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를 향한 갈증, 액상 프로방스가 더 부추겼다
[프랑스 여행 ③] 바르셀로나행 기차표, 눈물 머금고 1등석 끊은 이유
아침부터 하늘이 꾸물한 게 조금 걱정이 됐지만 일단 버스를 타고 다시 시내로 나갔다. 웬일로 미라보 광장에 꽤 규모 있는 장이 섰는데 각종 지역 농산물과 다양한 먹거리, 저렴한 시장표 의류들과 악세사리 등 눈요기 거리들이 많아 한참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어제는 슬쩍 지나쳤던 미라보 광장 근처의 신시가지도 둘러보았다. 꽤 산뜻한 현대식 건물들 안에 각종 명품 숍들이 즐비한 쇼핑몰이 입점해 있는데 역시 액상 프로방스의 매력은 구시가지다.
내일 스페인 바르셀로나(Barcelona)로 이동해야 하기에 TGV역으로 가는 버스 노선을 미리 알아보기 위해 근처의 관광안내소에 들렀다. 도시 규모에 비해 의아할 정도로 크고 세련된 안내소 안을 들어가면, 깨끗하고 넓은 로비에 웬만한 대형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를 방불케 할 만큼 길게 늘어선 프론트 데스크와 몇 겹으로 쳐 놓은 대기선들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 와 본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어제에 이어 두 번째 방문한 오늘 역시 방문객들의 숫자는 여전히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분위기가 썰렁하기 짝이 없는데, 유니폼을 입고 진지한 표정으로 종일 앉아 있는 직원들은 보통 하루에 몇 명이나 상대하는 걸까 궁금해졌다.
유럽의 큰 도시들이 보통 소규모의 사무소를 군데군데 설치해 놓은 것에 비해 아예 돈을 들여 큰 거 하나로 끝내자는 건데, 넘치는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는 파리와 달리, 저 긴 대기선을 다 채울 만큼의 관광객들이 꽉꽉 들어차 유명한 관광도시로 변모하길 바라는 듯한 소도시의 야심찬 꿈이 느껴졌다.
오늘은 어제에 비해 구시가지 곳곳에 숨어 있던 더 많은 다양한 분수들을 만났다. 평범한 것, 우아한 것, 독특한 것, 코믹한 것 등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마치 보물찾기처럼 이곳저곳에 자리잡은 이 수많은 분수들은 대체 누가 왜 만들었을까...
물의 도시에서의 마지막 관광을 마치고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려는데, 어제 단체로 수학여행 온 프랑스 초등학생 팀이 윗층 홀에서 파티라도 하는지 저녁 내내 쿵쿵거리는 음악 소리가 요란한 것이 아주 난리가 났다. 가만히 들어보니 재밌게도 선생님이 마이크 잡고 사회 보시고 아이들이 나와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며 장기자랑을 하는 듯, 문득 내 학창시절 수학여행에서도 밤에 댄스타임을 열어 신나게 흔들며 놀았던 추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터졌다.
다음 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고 바르셀로나 행 기차표를 끊기 위해 TGV 역에 왔다. 그런데 미리 예약을 안 한 탓에 2등석은 이미 매진이어서 눈물을 머금고 고가의 1등석을 끊어야 했다. 게다가 원래 직행 열차가 없어 황당하게도 마르세유(marseille)로 이동한 다음 10분 후에 출발하는 몽펠리에(Montpellier) 행 열차로 갈아탄 후, 역에서 내려 다시 20분 후에 출발하는 바르셀로나 행 열차를 타야 하는 정신없는 여정이었다.
사실 처음엔 니스(Nice)에 머물며 무척 소박하고 프랑스적이라는 생폴 드방스(Saint-Paul-de-Vence)를 들를까 하다가, 휴양도시인 니스가 그닥 땡기질 않아 결국 '프로방스'라는 단어를 좇아 이 물의 도시로 바꾼 건데 이제서야 원래대로 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솔직히 이 작은 도시는 화가 폴 세잔(Paul Cézanne)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겐 그의 자취와 작품 세계를 맛볼 수 있는 최적의 여행지이지만 번잡스런 파리에 비해 조금 더 고풍스럽고 차분하다뿐, 적어도 내게는 기대했던 만큼의 프랑스적인 뭔가를 느끼기엔 2% 아쉬웠다.
이틀 전에 방문했던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는 듣던대로 특유의 독일스런 분위기가 아주 좋았는데 말이다. 한국에서 여행 계획을 짜며 검색하다가 이런 우스갯 댓글을 본 적 있다. '프로방스' 중 최고는 '파주 프로방스'라고... 어쨌든 실수와 후회는 언제나 빠질 수 없는 여행의 필수 조건이다.
그런데 표를 끊기 위해 카운터에서 신상 정보를 입력하는데 프랑스 인 직원이 갑자가 프랑스 억양으로 "유어 벨츠데?" 하고 묻는다. 벨츠데???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니 그가 갑자가 "mine is... 1975..." 한다. 아하... birth day... 친절하게도 이 신사분은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기꺼이 자기 생일까지 예로 들며 알려주신다. 그래봤자 선물은 못 챙길 텐데...
기차 탑승까지 한 시간 이상이나 남아 역 로비에 앉아 지루함을 달래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영어가 꽤 유창한 편인 한 중년의 프랑스 여성이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길래 South Korea라고 했더니 오~ 하고 놀란다. 혼자 40일 간 유럽 여행 중이며 다음 여정은 바르셀로나라고 했더니 스페인은 영어가 잘 안 통할 거라며 단단히 각오하란다. 그래서 뭐, 프랑스도 만만찮더라고 했더니 웃으며 맞다고 한다. 자신은 이렇게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좋아서 일부러 영어를 열심히 배웠다며 즐거운 여행 되기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어쨌든 그렇게 난 절반의 추억과 절반의 아쉬움을 남긴 채 프랑스를 떠나 스페인으로 향했다.
▲ 미라보 거리의 장터 ⓒ 최성희
▲ 남프랑스 토마토의 위용 ⓒ 최성희
어제는 슬쩍 지나쳤던 미라보 광장 근처의 신시가지도 둘러보았다. 꽤 산뜻한 현대식 건물들 안에 각종 명품 숍들이 즐비한 쇼핑몰이 입점해 있는데 역시 액상 프로방스의 매력은 구시가지다.
▲ 액상 프로방스의 신시가지 ⓒ 최성희
내일 스페인 바르셀로나(Barcelona)로 이동해야 하기에 TGV역으로 가는 버스 노선을 미리 알아보기 위해 근처의 관광안내소에 들렀다. 도시 규모에 비해 의아할 정도로 크고 세련된 안내소 안을 들어가면, 깨끗하고 넓은 로비에 웬만한 대형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를 방불케 할 만큼 길게 늘어선 프론트 데스크와 몇 겹으로 쳐 놓은 대기선들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 와 본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어제에 이어 두 번째 방문한 오늘 역시 방문객들의 숫자는 여전히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분위기가 썰렁하기 짝이 없는데, 유니폼을 입고 진지한 표정으로 종일 앉아 있는 직원들은 보통 하루에 몇 명이나 상대하는 걸까 궁금해졌다.
유럽의 큰 도시들이 보통 소규모의 사무소를 군데군데 설치해 놓은 것에 비해 아예 돈을 들여 큰 거 하나로 끝내자는 건데, 넘치는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는 파리와 달리, 저 긴 대기선을 다 채울 만큼의 관광객들이 꽉꽉 들어차 유명한 관광도시로 변모하길 바라는 듯한 소도시의 야심찬 꿈이 느껴졌다.
▲ 생소뵈르 성당( Cathedrale St-Sauveur) ⓒ 최성희
▲ 구시가지의 분수(1) ⓒ 최성희
오늘은 어제에 비해 구시가지 곳곳에 숨어 있던 더 많은 다양한 분수들을 만났다. 평범한 것, 우아한 것, 독특한 것, 코믹한 것 등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마치 보물찾기처럼 이곳저곳에 자리잡은 이 수많은 분수들은 대체 누가 왜 만들었을까...
▲ 구시가지의 분수(2) ⓒ 최성희
▲ 구시가지의 분수(3) ⓒ 최성희
물의 도시에서의 마지막 관광을 마치고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려는데, 어제 단체로 수학여행 온 프랑스 초등학생 팀이 윗층 홀에서 파티라도 하는지 저녁 내내 쿵쿵거리는 음악 소리가 요란한 것이 아주 난리가 났다. 가만히 들어보니 재밌게도 선생님이 마이크 잡고 사회 보시고 아이들이 나와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며 장기자랑을 하는 듯, 문득 내 학창시절 수학여행에서도 밤에 댄스타임을 열어 신나게 흔들며 놀았던 추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터졌다.
▲ 구시가지 분수(4) ⓒ 최성희
다음 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고 바르셀로나 행 기차표를 끊기 위해 TGV 역에 왔다. 그런데 미리 예약을 안 한 탓에 2등석은 이미 매진이어서 눈물을 머금고 고가의 1등석을 끊어야 했다. 게다가 원래 직행 열차가 없어 황당하게도 마르세유(marseille)로 이동한 다음 10분 후에 출발하는 몽펠리에(Montpellier) 행 열차로 갈아탄 후, 역에서 내려 다시 20분 후에 출발하는 바르셀로나 행 열차를 타야 하는 정신없는 여정이었다.
사실 처음엔 니스(Nice)에 머물며 무척 소박하고 프랑스적이라는 생폴 드방스(Saint-Paul-de-Vence)를 들를까 하다가, 휴양도시인 니스가 그닥 땡기질 않아 결국 '프로방스'라는 단어를 좇아 이 물의 도시로 바꾼 건데 이제서야 원래대로 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솔직히 이 작은 도시는 화가 폴 세잔(Paul Cézanne)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겐 그의 자취와 작품 세계를 맛볼 수 있는 최적의 여행지이지만 번잡스런 파리에 비해 조금 더 고풍스럽고 차분하다뿐, 적어도 내게는 기대했던 만큼의 프랑스적인 뭔가를 느끼기엔 2% 아쉬웠다.
이틀 전에 방문했던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는 듣던대로 특유의 독일스런 분위기가 아주 좋았는데 말이다. 한국에서 여행 계획을 짜며 검색하다가 이런 우스갯 댓글을 본 적 있다. '프로방스' 중 최고는 '파주 프로방스'라고... 어쨌든 실수와 후회는 언제나 빠질 수 없는 여행의 필수 조건이다.
그런데 표를 끊기 위해 카운터에서 신상 정보를 입력하는데 프랑스 인 직원이 갑자가 프랑스 억양으로 "유어 벨츠데?" 하고 묻는다. 벨츠데???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니 그가 갑자가 "mine is... 1975..." 한다. 아하... birth day... 친절하게도 이 신사분은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기꺼이 자기 생일까지 예로 들며 알려주신다. 그래봤자 선물은 못 챙길 텐데...
기차 탑승까지 한 시간 이상이나 남아 역 로비에 앉아 지루함을 달래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영어가 꽤 유창한 편인 한 중년의 프랑스 여성이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길래 South Korea라고 했더니 오~ 하고 놀란다. 혼자 40일 간 유럽 여행 중이며 다음 여정은 바르셀로나라고 했더니 스페인은 영어가 잘 안 통할 거라며 단단히 각오하란다. 그래서 뭐, 프랑스도 만만찮더라고 했더니 웃으며 맞다고 한다. 자신은 이렇게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좋아서 일부러 영어를 열심히 배웠다며 즐거운 여행 되기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어쨌든 그렇게 난 절반의 추억과 절반의 아쉬움을 남긴 채 프랑스를 떠나 스페인으로 향했다.
덧붙이는 글
추후 제 블로그 http://arinalife.tistory.com/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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