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변호사의 지적 "법원은 사실 기울어진 운동장"
[인터뷰] 제3회 노란봉투법 모의법정 경연대회 국회의장상 고혁준·서범진·이수열씨
▲ 제3회 노란봉투법 모의법정 변론현장 ⓒ 윤지선
지난 19일 서울대학교 우천법학관에서 시민단체 손잡고와 서울대학교 공익인권법센터, 민주노총, 한국노총이 공동주최한 '제3회 노란봉투법 모의법정 경연대회' 본선과 시상식이 열렸다. 본 대회는 '노동법'을 주제로 한 모의법정으로, '노동법'이 필수과목이 아닌 로스쿨 재학생들에게 '노동법'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높이기 위해 시작된 모의법정이다.
그러다보니 본 대회를 준비하는 예비법조인들에게 경연 주제인 '부당노동행위', 쟁의행위에 대한 '손배가압류'는 생소하면서도 그만큼 어려운 주제다. 특히 예선과 본선을 합쳐 약 4개월에 거처 진행되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방학 기간을 그대로 경연을 준비하는데 내줘야 한다.
그럼에도 모의법정 경연대회는 예비법조인들의 호응을 얻었다. 15개팀이 출전해, 8개팀이 본선에서 치열하게 경합을 벌였다. 이 치열한 경연에서 재판부로부터 "판례를 뒤집고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려 노력했다"는 평을 받고 최우수상인 '국회의장상'을 수상한 팀을 만났다.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고혁준, 서범진, 이수열씨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제3회 노란봉투법 모의법정 국회의장상 수상자 충남대로스쿨 고혁준, 서범진, 이수열(왼쪽부터) ⓒ 윤지선
- 제3회 노란봉투법 모의법정 경연대회, 경연을 치른 소감은 어떤가?
서범진 : "실제 현실에서 접할 수 있는 사건들을 다룰 수 있어서 좋았다."
이수열 : "좀 긴장을 많이 했다. 긴장하지 않았는데 경연 들어가서 상대편 얼굴을 보니 긴장이 되더라(웃음). 이번 모의법정 경연 주제가 '노조파괴 시나리오'였는데, 유성기업 관련 기사들을 보면서 내가 이 사건의 변론을 맡으면 어떨까 상상한 적이 있다. 변호사가 되기 전 로스쿨 과정에서 이런 모의법정을 통해 경험을 해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무척 의미 있게 느껴졌다."
- '노동법' 관련 사안에 원래 관심이 있었나?
이수열 : "대학교 1학년 때 재능교육 사업장 집회를 자주 다녔다. 제가 그때 처음으로 손해배상 가압류를 접했다. 집회 텐트가 무너진다는 소식을 듣고 도와주러 갔다가 당시 학습지 노조위원장의 집을 방문했었다. 집 안에 빨간 딱지가 붙어있기에 제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손배가압류를 당했다'고 하더라.
그날 저는 지부장에게 치킨을 얻어먹었는데, '이 치킨을 얻어먹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도 아닌 타인이 치킨 하나 조차도 걱정해야 하는 그런 상황' 이것이 손배가압류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 서범진, 이수열, 고혁준 씨 원고 변론 모습 ⓒ 윤지선
- 본 경연대회에서 본선 1, 2차로 나누어 원고와 피고 모두를 변론해야 한다. 각기 다른 입장을 변론한 소감은 어떤가?
고혁준 : "원고 측 변론을 하다보니까 사측에도 이입이 되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되더라. 한편으로는 이게 실전이라면 어땠을까, 사측에서는 상대적으로 돈이 많기 때문에 좀 더 유능한 변호사를 쓰는 경우가 많을 텐데 그러면 얼마나 더 정교한 논리로 노동자 측을 압박을 해올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실전에서는 정말 수준이 다른 싸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이 일을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원피고를 모두 변론한다는 것이 그 자체로 좋은 경험이었다."
서범진 : "원·피고 입장을 둘 다 경험하면서 저희뿐 아니라 많은 팀들이 느꼈을텐데 정말로 법이 공정하지만은 않다고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원고의 입장에서 변호를 할 때는 손쉽다. 이미 판례가 다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모든 반박에 대해 '판례가 그렇다'고 답변하면 끝난다.
그에 반해 피고의 경우에는 상당히 불리하다. 법원에서 피고가 승소하기 위해서는 많은 논리와 증명이 필요하다. 최종적으로 법조문이 노조에 유리하지 않은 경우들도 많다. 저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원고와 피고 사이에 서로 주장하는 것들에 대한 부담감이 다른 이유는 뭘까, 그게 어쩌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숙제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이 숙제에 대해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고민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수열 : "저 같은 경우는 피고 측에 많이 이입해 있는데, 그러다보니까 원고 변론에 들어가서 재판부 질문을 받으니 머릿속이 새하얘지더라(웃음). 원고 변론하면서 피고 측 변론을 듣다보면 '맞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으니까 마인드 콘트롤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원고 측 변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화가 많이 났다. 이 청구는 부당한 청구인데 나는 이 법리 위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막막함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피고 변론을 준비하면서 법리를 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서범진 : "법원이 사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생각한다. 법이 지향하는 가치는 '정의'라고 하지만 조항이라든가 판례를 살펴보면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불리한 사례가 많다고 본다. 경연에서 피고 변론은 거의 판례에 '도전'하는 과정이었다.
변론 과정이 법원 안에서 벌어지는 토론과 논쟁이기 때문에 법원 밖에서 이야기하는 소위 '사회적 타당성'만 가지고 이야기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어려웠지만 재미있는 과정이었다고 생각을 하고, 이런 어려운 과정을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 서범진 씨가 모의법정에서 피고 최후변론을 진행하고 있다. ⓒ 윤지선
- 모의법정 경연과정에 실제 비슷한 사건의 피고인 노동자들이 방청을 했다. 지면을 빌어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이수열 : "저는 항상 이런 사건들이 있으면 '우리 이겨낼 수 있다' '싸워나갈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편이었는데, 사실 그게 개인들에게 너무나 가혹할 수 있잖나. 특히 파업을 진행하려고 하는 사람들한테 '파업을 해보자'고 제안을 하는 것 자체가 결과적으로 나락으로 떠밀게 되는 수도 있는 거라서 (파업을 권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래도 나서지 않으면 우리는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저도 함께 하겠다'는 이야기밖에 없는 것 같다."
서범진 : "저는 대회 진행할 때 노동자들이 노조 조끼를 입고 방청하시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다. 당사자들에게는 법정에서의 한 순간 한 순간이 진지하고 삶의 한 부분인데, 우리가 모의법정의 형식으로 '역할놀이'처럼 공부의 한 수단으로 한다는 게 좋지 않게 느껴지진 않을까.
그런데 오늘 참석하신 분들께서 오히려 저희가 변론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힘을 받는다'는 취지로 이야기해주고, 또 앞으로 '많이 기대하겠다'고 격려를 해주시니까 매우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저도 학생운동을 하다가 쫓겨나서 600일 정도 천막농성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손해배상을 당한 건 아니지만 그 과정이 힘들었다. 최전선에서 싸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에 대해서 경험으로 느낀 시간이었다. 그래서 싸우고 계신 분들에게 쉽게 어떤 말을 하기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항상 옳다고 믿고 싸우시는 분들에게는 '지지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고혁준 : "저의 경우는 1년 넘게 100여 명 정도 규모의 생산직 노동자가 있는 공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여러 가지 안 좋은 일들을 겪었는데, 노동법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으니까 '노조라도 만들어볼까' 했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현실적으로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권리를 주장하는데 노동자 개인이 느끼는 압박감은 엄청나다. 그런데 밖으로 나가서 외칠 수 있기까지는 얼마나 큰 벽이 존재하는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저는 싸우고 계시는 분들에게 제 수준에서 드릴 말씀이 많이 없지만, 우리가 같이 한 목표를 향해 가는 입장으로서 미약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저도 함께 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함께 살아가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 제3회 노란봉투법 모의법정 경연대회 본선에 참가한 8팀과 재판부 단체사진 ⓒ 윤지선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수열 : "저는 많은 로스쿨 학생들이 현실에서 실무적으로 겪어야 하는 일들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저같은 경우도 이번 경연대회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변론과정에서 발견한 저의 단점들을 몰랐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경험의 기회와 참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학생들이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참여율이 높아졌으면 한다. 특히 노란봉투법 모의법정 경연대회 같은 대회(웃음)."
서범진 : "로스쿨 교육이 도입됐던 취지와 다르게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런 사람들이 로스쿨 들어와 법을 공부하고 사회에 기여하라는 게 로스쿨 제도의 취지인데, 실제로는 자격고사를 통과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사법고시 논란도 나오면서 뭔가 변호사가 된다는 게 여전히 법으로 뭘 한다기보다는 '계급상승'의 사다리처럼 되면서 로스쿨 공부의 의미가 죽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 외우고, 학원 강의와 학교수업이 같아지고. 실제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법을 공부할 것인가 자문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대회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나가서 할 일이 어떤 것들인지 구체적으로 미리 체험해볼 수 있고, 더 깊이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앞으로 함께 배우고, 협력하고, 선배 법조인분들과 활동가 분들에게 배우면서 이 사회를 더욱 낫게, 노동이 존중 받는 세상으로 만들어 나가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고혁준 : "노동변호사를 생각하고 있는 여러 전국 로스쿨 원우님들께 꼭 참여해서 '내가 과연 노동변호사 할 수 있을까'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길 바란다. 이 대회가 계속되는 동안 꼭 한 번씩 경험해보시면 좋겠다.
저는 피고 변론하면서 마지막에 울컥했다. 이번 대회에 함께 참여한 동료분들이 물론 법정에서는 상대팀으로 싸우고 있었지만, 나중 가서는 같이 만나게 될 동료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함께 참여한 원우분들에게 한 가지 소망을 말씀드리면, 앞으로 모두 변시 붙으시기를 간절히 기원드리며 우리가 법정에서, 입법의 장소에서 혹은 투쟁의 장소에서 다시 동료로서 만나 뵐 수 있기를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본 인터뷰는 제3회 노란봉투법 모의법정 경연대회 자료집에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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