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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키즈존'은 있는데, '노 아재존'은 왜 없나

알바하며 만난 아기와 무례한 '아재들'... 난 아기보다 '아재'가 더 성가시다

등록|2017.09.03 20:00 수정|2017.09.03 20:00

▲ 노 키즈 존에 대한 뉴스 보도 ⓒ SBS 영상 갈무리


며칠 전의 일이다. 점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식당의 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우리말을 못하는 듯한 손님이 문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어눌한 영어로 무언가를 물어봤다. '들어가도 될까요?'하고. 뒤이어 다섯 살 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의 얼굴이 보인다. 어머니의 다리 뒤에 숨어 얼굴을 반쯤 보이고 있다. 손님은 아이의 팔을 끌어당겨 내 앞에 세우고는 '정말, 정말 조용한 아이예요'라는 말을 연거푸 덧붙였다.

나는 손짓 발짓을 써가며 '죄송하지만, 다른 손님들이 불편해하셔서요. 미안해요. 미안해요'라고 대답하고는 문을 굳게 닫았다. 사장님이 시킨 메뉴얼대로다. 일주일에 몇 번은 일어나는 일인데, 어김없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창문 너머로 어깨를 으쓱하며 다른 곳을 향하는 외국인 부부가 보인다. 부끄러웠다.

나는 '노 키즈존' 식당에서 일한다.

맛집 사장, '노 키즈존'을 결심하다

근 8개월째 일하고 있는 식당은 '○○대학교 맛집'이라고 검색하면 금방 찾아볼 수 있는, 소위 잘 나가는 맛집이다. 가게가 잘 되면 잘 될수록 어떻게 하면 테이블 회전 속도를 더 빠르게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손님을 더 앉게 하고 돈을 더 벌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게 되기 마련이다.

우리 식당의 사장은 보다 괜찮은 장사를 위해 손님을 쳐내기로 했다. 다시 말하자면, 손님을 가려 받을 여유가 생긴 것이다. 사장은 여느 맛집, 인기 카페들이 그러했듯 식당 입구에 '노 키즈존'이라는 문구를 붙여넣기로 결심했다.

생각해보면 좀 섬뜩한 일이다. 7세 미만의 아이를 동반한 손님에게는 음식을 팔지 않아도 좋다는 논리가 생긴다는 것 말이다. 아이를 싫어하는 손님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그로 인해 식당에 좋지 않은 이미지가 박혀버린다는 뭐 그런 논리인데, 이해가 안 되는 지점들이 있다.

아이와 엄마에겐 혹독, 무례한 아재에겐 너그러운 사회

▲ 개그콘서트 '아재씨' 코너의 한 장면. 해당 장면은 본 기사와 관련이 없다. ⓒ 개그콘서트


아이만 성가신가? 결코 아니다. 맛집 서빙노동자로서 감히 말하건대, 진짜 성가신 손님이 누구냐고 하면 단연코 '아재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넥타이를 맨 남성 회사원들이 무리지어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한다. 아재들의 웃음소리는 아기 울음소리 정도야 가뿐히 묻어버리고, 그들의 무례함을 보고 있자면 아기 때문에 좌석을 인원수의 두 배로 차지하는 손님보다 얄밉고 성가시다.

반면 아이와 함께 온 어머니는 어떠한가? 어쩌다(딱하지 않냐며 사장을 설득한 끝에) 아이를 동반한 손님을 받게 되면, 혹여라도 주변에 폐를 끼칠까 조심 또 조심하는 모습이 보인다. 요즈음엔 이렇게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를 '맘충'이라 부른다던데, 충격적이고 가슴이 아프다.

아이를 동반한 여성을 '맘충'이라는 이름으로 프레임화 시키는 동안, '아재'들은 누가 혼내주었는가? 상대를 무안하게 하는 개그를 할 때에나 핀잔을 주었지, 갑질을 일삼으며 다양한 층위의 약자들을 난처하게 하는 특성에 집중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 사회는 왜 혼내야 할 존재는 혼내지 못하면서 사려 깊은 엄마 손님, 그리고 함께 돌보아야 할 어린이 손님을 의문없이 배척하게 되었을까?

엄마와 아이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나

손님이 유난히 없는 주말이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아기를 안고 온 손님을 받은 적이 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커플이 "여기 노 키즈존 아니냐"며 속닥거리더니 따가운 눈초리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아기의 칭얼거림이 시작되었다.

몇분 뒤 사장이 조용히 나를 불러내 "다음부턴 손님이 없어도 '저런' 손님은 받지 말라"고 말했다. 입가심용으로 세 모금 정도만 나오는 미소된장국에 급하게 밥을 말아 후루룩 마시고는 황급히 자리를 뜨는 그녀를 보며 하루종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이의 아버지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부터 시작해 아기 엄마는 왜 그토록 눈치보고 쩔쩔매며 외출을 감행해야 하는가까지,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그때 그 손님은 다시 외출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할까.

▲ 맘충이라는 말에서 온전히 벗어나 당당하고 행복한 엄마가 있을 수 있기는 한 건가. ⓒ pixabay


'노 키즈존'을 결심하게 된 사장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사장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장사는 봉사가 아니다"인데, 그렇기에 별수 없이 '쳐내야 하는' 손님의 유형이 생기는 것이다.

손님이 몰려오는 시간, 테이블 회전이 빠른 시간대에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아이가 어릴수록 가지고 다녀야 할 짐은 많아진다) 손님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아이의 울음이 언제 터질 줄 모르니, 식사를 하는 사람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긴장하게 되기 마련이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 외식을 하러 나왔는데 그 귀중한 시간을 방해받지 않고 싶어하는 고객들의 마음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그렇다면 아이와 엄마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 아이를 안고 갖가지 짐을 둘러매면서 간만에 외출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에 '노 키즈존' 업소를 피해 다니는 과정까지 끼워 넣어야 하는가?

'노 아재존'은 왜 없나

알바노동자를 난처하게 하고 주변 손님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이들은, 통제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키즈'가 아니라 인지능력이 충분한 '아재'다. 알바노동자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툭툭 던지는 것은 기본. "역시 여대 앞이라 공기가 다르군" 같은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듣는다는 것은 말하기도 입 아프다.

메뉴판에 붉은 글씨로 조리 시간이 꽤 걸린다고 명시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음식 좀 빨리 달라고 재촉한다. 나름의 이유들로 세워둔 가게의 원칙들을 '한 번만' 어겨보고 싶어한다. 아재들의 만행을 늘어놓아 보라면 끝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

'노 키즈존'보다 '노 아재존'이 간절하다. 잠정적으로 시끄럽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출입하지 못하게 할 거면, 주변을 둘러볼 줄 모르고 갑질만 쏟아내는 아재도 좀 걸러서 받자. 애꿎은 엄마들만 '맘충'이라 이름 붙여 가두고 조이지 말자. 우리는 쳐내야 할, 아니 '사회적으로 혼내야 할' 손님의 유형을 다시금 고심할 필요가 있다. 엄마들과 아이들이 아니라, 아재들이 그 주인공이다.

아재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토로하는 아재들에게 고한다. 아이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엄마들도 한데 묶여 배척당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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