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돌부처' 서병수 시장, BIFF 위기의 시발점
[게릴라칼럼] 외우내환 지속 중인 부산국제영화제... 정상화 시작은 서병수 시장 공식사과
▲ 서병수 부산시장(자료사진) ⓒ 정민규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민간의 창의성을 확대하고 혁신과 새출발을 위해 이사장을 민간화하고, 정관을 개정해 새로운 20년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BIFF, 영화계 등과 소통하고 협의할 계획이며 부산국제영화제가 발전할 수 있도록 행정·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문화 분야의 여러 가지 갈등은 소통과 신뢰 부족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부산영화제는 그동안 외형적 성장에 집중해 체계적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민간의 창의성을 확대하고 영화제의 혁신과 새 출발을 위해 이사장직을 민간에 넘기고 정관을 개정해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했다. 재정 분야도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도록 하겠다."
이게 불과 작년 연말 '신년 인터뷰'다. 작금의 한국사회가 '소통'과 '협의'란 좋은 단어의 뜻을 망쳐놨기로서니 이렇게 뻔뻔해도 되는지 되묻고 싶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망쳐 놓은 '주범'으로 손꼽히고 있는 서병수 부산시장 말이다.
위는 서 시장이 작년 연말 각각 <뉴스1>, <서울신문>과 나눈 신년 인터뷰에서 부산국제영화제 논란에 관해 답한 내용 중 일부다. 대개가 이런 식이다. 자신의 명백한 과오는 "소통과 신뢰 부족"으로 간명하게 언급하는 반면 본인이 장담하지도 못할 "영화 도시 부산의 브랜드를 더욱 확고해 해나갈 계획"이란 부분은 장황하게 설명한 바 있다.
"BIFF와 해수담수화 공급 갈등에 관한 초기 대응이 부족해 공감대를 얻는 데 실패했다. 반성하고 있다."
이런 대응은 최근까지 계속됐다. 지난 7월 초 여러 매체와 취임 3주년 인터뷰를 가진 서 시장은 부산국제영화제와 관련 대개 이런 식의 답을 내놨다. 소통과 신뢰, 초기 대응 부족이 단골메뉴였다. 특히 부산 지역신문인 <국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선 부산국제영화제 사태를 '기장 해수담수화 수돗물 공급'과 동급으로 놓으며 "반성할 부분"이라 표현했다. 다른 인터뷰에선 "지진과 태풍 같은 자연재난"과 비교하며 초기 대응 운운했다.
지난 2014년 9월 조직위원장이었던 서 시장 스스로가 <다이빙벨> 상영과 표현의 자유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장본인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고서야, 아니 애써 축소시키지 않고서야 내놓을 수 없는 답변이고 뉘앙스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서병수 시장이 망쳐 놓은 부산국제영화제가 또 한 번 위기에 처했다.
사상 초유의 직원 성명서 사태... 첫번째 요구는 서 시장 사과
"하나,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공개사과를 요구합니다. 서병수 시장은 박근혜정부 문화계 농단사태의 직접 실행자로 부산국제영화제 파행에 가장 큰 책임이 있습니다. 영화제 정상화를 위한 첫 걸음은 서병수 시장이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과 함께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것입니다."
지난 7일,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 직원들이 영화제 정상화를 요구하고 22회 영화제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낸 단체 성명의 첫 번째 요구도 바로 서 시장의 공개 사과였다. 이와 함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복귀, 그리고 국내외 영화인들의 지지와 참여를 호소한 사무국 직원들은 이 모든 위기의 시발점에 자리한 인물로 대표적인 '친박'이자 '부역자'로서 서 시장을 꼽았다.
실제로 지난 6월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 블랙리스트 재판 심리에 출석한 송광용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은 "김기춘 전 실장이 2014년 <다이빙벨>의 상영을 막기 위해 서병수 부산시장에 직접 전화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과거 <다이빙벨> 상영 철회 압박부터 부산국제영화제의 행정지도점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사퇴 압력 및 검찰 고발 등이 모두 서 시장과 김기춘 비서실장 체제의 청와대가 교감한 결과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2014년 논란부터 서 시장이 당연직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던 2016년 2월 이후까지 서 시장을 향했던 의혹들에 종지부가 찍히는 증언이기도 했다. 사무국 직원들도 성명서에 이 점을 분명히 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2014년 다큐멘터리영화 <다이빙벨> 상영을 빌미로 박근혜정부를 위시한 정치권력에 의해 철저히 농락당했습니다. 국정농단을 일삼은 세력과 부역자들은 촛불혁명과 특검을 통해 진상이 드러나 단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산국제영화제 탄압에 대해서는, 가해자는 그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피해자는 명예회복을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으며, 사무국 직원들이 입은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다이빙벨> 상영 직후부터 시작된 부산시와 감사원의 전방위적인 감사는 거의 1년 동안 융단폭격처럼 영화제사무국을 초토화시켰습니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자료제출은 그렇다 하더라도,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과 사무국 직원들에게 협박과 회유, 먼지털이식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결국 영화진흥위원회는 지원금을 절반으로 삭감하였고, 서병수 부산시장은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검찰에 고발하여 영화제로부터 내쫓았습니다."
결국 내홍 끝에 사퇴 선언한 강수연, 김동호
▲ 제21회 BIFF, 김동호-강수연 '영화인 축제 축하합니다'김동호, 강수연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이 지난 해 10월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걸으며 입장하고 있다. ⓒ 유성호
사실 영화제 사무국 전직원 명의로 된 이런 성명 자체가 부산국제영화제 사상 초유의 사태라 할 수 있다. "집단 행동이 늦지 않았느냐"부터 22회 영화제 개최를 두 달여 남긴 시점임을 감안해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까지 반응이 다양하지만, 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국정 농단' 사태 이후 블랙리스트 재판이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선결돼야 할 서병수 시장의 사과와 같은 기본적인 요구들이 묵살돼 왔기 때문이다.
그 사이, 올해 들어 영화제의 구심축을 지탱해 왔던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이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 출장길에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고,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지난 7월 21일 2심 공판에서 5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고 즉각 대법원 항고를 선언했다. 그것이 외적으로 비쳐지는 '우'이라면, 지난 7월 부집행위원장에 선임됐던 홍효숙 프로그래머의 자진 사임과 프로그램 실장 등 주요 책임자 4명의 집단 사표는 내적인 '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영화제를 두 달여 남긴 지금 사무국 직원들의 성명서로 인해 부산국제영화제의 내홍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사태의 책임을 지고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8일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이다.
"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영화제는 개최되어야 한다는 확신에서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올해 영화제를 최선을 다해 개최한 다음, 10월 21일 영화제 폐막식을 마지막으로 영화제를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끝으로 올해 영화제가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영화계와 국민 모두의 변함없는 성원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이러한 사퇴의 배경에는 사무국 직원들로부터 "소통의 단절과 독단적 행보"를 지적 받은 강수연 집행위원장의 안일한 운영과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김동호 이사장을 향한 영화제 내부를 포함한 영화계 안팎의 질타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특히나 김동호 이사장의 경우, 부산국제영화제 출범 이후 영화제의 얼굴이자 중추로 영화계의 존경을 받아왔음에도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위원회를 이끄는 한편 <다이빙벨> 논란 이후 서병수 시장에게 면죄부를 주는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서병수 시장이 조직위원장에서 사퇴했던 2016년 2월 영화제 정기총회 이전으로 되돌아가야 영화제 정상화가 이뤄진다고 주장하는 일부 영화인들이 "김동호 이사장은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으로 돌아가고,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배우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배경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이제 부산국제영화제와 영화계는 두 사람의 사퇴 이후를 고민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아직도 꿈쩍도 하지 않는 인물이 있다. 바로 서병수 시장이다.
재선 때문에 분주한 서병수 시장, 공식사과부터 하시라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 1월 부산시민연대와 더불어 서병수 부산시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블랙리스트 파문의 직접적 결과라고 할 수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의 전모를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해 줄 것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현재 수사가 진행중인만큼 검찰이 적극적 의지를 갖고 임해주길 기대한다.
이와 별개로 서병수 부산시장은 지금까지 부산국제영화제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에 사과해야 한다. 지난 3년간 이어진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상은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상화를 위해 부산시민과 영화인, 그리고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게 사과하길 바란다."
지난 7월,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이용권 전 집행위원장의 벌금형 선고에 유감을 표하며 내놓은 공식 보도자료의 말미다. 이때 역시 늦은 감이 없지 않다는 반응 일색이었으나, 일단 강 위원장은 서 시장에게 공식 사과를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앞서 언론 인터뷰에서 볼 수 있듯, 서병수 시장의 인식과 제스추어는 안일함을 넘어 후안무치라는 표현이 아까울 정도다.
반면 최근 여름휴가를 다녀온 서병수 시장은 지금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8월 첫 주 그의 일정만 봐도, 선거철을 방불케 할 만큼 현장방문 스케줄로 꽉 차 있다. 광안리, 해운대 일대의 각종 지역축제와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현장 농가와 일터도 방문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위한 표밭 다지기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어쩌나. 지난 6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상반기 민선 6기 시도지사 직무 수행 평가에서 서병수 부산시장은 38%의 긍정평가를 받았다. 전국 16개 시도지사 중 유정복 인천시장에 이이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반대로 부정평가는 당당히 2등을 차지했다. 텃밭이라 할 수 있는 부산에서 자유한국당 소속 지사가 이러한 성적표를 받아든 것은 전무후무하다는 평가다.
원전이든, 부산공항이든 부산시의 산적한 현안에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현 시장에 대한 평가는 박할 수밖에 없다.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에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한 적 없다. 그런데도 서병수 시장은 여전히 '사람과 기술, 문화로 융성하는 부산'이란 슬로건을 고수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고도 오로지 자신의 재선을 위해 뛰고 있는 서 시장이야말로 부산시민을 넘어 '문화'와 '영화'를 사랑하는 국민을 기만하는 '친박' 정치인의 현재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검찰 조사를 비껴 간 것이 전부도 아니고, 면죄부도 될 수 없다. 강수연 집행위원장과 김동호 이사장의 사퇴 표명 역시 사태 해결의 시작일 뿐이다. 그 바탕에 서병수 시장의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가 약속돼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친박 정치인들과 그 부역자들이 망쳐 놓은 부산국제영화제와 이 나라 '표현의 자유'를 위한 기본 전제다. 비단 상처입은 영화제 식구들과 영화인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진정한 '문화융성'의 혜택을 받아야 할 이 나라 국민들과 미래세대를 위해서 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