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19년 전 영수증을 찾은 이유
[현장] 피해자들, 가습기살균제 판매순위 3위 LG생활건강 본사 찾아
▲ 14일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종로구에 위치한 LG생활건강 본사를 찾았다. 이들은 가해기업들의 책임을 촉구하며 8차 시리즈캠페인을 이어갔다. ⓒ 강홍구
"1998년생인 저희 아이는 이유도 없이 천식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습니다. 결국 4등급을 받았고, 2002년에 태어난 둘째아이와 저도 피해접수를 한 상태입니다."
올해 스무살 된 딸을 둔 어머니, 아무개씨가 발언을 하며 영수증을 꺼내들었다. 1998년 겨울쯤 강동역 인근 킴스클럽 매장 내 마트에서 가습기살균제를 구매한 내역이 적혀있었다.
"평소 가계부를 써서 보관해둔 덕에 사라지지 않았네요.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현재는 가해기업이 아닌 피해자가 직접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몇 년치 영수증을 찾아보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것이다. 결국 영수증을 못 찾아 어려움을 겪는 피해자들도 상당하다.
14일 종로구에 위치한 ㈜LG생활건강(구 LG화학, 이하 LG) 본사 앞에서 여덟 번째 시리즈캠페인이 열렸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이하 가피모) 회원들과 가습기살균제참사 전국네트워크(이하 가습기넷) 활동가들이 어김없이 모여들었다.
참가자들은 예정시간인 낮 12시보다 15분가량 일찍 도착해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정돈이 끝날 무렵, LG직원으로 추정되는 여성 2명이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다. 이를 발견한 참여자들이 동영상 촬영에 항의하기도 했다. 한 활동가는 "이번 시리즈캠페인을 하며, 가해기업 측에서 대놓고 촬영한건 LG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 14일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종로구에 위치한 LG생활건강 본사를 찾았다. 이들은 가해기업들의 책임을 촉구하며 8차 시리즈캠페인을 이어갔다. ⓒ 강홍구
LG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7년간 '119가습기살균제'라는 제품을 110만개 이상 판매했다. 하지만 해당제품이 가습기살균제참사가 공론화된 2011년에는 이미 단종 되었기 때문에 정부의 전수조사 목록에 들어가지 않았다.
해당제품의 주성분은 염화벤잘코늄(BKC)와 Tego 51이다. 문제는 BKC가 미국환경청(EPA)의 위해성평가보고서에서 안전성을 문제 삼은 물질이라는 것이다. LG화학측이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보낸 해당보고서에 따르면, '가습기 등을 제외'한 집에서 사용하는 항세균제품의 안전성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적혀있다(except for the inhalation exposure from the humidifier). 이는 곧 호흡기에 노출될 수 있는 상황에선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국내최대 생활용품 판매업체인 LG는 옥시에 대한 비난여론으로 가장 큰 반사이익을 얻어왔다"고 지적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무관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인데, "(LG)가 7년간 110만 3천개를 판매해온 사실이 이미 작년 3월 국정조사를 통해 밝혀졌다"고 강조했다. 이는 옥시와 애경 다음으로 많은 양이다.
그는 또한 LG측이 제공한 자료를 인용하며, "EPA는 심지어 가습기에 수돗물을 넣는 것도 위험할 수 있다고 했는데, BKC를 넣은 재품을 다량으로 판매한 LG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며, 피해기금 조성조차 소극적이던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했다. 국정조사 당시 드러난, 안전테스트를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다시금 강조했다.
▲ 14일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종로구에 위치한 LG생활건강 본사를 찾았다. 이들은 가해기업들의 책임을 촉구하며 8차 시리즈캠페인을 이어갔다. ⓒ 강홍구
한국여성소비자연합 김순복 처장도 "대기업이라 불리는 회사들이 독성실험도 거치지 않고, 안전하다는 광고를 하며 화학제품들을 판매해왔다"며, 초창기 주도면밀하게 관리하지 못했던 정부정책에 아쉬움을 표했다. 또한 가해기업들이 책임을 다 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환경부의 의뢰로 한국환경보건학회가 조사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1228명 중 8.3%인 102명이 LG의 가습기119를 사용했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이를 근거로 병원치료 피해자가 최대 4만 명을 넘어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자들과 시민단체회원들은 지난 6월 26일 SK케미칼을 시작으로 가습기살균제 제조 판매 기업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엄벌을 촉구하는 시리즈 캠페인을 매주 월요일 낮 12시에 계속하고 있다.
▲ 14일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종로구에 위치한 LG생활건강 본사를 찾았다. 이들은 가해기업들의 책임을 촉구하며 8차 시리즈캠페인을 이어갔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한 피해자가 LG간판을 응시하고있다. ⓒ 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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