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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일본에 가고 싶다

[주목할 만한 신간] 조경국 지음,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

등록|2017.09.04 10:43 수정|2017.09.04 11:08
샐러리맨의 일상. 수요일이나 목요일 오후가 되면 과도한 업무가 주는 스트레스와 중년의 체력이 가진 한계 탓에 짜증이 밀려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며칠 전 오후 우편물 하나를 받고는 한참 동안 기분이 좋아져 스트레스와 짜증을 잊을 수 있었다.

내 이름이 적혀 도착한 우편물은 후배가 보낸 책이었다. 같은 직장의 동료로 근무하다가 이제는 경북 포항과 경남 진주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 진주 '소소책방'의 책방지기로 살아가고 있는 조경국. 그가 보낸 책을 펼치자 못난 선배를 향한 따스한 메시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메시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선배 뵌지가 무척 오래 되었습니다. 별고 없으신지요. 저는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습니다..."

선현들은 "문장이 곧 그 사람"이라고 말했다. 조경국이 자신의 책 여백에 적어 보내온 짤막한 편지(?)가 무심하게 살아온 나를 흔들었다. 게다가 이토록 단아한 필체라니. 상허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사랑하는 그가 여러 책을 필사해온 사람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조경국이 전한 감동을 되갚을 방법이라곤 그의 책을 읽고 조악한 감상을 말해주는 것 외에는 없었다. 해서, 나는 아래와 같은 책 리뷰를 썼다. 그리고는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노작(勞作)에 붙이는 졸고가 부끄럽다"고. 아래는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을 읽은 감상이다.

'책'과 '오토바이'를 매개로 한 여행자의 글쓰기

▲ 조경국의 신간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 ⓒ 유유

경남 진주에 자리한 '소소책방'을 운영하는 조경국(43)은 보편의 상식을 뛰어넘는 사람이다. 인터넷신문 기자, 교육·연수원 관리사원, 사진 서적 편집자 등 적지 않은 직업을 거친 그는 몇 해 전 고향으로 내려가 헌책방을 차렸다.

서울을 떠나기 전 몇몇 지인들에게는 "간난신고의 타향살이를 끝내고 이제 생활을 이어갈 최소한의 돈만 벌며 읽고 쓰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의 목표를 밝히기도 했다. 부러운 일이었다.

조경국은 문장이 좋은 사람이다. '글은 사람을 닮는다'고 했던가. 세상의 빛과 그늘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의 문장은 따스하고 부드러워서 그의 품성까지 어렵지 않게 짐작하게 해준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이 하나 있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조경국은 '오토바이 마니아'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오토바이에 연료통 위에 올라 엎드린 채 바람을 가르던 기억을 40년째 간직하고 있는 것. 그는 스스로도 "헌책방 주인이 되지 않았다면 오토바이 수리공으로 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또한 겸양이 몸에 배인 언사다.

바로 이 조경국이 '책'과 '오토바이'를 매개로 오래 기억될 책 하나를 출간했다.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이 바로 그것.

책 이야기만이 아닌 '세상'과 '인간' 담아

▲ '책'과 '오토바이'를 매개로 한 여행자의 글쓰기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 ⓒ 조경국 제공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가 오토바이를 타고 남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하면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세계에 관한 신뢰를 자신의 몸 안에 체화시켰다면, 조경국은 자신의 애마 '로시(BMW F650GS TWIN)'와 함께 일본을 종횡하며 책방과 그 책방을 지키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기록이 꼼꼼하고 친절하다. 저자의 말을 잠시 인용하자.

"이 책에는 지난 2015년 9월부터 10월 사이 약 한 달간 오토바이로 일본을 여행했던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이 짤막한 문장만으론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의 진면목을 설명할 수 없다. 책 속엔 조경국이 삶을 대하는 태도, 책을 향한 그의 가없는 사랑, 일본 각처에 산재한 특별한 서점들에 대한 꼼꼼한 정보, 여기에 어지간한 시인이나 소설가 못지않은 미적인 서술까지가 고스란히 담겼다. 책의 마지막. 조경국이 인용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문장이 가슴을 친다.

"길 떠나지 않는 이에게 세상은 한 페이지 읽다만 책일 뿐이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여행을 꿈꾸게 하고, 먼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겐 책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이 우리 곁에 방금 도착했다. 읽은 후에 훌쩍 배낭을 꾸리거나, 중고 오토바이 판매점을 기웃거릴 사람이 적지 않을 듯하다.

그리고, 하나 더. 문장만이 아니라 필체도 좋은 조경국은 <필사의 기초>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다들 짐작했겠지만 그가 최고의 영화로 꼽는 것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조경국의 머리맡엔 <죽지 않고 모터사이클 타는 법>이 얌전하게 누워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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