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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제도 개혁 없이 "관료가 주인인 세상" 바꾸기 어렵다

[주장] 진골, 성골, 육두품의 공무원 사회는 이제 안돼

등록|2017.08.24 10:27 수정|2017.08.24 15:26
공무원이 기피대상으로 되던 시기가 있었다. 공무원 임금이 너무 낮고 대우도 좋지 않아 일반 대졸자들이 기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시기에 5급 고시는 우수한 인력을 공무원 조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의 제도였다.

그러나 이제 공무원은 이 나라 모든 젊은이들의 꿈이 되었다. 9급 공무원 시험도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이다. 가장 우수한 인력들이 공무원 시험에 몰려들고 있고, 노량진역은 공시족으로 언제나 인산인해다. 몇 년 전부터 이제 5급 공채(고시)나 7급 시험이나 차이가 없다는 주변의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이 우수한 인력들을 공무원으로 선발해 잘 운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고시 출신의 군림과 육두품 출신의 슬픔

문제는 고시 출신, 고시족들이 전두환 시절의 군대 내 사조직이었던 '하나회'처럼 공무원 사회를 장악하고 독점하는 데 있다. 모두 고시 몇 기 몇 기로 통하고, 이들끼리 모든 요직과 지휘계통을 장악한다. 고시 출신이 아닌 다른 공무원은 마치 신라 시대 육두품처럼 들러리로 전락한다. 진골, 성골 그리고 육두품의 출신 성분은 너무도 명확하다.

서슬이 퍼런 이런 계급사회에서 기상천외하게 아부하는 재주가 있지 않는 한, 육두품이 요직에 오르기 어렵다. 비(非)고시 출신으로서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여 요직에 오르게 될지라도 이미 비고시로서의 정체성은 상실된다. 아니 오히려 비고시 집단에 적대적으로 스스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고시족 집단에 대한 높은 충성심이 이미 내재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직에게서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국민을 위한 역동성이나 미래지향성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국회사무처의 경우를 살펴봐도 수석 전문위원과 전문위원을 비롯한 요직과 국장급에서 5급 공채, 즉 '입법고시 출신'의 비율은 매우 높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갈수록 강화된다. 최근에는 과장급까지 고시 출신의 독점 현상이 나타난다. 실제 국회사무처의 주요 보직 중 고시 대 비고시 출신 비율은 2006년 48: 52였는데, 2011년에는 58: 42였고 2016년에는 80: 20으로 그 독점 현상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5급 공채로 관료사회에 진입하면 30대에 이미 3급으로 승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것은 지나치게 빠른 승진이고, 국가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심지어 사회 경험이 적은 본인에게도 불행이다. 최근 판사 임용도 최소 3년 내지 5년의 법조 경력이 요구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와 같이 5급 공채라는 '특급 대우'를 제도적으로 제공하는 나라는 없다.

고시 폐지 없이 "관료가 주인 되는 세상" 바꾸기 어렵다

최근 들어 새 정부의 공약사항이었던 행정고시 폐지가 슬그머니 그 꼬리를 내리려 하고 있다. 이른바 안정성 논리고, 역으로 '고시의 힘'이 얼마나 강하게 작동되는지를 여실히 반증하고 있는 대목이다.

만약 하나회가 해체되지 않았다면, 전두환 이후에도 제2의 전두환, 제3의 전두환이 계속 출현했을 것이다. 관료 조직 내에서 이들 고시족들을 견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견제되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공무원 조직은 국가의 근간 조직으로서 국가 발전 여부가 달려 있다. 이제 차분하게 이 공무원 조직의 채용과 운용에 대한 근본적 개혁을 하나하나 실천할 시점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공무원 조직에서 핵심적 요직을 독점하고 있는 고시 제도의 개혁이 급선무다.

당장 전면 폐지가 어렵다고 한다면, 시대적 조류에 맞춰 단계적 폐지 과정을 착실하게 이행해야 한다. 그리고 현 단계에서는 그 채용 숫자를 줄여나가고 동시에 개방직을 높이는 방식으로 그 힘을 약화시켜야 한다.

고시 제도를 개혁하지 않고서 우리 사회가 "관료가 주인 되는 세상", "관료가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는 관존민비의 사회"를 벗어나기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잡으려는 격이다.

"장단점이 있다!"- 기득권 유지와 개혁 회피의 대표적 논리

최근 국회사무처 문제를 다룬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의원의 질의에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는 답변이 있었다. 이 "장단점이 있다"는 논리는 관료사회에서 널리 애용되는 논리다.

솔직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도대체 100% 장점만 있는 것이 어디 존재할 것인가? 그리고 100% 단점만 있는 게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런 논리라면, 심지어 최순실 국정농단조차도 최소한 박근혜를 '일정 기간 안정적으로' 보좌했다는 장점이 있지 않겠는가? 과연 누구에게 장점인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장단점이 있다"는 이 논리는 그래서 개혁 회피의 전형적 논리고 결국 기득권 유지의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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