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비숲> 이창준처럼 사과하면? 현실에선 '정직 4개월'

[取중眞담] 과거사에 눈감은 검찰, 고개 숙일 책임 있다

등록|2017.08.01 21:23 수정|2017.08.11 10:29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이창준 검사가 양성우 시인의 <겨울공화국>을 낭독하는 장면. ⓒ tvN


삼천리는 여전히 살기 좋은가
삼천리는 여전히 비단 같은가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다
날마다 우리들은 모른 체하고
다소곳이 거짓말에 귀 기울이며
뼈가르는 채찍질을 견뎌내야 하는
노예다 머슴이다 허수아비다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최근 종영한 TV 드라마 <비밀의 숲>의 마지막 회에 나온 시입니다. '빅픽처'의 설계자 이창준 검사는 법정에서 이 시를 직접 읊었습니다. 그리고 31년 전 이 시를 써 국가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노시인에게 허리 숙여 사과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죠.

"31년 전이었다면 전 방금 국가를 모독하고 대중에게 해악을 끼쳤습니다. 이제 31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시인의 진심을 거리낌 없이 전할 수 있어서 저는 기쁩니다. 그렇지만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다시 국어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노 시인의 꿈이 끝끝내 좌절된 지금, 무엇이 진정한 복권인가 저는 묻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복권은 가능하나, 교권은 거부당하신 시인께 이 법정을 대신해서 동시대인으로서 인생의 후배로서 감사와 사과의 말씀을 함께 전합니다."

검사의 정중한 사과에 노시인도 일어나 고개를 숙였습니다. 방청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고, 그 사이엔 이 드라마의 또다른 주인공 황시목 검사가 있었습니다. 두 주인공의 첫 만남이었죠. 황시목 검사는 이 장면이 검사 생활의 이정표가 됐다고 고백합니다. "검찰은 정부편이다, 완전히 결론내린 재판에서 완전히 다른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죠. 후에 황시목 검사도 검찰 수뇌부가 깊숙이 개입된 부패 스캔들을 해결한 뒤 방송에 나가 "검찰이 국민 여러분을 실망시켰다"고 사과합니다. 방청객도 '사과하는 검사'를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

▲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과거사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이창준 검사를 방청석에서 바라보는 황시목 검사. ⓒ tvN


이창준 검사가 읽은 시는 실제 존재합니다. 양성우 시인이 쓴 <겨울공화국>입니다. 양 시인은 1972년 2월 민청학련 관련자 석방을 촉구하는 구국기도회에서 이 시를 낭송했다가 중앙여고에서 파면됐고, 이후 발표한 두 편의 저항시가 국가모독죄 및 긴급조치9호에 위반된다며 기소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풀린 것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였습니다. 2005년 이 사건을 조사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민주화보상심의위)가 중앙여고에 복직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복직을 거부했습니다. 그를 처벌한 근거였던 국가모독죄와 긴급조치9호도 각각 2015년과 2013년에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라고 결정났지만 시인의 억울함이 완전히 풀리지는 못했습니다.

드라마에서 검찰은 잘못된 과거사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위헌 법률의 직접 실행한 기관으로서 마땅한 일입니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 반대입니다. 검찰은 유일하게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기관으로 유명합니다. 노무현 정부 때 과거사를 바로잡겠다는 기조에 따라 국정원과 국방부, 경찰이 자체 과거사위원회를 만들었지만, 검찰만은 미온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사법부도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의 취임사를 통해 "과거 잘못을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는데도 말이죠.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검찰은 오히려 시대를 역행했습니다. 사법부가 재심을 열고 과거사 사건에 무죄를 선고하면 검찰이 불복해 상고하는 일이 이어졌습니다.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이 대표적입니다. 2014년 서울고등법원은 동료를 죽음으로 몰고 유서를 대필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참고기사: [타임라인] 강기훈의 23년).

하지만 검찰이 곧장 상고했고 이듬해 대법원은 이를 기각하면서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23년 만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던 사건이 검찰의 불복으로 1년이나 더 소요된 것입니다. 당시 강씨는 간암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최악의 사법살인으로 이어진 '1차 인혁당 사건' 재심 때도 반복됐습니다. 2014년 검찰은 서울고법의 무죄 선고 엿새 만에 상고장을 제출했지만 대법원은 과거사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검찰의 불복이 아집에 빠진 결과는 아니었는지 의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이런 검찰의 조직논리에 균열을 내는 검사도 있었습니다. 현재 의정부지검에 소속된 임은정 검사는 지난 2012년 반공법 재심 결심 공판에서 '백지 구형'(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달라고 판사에게 의견을 내는 일)을 내리라는 상부 지시를 어기고 무죄를 구형했습니다. 공판 검사 교체를 명령한 상부에 맞서 법정 출입문까지 걸어 잠근 채로 말이죠. 법원도 당일 무죄를 선고했지만, 임 검사는 이 일로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드라마 속 이창준 검사와는 다른 결과죠.

임 검사는 징계 취소 소송을 시작하며 이렇게 밝혔습니다.

"공익의 대표자이자 사회질서 유지의 책임자로서 사건에 대한 검찰의 최종적인 견해를 밝히는 것이 구형이다. '백지 구형'은 분명한 법적 근거가 없는 데다 엄격한 증명이 없거나 무죄 선고가 확실히 예상되는 경우에는 피고인에게 '무죄 구형'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

3개월 앞선 같은 해 9월에도 임 검사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 관련자에게 무죄를 구형했습니다. 그때 그가 법정에서 낭독한 논고문은 지금도 유명합니다.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하여 권력의 채찍에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몸을 불살라 그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그 분들의 가슴에 날인하였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많은 이창준을 만날 수 있을까

▲ 이창준 검사가 과거사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장면. ⓒ tvN


적폐 청산이 시대 화두가 된 지금, '검찰의 사과'에도 이목이 쏠립니다. 최근 취임한 박상기 법무부장관과 문무일 검찰총장도 과거사에 사과할 의향이 있느냐는 국회 청문위원들의 질문에 긍정적 답을 내놨습니다. 연장선상에서, 긍정적 신호도 감지됐습니다. 최종 무죄를 선고받은 강기훈씨가 낸 국가배상청구사건에 검찰은 항소를 포기했습니다. 그러면서 "향후 재심 무죄선고로 인한 유사 국가배상청구소송에 있어 적정하고 신중한 상소권을 행사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강기훈씨는 23년 만에 무죄가 선고되던 순간 웃지도, 울지도 않았습니다. 다음 해 대법원에서 무죄가 최종 확정되던 날에는 아예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24년 동안 고통과 피해의식으로 간암에 걸리면서 언론에 오르고 하는 일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고만 주변인이 밝혔습니다. 스물 아홉에 누명을 쓴 청년은 중년이 되어서야 완전히 자유로워졌습니다. 그 기간 동안 겪었을 고통을 생각한다면 이 모든 과정은 정말로 황망한 일입니다.

무죄 판결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수많은 과거사 피해자들에게 검찰은 고개 숙일 책임이 있습니다. '사과하는 검사'가 드라마 속 판타지로만 존재하지 않도록 용기를 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피해자들의 고통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어주길 바랍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