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덤했던 아버지 장례식,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눈물 터진 이유
'영원한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를 배웅하고 돌아온, 어떤 여행
가끔씩 훌쩍 떠나는 여행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정한 목적지와 계획 없이 그야말로 '발 닿는대로 마음 가는 대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의 발로이다. 반면 오래 계획하고 준비된 여행이 주는 맛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준비하고 계획하는 과정부터가 여행이 된다.
아니 오히려 그 과정이 더 설레고 들떠서 그것만으로도 여행의 행복감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얼마 전 한국을 다녀왔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며칠 간 묵을 수 있는 옷가지만 챙겨 집을 나선 '훌쩍 떠난' 여행이었다.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를 보내드리기 위한 것이었으니, 너무도 명쾌한 목적이 있었음에도 여행의 준비가 주는 행복감은 물론 일말의 해방감이나 자유도 느낄 수 없었다.
'여행은 다니면서 하는 독서요, 독서는 멈춰서 하는 여행이다.'
독서가 누군가의 경험과 지식을 잘 정리된 상태로 받아들이는 간접 경험이라면 여행은 내가 몸소 겪는 산 체험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여행이 그랬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영원한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를 배웅하면서도 전혀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 한다'며 남자다움을 강변하는 한국문화에서조차 눈물을 허용하는 때가 아닌가? 나는 슬픈 감정 없이 덤덤한 내 자신을 보며 적이 놀라웠다.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으려 애쓰면 상황은 더욱 악화되는 법. 나는 끝내 눈물이 말라 버려 퀭한 눈으로 아버지를 배웅해야 했다.
인생의 마지막 여행은 시공을 초월한다. 지나간 시간과 현재와 미래가 만나고, 멀리 떨어져 있는 공간과 가까이 있는 공간이 서로 마주하게 된다. 고인과 그 식솔들과 그들의 지인들이 멀리서 또 가까이서 함께 모여 지난 시간을 반추하고 앞으로의 날들을 얘기한다. 그리고 그런 기회를 제공해 준 당자는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는 세계로 떠나 '영원한 노마드'가 된다.
"가신 분은 가셨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은 남은 사람들을 위한 매우 이기적인 표현인 것 같다. 나도 그랬다. 캐나다에서 언제나 허기로 느껴졌던 활어회와 바닷물로 만든 두부, 복어지리와 장어구이, 덕수궁 돌담 길 뒤편에 이름난 추어탕을 먹고도 맛에 대한 공허감을 채우지 못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여전히 궁금하고 답답하지만, 내가 그리워 했던 그 맛은 이제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 짓기로 했다.
이민자인지 여행자인지 혼동 속에서 살아온 지난 세월은 내 기억 속의 맛을 나의 감정과 바람으로 버무려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맛을 숙성해 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 수 있었으면...
이제 일상이 된 토론토로 돌아오는 길은 서울로 갈 때와는 달리 나의 경계심을 완화시켜주고 마음을 한결 안정시켜 주었다. '슬퍼야 한다'는 강박의 감옥에서 헤어나자 오감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고,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기분을 전환하려 선택한 코미디영화 속에서 흘러 나온 "아빠"라는 단어 하나에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막내라고 특별한 사랑을 주신 아버지와의 추억이 하나 둘씩 되살아났다. 불 꺼진 비행기가 나의 이런 청개구리 행각을 감춰주었다. 캐나다에 온 지 2년이 좀 넘어 바야흐로 향수병 초기 증세가 시작되려는 찰나에 한국으로 갈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가 내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라는 생각이 그때야 비로소 들었다.
멋진 여행에 대한 꿈은 사람마다 각양각색 다르게 그려질 터이다. 우리 각자의 인생이 저마다 다르듯이... 하지만 어떤 여행이건 누리던 일상 모두를 짊어지고 갈 수 없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똑같다.
언제나 여행자의 마음 가짐으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느 한 순간 모든 것을 버리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나설 때도 한 점 아쉬움 없이 멋지게 '훌쩍' 떠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 평화로운 삶을 가꾸려는 끝없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니 오히려 그 과정이 더 설레고 들떠서 그것만으로도 여행의 행복감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얼마 전 한국을 다녀왔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며칠 간 묵을 수 있는 옷가지만 챙겨 집을 나선 '훌쩍 떠난' 여행이었다.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를 보내드리기 위한 것이었으니, 너무도 명쾌한 목적이 있었음에도 여행의 준비가 주는 행복감은 물론 일말의 해방감이나 자유도 느낄 수 없었다.
'여행은 다니면서 하는 독서요, 독서는 멈춰서 하는 여행이다.'
▲ 영원한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를 배웅하면서도 전혀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 한다'며 남자다움을 강변하는 한국문화에서조차 눈물을 허용하는 때가 아닌가? ⓒ pixabay
독서가 누군가의 경험과 지식을 잘 정리된 상태로 받아들이는 간접 경험이라면 여행은 내가 몸소 겪는 산 체험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여행이 그랬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영원한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를 배웅하면서도 전혀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 한다'며 남자다움을 강변하는 한국문화에서조차 눈물을 허용하는 때가 아닌가? 나는 슬픈 감정 없이 덤덤한 내 자신을 보며 적이 놀라웠다.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으려 애쓰면 상황은 더욱 악화되는 법. 나는 끝내 눈물이 말라 버려 퀭한 눈으로 아버지를 배웅해야 했다.
인생의 마지막 여행은 시공을 초월한다. 지나간 시간과 현재와 미래가 만나고, 멀리 떨어져 있는 공간과 가까이 있는 공간이 서로 마주하게 된다. 고인과 그 식솔들과 그들의 지인들이 멀리서 또 가까이서 함께 모여 지난 시간을 반추하고 앞으로의 날들을 얘기한다. 그리고 그런 기회를 제공해 준 당자는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는 세계로 떠나 '영원한 노마드'가 된다.
"가신 분은 가셨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은 남은 사람들을 위한 매우 이기적인 표현인 것 같다. 나도 그랬다. 캐나다에서 언제나 허기로 느껴졌던 활어회와 바닷물로 만든 두부, 복어지리와 장어구이, 덕수궁 돌담 길 뒤편에 이름난 추어탕을 먹고도 맛에 대한 공허감을 채우지 못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여전히 궁금하고 답답하지만, 내가 그리워 했던 그 맛은 이제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 짓기로 했다.
이민자인지 여행자인지 혼동 속에서 살아온 지난 세월은 내 기억 속의 맛을 나의 감정과 바람으로 버무려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맛을 숙성해 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 수 있었으면...
▲ 이제 일상이 된 토론토로 돌아오는 길은 서울로 갈 때와는 달리 나의 경계심을 완화시켜주고 마음을 한결 안정시켜 주었다. '슬퍼야 한다'는 강박의 감옥에서 헤어나자 오감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고,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 pixabay
이제 일상이 된 토론토로 돌아오는 길은 서울로 갈 때와는 달리 나의 경계심을 완화시켜주고 마음을 한결 안정시켜 주었다. '슬퍼야 한다'는 강박의 감옥에서 헤어나자 오감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고,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기분을 전환하려 선택한 코미디영화 속에서 흘러 나온 "아빠"라는 단어 하나에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막내라고 특별한 사랑을 주신 아버지와의 추억이 하나 둘씩 되살아났다. 불 꺼진 비행기가 나의 이런 청개구리 행각을 감춰주었다. 캐나다에 온 지 2년이 좀 넘어 바야흐로 향수병 초기 증세가 시작되려는 찰나에 한국으로 갈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가 내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라는 생각이 그때야 비로소 들었다.
멋진 여행에 대한 꿈은 사람마다 각양각색 다르게 그려질 터이다. 우리 각자의 인생이 저마다 다르듯이... 하지만 어떤 여행이건 누리던 일상 모두를 짊어지고 갈 수 없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똑같다.
언제나 여행자의 마음 가짐으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느 한 순간 모든 것을 버리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나설 때도 한 점 아쉬움 없이 멋지게 '훌쩍' 떠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 평화로운 삶을 가꾸려는 끝없는 연습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캐나다 한국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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