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쩌다 결재서류 더미에 파묻히게 되었나
전면적 관료화 시대, 도전적 과제 던지는 <관료제 유토피아>
▲ 표지이미지 ⓒ 메디치
신자유주의는 관료주의적 간섭과 시장을 억누르는 각종 규제를 없애라고 소리를 높였다. 시장 만능을 앞세워 규제 철폐‧규제 완화를 외치며 관료주의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그런 신자유주의가 오랜 시간 기승을 부렸으니, 누구나 관료제가 약화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째서 저자는 관료제가 더욱 강화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신자유주의는 관료주의 기법을 널리 확산시켜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규제 철폐라는 말의 실상은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규제의 구조를 바꾸는 것"(35쪽)이었다고 지적한다. 중간 기업들 사이에 경쟁을 강화하는 체제로 규제 시스템을 바꾸고, 반면 소수의 거대 기업들이 시장을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관료주의 기법들(시간 관리, 성과 분석과 측정 등)이 금융업에서 시작되어 각종 기업 내에 광범위하게 도입되었고, 이는 다시 사회 곳곳에 퍼져나갔단다. 대학, 병원, 로펌 등 어디든 철저하게 관료적인 환경에 맞춰 일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신자유주의가 관료제에 반대하는 레토릭을 구사했을 뿐, 현실에서 벌어진 일은 정반대였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도 규제 완화를 외치며 친기업 정책을 펼친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일상을 통제하는 관료주의의 촘촘한 규칙들이 늘어나고 서류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지 않았던가.
공무원을 비롯해 교사, 학자, 의료인, 그리고 많은 직장인들이 더욱 세밀하게 통제받고 작성해야 할 서류와 보고서의 양이 많아지며 각종 문서 작성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업무 평가 또한 서류를 통해 이루어져서 서류에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직장 생활을 하며 온갖 서류에 얽매이게 되었다며 투덜거려야 했다.
자본주의와 관료주의의 끈끈한 밀월 관계
저자는 자본주의가 정착하던 시기에도 관심을 둔다. 특히 정부의 역할을 대폭 줄이고 그저 시장에 맡기라고 주장했던 자유방임주의가 떠오른 시절을 들여다본다. 그런데 자유방임 경제 정책들이 실행되면서 오히려 관료제가 강화되었다고 지적한다.
"영국의 자유주의는 국가 관료제의 약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확히 그 반대였다. 자율적인 개인들 사이의 자유로운 거래 세상이라는 자유주의적 꿈을 실현시켜줄 법원 서기, 관청의 호적 담당자, 감시원, 공증인, 그리고 경찰 공무원들의 숫자가 끊임없이 늘어났다."(25쪽)
'자유로운 시장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방대한 관료제와 수많은 규제, 그에 따라 많은 서류 생산이 필요했던 것이다. 영국만이 아니라 프랑스도 루이 14세의 절대왕정 때보다 1천배나 더 많은 서류 작업이 필요해졌다.
이렇듯 경제 영역에서 정부의 간섭을 줄이겠다는 명분으로 추진된 정책이 실제로는 더 많은 규제, 더 많은 관료를 만들어냈다. 현대의 이른바 '세계화', '자유 무역' 또한 마찬가지다. 그것은 평화로운 무역의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TO) 등의 거대한 관료 체제를 통해 가능했다.
그러니까 '자유 무역'이 실제로는 투자자들에게 이윤을 보장할 수 있는 국제 행정 조직을 창설하는 일이었고, 이는 곧 관료화를 의미했다. 이쯤 되면, 저자의 다음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시장'에 호의적인 정략적 정책들은 항상 이전보다 훨씬 더 많아진 사무직들이 상황을 통제하게 된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 이는 우리가 지금껏 시장에 관해 믿도록 배워온 모든 것에 명백히 위배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현상을 관찰해 본다면, 이는 분명한 진실이다."(56~57쪽)
알고 보면, 자본주의는 언제나 관료주의와 끈끈한 밀월 관계였던 것이다! 이 분석은 정말이지 '극적인 반전'이다. 저자는 우리가 그간 믿어온 '애당초 잘못된 전제'를 까발리고 부순다.
일상의 관료화, 자신을 관리하는 우리가 이미 관료
<관료제 유토피아>는 지난 2세기 동안 관료제가 폭발하듯 급증했고, 특히 최근 30~40년 관료주의 원리 원칙이 우리 존재의 모든 측면으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관료주의가 우리에게 물이나 공기처럼 너무 익숙해져서 인식조차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 그 어느 때보다도 관료적인 일 처리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우리 생활의 모든 측면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 시대를 '전면적 관료화'의 시대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일상을 서류 작업이 가득 채우고 있다. 지원 서류는 점점 더 길어지고, 더 정교해졌다. 어음이나 스포츠 또는 책 동호회 티켓이나 회원권 같은 일상적인 문서들조차 법률에 엄격히 따른 깨알처럼 작은 글씨들로 꽉꽉 채워져 있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다 붙일 이름을 하나 지어볼 생각인데, 이를 '전면적 관료화'의 시대라고 부르고자 한다."(37쪽)
이 전면적 관료화 시대가 두려운 것은 관료주의 관행, 습관, 감성이 우리를 집어 삼키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신의 삶을 냉정한 관료주의 기법으로 관리하고 있다. 시간을 꽉 차게 관리하며, 작은 일에도 투입과 산출을 계산하고 효용을 따지며, 빠른 시간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려 하는 등 우리는 이미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규칙에 따라 관리하는 관료가 되어 있다!
이 책은 '과잉 관료주의화'의 나쁜 사례들도 지적한다. 예를 들어, 학위를 비롯한 온갖 자격증에 대한 물신 숭배가 그렇다. 실제 실력과 관계없이 능력은 자격증이라는 각종 서류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어떤 직업을 얻고 유지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크게 늘어났다. 따라서 사회 초년생은 빚을 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는 실상 약탈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저자는 '약탈적 관료화의 시대'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한다.
상상력의 질식, 다시 '모든 힘을 상상력으로!'
일상의 관료주의화는 창의성을 마비시킨다. 대학의 학자들은 행정 서류 작성을 비롯해 '행정적 책임'을 지는 데 써야 하는 시간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는 기업의 관리 기법을 도입한 데서 비롯한 결과다. 연구하고 분석하며 해석하는 일에는 분명 상상력‧창의력이 필요하지만, 독창적인 연구를 할 것으로 기대되는 그들의 영혼이 점점 더 관료주의 체제에 사로잡히고 있다.
이제, 연구하는 시간보다 제안서 작성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투덜거림은 흔한 레퍼토리다. 심지어 가장 창의적이어야 할 예술가들에게도 네모 칸 서류에 규격화해서 자신의 작업에 어떤 효용이 있는지 설명하라고 윽박지르는 일도 흔히 벌어진다. 돌아보면, 관료주의 관행은 곳곳에 너무나 만연해 있다.
진정 창의성을 키우고자 한다면, 괴짜들에게 '쓸모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서류 문서의 네모 칸에 가두려 하지 말고, 지원만 하고 그저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게 정답이다.
흔히들 거대한 관료제의 소련이 붕괴하고 '시장'이 승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정 승리한 것은 시장이 아니라 여전히 '관료'다.
그래서다. 이 책은 68혁명을 돌아본다. 68혁명은 "관료주의 권위에 대한 처음이자 가장 중요한 반란"(128쪽)이었다. 그런 저항 덕분에 68혁명은 온갖 창의적인 인문학과 다채로운 문화가 꽃피우도록 자극했다. 저자는 68혁명을 돌아보며, "좌파는 본질적으로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론"(129쪽)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일상을 촘촘하게 지배하는 온갖 규칙들로 상상력이 질식된 전면적 관료화의 시대, "모든 힘을 상상력으로"와 "불가능을 요구하라"를 외쳤던 68혁명에 다시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규칙 없는 자유로운 놀이를 꿈꿀 시간이다.
엉뚱한 가이드를 따라 놀라운 발견을 하는 여행
지은이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탁월한 인류학자다. <관료제 유토피아>는 인류학의 장점이 십분 드러난다. 관료제라는 무미건조한 소재를 외부인의 시선으로 들여다봐 흥미와 생기를 불어넣었다.
뿐만 아니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사상‧문화‧과학기술 등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곳곳에서 번뜩이는 통찰을 제시한다. 우편과 인터넷의 유사함, 중세 우주론에 담긴 관료주의, 컴퓨터 게임의 관료주의 절차, 판타지 문학의 반관료주의, 규칙을 따르는 스포츠 시합과 규칙을 창조하는 놀이의 차이, 놀이와 주권의 동일성 등등. 덕분에 독자는 엉뚱한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놀라운 발견이 이루어지는 여행을 하게 된다.
이 책을 한 번 잡으면, 놀라움에 중간에 놓을 수가 없다. 책을 읽고 난 뒤에도 가시지 않는 여운으로 책을 다시 잡고 또 읽게 된다. 연이은 두 차례의 독서를 부르는, 천재적인 괴짜의 폭죽 같은 책이다.
한편 그레이버는 월가 점령 운동의 주동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 책은 월가 점령 운동의 독특한 특성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는 덤으로 주어지는 선물이다. 이 책에서도 저자의 시선은 이미 좌파의 새로운 구성에 닿아 있다.
<관료제 유토피아>는 우리가 어떻게 해서 신청서와 결재 서류에 파묻히게 되었는지 살펴보며 관료제에 대한 성찰을 새롭게 업그레이드한다. 이 책은 관료제에 대한 새로운 대화를 점화시켜 의미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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