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이인호 KBS 이사장, 친일파 후손으론 만족 못하나?

[의견] 독립운동가 김창숙 핍박한 이명세의 손녀... KBS에서 금기어가 된 '친일'

등록|2017.08.07 18:05 수정|2017.08.07 18:05

▲ 지난 2014년 10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한국방송공사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인호 한국방송공사(KBS) 이사장이 자신을 둘러싼 편향적인 역사관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 유성호


친일파 후손은 친일파가 아니다. 그래서 친일파의 죄악을 후손에게 연좌시킬 수는 없다. 친일파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반성을 요구하거나 비난을 퍼부을 수도 없다.

그런데 친일파 후손이 그냥 잠자코 살지 않는다면 어떨까? 친일파 후손으로 사는 데 만족하지 않고, 친일 청산을 적극 훼방하기까지 한다면 어떨까? 이런 경우, 친일파의 죄를 후손에게 따져야 할까? 이런 경우에도 친일파 후손이란 이유만으로는 아무런 비판도 가할 수 없는 걸까?

이인호 KBS 이사장의 조부 이명세

다름 아닌 이인호 KBS 이사장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다. 2014년 9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논란을 무릅쓰고 임명한 이인호 이사장은 "세상이 다 아는 친일파" 이명세의 손녀다. 이완용도 아닌데, 세상이 다 아는 친일파라 할 수 있을까? 이 근거는 잠시 뒤 제시된다. 세상이 다 아는 친일파였던 게 맞다.

이명세는 총독부 어용기관인 조선유도연합회 상임이사를 지냈다. 이 지위를 활용해 일본의 침략전쟁을 찬미하고 한국인들의 강제징병을 부추겼다. 1942년 5월 조선유도연합회 기관지 <유도> 창간호를 통해서는 "우리나라가 승리할 수밖에 없으므로"라고 말했다.

이명세가 말한 우리나라는 우리들의 우리나라가 아니다. 일본이었다. 이인호 할아버지의 우리나라는 이토 히로부미나 아베 신조가 생각하는 우리나라였던 것이다. 일본이 승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뒤 이명세는 "유교 정신을 황도 정신(일왕 통치이념)에 합치시켜 국가적인 대사업에 기여하자"고 전국 유림들에게 호소했다. 유교의 충효 정신을 일왕에 대한 충효 정신으로 연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 해 10월호 <유도>에는 강제징병을 축하하는 시도 게재했다. 시에서 그는 "집안에서 아들 난 것 중한 일임을 알고/ 나라 위해 죽는 것은 가벼이 여겨야 하리"라고 읊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일본을 위해 죽으라고 등을 떠다민 것이다.

이명세는 해방 뒤에도 건재했다. 당연한 일이다. 친일파가 청산되지 않고 기득권을 유지한 나라에서는 당연하다. 그는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의 비호 하에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성균관대학교 상임이사가 되고 1954년에는 이사장이 되었다. 손녀 이인호가 KBS 이사장이 되기 60년 전, 그는 대학 이사장이 되었다.

성균관대를 장악한 이명세는 뒤이어 유림조직 장악에 나섰다. 1960년 10월 23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그는 1945년 11월부터 유도회총본부를 이끈 독립투사 김창숙에게 "8천만 환을 유도회와 성균관에 기부할 테니 유도회 부위원장 자리를 주시오"라고 요구했다.

일제 치하에서 고문을 받아 두 다리가 마비되고 14년간 감옥에서 살았던 김창숙이었다. 그런 대쪽 같은 선비가 검은 돈을 받을 리 만무했다. 위의 <동아일보>에 따르면, 김창숙은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친일파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명세는 꼿꼿한 독립투사가 인정해준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친일파'였다.

김창숙은 "불의한 돈을 받는 것은 공맹의 도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돈을 받고 이명세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은 공자와 맹자의 도에 어긋난다고 언급한 것이다.

이명세는 굴하지 않았다. 이승만과 자유당의 비호 하에 폭력배들을 동원했다. 그들을 내세워 김창숙 세력을 몰아내고 1957년 유도회를 장악했다. 독립투사가 세운 유림 조직을 친일파가 강제로 빼앗은 것이다. 해방 뒤에 일어난 일이지만, 이는 당연했다. 8·15 해방이 친일파들의 삶에 별다른 지장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명세 같은 조상을 둔 후손들은 친일 문제에 관한 한 가급적 입을 다문다. 친일파가 1945년 이전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이런 후손들도 친일을 함부로 옹호하지는 않는다. 친일을 혐오하는 대중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을 뿐 아니라 그 한(恨)이 하늘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못 나섰다가는 친일파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과 지위를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더욱 더 몸을 사리지 않을 수 없다.

▲ KBS 본관.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소재. ⓒ 김종성


노골적으로 친일 옹호하는 이인호

그런데 이인호 KBS 이사장은 이상하다. 친일파 후손치고는 너무 노골적으로 친일을 옹호하고 친일 청산을 훼방하고 있다. 더군다나 그는 여타 학문에 비해 진보적인 역사학자다. 서울대 사학과 출신이고, 하버드대에서 러시아 역사를 전공했다.

일반적으로 역사학자들은 평화로운 시기보다는 변화의 시기에 관심을 갖고, 이전 시대에 없었던 새로운 특성을 나중 시대에서 찾아내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다른 분야 학자들에 비해 진보적이 되기 쉽다. 그래서 친일 문제와 관련해서도 아무런 내적 고민 없이 일반 대중의 편이 되는 역사학자가 대다수다.

그렇지만 이인호는 다르다. 친일 청산을 적극 반대하고 있다. 2004년 11월에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친일청산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학자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2006년에는 뉴라이트 측이 만든 교과서 포럼에 가담하고, 2008년에는 이 포럼이 만든 교과서를 감수했다. 이 교과서에서는 친일파 박정희의 5·16 쿠데타를 근대화 혁명의 출발점으로 미화했다.

2011년에는 뉴라이트가 결성한 한국현대사학회 고문이 되었다. 교학사 교과서를 집필하게 될 단체에 가담한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친일과 독재를 미화했다는 이유로 2013년에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 그런 교과서를 집필한 단체에서 고문으로 활동한 것이다.

2014년 9월에는 황당한 주장도 내놓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강연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친일파 청산은 소련에서 내려온 지령"이라고 발언했다. 친일 청산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려 했던 것이다.

김창숙의 사고방식에 입각할 것 같으면, 이명세뿐 아니라 이인호도 공맹의 도에 그다지 부합하지 않는다. 그런 인물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 KBS에 앉힌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이인호의 행위가 박근혜한테 얼마나 위로가 됐을지 자세히 언급할 필요도 없다.

▲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의 박근혜. ⓒ 김종성


'친일'이 금기어가 된 KBS... 이인호 때문

그런데 더욱 더 큰 문제는, 공영방송 이사장이 된 뒤에도 이인호의 친일 옹호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7월 17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성재호 위원장이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했다. 이 자리에서 성 위원장은 "KBS에서는 친일이 금기어가 되어 있다"면서 "친일과 관련된 문제들이 기획되지 못하고 있고, 기획되더라도 방송되지 못한다"고 폭로했다.

<친일과 훈장>이란 프로그램도 그래서 방송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KBS에서 친일 이야기가 나오면 이사장의 할아버지가 당연히 연상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 위원장은 2년 뒤인 2019년이 참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그 해 3월 1일의 방송이 벌써부터 걱정된다는 것이다.

2019년 3월 1일은 3·1운동 100주년이다. 그래서 여느 해보다 3·1절 프로그램을 '빵빵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준비를 하자면 몇 년이 소요된다. 그렇기 때문에 훨씬 전부터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이사장님 때문에 지금껏 아무 준비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2019년 3·1절 프로그램을 경쟁력 있게 만들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게 그의 토로다.

아직 미완성인 친일청산을 마무리하려면 공영 방송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친일파 후손이 KBS 이사장이 되어 친일청산 방송을 훼방하고 있다. 이런 행위가 할아버지 이명세의 친일 행적보다 가볍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지난 5월 24일자 성명서 '고대영 사장과 이인호 이사장은 물러나라'에서 이인호를 'KBS의 적폐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헌정 사상 최악의 국정농단 사태로 탄핵된 대통령이 임명한 사장과 이사장의 권한과 지위를 더 이상 ······ 기대하지 말라"며 "당신들은 뉴스와 프로그램을 망가뜨리고 조직개편, 잡포스팅이니 말도 안 되는 정책들로 공영방송을 망친 책임을 지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렇지만 이인호 이사장은 꿈쩍도 않고 있다. 지난 7월 7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용퇴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회사를 구하기 위해 내가 용퇴해야 한다고 하는데, 개인의 희생을 통해 회사가 회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생각 못할 일은 아니지만, 그런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KBS 이인호 이사장은 할아버지의 친일 못지않은 '친일청산 훼방작업'을 하고 있다. 친일청산 훼방을 통해 친일의 결과물이 계속 남아 있도록 만들고 있으니, 그의 행위는 할아버지의 죄악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냥 친일파 후손으로 사는 데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할아버지와 손녀를 별개로 봐야 할까? 이런 경우에는 친일파의 죄악을 후손에게 따질 수 없는 걸까?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친일파 조상과 떼어놓고 봐야 하는 걸까?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