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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커밍아웃에 '무식해서 용감'했던 엄마

[커밍아웃 스토리] 11.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등록|2017.08.11 21:51 수정|2017.08.11 21:51

▲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퀴어 퍼레이드 행진 모습 ⓒ 성소수자 부모모임


때아닌 여름 날씨였던 지난 4월의 어느 토요일. 나는 에어컨이 고장 난 차를 몰고 목적지로 향했다. 고생 끝에 도착한 곳은 (딸) 아이가 예전부터 얘기하던 성소수자 부모모임. 그날 나는 처음으로 성소수자 부모님들을 만났다.

그들에 대한 첫 느낌은 '자식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지지하면 저런 얼굴들이 되는 것일까'였다.

처음 보는 사람을 정말 따뜻하고 너그럽게 바라봐주는 표정들. 나는 세상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을 만큼 내 자식을 지키겠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찾아 왔는데, 그 마음을 더없이 이해해주고 다독여주는 표정이었다. 성소수자 아이들, 그리고 성소수자 부모들에 대한 한없는 공감과 연민이 그 얼굴들을 만든 게 아닐까 생각했다. 마음이 참 편안했고 그 감정이 나에게도 스며들었다.

이제 나와 아이에 관해 얘기해보자면, 사실 아이는 이미 유치원 즈음부터 종종 '나는 여자아이가 좋아'라고 말해왔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그 또래 아이들의 진한 우정 정도로 여겼다. 다만, 맘 한 편으론 저 마음이 동성애라면 어떨까 막연하게 생각해보기도 했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겨버렸지만.

자녀 커밍아웃에 "그래서 어쩌라고" 했던 '초보 성소수자 엄마'

▲ 우정인가 사랑인가? ⓒ 성소수자 부모모임


그 이후 아이가 자라선 본인이 성소수자임을 분명히 선언했을 때 "그래서 어쩌라구~ 지금 반항하는 게 그거하고 뭔 상관인데!"라고 다그쳤다. 너의 성 정체성에는 관심도 편견도 없다는 듯이. 나는 무식해서 용감했던 엄마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의식 있는 엄마인 척하면서 성소수자의 어려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그렇게 아이가 세상과 혼자 맞서 싸우도록 내버려 둔 셈이었다. 엄마의 교만함으로 인해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참 미안한 일이다.

어쨌든 그런 과정을 거쳐 요새는 부모모임에 꾸준히 참석하고 새로 만나는 많은 부모님들과도 함께 했다. 운영위원 부모님들이 지방에서 올라오느라 힘들겠다며 고마워하시는 모습을 보고 '아뇨. 이렇게 애써주시는 여러분들이 정말 감사받아야죠~ 매번 여기 오는 길이 설렘과 기쁨으로 가득하답니다. 여러분과 함께 하는 시간이 또 하나의 가족을 만난 듯 정말 행복해요' 하며 마음으로 인사한다. 초보 성소수자 엄마라서 그런지, 쑥스러워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또, 내가 부모모임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정보와 소식을 아이에게 전달하면, 아이는 '거 봐~'하는 자세로 이제야 그걸 아느냐는 듯 (그간 무심한 엄마로 인해 받은 상처 때문인지) '폭풍 질책'하는 바람에 요즘은 아이에게 혼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기 바쁘기도 하다. 그저 이렇게 애쓰고 있으니 봐달라는 마음으로, 평소 서로 무뚝뚝해서 잘 하지도 않던 문자로 관련 이슈만 공유하고 있다.

그러던 차에 <피디수첩>에서 성소수자와 그 부모들을(나와 아이도) 인터뷰하게 되었다.

"방송 통해 사람들 앞에 퀴어의 모습 드러낼 수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 들었다"

▲ 인터뷰 하는 나와 아이. ⓒ MBC


부모들은 부모모임에서 3년 동안 애쓴 것만큼 공중파 시사프로 한번 나가는 것이 큰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부모님들의 3년 시간이 거름 되어 이렇게 방송을 통해 사람들 앞에 퀴어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과 혼자가 아니라는 연대감에 마음에 울컥했다.

그리고 <피디수첩>이 방송되었을 때, 성소수자와 그 가족들 모두 카메라가 비추고 있어도 거리낌 없이 밝고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너무 기뻤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도 방송에 공개되어도 괜찮다고 할 만큼 단단해졌다. 그리고 그간 가졌던 엄마에 대한 불만을 카메라에 대고 툴툴거리는 모습을 보고 참 다행이다 싶었다(이 기회에 그간 세심하지 못해 상처 줬던 엄마의 부족함을 싸게 퉁~친다는 맘으로!).

물론 방영되고 나서 어떤 후폭풍이 있을지 가늠하기 힘든 불안함도 있었지만... 그런 저런 걸 다 고민하면 세상일 아무것도 못 한다는 평소의 지론대로 뭐든지 하고 나서 후회하기로 했다. 안 하고 생기는 후회는 영원히 숙제로 남겠지만 하고 나서 생기는 후회는 적어도 해결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실제로 아이의 반응을 보니 그 걱정은 괜한 걱정이었나 싶다.

아이에게 방송 후 혹시 누가 비난의 말을 던지면 '알아듣지도 못할 멍충이'들하고 싸우지 말고 "당신 같은 사람도 이해하도록 우리가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힘드시겠어요~ 어쨌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 혐오는 사양하겠어요^^"라는 식으로 에너지 아끼는 게 어떠냐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아이는 "ㅋㅋ~ 그냥 조용히 살래"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나보다 더 덤덤한 반응이었다. '오픈 퀴어'로서의 삶을 작정하고 나니 더 담대해진 것 같았다.

나 역시도, 방송 후 <피디수첩> 게시판에 혐오발언이 난무할 때 걱정되기보다는, '이슈화되어 다행이고 더 크게 논란이 되었어도 괜찮을 텐데...?' 하는 여유가 슬금슬금 생긴다. 거기다 퀴어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열려 있는 삶의 방식에 비해 혐오하며 사는 그 사람들의 방식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안타까움도 생겼다. 세상사는 게 힘든 건 다른 사람 때문일 때보다 자기의 내면에서 생기는 모순과 분열 때문일 때가 많지 않은가.

"이해·지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능동적인 행동으로 같이할게"

장애나 얼굴색을 이유로 혐오하는 게 옳지 않다는 건 알면서 퀴어는 왜?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저 사람들 머릿속은 얼마나 갑갑할까. 무지와 혐오는, 하는 사람이 더 괴로운 것이고 (안타깝지만) 괴로움은 그들의 몫이다. 차별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우리는 옳으니까 당당하게 부모가 나서고 차별을 당연하다 주장하는 저들의 천박함엔 자식들도 부끄러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빛이 어둠을 이긴다고 확신한다.

어떤 차별이든 다른 이에 대한 차별을 용인하면 나에 대한 차별도 용인될 것이다. 법적인 차별금지와 이후의 사회적 편견에서 언제 자유로워질지 장담할 수 없으나 적어도 머지않은 시기에 그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닭이 울어서 새벽이 오는 게 아니라 새벽이 다가오니까 닭이 울 듯이 마땅하고 옳은 것에 대한 우리의 노력이 때가 되니 이슈로 드러나는 것이다. 날이 밝기 직전 가장 어둡듯이 사회적 논란이 강하면 강할수록 해결을 위한 시간이 가까워 오는 것이라 믿는다.

▲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 성소수자 부모모임


그러니, 이제는 아이에게 엄마를 지렛대 삼아 세상에 나아가 더 힘차게 외치라고 말하고 싶다.

"이해, 지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능동적인 행동으로 같이할게. 부모란 자식이 죄를 지으면 감쌀 수는 없어도 같이 돌을 맞아주는 것이니까. 하물며 지은 죄 없이 세상에서 내 자식이 정죄 받는다면 죽을힘을 다해 방패가 되고 창이 되어줄게. 내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도 죽을힘을 다해 보호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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