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김사복은 내 아버지... 사진 공개합니다"
[김사복씨 사진 독점 공개] 힌츠페터 동행 기사 맞나? 김승필씨의 사연과 확인된 사실들
▲ 내 아버지가 '김사복'자신의 아버지가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독일방송사 힌츠 페터 기자를 태우고 광주로 갔던 김사복씨(영화 택시운전사 실제주인공)라고 밝힌 김승필씨. ⓒ 권우성
▲ 김사복씨와 80년 당시 운행하던 차량사진속 김사복씨 오른쪽으로 보이는 검은 승용차가 김씨가 당시 운행하던 차량이다. 김승필씨는 '이 차가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로 갔을 차량일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 권우성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택시운전사>는 얼어붙었던 국내 극장가에 모처럼 활기가 되고 있다. 1980년 그날의 광주항쟁에 대한 진실을 알리려 했던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광주까지, 그리고 김포공항까지 무사히 태운 한 택시 기사의 사연은 그만큼 다수 관객의 마음을 울렸다.
영화 속 감동과 별개로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고 힌츠페터 기자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있다. 힌츠페터가 사망 전까지 애타게 찾던 '택시운전사 김사복씨'의 행방이다. 현재까지 정확한 이름은 물론이고, 생존 여부도 알려진 게 없다. <택시운전사>의 제작사인 더 램프 측이 제작 단계에서부터 동명의 택시 기사 여러 명을 수소문했으나 모두 당사자가 아니었다.
이 와중에 영화 개봉 3일 후인 지난 5일 (힌츠페터와 동행했던) 김사복씨의 아들이라 주장하는 이가 트위터에 첫 글을 올렸다. 본명 김승필(59)씨. 그는 본인을 김사복씨의 큰 아들이라 소개하며 "영화를 보고 늘 제 안에 계셨던 영웅이 밖으로 나온 느낌이었다"는 소회를 올렸다. 파장은 컸다. 해당 글만 1500회 이상 공유됐고, 여러 댓글도 달렸다. 진위 여부에 대한 궁금증이 주된 반응이었다.
<오마이뉴스>는 5일부터 김승필씨를 수소문, 현재까지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았다. 사실 확인 및 인터뷰 요청에 그는 "제작진과 함께 확인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입장을 전했고, 지난 21일과 23일 두 차례에 걸쳐 만날 수 있었다. 몇 언론이 그와 접촉 중이나 김승필씨의 부친 김사복씨의 사진과 당시 상황에 대한 맥락은 이 지면에서 최초 보도한다.
정황 증거들 그리고 증인들
그날 이후 37년이 흘렀다. 2003년 위르겐 힌츠페터가 송건호 언론상을 받을 때 처음 세상에 알려진 김사복이라는 이름. 그 이후 광주시와 5·18 기념재단 등은 그의 행방을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김사복이라는 이름이 실명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당시 광주에 진입했던 힌츠페터와 음향 기사 모두 사망한 상태기 때문이다. 지난 8일 한국을 방문한 힌츠페터 기자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씨 역시 김사복씨의 얼굴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부인의 체류 기간 중 김승필씨는 부인을 직접 만나고 싶어 했으나 제작사 입장에서도 조심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모든 게 정황 증거뿐이기 때문.
그렇다면 김승필씨는 왜 자신의 아버지가 힌츠페터와 동행했던 '김사복씨'와 동일인이라고 말하는 걸까. 김씨의 아버지도 택시운전을 했으며, 이름이 김사복이다. 또, 광주항쟁 당시 독일인 기자를 태우고 광주에 다녀왔다고 한다. 우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김승필씨의 부친 김사복씨가 힌츠페터와 함께 찍은 사진이나 광주 항쟁에 다녀오셨다는 사진이 존재한다면 가장 좋을 텐데 결국 정황증거뿐인 건지.
"그 분(힌츠페터)과 사진 찍은 게 있으면 좋지. 근데 그 분과 석 달이든 생활했다면 같이 사진을 찍고 했을 텐데, 소개를 받아 광주에 가셨고 1박2일만에 오신 거다. 그것도 어디 여행 간 게 아니라. 무엇 때문에 광주에 가셨는지를 인식해야 한다. 중요한 건 우리 아버지가 김사복씨인지, 그리고 뭘 했던 분인지 인데 아버지가 운수업을 하셨다. 이런 건 다 증명이 된다."
- 운수업이라는 게 정확히? 개인택시나 조합택시는 아닌 걸로 알고 있다.
"호텔 택시를 하셨다. 당시 1984년, 1988년 올림픽을 겨냥해서 서울시 운수과에서 호텔규모에 따라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차에 면허를 내줬다. 아버지는 회현동의 '파리스 호텔' 명의 차를 지입식으로 운수업을 한 거다. 차종은 영화에 나온 브리사나 포니 그런 게 아닌 중형급 차였다.
아버지가 운행하던 차가 총 3대였다. 하얀 넘버 두 대와 초록색 넘버 하나. 번호는 1091, 1092 그리고 8484로 기억한다. 그 거래를 어디랑 했냐면 당시 문화공보부와 수의 계약을 했다. 이용희씨라고 담당이 있다. 또 당시 외국인을 초청하는 섭외과가 있다. 거기 김상술씨라는 사람과 거래했다. 어떻게 내가 잘 아냐면 아버지가 1984년 12월 19일 간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제가 그 사업을 받아서 얼마 간 운영을 했고 그래서 아버지가 거래하던 분을 다 만난 거지. 아버지 사진이 공개되면 안 다고 하시는 분이 많을 거다. 언론인, 공무원 등."
- 그럼 영화에 묘사한대로 우발적으로 힌츠페터를 태운 게 아니라 이미 어떤 사안인지를 알고 태웠다는 건가.
"당시 아버지는 외국 언론사, 광화문 일대 공무원 등과 거래한 분이다. 그 분야에서 인기가 좋았다. 소개를 통해 받았을 거다. 운전하시는 분들 보통은 영어가 안 되잖나. 아버지는 능수능란하진 않았지만 영어를 좀 하셨다. 그래서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아버지를 소개했다. 우리가 알기로 일본 NHK 히로세 아저씨라고 기자 분이 있다. 우리랑 친했는데 그 분이 피터 아저씨에게 아버지를 소개한 걸로 알고 있다. 제가 아버지께 듣기론 독일기자 두 분이랑 들어갔다고. 다른 한 분이 음향담당이었다. 그때는 아버지께서 독일기자 분이라 하지 않고 저먼TV(German TV)랑 다녀왔다는 말을 하셨다."(힌츠페터 기자는 독일 ARD-NDR 소속이다-기자주)
▲ 특전사에 입대한 둘째 아들과 함께 한 김사복씨. ⓒ 권우성
- 아버지가 광주항쟁에 다녀오신 걸 어떻게 알았나. 아버지는 당시에 대해 어떤 말을 하셨나.
"하룻밤 만에 다녀오셨는데 아버지가 평소 되게 젠틀하신 분이다. 차에 기스(흠집)를 내는 분도 아니고. 근데 그날은 차가 찌그러져있고, 아버지 신발도 남루해져있고, 평소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제 동생이 왜 이런지 물었는데 아버지가 너무 충격 받은 모습인 거야. 그땐 아무 말씀 없이 그냥 뒷좌석에 과자가 있으니 가져다 먹어라, 그게 <택시운전사>에 나온 것과 똑같은 과자야. 그래서 내가 제작사에 가자마자 물었다. 어떻게 알고 그걸 고증했냐고. 근데 제작사는 힌츠페터 기자가 과자 통에 필름을 숨긴 건 고증한 거고 김사복에게 과자를 주는 건 상상해서 했다더라. 어쨌든 결과적으로 맞는 거지.
그리고 씻고 들어오셔서 제게 얘기한 게 광주 이야기였다. 그날은 막 흥분하셔서 분통을 터뜨리고 그러셨다. 같은 민족끼리 어떻게 죽일 수 있냐며. 어떻게 총에 칼을 꽂아 찌르고, 총으로 쏘고 그럴 수 있냐면서 말이다. 광주 이야기를 하루 만에 다 하신 건 아니고 그 후로 종종 말씀해주시곤 하셨다. 그 후 며칠 뒤였나? 아버지를 따라서 외국 언론사에 간 적이 있다. 독일 언론사의 한국지사였나. 거기서 피터 아저씨가 찍은 영상을 봤다. 거기 독일 기자, 일본 기자 분들이 계셨다. 영상을 본 후 독일 기자들과 조선 호텔에서 정치 얘길 한 게 기억난다. 그러다가 그 양반들이 호텔에 도청장치가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한 것도 기억난다."
- 광주에 어떻게 들어갔고 나왔는지에 대한 얘기는 없었는지?
"들어갈 때 어렵게 들어갔고, 나올 때 매우 어렵게 나왔다. 나올 때 군인에게 걸렸는데 나오게 됐다는 얘기만 들었다. 기자들과 광주를 다녀왔는데 군인이 같은 민족을 어떻게 죽이고 하는지 그런 얘기에 정신이 쏠려 있었다. 힌츠페터와 어떻게 움직인 걸 얘기하시진 않았다."
- 사건 4년 뒤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가 힌츠페터에 대해 남긴 말은 없었는지. 그리고 당시 두 분 만남에 대해 증언해줄 분이나 관계를 알만한 또 다른 사람이 있는지.
"그때는 광주의 실상을 밖에 나가 얘기할 수 없었다. 아버지도 불안했을 거다. 평소에도 술을 좀 드셨는데 그 일 이후 엄청 술을 드셨다. 광주 일로 쇼크를 받으신 거다. 피터 아저씨와 광주에 가서 소신이 발동해 진실을 반드시 알려야 한다는 마음에 어렵게 김포공항까지 모셨는데 마음 편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 후 어떤 일이 있었냐면 YTN 현소환 부국장님이 제게 전화한 적이 있다. 제가 아버지 사업을 받아서 할 때 그 분을 태우러 갔거든. 돌아가셨다고 하니 좋은 분이 가셨다고 애석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분이 아버지가 어떤 일을 했는지 잘 아실 거다."
- 아버님은 영어를 독학하신 건가? 고향은 어디신지.
"북한이다. 함경도 원산 신풍리 출신이다. 초등학교 4학년 나이 정도 때에 남한에 내려오셨다. 아버지가 2대 독자다. 본래 가족도 다 오기로 했는데 아버지 먼저 부산에 계신 고모네로 갔다. 그 이후 가족이 탄 배가 오다가 뒤집혀서 돌아가셨다고 하더라. 고모님 슬하에서 아버지가 자랐다. 당시 말로는 아버지 머리가 상당히 좋았다. 초등학교 때 전교 2등을 한 적이 없었다. 1등이었단 얘기지. 영어뿐 아니라 독일 사람과 거래한다면 독어를 공부하시는 분이었다. 인사하는 정도가 아니라 조금씩은 대화할 정도까지 공부하실 정도였다."
▲ 일본기자들과 함께 한 김사복씨일본 기자들과 함께 경주로 추정되는 곳에서 찍은 사진. 맨 오른쪽이 김사복씨. ⓒ 권우성
▲ 내 아버지가 '김사복'자신의 아버지가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독일방송사 힌츠 페터 기자를 태우고 광주로 갔던 김사복씨(영화 택시운전사 실제주인공)라고 밝힌 김승필씨가 아버지 관련 사진 여러장을 공개했다. 이 사진에는 김사복씨의 단독사진과 함께 외신기자들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호텔 텍시를 운행하며 외신기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도 포함되어 있다. ⓒ 권우성
가능한 반론들
앞서 언급한대로 정황 증거뿐이기에 반론 역시 가능하다. 이를 테면 김승필씨가 주장하는 1박2일 간의 동행 말고 힌츠페터의 저서 < I Bow My Head > 등에 따르면 김사복은 5월 23일 한 차례 더 힌츠페터와 함께 광주에 간 것으로 돼있다. 충분히 들 만한 의문들을 김승필씨에게 던졌다.
- 어떤 일정인지 미리 알았고, 관계 당국과 계약하는 방식이었다면 힌츠페터 역시 법무부 등에 자신의 입국 사실을 알려야 했지만 그는 국내 상황을 알고 몰래 입국했다.
"그거는 다른 분들이 소개한 거겠지. 히로세 기자가 소개한 걸로 알고 있다. 동생이 그렇게 알고 있더라. 일반적으로 그렇게 소개를 해서 일정을 알고 수행을 한다."
- 당시 본인은 22살이라고 하셨는데 그리고 바로 군 입대했나? 아버지는 84년 12월에 돌아가셨는데 그 사이 자세히 들을 기회가 없었던 건지.
"그러고 얼마 안 있다가 군대에 갔지. 입대 전까지 많은 얘길 하셨다. (아까 말씀드린) 외국 언론사 지사에서 피터 아저씨의 영상도 봤고."
- 그날의 사건 이후 37년이 지났다. 1980년대야 그걸 숨기며 살아야 했겠지만 2003년 힌츠페터가 직접 김사복이란 이름을 언급했고 기사도 나왔다.
"우린 전혀 몰랐다. 피터 아저씨가 언론인 상 받을 때 아버지 이름 언급했다는 사실만 알았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을리 없지. 당시 보도 전혀 몰랐다. 알게 된 동기가 나와 아들, 아들 친구가 <택시운전사>라는 영화를 보러 갈 때 할아버지와 비슷한 영화가 있다고 간 거다. 근데 첫 장면에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피터 아저씨 실제 인터뷰에 아버지 이름을 대는데 그야 말로 제가 아버지께 들었던 저먼TV, 광주 이야기가 떠올라 그 순간 얼음이 된 거다.
하루 정도 아무 일도 못하고 어떻게 내가 처신할까 생각했다. 당시엔 광주의 진실을 제대로 말할 상황 아니었지만 지금도 사실 알고 있는데 당당하게 못 말한다? 마음이 편하지 않더라. 그래서 그날 저녁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아버지 이름이 가명도 아니고. 나라를 위해 하신 분께 예의도 아닌 거 같고."
- 8월 초에 트위터에 가입했는데 이런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한 건가?
"그렇지. 원래 트위터를 안 하는데."
▲ 해당 사진은 김승필씨가 김사복씨의 사업을 잇기 위해 파레스호텔과 법적 분쟁을 하던 소송장이다. 고소 취지에 김승필씨 아버지 김사복의 이름이 나온다. ⓒ 파레스호텔
- 영화 제작 전에도 몰랐나. 여러 기사를 통해 김사복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게 알려졌는데 제작사에 연락한다든가 하는 일이 없었는지.
"몰랐다. 그게 어찌 된 거냐면 아버지와 유사한 영화라고만 생각한 거다. 아예 픽션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들과 아들 친구를 데리고 가면서 그렇게 말한 거다. 근데 영화 속 이야기가 아버지가 한 말과 유사하고 피터 아저씨 인터뷰까지 나오니까 멍할 수밖에."
- 영화와는 별개로 5‧18 기념 재단 등과 접촉해서 아버지 명예회복을 위해 움직일 생각은 그 동안 안 하셨는지.
"아니지. 아버지는 소시민이었잖나. 그냥 가족을 먹여 살리려 열심히 일하신 분이다. 영어 좀 하시고 인품이 있으시니 피터 아저씨를 만난 거지. 그러다 광주 실상 직접 보고 놀라셨고, 해외에 꼭 알려야 한다는 소신 생긴 거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피터 아저씨를 (공항까지) 모신 거고. 이제야 국민들이 아버지 소신을 칭찬하는 상황이 된 거지.우린 그냥 일상 업무로 생각한 거다. 피터 아저씨 취재를 위해 같이 간 거고."
- 그러니까 아버진 했어야 할 일을 하신 건데 영화를 보고 나서 알려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건가.
"그렇다. 아버진 제겐 늘 영웅이셨지. 우릴 인격적으로 키우셨고, 소신 있게 일하셨다. 늘 정의로우셨고. 제 마음의 영웅이었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칭찬해주시니 제 마음의 영웅이 밖으로 나온 느낌이라고 (트위터에) 쓴 거지."
- 당시 힌츠페터 영상이 공개된 이후 당국에선 여러 방면으로 조사했을 법하다. 아버님이 외국 언론사와 관계가 있는 분이셨다면 충분히 조사대상이 됐을 텐데.
"그 이후 아버님이 조사받았는지 그건 얘기가 없으셔서 잘 모른다. 아버지가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실 분이 아니다. 조사를 받았는데 나중에 우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런 식으로 가족에게 근심을 주실 분은 아니었다."
- 80년 5월 23일에 힌츠페터 기자는 김사복씨와 한 번 더 광주에 갔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에 대해 들은 건 없나.
"그랬다고 하더라. 근데 그건 잘 모르겠다. 20일에 다녀오신 것도 동생이 차가 찌그러진 걸 보고 물어봐서 안 거니까. 그 이후에 또 다녀오신 지는 잘 몰랐다."
진짜 진실은?
현재 김승필씨는 섬유업체 대표를 지내다가 의료미용업에 종사 중이다. 그의 아버지가 택시운전을 했던 김사복이라는 건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물증의 부족으로 그 김사복씨가 힌츠페터와 함께 한 동일인지는 여전히 빈틈이 존재한다. 과연 현재 제작사 입장은 어떨까. 제작사는 기획 단계부터 힌츠페터를 직접 만났고, 5‧18 기념재단 등과 함께 김사복이란 이름을 가진 택시 기사를 알아보는 등 여러 노력을 해오고 있다.
제작사는 김승필씨가 보낸 아버지 사진을 확인했고, 고 힌츠페터 부인에게도 여러 사진을 받아 비교 대조했다.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씨가 김사복씨의 얼굴을 모르기에 입국할 때 남편과 동양인이 함께 한 사진을 모두 가져와 넘겼다고 한다. 비교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제작사는 김승필씨에게 "보내주신 아버지 사진과 비슷한 동양인이 부인의 사진에 없으니 직접 오셔서 확인하시라"는 말을 전했고, 24일 김승필씨가 직접 방문할 예정이다.
23일 <택시운전사> 제작사 더 램프의 박은경 대표는 <오마이뉴스>에 "직접 확인하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린 게 맞다"며 "우리 역시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리려 한다"고 알렸다. 김승필씨의 요청을 전제로 제작사 측은 최대한 사실 확인을 위해 노력한다는 입장이다. 김승필씨는 "제작사에서 영화 제작 전 애초에 김사복을 찾는다라는 공고를 냈으면 가장 좋았겠지만 지금으로선 제작사가 적극적으로 나설 입장은 아닌 것 같다"며 "지금까지 노력에 감사하고, 제가 결국 뛰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트위터에 글을 쓴 후 몇몇 댓글에 상처를 받고 있다"며 아픔을 토로하기도 했다.
▲ 내 아버지가 '김사복'자신의 아버지가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독일방송사 힌츠 페터 기자를 태우고 광주로 갔던 김사복씨(영화 택시운전사 실제주인공)라고 밝힌 김승필씨가 아버지 관련 사진 여러장을 공개했다. ⓒ 권우성
<오마이뉴스>는 김사복씨와 위르겐 힌츠페터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를 취재 중이다. 성인지 이름인지 확인 불가한 NHK 히로세 기자는 외신기자클럽과 NHK 관계자를 중심으로 행방을 추적했다. 외신기자클럽 측은 "2000년 이전 명단은 전산화가 안 돼 있어 당장 확인이 불가하다"며 "히로시라는 이름은 여럿 있는데 히로세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입장을 23일 전해왔다. 복수의 NHK 관계자 역시 "히로세 혹은 히로시라는 이름의 인원이 1980년대 한국 특파원으로 일한 기록은 없다"고 알려왔다. 다만 한 관계자는 "광주항쟁 같은 중대한 사건인 경우 출장자로 한국에 왔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 명단은 현재로선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1980년 당시 활약했고 현재 외신기자클럽 소속이면서 <연합뉴스> 고문인 신호철 기자는 "30명 내지 40명 정도의 외신 기자가 그때 한국에 있었는데 직접 연락하고 지내진 않았지만 히로세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 UPI통신 소속으로 광주항쟁을 취재한 정태호 기자는 <오마이뉴스>에 "사진을 보지 않는 이상 히로세라는 사람의 존재 여부를 확신할 순 없지만 (김사복씨가 근무하던 호텔인) 파리스 호텔은 알고 있다"며 "나 역시 롯데호텔 측에 요청해 기사와 함께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취재했다"고 전했다.
한편 김승필씨가 언급한 '파리스 호텔'의 정식 명칭은 파레스 호텔이다. 파레스 호텔 측 관계자는 "당시 김사복씨가 이 호텔에서 택시를 운행한 게 맞지만 개인이 지입식으로 한 거라 정확한 기록이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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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필씨의 부친 김사복씨가 힌츠페터 기자와 동행했던 '김사복씨'인지 아닌지에 대한 정보를 갖고 계신 분은 제보 부탁드립니다.(philsunny@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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