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들, 그 400년 '한'

도쿄 고려박물관 '망향과 동화 사이에서 조선피로인의 생활과 문화' 전시회

등록|2017.08.26 14:24 수정|2017.08.26 14:24
'조선침략을 반성하는 모임' 이 만든 도쿄 고려박물관에서는 지난 5월 3일부터 8월 27일까지 아주 특별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일본에서 유명한 아리타도예 400년(有田焼 400年)을 맞이하여 열리는 이번 전시회의 정식 이름은 <망향과 동화의 사이에서 조선피로인의 생활과 문화(望郷と同化のはざまで朝鮮被虜人の生活と文化)>이다.

조선도공들의 전시회망향과 동화의 사이에서 라는 제목으로 조선도공들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 이윤옥


조선도공들의 전시회 2 도공들이 일본에 건너가 정착하기 까지의 내용을 알기 쉽게 판넬화 작업하여 전시 중이다. ⓒ 이윤옥


  
임진왜란은 도자기 침략전쟁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수많은 조선 도공들이 일본 땅에 강제로 끌려갔다. 이들이 아리타 일대에 자리잡은 지 올해로 400년, 일본 최고의 도예 문화를 꽃 피운 이들의 이야기는 더러 한국의 언론이나 방송에서 소개된 바 있다.

하지만 일본 도예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킨 조선도공들의 뒷이야기는 구체적으로 소개된 바 없다. 이번 고려박물관 전시에서는 조선도공들이 아리타 일대에서 뿌리내리게 되기까지의 역사와 그간의 과정을 400년이란 시간의 흐름에 맞춰 이해하기 쉽게 전시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다. 조선도공들이 일본 땅을 밟기까지의 전후사정, 피로인(被虜人: 피로인이란 원래 조선 문헌에서 사용한 역사용어로 특히 '임진왜란 중 일본군에 의해 납치된 민간인 전쟁포로의 뜻)으로 잡혀온 과정과 그 과정에서 여성과 어린이들이 어떻게 지냈나 등의 생활상. 그리고 아리타 도자기의 창업과 발전, 망향과 동화의 과정, 현재의 모습 등을 망라한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와타나베 야스코 와타나베 야스코 간사가 전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 이윤옥


조선도공들에 관한 이모조선도공들에 관한 이모저모, 참을 인(忍)자가 인상적이다. ⓒ 이윤옥


이 내용을 고려박물관에서는 전시 판넬과 더불어 38쪽 짜리 책으로 만들었다. <망향과 동화의 사이에서 조선피로인의 생활과 문화(望郷と同化のはざまで 朝鮮被虜人の生活と文化)>(2017.5.3.일 발행, 600엔)는 일본어로 되어 있는데 전시 내용의 흐름대로 편집되어 있어 전시장을 찾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전시되어 있는 흐름을 살펴보면, 1장에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단순한 사건 위주가 아닌 당시 조선 내에서의 의병들의 저항과 연행된 조선도공들이 아리타 각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2장에서는 연행된 이들의 궤적을 찾아 조선인 집단 마을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이들 마을에서 이뤄지고 있는 조상들에 대한 제사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3장에서는 당시 기독교이던 조선인들의 박해 내용이 소개되고 있으며 4장에서는 아리타 도자기의 창업과 발전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특히 조선인 도공의 후예로 인간국보(무형문화재)가 된 이들을 소개하고 있다.

조선도공 관련 일본어 책자조선도공 관련 일본어 책자 ⓒ 이윤옥


조선도공들에 관한 책자와 도자기 일부 조선도공들에 관한 책자와 도자기 일부 ⓒ 이윤옥


5장에서는 아리타에 자리잡은 후손들이 고향의 한가위 등을 기리며 살아가는 모습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모두 27장의 커다란 판넬로 제작되어 전시 중이다. 사진을 곁들인 판넬에는 400년 역사 속의 조선 도공에 대한 '모든 것'이 응축되어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조선도공들의 이야기는 그간 많은 일본인 학자들의 책과 논문으로 발표되었다. 고려박물관에서는 이러한 논문과 책자를 <망향과 동화 사이에서 조선피로인의 생활과 문화> 뒤에 부록으로 소개하고 있어 연구자 또는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보다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부록에는 1936년에 나온 나카지마(中島活氣) 씨의 <비젠도자고사>를 시작으로 2014년에 나온 쿠로시마(久留島浩) 씨 외3인이 지은 <사츠마ㆍ조선도공촌의 400년(薩摩ㆍ朝鮮陶工村の四百年)>까지, 단행본과 논문을 포함하여 모두 84건을 소개하고 있어 가히 일본의 조선도공사를 총망라한 소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고려박물관에서 심혈을 기울인 점이 눈에 띈다.

"한 달에 한번 산에 오르는 날이다. 일본에 건너온 고향 사람들이 모두 나와 근처의 고려산에 올라 고국을 그리며 노래와 춤을 추고 저녁까지 실컷 노는 것이다. 꽃이 없는 꽃놀이지만 고향 동지들에게 꽃은 필요 없다. 고국과 이어지는 하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아이고 우리의 고향이여, 아이고 아름다운 산천초목이여, 아이고 훌륭한 우리들의 조상이여! 이 몸은 이국의 흙이 되리라. 아이고 당신을 그리는 마음은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어라."

관람객들 기자가 찾아간 날은 꽤 많은 사람들이 전시장을 찾아 조선도공에 관심을 보였다. ⓒ 이윤옥


이는 무라다 키요코(村田喜代子)씨의 <백년가약(百年佳約)>(講談社, 2004)에 나오는 이야기다. <백년가약>은 임진왜란 때 아리타 지역에 도공으로 건너가 조선도공 마을에서 여성리더로 활약한 여성 백파선(百婆仙)과 그의 남편인 종전(宗傳)을 소재로 일본인 작가가 쓴 소설이다.

무라다씨는 이 소설 <백년가약>으로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다카와상, 가와바다야스나리상, 요미우리문학상을 받았다. 이러한 이야기도 이번 전시관련 책자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우리 집에도 아리타 도자기 몇 점이 있습니다만 임진왜란 때 조선의 도공들이 강제연행되어 아리타에 정착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올해가 400년이라니 놀랍습니다. 고향을 잊지 않고 아리타에서 대대로 명장으로 이름을 남긴 분들이 존경스럽습니다." 

전시장을 찾은 도쿄 메구로에 살고 있는 주부 나카무라 노리코(45살)씨의 말이다.

조선인의 몸으로 일본 아리타(有田)로 건너가 4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조국을 잊지 않고 일본 최고의 도예의 맥을 이어가는 조선도공의 후예들. 그 400년 한(恨)의 이야기를 실타래를 풀듯 전시함으로써 일본 땅의 도자역사를 새롭게 되돌아 보게하는 이번 전시는 그래서 더욱 뜻깊다.

기자가 찾은 전시장에서는 고려박물관 조선여성사연구회 간사인 와타나베 야스코(渡辺泰子) 씨가 친절한 안내를 해주었다. 

* 전시 안내 *
<망향과 동화 사이에서 조선피로인의 생활과 문화(望郷と同化のはざまで朝鮮被虜人の生活と文化)>전은 8월27까지 열리며, 이어서 8월 30일부터  <조선요리점, 산업위안소의 조선여성들> 전이 열린다.

* 고려박물관 가는 길
JR야마노테선(JR山手線)을 타고 신오쿠보(新大久保)에서 내려(출구는 한곳임) 출구로 나와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한인 상점이 나란히 있는 거리가 나온다. 이 거리 다음 블록이 쇼쿠안도리(職安通り, 직업안정소가 있는 거리)로 그곳에 고려박물관이 있다. 한국 수퍼 '광장' 건너편에 있다.

일본 도쿄 고려박물관은 어떤 곳인가?
"일본과 코리아(남한과 북한을 함께 부르는 말)의 역사,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며 풍신수길의 두 번에 걸친 침략과 근대 식민지 지배의 과오를 반성하고 재일 코리안의 생활과 권리 확립, 그리고 재일 코리안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전하기 위해 고려박물관을 설립하였다"고 고려박물관 사람들은 설립 취지를 말하고 있다. 고려박물관을 세운 사람들은 약 80%가 일본인이며 20여년을 준비하여 2009년 도쿄 신오쿠보에 문을 열었다. 박물관 운영은 순수회원들의 회비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으로 운영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