52시간 이하라면 노동 강도와 스트레스 등 다양한 환경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과로의 질적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노동부에 관련 지침까지 마련돼 있지만,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한국은 어떻게 '과로 국가'가 됐나
▲ 해외 사이트 <도그하우스다이어리>의 "각 국 선도분야"를 나타낸 세계지도. 한국은 '일중독'으로 그려져 있다. ⓒ Doghousediary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자가 스스로 일을 더 많이 하려는 경향이 있다. 오래 일해야 생활이 유지가 되는 시간제 임금구조 때문이다. 기업도 일을 많이 하는 게 좋다고 여긴다. 직장문화도 오래 일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 근로시간특례제도를 통해 장시간 노동을 합법화시키고 있다. 근로시간특례제도에는 서비스 직종 대부분이 해당된다. 이번에 17시간씩 운전한 버스기사 문제에서 알 수 있듯이 장시간 근무해도 법적으로 규제를 안 받는 거다."
근로시간특례제도는 운수업·영화업·통신업·광고업·보건업·사회복지서비스업 등 26개 분야에 일하는 노동자들이 연장노동을 하는 것을 허용한다. 근로기준법 50조 1항은 주 근무시간을 40시간으로 한정하고, 53조 1항을 통해 연장근무를 주 12시간까지로 한정한다. 하지만 근로시간특례제도(59조)에 따라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 합의만 될 경우 근로기준법을 무시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노동시간이 길어지면 생산이 증가하고 자본의 축적이 이뤄지는 사회다. 서구의 여러 나라들도 그러한 시기를 경험했다. 다만 장시간 노동을 지속하려는 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흐름 역시 있었다. 노동조합이, 정치, 문화, 제도가 이를 막아내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우리는 IMF 경제위기를 경험하며 '일하는 게 어딘데...'라면서, 높아지는 노동강도, 길어지는 노동시간도 감수하며 일했다. 시간제 임금아래에서는 생활임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법도 없었고, 정치도 없었고, 교육과 주거에 대한 공적 투자를 통해 생활임금을 낮추려는 사회적 합의도 없었다. 교육·주거의 공적인 지원, 시급제에서 월급제로 시급체계의 전환, 노동시간 특례제도 폐지 등이 절실하다."
'과로 원인'을 찾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
▲ 우리는 IMF 경제위기를 경험하며 '일하는 게 어딘데...'라면서, 높아지는 노동강도, 길어지는 노동시간도 감수하며 일했다. 어떤 보호장치도 없이 앞만 보며 일해왔다. 그 결과는 그닥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 pexels
김형렬 교수는 근로시간특례제도의 폐지를 주장한다. 법이 탄탄하면 많은 영역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문제 해결에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장시간 노동의 원인을 찾아 제거할 것을 이야기한다. 개인들이 돈을 많이 벌 수밖에 없게 하는 교육·주거 비용을 공공영역이 부담해 나가고, 기업문화를 개선하는 것 등이다.
"본인도 대표적으로 과로를 하는 의사 직종 아닌가"라는 질문에 김형렬 교수는 "과로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과로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쉽지는 않은 문제다"라고 답했다.
과로를 줄여나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법이 허용해서, 할 일이 많아져서, 경제 발전을 해야 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해서... 과로의 이유가 많기 때문이다. "과로의 이유를 찾아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김형렬 교수의 지적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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