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서 얼음 지치기, 더위가 싹 가시네
[휴가지에서 읽기 좋은 책] 한영수 사진책 <시간 속의 강>
▲ 겉그림 ⓒ 한영수문화재단
이와 달리 여름에도 여름 휴가를 못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간직으로 일하는 사람은 좀처럼 여름 휴가를 받기 어렵습니다.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사람이 있고, 살림이 벅찬 사람이 있습니다.
더 생각해 보면 시골사람은 따로 여름 휴가를 떠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짐승을 치는 분이라면 언제나 짐승 곁에 머물며 짐승을 돌보아야 합니다. 논밭을 가꾸는 시골지기도 논밭 곁에서 지내지요.
이 여름날에 사진책 <시간 속의 강>(한그라픽스 펴냄)을 읽습니다. 한영수문화재단에서 펴낸 한영수 님 사진책입니다. 어느덧 세 권째 나오는 한영수 님 사진책이에요.
첫째 권 <Seoul, Modern Times>가 2014년에 나왔고, 둘째 권 <꿈결 같은 시절>이 2015년에 나왔습니다. 셋째 권인 <시간 속의 강>이 2017년에 나오는데, 세 사진책은 지나온 우리 삶을 서울이라는 고장을 바탕으로 삼아서 보여줍니다. 이제 사진으로 남은 아득한 옛 살림을 보여주지요.
<시간 속의 강>은 1950∼1960년대라는 시간이 흐르는 물줄기를 보여줍니다. 이 물줄기는 서울이라고 하는 터전에서 한강이라는 시간과 발자국과 사람과 마을을 보여줍니다.
▲ 서울 한강 1956-1963 ⓒ 한영수문화재단
▲ 서울 한강 1956 ⓒ 한영수문화재단
사진책 <시간 속의 강>에 나오는 한강 둘레는 참말로 어느 시간이 흐르는 물줄기요 냇가이며 살림자리일까요? 사진 밑에 1950년대 어느 해라든지 1960년대 어느 해라는 말을 안 붙인다면 도무지 떠올리기 어려운 서울 한강 모습이지 싶습니다. 노들섬 뚝섬 마포 한남동 같은 이름을 안 붙인다면 그곳이 참말로 그곳이 맞는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서울 한복판 모습이기도 합니다.
▲ 서울 노들섬 1958-1963 ⓒ 한영수문화재단
▲ 서울 뚝섬 1956-1963 ⓒ 한영수문화재단
어쩌면 1950∼1960년대에 서울 한강에서 얼음을 지치며 놀던 일을 떠올리던 분들조차 머리에서 잊은 모습이 이 사진책에 흐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1950∼1960년대에 서울 한강이 얼어붙은 날 얼음을 켜서 소가 끄는 수레에 싣고 내다 팔려고 끌고 가는 일을 하던 분들조차 다 잊은 모습이 이 사진책에 담겼다고 할 수 있어요.
▲ 서울 한강 1956-1963 ⓒ 한영수문화재단
▲ 서울 노들섬 1956 ⓒ 한영수문화재단
요즈음 한강물을 두 손으로 떠서 마시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한강물을 그대로 마시는 분은 없겠지요? 그런데 1950∼1960년대에는 얼어붙은 한강에서 엄청나게 큰 얼음을 톱으로 켜서 썼대요. 게다가 이 얼음을 소가 끄는 수레에 실었어요.
한강 얼음에 소수레입니다. 한강에서 얼음낚시를 할 뿐 아니라, 스케이트를 지칩니다. 한강에 넓게 펼쳐진 모래밭에서 햇볕을 쬘 뿐 아니라, 물놀이를 즐깁니다.
그리고 한강물에서 빨래를 합니다. 한강을 옆에 끼고 살림집을 짓습니다. 어른들은 물에서 일하고, 아이들은 물에서 놉니다. 한강물 곁에서 마을을 이루어 삽니다. 한강을 어여쁜 냇가로 여기면서 이웃하고 사귀고 동무하고 어우러져요.
냇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모래밭을 밟아요. 냇가에서 풀내음을 마시고 새소리를 들어요. 서울 한복판이라고 할 테지만, 이 서울 한복판에서 시골스러운 기운을 듬뿍 먹으면서 아이들이 자랐다고 합니다.
▲ 서울 뚝섬 1958 ⓒ 한영수문화재단
▲ 서울 마포 1958 ⓒ 한영수문화재단
▲ 서울 마포 1958 ⓒ 한영수문화재단
이제 서울이라고 하는 고장은 어마어마한 개발로 옛모습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서울에서 풀집이나 논밭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궁터나 성터는 남고, 기와집도 조금 남지요. 빨래터나 우물터나 대장간이나 길쌈터는 찾아볼 길이 없어요. 버드나무 그늘에서 멱을 감던 일은 그야말로 사진에나 남겨진 모습이 될 만합니다. 뱃사공이 길손을 실어 나르던 일은 까마득한 옛날 옛적 모습으로 사진에만 겨우 새겨진 자국으로 흐릅니다.
그러나 서울도 예전에는 시골과 같았다고 해요. 서울도 얼마 앞서까지는 시골스러웠다고 해요. 서울에서 다른 고장으로 여름 나들이를 떠나지 않아도 되었다고 해요. 서울에서는 한강에서 여름을 나고 여름을 누리며 여름을 노래했다고 합니다.
▲ 서울 한강 1956-1958 ⓒ 한영수문화재단
▲ 서울 한남동 1956-1963 ⓒ 한영수문화재단
▲ 서울 한남동 1956-1963 ⓒ 한영수문화재단
한강을 둘러싼 어마어마한 찻길을 걷어내고서 이곳에 다시 모래밭이 펼쳐지도록 바꿀 수 있을까요? 앞으로 서울사람이 한강에서 물놀이를 하고 모래밭에서 모래놀이를 할 수 있을까요? 얼어붙은 한강에서 얼음을 켜거나 얼음 지치기를 할 날을 새삼스레 맞이할 수 있을까요? 흐르는 냇물을 두 손으로 떠서 마음껏 마실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이 여름에 시원한 다른 고장으로 나들이를 떠나지 못하신다면, 어여쁜 물줄기하고 모래밭이 눈부신 한강을 사진으로 만나는 <시간 속의 강>을 곁에 두고서 펼쳐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서울에도 한때 멋스럽고 신나는 물놀이터가 있은 줄, 누구나 걸어서 여름과 겨울을 누리던 냇물하고 냇가가 있은 줄 되돌아봅니다.
▲ 서울 한강 1956 ⓒ 한영수문화재단
▲ 서울 한강 1956 ⓒ 한영수문화재단
▲ 서울 한강 1956-1958 ⓒ 한영수문화재단
덧붙이는 글
<시간 속의 강>(한영수 사진 / 한선정 엮음 / 한그라픽스 펴냄 / 2017.5.1. / 4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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