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라디오 열혈청취자인 나, MBC 라디오 '올스톱' 응원한다

[주장] 사상 처음의 일이지만, 믿음이 있기에 기다릴 수 있다

등록|2017.09.01 10:27 수정|2017.09.01 14:36
[기사 보강: 1일 오전 11시 25분]

"미쓰라의 야간개장 마칠 시간인데요, 오늘은 전해드릴 이야기가 있어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소속 MBC 라디오국 PD들이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8월 28일 월요일 5시부터 제작거부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미쓰라의 야간개장은 내일 방송부터 BGM 방송으로 대체되고요, 이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저 역시 이 자리를 당분간 비우게 되었습니다. 

야간개장 청취자 분들의 넓은 양해 부탁드리고요, 오늘의 끝 곡은 John Lennon의 'Imagine'입니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건강히 지내시고요, 그 때 되어서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 <미쓰라의 야간개장> 8월 27일 방송 말미

에픽하이의 미쓰라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MBC FM4U가 DJ와 PD, 작가가 없는 방송이 되었다. 방송마다 각 DJ가 설명했듯이, 전국언론노동조합 소속 라디오 PD들이 파업함에 따라 MBC FM4U는 당분간 배철수부터 이동진, 정유미, 강타 등 DJ의 멘트가 없게 된다. 대신 음악만 송출되는 DMB 전용 채널인 Channel M 방송을 틀어준다.

표준FM 역시 <그건 이렇습니다 김완태입니다>부터 <김동환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까지의 방송, 그리고 정각에 송출되는 뉴스를 제외하고는 Channel M 방송을 수중계한다. 파업으로 인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송출되지 않았던 적은 꽤 있었지만, 한 채널이 모두 정지되기는 처음이다. 그만큼 이번 파업의 규모가 크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 18일을 기해 아나운서들이 제작거부에 들어가면서 '밤도깨비 시네필'들을 책임졌던 <이주연의 영화음악>, '주제에 따라 이어지는 선곡'이라는 특이한 콘셉트로 고정 팬들이 있었던 <비포 선라이즈 허일후입니다> 등 6개의 방송이 중단되었는데, 28일부터는 연예인, 방송인 등이 진행하는 방송들도 중단되었다.

'채널 올 스톱', 방송사상 초유의 일

MBC 라디오 PD 제작거부 돌입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 다 하지 못해”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소속 라디오국 PD 조합원들이 지난 8월 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 사옥 노조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장겸 사장, 백종문 부사장,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제작 거부를 결의했다. ⓒ 유성호


이런 일련의 흐름으로 MBC FM4U는 24시간 DJ의 목소리와 방송이 흐르는 방송에서, 간단한 사과 문안을 빼고는 내내 음악이 흐르는 방송으로 바뀌었다.

표준FM 역시 마찬가지이다. 저녁 8시부터 오전 6시까지 모든 방송이 중단되면서 '김기덕, 이문세의 계보를 잇던' <별이 빛나는 밤에>는 물론 부활 김태원의 '까칠한 진행'이 인기를 얻었던 원더풀 라디오 김태원입니다>도 채널M의 수중계로 대체되었다. MBC뿐만 아니라, 국내의 여느 방송에서도 지금껏 없었던 초유의 사태이다.

자연히 28일 아침 'mini 댓글 창'에는 '홍디', '지디'(굿모닝FM, 오늘 아침을 진행하는 노홍철, 정지영의 별명)가 어디 갔냐는 댓글이 속출했다. 상황에 대해 안 청취자들은 '왜 파업을 했냐'며 힐난하는 반응도 있었지만, '이해한다', '잘 해결되어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대다수 보였다.

이전의 MBC를 다시 생각해본다

가까운 이전, 2000~2010년대의 MBC 라디오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MBC FM4U와 MBC 표준FM이 청취율 1위를 점령했던 시기의 MBC 라디오 말이다. 시사에서는 손석희의 날카로우면서도 진중한 <시선집중>을 듣고 나서 밤에는 김미화 표 따뜻하고 친근한 시사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들었고,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의 시원한 시사 풍자에 빵 터졌던 그때 말이다.

모든 방송이 외부에서의 개입 없이 PD와 DJ, 작가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루어지고,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혀도 괜찮았던 방송이었다. 당시 조영남 씨가 <지금은 라디오 시대>에서 소위 '친일선언'을 했을 때도 하차하지 않았고, 윤도현 씨 역시 '털보' 김어준 총수와 <두시의 데이트>에서 수위를 넘나드는 '드립'을 오갔으니 말이다.

지금의 MBC로 다시 돌아온다. <시선집중>은 시사프로그램답지 않은 '불통의 상징'이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1980년대 당시 군부 정권을 풍자하는 유일한 프로그램이었던 <싱글벙글쇼> 역시 예전의 통렬한 풍자만 못하다는 반응이 많이 들려온다.

'며칠은 배캠, 골디 못 들어도 괜찮아요, 잘 돌아오세요'

YTN의 공정 보도를 요구했다가 해직된 노종면, 조승호, 현덕수 기자가 최근 YTN에 복귀했다는 소식을 접한 많은 이들이 '다음은 MBC 차례라고들' 하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에 부응해 MBC 촬영 PD들부터, 아나운서, 그리고 이번의 라디오 PD까지 차례대로 파업하게 되었다. 28일 0시를 기해 KBS의 기자들도 수백 명이 파업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대다수 시민들이 '라디오' 하면 MBC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파업의 파급력은 지금까지의 그것과 비할 바가 아니다. 실제로 방송이 중단되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기 무섭게 '노홍철의 굿모닝FM', 'MBC 라디오'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시민들의 반응 역시 비아냥 대신 칭찬과 감사로 가득 찼다.

그런 응원을 업고 이대로 쭉 나가면 된다는 조언을 애청자로서 감히 해본다. 다시 듣기 서비스도 잘 되어있기 때문에 못 들었던 방송을 다시 듣기 하면 파업이 어느새 끝나있지 않을까. '홍디'가 클로징 때마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하세요!'라고 외치듯 PD들이 하고 싶은 코너와 프로그램을 이끌고, DJ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방송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진짜 MBC 라디오가 아닐까.

돌아올 부조에서 '진짜' 포스트 손석희, '제2의 재미라' 나올 수 있길

돌아올 MBC 라디오에 부탁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돌아올 MBC 라디오가 그만큼 절치부심하여, 새로운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새로운 '라디오스타'를 배출하기를 바란다. '배신 남매'가 아닌 새로운 시사 왕자가 탄생하고, '재미라'의 최양락과 배칠수처럼 성대모사와 허를 찌르는 블랙 유머로 사람들의 막힌 속을 뚫어주는 '사이다' 프로그램이 나오면 좋겠다.

내가 처음 청취했고, 경험해봤던 '방송'은 MBC 라디오였다. 어릴 적 버스에서 들었던 지상렬과 노사연이 진행했던 <두시만세>가 가장 처음 기억하는 라디오 방송이었고, 초등학생 때 조영남과 최유라의 '입씨름'이 좋아 <지라시>를 듣기 위해 집에 쏜살같이 달려왔었다. 우연한 기회에 지금은 사라진 <심야라디오 DJ를 부탁해>를 통해 한 시간을 빌려 방송을 했던 적도 있다. 그때의 설레면서도 떨렸던 기분은 이루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방송 구성원들이 외압과 경영진의 폭거에 밀려 자신의 말을 하기 전에 '이 말을 하면 잘릴까' 하고 떠는 대신, 매일매일 부조 안 마이크와 콘솔 앞에서 '오늘은 어떤 방송을 할 지, 어떤 곡을 내보낼 지' 설렘에 매일매일 떨었으면 한다. MBC 라디오가 파업을 언제 끝내도 상관없다. 다만, 꼭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오기를 바란다.

다만 8월 31일을 기해 9시부터 오후 2시, 오후 4시부터 오후 8시까지의 방송이 재개되며 <이루마의 골든디스크> <배철수의 음악캠프> <오후의 발견 김현철입니다> 등 간판 프로그램이 정상방영되었으나, 일부 코너가 파행운영 되었다. 문제는 투입된 인력이 한정적인데다가, 긴급 투입된 인력 역시 4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가 이들 방송도 언제 다시 중단될 지 모르는 상황이다.
덧붙이는 글 정말 더, 개인적으로 MBC 라디오에 하나 더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2기 때 처럼' <이주연의 영화음악>이 다시 폐지되는 일 없이 계속 '아네뜨'와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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