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개정을 향한 정치국면이 열리고 있다. 그것도 대통령의 약속이나 국회의 합의가 아니라 우리 시민들이 겨울 내내 밝혀두었던 촛불의 힘에서 비롯한다. 근대 이래 수많은 피와 땀을 먹고 자란 입헌주의는 헌법이 시민들의 실천의지로 가득할 때 비로소 그 강력한 힘을 발한다. 지금의 개헌국면이 당대적 의미를 획득하는 것은 이 지점에서이다. 시민들이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되어 헌법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길거리를 가득 메우며 목소리를 드높인 것, 그것이야말로 입헌주의의 본령을 꿰뚫는 장엄한 서막을 이룬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다. 구시대의 적폐를 향한 대중의 울분을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기회로 전용하기 위해 헌법개정을 앞세우는 정치인들이 있는가 하면, 헌법개정의 논의는 그 자체 블랙홀이라 모든 정치적 의제들을 다 빨아들이고 말 것이라는 엄포로 새로운 정치, 새로운 사회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을 접어버리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와중에 지금까지의 헌법개정은 여전히 소수의 정치집단과 그보다도 더 적은 숫자의 전문가그룹에 차폐되어 있다. 마치 1987년 민주항쟁의 결과가 자유주의세력과 신군부세력이 공모한 헌법개정으로 처리되었듯이, 작금의 헌법개정작업은 촛불시민의 열망도, 우리 대중의 의지도, 그리고 미래를 향한 그 어떤 비전도 담아내지 못 한 채 그들만의 잔치,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끝날 듯 하다.
이런 비판은 헌법개정의 절차만을 향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이리저리 새어 나오는 헌법개정안들이 담고 있는 내용 또한 촛불민심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 한다. 실제 촛불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점진적 쿠데타로까지 치닫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악을 척결하고 "나는 내가 대표한다"고 외치던 촛불시민들의 주권자됨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헌법개정의 이유와 방향 또한 여기서 나온다.
그러나 작금의 헌법개정안들은 촛불집회에서 명백히 드러난 시민들의 직접적인 정치참여의 요구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국회 혹은 국가인권위나 여타의 헌법개정논의주체들은 새 헌법이 인권 혹은 헌법의 차원에서 보장되는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대폭 강화하고 또 확대하여야 한다는 점에는 흔쾌히 동의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강화와 확대의 방식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저 전통적인 헌법학에서 말하는 이런 저런 권리의 항목들을 몇 개 더 만들어 놓거나 혹은 과거 권위주의 체제때부터 아무런 의심없이 전승되던 조항들 몇 개 없애는 수준에 한정된다. 그리고 그로써 새 헌법에서의 인권과 기본권은 여전히 입법자들의 재량적 판단의 대상이 되거나 사법관들이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타자적 존재로 고착되어버리게 된다.
예를 들어 안전권을 신설한 국가인권위원회의 헌법개정안 제14조를 보자. "①모든 사람은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가진다.②국가는 모든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 규정만으로는 핵발전소 인근 주민의 안전은 담보되지 않는다. 여기에 "위험"이 무엇인지를 규정하고 "안전"을 실질적으로 강구할 수 있는 주체가 소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것은 정책판단과 해석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 몫은 의연히 입법자와 사법관에 귀속된다.
그리고 종국에는 위험과 안전의 개념은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같은 전문가그룹 혹은 경찰과 소방 등의 행정조직이 규정하는 바의 치안개념으로 환원되어 버리고 이 과정에서 국가권력은 무한확대된다. 기본권을 새로이 규정하였지만 현실 속에서는 시민이 사라지고 통치술의 담당자와 그 대상으로서의 국민만이 존재하게 될 뿐이다. 개인적 권리이자 동시에 집단적·연대적 권리여야 할 안전권을 아무런 고민도 없이 전형적인 자유권의 틀에만 고정시킨 탁상공론의 사례인 것이다.
실제 이번의 헌법개정에서는 기본적 자유와 권리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다. 기본권규정들을 통해 사람들의 역량-능동적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가 그것이다. 기본권목록을 어떻게 하고 권리장전을 얼마나 부풀리는가는 실제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그렇다고 해서 정보기본권의 신설이나 사생활권의 강화, 망명권·난민권, 이주민의 기본적 권리 등과 같은 개선의 필요성이 간과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예의 "안전권"의 문제를 보자. 촛불 이전의 헌법은 몰라도 그 이후의 헌법이라면 의당 그것은 안전에 대한 시민의 주체적·주도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시민들에게 현실의 위험들에 관한 정보에 접근하여 그를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게 하며 같은 위험에 처한 사람들끼리 연대하여 위험관리를 위한 정책과정를 지배할 수 있도록 정보와 자원과 능력과 연대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하는 것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기본권규정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을 주체적으로 구성하고 다른 사람과 연대하여 삶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힘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권이라든가 주민자치권, 환경권, 건강한 생활을 할 권리 혹은 식량주권의 개념에 입각한 식량접근권 등도 마찬가지다. 이 모두는 정보접근권과 설명요구권, 그리고 정책과정에의 참여권이 전제되어야만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 기본권실현의 과정을 중심으로 엮어져야 할 개인의 권리이자 동시 연대의 권리이다.
사회적 기본권도 이런 논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국가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야 될 의무를 지우기 이전에 사람들이 국가에 대하여 자신의 품위 있는 삶을 위하여 구체적인 조치를 해 줄 것을 요구하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법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 적어도 촛불 이후의 헌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주는 것을 받는 복지가 아니라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권리의 차원으로 사회권의 실체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거권의 보장은 그 예가 된다. 단순히 주거의 불가침이라는 소극적 자유를 떠나, 기존의 주거상태의 안정을 보장받을 권리로, 그리고 필요한 경우 품위 있는 주거지 혹은 대체주거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까지 고양시켜야 한다. 제헌헌법이래 경제조항에서 빠지지 않은 경자유전의 원칙 역시 농민에게 농토를 준다는 선언을 넘어 주민과 상인이 서로 연대하여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항할 수 있는 권리로까지 확장하여야 한다. 또는 사회권의 보장을 위하여 법원이 행정부나 국회에 일정한 처분이나 입법을 명할 수 있도록 하거나 혹은 법원의 판결을 정부가 제대로 이행했는지를 주기적으로 법원에 보고하도록 하는 등의 사법적 강제장치들 또한 절실하다.
그리고 이러할 때 이번의 헌법개정은 촛불혁명이라는 당대적 선언에 부합하는 입헌적 민주주의 초석이 될 수 있다. 헌법의 개정과정을 통하여 또 헌법개정의 결과를 바탕으로 시민들이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되고 시민사회가 새로이 정치화되게끔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새 헌법의 기본권조항들은 이를 위한 토대를 이룬다. 그것이야 말로 시민들의 정치적 역량을 발전시키고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서로 연대하여 생활상의 요구들을 적절히 정치(정책)과정에 투입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그들을 항시적으로 정치화시킬 수 있는 제반의 역량들을 지속가능한 수준에서(즉 헌법적 수준에서) 확보할 수 있도록 만든다.
거듭 말하지만 헌법개정은 헌법전의 개편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헌법적으로 각성하고 그들이 스스로 능동적 시민, 모범적 헌법시민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주체화하는 개정이어야 한다. 광장에서 우리가 펼쳤던 시민정치 그 자체를 헌법화하고 다시 그 헌법을 시민정치화하는 작업이 이번의 헌법개정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다. 구시대의 적폐를 향한 대중의 울분을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기회로 전용하기 위해 헌법개정을 앞세우는 정치인들이 있는가 하면, 헌법개정의 논의는 그 자체 블랙홀이라 모든 정치적 의제들을 다 빨아들이고 말 것이라는 엄포로 새로운 정치, 새로운 사회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을 접어버리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판은 헌법개정의 절차만을 향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이리저리 새어 나오는 헌법개정안들이 담고 있는 내용 또한 촛불민심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 한다. 실제 촛불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점진적 쿠데타로까지 치닫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악을 척결하고 "나는 내가 대표한다"고 외치던 촛불시민들의 주권자됨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헌법개정의 이유와 방향 또한 여기서 나온다.
그러나 작금의 헌법개정안들은 촛불집회에서 명백히 드러난 시민들의 직접적인 정치참여의 요구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국회 혹은 국가인권위나 여타의 헌법개정논의주체들은 새 헌법이 인권 혹은 헌법의 차원에서 보장되는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대폭 강화하고 또 확대하여야 한다는 점에는 흔쾌히 동의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강화와 확대의 방식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저 전통적인 헌법학에서 말하는 이런 저런 권리의 항목들을 몇 개 더 만들어 놓거나 혹은 과거 권위주의 체제때부터 아무런 의심없이 전승되던 조항들 몇 개 없애는 수준에 한정된다. 그리고 그로써 새 헌법에서의 인권과 기본권은 여전히 입법자들의 재량적 판단의 대상이 되거나 사법관들이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타자적 존재로 고착되어버리게 된다.
예를 들어 안전권을 신설한 국가인권위원회의 헌법개정안 제14조를 보자. "①모든 사람은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가진다.②국가는 모든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 규정만으로는 핵발전소 인근 주민의 안전은 담보되지 않는다. 여기에 "위험"이 무엇인지를 규정하고 "안전"을 실질적으로 강구할 수 있는 주체가 소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것은 정책판단과 해석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 몫은 의연히 입법자와 사법관에 귀속된다.
그리고 종국에는 위험과 안전의 개념은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같은 전문가그룹 혹은 경찰과 소방 등의 행정조직이 규정하는 바의 치안개념으로 환원되어 버리고 이 과정에서 국가권력은 무한확대된다. 기본권을 새로이 규정하였지만 현실 속에서는 시민이 사라지고 통치술의 담당자와 그 대상으로서의 국민만이 존재하게 될 뿐이다. 개인적 권리이자 동시에 집단적·연대적 권리여야 할 안전권을 아무런 고민도 없이 전형적인 자유권의 틀에만 고정시킨 탁상공론의 사례인 것이다.
실제 이번의 헌법개정에서는 기본적 자유와 권리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다. 기본권규정들을 통해 사람들의 역량-능동적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가 그것이다. 기본권목록을 어떻게 하고 권리장전을 얼마나 부풀리는가는 실제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그렇다고 해서 정보기본권의 신설이나 사생활권의 강화, 망명권·난민권, 이주민의 기본적 권리 등과 같은 개선의 필요성이 간과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예의 "안전권"의 문제를 보자. 촛불 이전의 헌법은 몰라도 그 이후의 헌법이라면 의당 그것은 안전에 대한 시민의 주체적·주도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시민들에게 현실의 위험들에 관한 정보에 접근하여 그를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게 하며 같은 위험에 처한 사람들끼리 연대하여 위험관리를 위한 정책과정를 지배할 수 있도록 정보와 자원과 능력과 연대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하는 것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기본권규정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을 주체적으로 구성하고 다른 사람과 연대하여 삶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힘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권이라든가 주민자치권, 환경권, 건강한 생활을 할 권리 혹은 식량주권의 개념에 입각한 식량접근권 등도 마찬가지다. 이 모두는 정보접근권과 설명요구권, 그리고 정책과정에의 참여권이 전제되어야만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 기본권실현의 과정을 중심으로 엮어져야 할 개인의 권리이자 동시 연대의 권리이다.
사회적 기본권도 이런 논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국가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야 될 의무를 지우기 이전에 사람들이 국가에 대하여 자신의 품위 있는 삶을 위하여 구체적인 조치를 해 줄 것을 요구하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법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 적어도 촛불 이후의 헌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주는 것을 받는 복지가 아니라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권리의 차원으로 사회권의 실체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거권의 보장은 그 예가 된다. 단순히 주거의 불가침이라는 소극적 자유를 떠나, 기존의 주거상태의 안정을 보장받을 권리로, 그리고 필요한 경우 품위 있는 주거지 혹은 대체주거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까지 고양시켜야 한다. 제헌헌법이래 경제조항에서 빠지지 않은 경자유전의 원칙 역시 농민에게 농토를 준다는 선언을 넘어 주민과 상인이 서로 연대하여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항할 수 있는 권리로까지 확장하여야 한다. 또는 사회권의 보장을 위하여 법원이 행정부나 국회에 일정한 처분이나 입법을 명할 수 있도록 하거나 혹은 법원의 판결을 정부가 제대로 이행했는지를 주기적으로 법원에 보고하도록 하는 등의 사법적 강제장치들 또한 절실하다.
그리고 이러할 때 이번의 헌법개정은 촛불혁명이라는 당대적 선언에 부합하는 입헌적 민주주의 초석이 될 수 있다. 헌법의 개정과정을 통하여 또 헌법개정의 결과를 바탕으로 시민들이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되고 시민사회가 새로이 정치화되게끔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새 헌법의 기본권조항들은 이를 위한 토대를 이룬다. 그것이야 말로 시민들의 정치적 역량을 발전시키고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서로 연대하여 생활상의 요구들을 적절히 정치(정책)과정에 투입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그들을 항시적으로 정치화시킬 수 있는 제반의 역량들을 지속가능한 수준에서(즉 헌법적 수준에서) 확보할 수 있도록 만든다.
거듭 말하지만 헌법개정은 헌법전의 개편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헌법적으로 각성하고 그들이 스스로 능동적 시민, 모범적 헌법시민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주체화하는 개정이어야 한다. 광장에서 우리가 펼쳤던 시민정치 그 자체를 헌법화하고 다시 그 헌법을 시민정치화하는 작업이 이번의 헌법개정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필자는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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