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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재판에 몰려든 박근혜 지지자들 "기자석 줄여라!"

경쟁률 15 대 1, 이재용 뇌물죄 선고 방청권 추첨 현장

등록|2017.08.22 14:53 수정|2017.08.22 16:26

▲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에서 이재용 1심 선고 공판 방청권 추첨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에서 이재용 1심 선고 공판 방청권 추첨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15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당첨자들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응모권을 들어 보였다.

60대 박아무개씨는 "주변에서 나 혼자 됐는데 기분이 너무 좋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그는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보다 먼저 아는 게 삼성인데 뇌물죄가 성립되는 건지 의문"이라며 "어제(21일) 박근혜 대통령 공판도 방청했는데 너무 편찮으시다"라고 덧붙였다.

가슴팍에 태극기를 단 한 남성도 당첨돼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한편으로 마음이 아프다. 이재용 부회장도 그렇고 우리 박근혜 대통령도 그렇고"라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누가 옳고 그른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2일 오전 서울회생법원 1호 법정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선고 공판 방청권 추첨을 진행했다. 이른 아침부터 454명이 '세기의 재판'에 응모하기 위해 법원으로 몰려들었다.

▲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에서 이재용 1심 선고 공판 방청권 추첨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에서 이재용 1심 선고 공판 방청권 추첨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에서 이재용 1심 선고 공판 방청권 추첨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응모권을 나눠주는 시각은 오전 10시로 공지됐지만, 일부 시민들은 새벽부터 법원 근처에서 대기하기도 했다. 울산에서 왔다는 60대 여성 세 명은 오전 7시에 도착해 인근 카페에서 기다렸다. 그들은 "단순히 박 전 대통령이 좋아서 여기 왔다"고 말했다. 70대 남성은 "오전 6시 30분에 왔다. 촛불부터 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역사적인 현장에 다 있었다"고 밝혔다.

응모권을 받기 위해 법정 앞에 선 줄은 복도까지 길게 이어졌다. 법원 직원은 "내부가 혼란스럽다"며 시민들을 10명 단위로 끊어 안으로 들여 보냈다. 시민들은 법정 안으로 들어가 앞쪽에서 신분증과 이름을 비교한 뒤 투명박스 안에 응모권을 넣었다.

오는 25일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에 대한 선고가 진행될 대법정 417호 방청석 150석 중 일반 방청객에게 주어진 건 30석이다. 자그마치 15대 1의 경쟁률로 박 전 대통령의 첫 공판 경쟁률인 7.7대 1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다.

"카메라 빨리 치워!"... "기자석을 줄여!"

▲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에서 이재용 1심 선고 공판 방청권 추첨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이런 열기 속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소란을 피웠다.

오전 10시 25분께 태극기가 달린 붉은 모자를 쓴 노년 남성은 "카메라를 빨리 치우라"고 소리치며 일어섰다. 이어 그는 "JTBC 부숴버릴 거다. 초상권 침해"라며 "왜 태극기를 못 갖고 들어오게 하냐. 인공기를 걸어라"며 큰소리를 쳤다.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박수를 보내며 호응했다.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다툼이 일어났다. 중년 남성이 인터뷰를 하는데 여성이 끼어들자 "여기 와서 왜 XX이야. 네가 뭘 안다고 까불어"라며 삿대질을 했다.

오전 11시께 법원 직원이 "소송관계인과 언론인 우선 배정분을 제외한 30석을 추첨하겠다"며 방청권 추첨을 시작하자 지지자들은 웅성거렸다. 한 중년남성은 일어나 "보통 68석이었지 않나. 설명해달라"고 항의했다. 직원이 "질서유지와 보안도 그렇고 피고인의 가족들과 변호인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일반 방청석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양해 바란다"고 설명했지만, 지지자들은 "기자석을 줄이라"며 불만을 표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이재용 부회장의 무죄를 주장했다. 60대 여성은 "이재용 부회장은 무죄다. 전 세계에 삼성 모르는 나라가 있느냐"며 "어딜가도 길 물어볼 때 삼성 휴대폰, 삼성 얘기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추첨이 끝나고 나서도 소란은 이어졌다. 법정 밖으로 나간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기자들에게 카메라 촬영 내용을 보여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한 기자가 "이미 보여드렸지 않냐"고 하자 지지자들은 "한 번 더 보여주면 되지 않냐. 너만 바쁘냐"고 몰아세웠다.

교복 입고 온 남매, 방청권은 못 받았지만

▲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에서 이재용 1심 선고 공판 방청권 추첨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교복을 입고 온 한 남매는 비록 방청권에 당첨되진 않았지만 '이재용 재판'이 공부보다 좋은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하고 줄을 섰다.

남동생 김민종(15)씨는 "엄마가 이재용 재판이 세계적 이슈라 한 번 보면 좋은 경험일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고 고3 누나인 김지현씨도 "공결을 내고 왔다"고 미소를 지었다. 남매를 데려온 어머니 이계향(55)씨는 "공부보다 이런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먼저 같이 가자고 했다"며 "사회적으로 제일 큰 사건이고 역사의 길목에 서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20대 커플도 나란히 앉아 응모권에 이름을 적었다. 남자친구와 함께 온 한숙현(24)씨는 "기사 보고 왔다. 재판부가 좋은 판결 내려주시겠지만 그래도 실형일 것 같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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