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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에는 있고, 알라딘에는 없는 굿즈

독립서점에서 발견한 굿즈들, 왜 만드는 걸까요?

등록|2017.08.03 21:27 수정|2017.08.03 21:27
"미쳐, 사면 꼭 이러더라."

우산 겸 양산, 북램프, 투명컵, 책갈피... 마치 화수분 같다. 굿즈 말이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이 창립 18주년을 맞아 내놓은 굿즈들에 대해 독자 원성(?)이 높다. 굿즈 때문에 책을 5만 원 이상 질렀는데, 사고 나면 더 좋은 굿즈들이 나온다는 거다. '또 사야 하냐', '하 진짜 알라딘... 내 인생을 망치러 온 구원자 같으니라고...'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진다.

▲ 소설가 김영하가 자신의 SNS에 올린 글. ⓒ 최은경


최근 소설 <오직 두 사람>을 낸 작가 김영하마저 '맥주잔이 탐나서 그만 내 책을 주문했다'는 양심고백(?)을 SNS에 올려 주목을 받았다. '내용을 너무나 잘 알아서 이제는 안 읽어도 되는 책 한 권이 딸려왔다'는 말에 독자들은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았다. 나랑 똑같다면서.

그런데 세상에. '이니 굿즈'도 있단다. 문재인 대통령의 애칭인 '이니'와 '굿즈'를 합성한 말인데, 텀블러와 에코백 등을 판다. 심지어 지난 미국 순방 중 문 대통령이 교민에게 선물한 손톱깎이 세트마저 '이니 굿즈'로 불리며 '한국에서 살 수 없냐'는 문의까지 나온다는 기사도 나올 정도다.

그런데 여기 정말 소리없이 특별한 굿즈를 파는 데가 있다. 바로 독립서점들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나만 알고 싶은, 온라인 서점에서는 절대 만나볼 수 없는 굿즈들이 바로 여기 있을 줄이야.

▲ 이후북스에서 파는 굿즈 에코백이 보인다. ⓒ 이후북스


먼저 신촌의 독립서점 이후북스. 이곳에서는 에코백 2종과 고양이 배지 그리고 주문받아 제작하는 꽃갈피를 판다. 에코백에는 이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문장들을 새겼다.

"올해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 에세이집도 낸 가수 이내님의 '구름 노래' 노래 가사가 적혀있어요. '따뜻한 시간은 어떻게 보관해야 오래오래 기억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노래를 불러본다. 구름 노래를, 모래 노래를, 바다 노래를', 다른 에코백은 하현님의 책 <달의 조각>에서 발췌한 구절이에요. '잊지마 네가 가장 빛났던 순간은 너의 작은 세상에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렸을 때였다는 걸'이라고 적었어요."

황남희 대표의 말이다. 이 밖에도 고양이 다섯 마리를 키우며 <달을 쫓다>란 책을 만든 진고로호님이 만든 '책 읽는 고양이' 배지도 있다. 이후북스는 지난 4월 굿즈 제작비 마련을 위한 펀딩에 성공하기도 했다. 독립서점에서 왜 굳이 이런 걸 만드는 걸까?

"이후북스 굿즈들은 모두 독립출판물 제작자들과 협업으로 만들었어요. 책방도 알리면서 제작자들도 알릴 수 있죠. 책 이외의 결과물로 만들어지는 것에 모두 좋아해주셨어요. 여러가지 쓰임새로 이용되니 굿즈 자체로도 활용도가 있지만, 제작한 책과 제작자의 작품 활동도 같이 알릴 수 있다는 것이 제일 큰 장점이라고 봐요. 물론 품이 많이 드니까 대량으로 제작하지는 못 했지만 꾸준히 굿즈를 만들어서 다양한 방법으로 창작자들을 알리고 응원하고 책방도 홍보하는 결과를 만들고 싶어요."

망원동에 있는 안도서점 임화경 대표도 독립서점 굿즈에 대해 황 대표와 비슷한 의견을 밝혔다.

"독립서점에 굿즈가 필요한 이유가 있어요. 저도 책방에 자주 가지만 매번 책을 살 수는 없으니까요.(웃음) 제가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손님들에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어떤 것들을 진열해 두는 편이에요. 물론 이걸 한다고 매출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에요.(웃음). (드로잉 노트 같은 것들도 굿즈냐는 물음에) 굿즈라기보다는 그것들도 크게 보면 하나의 독립출판이라고 생각해요. 책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독립출판에 관련된 어떤 것들을 판매하는 것도 독립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봐요. 굿즈도 어떤 개인이 창작품으로 만들었다면 그 또한 넓은 의미에서 출판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보면 개념은 같다고 생각해요."

▲ 안도북스에서 소소하게 구입한 책이 아닌듯 책인 것 같은 굿즈들. ⓒ 최은경


지역서점도 굿즈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터. 지난 6월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특별전 '서점의 시대'에 참가한 속초 동아서점 김영건 매니저는 "책방이라는 곳이 책'만' 판매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서 책과 조금이라도 접점을 가진 제품들, 그리고 우리 서점의 색깔과 함께 할 수 있는 제품들은 가급적 많은 분들께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아서점에서 강릉의 디자인 스튜디오 '밍스맹스'에서 제작한 디자인 문구류와 한국 문화를 담은 사진집, '달실프레스'에서 만드는 디자인 소품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밖에도 대구 '더폴락'은 독서노트와 연필, 책방 로고와 책을 활용한 일러스트 배지, 일러스트 박스 테이프 등을, '책방 카프카의 밤'에서는 필사노트와 독서카드, '다시서점'은 에코백, 시인액자, 시인에코백, 연필 등을 굿즈로 제작, 판매하고 있다.

데이비드 색스가 쓴 <아날로그의 반격>에는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는 대목이 있다.

"온라인(서점)에서는 뜻밖의 발견이 주는 즐거움이 없죠... 사람에게 가장 강력한 보상 구조는 도박 같은 가변성 강화예요. 예측이 불가능한 것이야말로 가장 중독성 강한 보상 신호죠." 충동구매는 놀라운 발견의 즐거움과 함께 커다란 즉각적 만족감을 선사한다. - 246p

비단 책뿐이겠는가. 독립서점 취재하러 갔다가 충동적으로 사들고 나온 굿즈만 여러 개다. 온라인 서점에서 주는 굿즈를 받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 데이비드 색스가 말한 '뜻밖의 발견이 주는 즐거움'과 만족감을 그날 나도 느꼈다.

▲ 독립서점 이후북스의 굿즈. ⓒ 최은경


인간들에게 '책 좀 읽으라냥' 일갈하는 저 고양이 배지가 너무나 평범해 보이지만 특별한 이유를 혹시 아시는지. '배경지에는 책 읽는 고양이가 그려져있지만 제작되는 배지에는 책이 없습니다. 고양이가 등으로 책을 깔아뭉개고 있거든요.' 오직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발견의 즐거움'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

해마다 동네책방, 동네서점, 독립책방, 독립서점이라는 이름을 가진 서점들이 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수십 개에 불과하던 이런 서점이 250여 개를 넘어서고 있단다. 그리고 그만큼 그 안에서 볼 수 있는 굿즈도 만들어지고 있다. 발견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는 독립서점과 굿즈들. 그러니 알라딘 굿즈를 욕하지 말자. 너도 나도 있는 굿즈보다 좀 더 특별한 굿즈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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