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유배지에서 받은 조롱... 모욕감에 퇴근하다 통곡도
[어게인 MBC③] 5년간 취재에서 배제된 김수진 기자 "시민들 편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2012년 170일 파업. 그 후 5년이 지났습니다. 이 시간에도 MBC 구성원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쫓겨나고, 좌천당하고, 해직당하고, 징계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저항했습니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MBC를,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지켜보면서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이제 그만 '엠X신'이라는 오명을 끝내고, 다시 우리들의 마봉춘, 만나면 좋은 친구 MBC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시 싸움을 시작하는 MBC 구성원들의 글을 싣습니다. 바깥에서 다 알지 못했던 MBC 담벼락 안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세 번째 글은 2012년 파업 이후 사측으로부터 '잉여인력'으로 취급되어 경인지사, 드라마마케팅부,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구로) 등 유배지를 전전하며 5년 동안 단 한 번도 취재현장으로 복귀하지 못한 MBC 김수진 기자입니다.
문득 지난 5년을 되돌아본다. 2012년 겨울에 시작해 여름에 끝을 본, 가장 길었던 총파업은 성공하지 못했다. 조합원들은 흩어졌다. 노조 집행부에겐 해고와 정직 등 징계가 내려졌고, 적극가담자로 분류된 조합원들은 대기발령을 받거나 신천교육대로 쫓겨났다. 회사는 집요하게 직원들을 솎아냈다.
핀셋으로 뽑아내듯 정확하게 파업에 참여했던 조합원들을 집어내 인사발령을 냈다. 경인지사나 용인 드라미아 등 방송을 하지 않는 부서로 기자와 피디, 아나운서들을 하나둘 발령내다 더 이상 보낼 곳이 없어지자 회사는 2014년 가을, 파업 참여자들을 보낼 부서를 아예 새로 만들었다.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구로), 신사업개발센터(여의도), 미래방송연구소 등 화려한 이름의 수용소를 세우고 수십명을 쫓아냈다. 아나운서와 기자, PD를 사회공헌실, 마케팅부, 심의실, 사업국으로 보내기도 했다. 이 인사에서 백여 명의 조합원들이 본업을 빼앗기고 부당전보됐다. 백여 명을 내쫓았지만 인사발령의 이유는 없었다. 2012년 파업에 참여했다는 사실 이외에는.
2012년 파업에 대한 보복
개인적으로 나는 이때 드라마본부 드라마마케팅부로 전출됐다. 기자로 입사해 10년 넘게 기자로 일했던 내 인사카드에 적힌 직종은 나에게 한마디 통보도 없이 드라마PD로 바뀌었다. 드라마본부로 첫 출근한 날 인사를 하자 한 보직자는 "셀럽이 나타났네"라며 조롱했다. 파업에 앞장서 사진 등이 찍혔던 것을 비꼰 것이었다. 예산 한 푼 없었지만 드라마마케팅부의 부서장은 나에게 "기자 경험을 살려 드라마 홍보를 하라"고 했다. 드라마 홍보는 그러나 기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암담했다. 너무 화가 나 퇴근길에 신호대기를 하다 통곡을 하는 날도 있었다. 다른 부문으로 쫓겨간 사람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드라마 홍보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영업을 뛰거나 시설관리를 해야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다수는 업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닌,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일들을 부여받았다. 이어 진행된 인사평가에서는 대부분의 부당전보자들에게 최하등급인 R과 N이 부여됐다. 한때는 동료였던 어떤 부장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며 "어쩔 수 없었다"고 최하등급 부여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연속해서 R을 받은 사람에게는 "상사에게 인정 받는 법" "대인관계 향상 스킬" 등의 교육을 받게 하며 모욕감을 줬다.
요행히 보도국에 남아 자기 이름으로 뉴스를 전하던 기자들도 결국엔 대부분 마이크를 빼앗겼다. 인터넷 뉴스와 편집부서, 내근부서 등 방송 리포트를 하지 않는 다양한 부서로 쫓겨났다. 뉴스의 방향에 대해 조금이라도 불만을 드러내거나 사측의 눈 밖에 나면 바로 방출됐다. 경력기자와 사소한 언쟁을 하거나, 인사를 하지 않으면 조직 분위기를 해친다며 인사발령을 냈다. 주요 부서에는 조합원이 거의 남지 않았다. 보도국은 비정상적으로 조용해 졌고, 비정상적으로 박근혜 정부에 우호적인 뉴스가 매일 <뉴스데스크>를 채웠다. 그런 뉴스 때문인지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는 아무런 법의 제재도 받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김장겸 보도본부장은 사장의 자리에 올랐다.
김장겸 사장은 촛불집회로 시민의 정치개혁 열망이 뜨거웠던 올해 초 사장이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던 바로 그날, 탄핵 발표가 나기 30분 전 모두가 텔레비전 화면에 눈이 쏠려 있던 그 때, 김장겸 사장은 또 한 번 핀셋 인사발령을 냈다. 탄핵다큐를 제작하던 PD 등 기자와 PD를 구로에 사무실이 있는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로 쫓아낸 것이다.
유배지의 고통... 모욕감은 나눈다고 작아지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세상이 바뀌는 분위기 속에 김장겸 사장의 인사폭이 매우 소심해졌다는 것이었다. 수십 명 씩 쫓아내던 전과는 달리 십여 명이 방출됐다. 나도 이 인사발령에 포함돼 드라마본부에서 구로로 쫓겨났다. 부서장은 매일 아침 사무실을 살피며 근태 체크를 했다. 아무런 업무도 주어지지 않았다. 구로 사무실의 유배 동료들은 서로 의지했지만, 모욕감은 나눈다고 작아지지 않았다. 우리는 이 부당한 행위를 더 이상 참고 견디지 않기로 했다.
마침내 총파업에 돌입해 유배지 폐쇄 선언을 하고 상암동으로 돌아오던 날, 나와 같은 처지의 유배자들이 수백명 조합원들 앞에 섰다. 울지 않겠다고 했지만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지난 5년을 요약한 영상물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리에 앉아 있던 동료들이 우리를 박수로 환영하며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에 남아있든 밖으로 내쫓겼든 우리는 다 같은 피해자였던 것이다.
이제 이 싸움을 승리로 끝내야 한다. 한 국장급 간부는 총파업 출정식을 앞둔 4일 오전에 "싸움이 길어질수록 불리한 것은 노동조합"이라고 말했다. 김장겸 사장과 간부들은 파업이 길어지면 월급을 못 받는 조합원들이 이탈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듯하다. 끝까지 자리를 뺏기지 않겠다며 어색한 투쟁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MBC 조합원들은 5년 전 170일을 싸운 경험이 있다. 이에 더해 지난 겨울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우리 편에 서 있다. MBC는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 김수진 기자는 2001년 12월 MBC에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 경제부, 정치부 등을 거쳤으며, 아침뉴스 <뉴스투데이>와 마감뉴스 <뉴스24> 앵커로 일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시 싸움을 시작하는 MBC 구성원들의 글을 싣습니다. 바깥에서 다 알지 못했던 MBC 담벼락 안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세 번째 글은 2012년 파업 이후 사측으로부터 '잉여인력'으로 취급되어 경인지사, 드라마마케팅부,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구로) 등 유배지를 전전하며 5년 동안 단 한 번도 취재현장으로 복귀하지 못한 MBC 김수진 기자입니다.
▲ 2012년 파업 당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김재철 사장, 권재홍 보도본부장, 이진숙 기획조정본부장 아웃!"이 적힌 피켓을 들고, 해고된 박성호 기자회장, 이용마 노조홍보국장 등 동료기자 복직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벌였던 김수진 기자. ⓒ 권우성
문득 지난 5년을 되돌아본다. 2012년 겨울에 시작해 여름에 끝을 본, 가장 길었던 총파업은 성공하지 못했다. 조합원들은 흩어졌다. 노조 집행부에겐 해고와 정직 등 징계가 내려졌고, 적극가담자로 분류된 조합원들은 대기발령을 받거나 신천교육대로 쫓겨났다. 회사는 집요하게 직원들을 솎아냈다.
핀셋으로 뽑아내듯 정확하게 파업에 참여했던 조합원들을 집어내 인사발령을 냈다. 경인지사나 용인 드라미아 등 방송을 하지 않는 부서로 기자와 피디, 아나운서들을 하나둘 발령내다 더 이상 보낼 곳이 없어지자 회사는 2014년 가을, 파업 참여자들을 보낼 부서를 아예 새로 만들었다.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구로), 신사업개발센터(여의도), 미래방송연구소 등 화려한 이름의 수용소를 세우고 수십명을 쫓아냈다. 아나운서와 기자, PD를 사회공헌실, 마케팅부, 심의실, 사업국으로 보내기도 했다. 이 인사에서 백여 명의 조합원들이 본업을 빼앗기고 부당전보됐다. 백여 명을 내쫓았지만 인사발령의 이유는 없었다. 2012년 파업에 참여했다는 사실 이외에는.
2012년 파업에 대한 보복
개인적으로 나는 이때 드라마본부 드라마마케팅부로 전출됐다. 기자로 입사해 10년 넘게 기자로 일했던 내 인사카드에 적힌 직종은 나에게 한마디 통보도 없이 드라마PD로 바뀌었다. 드라마본부로 첫 출근한 날 인사를 하자 한 보직자는 "셀럽이 나타났네"라며 조롱했다. 파업에 앞장서 사진 등이 찍혔던 것을 비꼰 것이었다. 예산 한 푼 없었지만 드라마마케팅부의 부서장은 나에게 "기자 경험을 살려 드라마 홍보를 하라"고 했다. 드라마 홍보는 그러나 기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암담했다. 너무 화가 나 퇴근길에 신호대기를 하다 통곡을 하는 날도 있었다. 다른 부문으로 쫓겨간 사람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드라마 홍보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영업을 뛰거나 시설관리를 해야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다수는 업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닌,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일들을 부여받았다. 이어 진행된 인사평가에서는 대부분의 부당전보자들에게 최하등급인 R과 N이 부여됐다. 한때는 동료였던 어떤 부장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며 "어쩔 수 없었다"고 최하등급 부여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연속해서 R을 받은 사람에게는 "상사에게 인정 받는 법" "대인관계 향상 스킬" 등의 교육을 받게 하며 모욕감을 줬다.
▲ 박경추 아나운서 - 김수진 기자, 'MBC블랙리스트' 탄압 사례 발표MBC 박경추 아나운서와 김수진 기자가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언론노조 MBC본부 사무실에서 열린 ‘MBC블랙리스트 진짜 배후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해임 촉구 기자회견’에서 노조 활동을 이유로 자신이 겪은 업무배제 등 피해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 권우성
요행히 보도국에 남아 자기 이름으로 뉴스를 전하던 기자들도 결국엔 대부분 마이크를 빼앗겼다. 인터넷 뉴스와 편집부서, 내근부서 등 방송 리포트를 하지 않는 다양한 부서로 쫓겨났다. 뉴스의 방향에 대해 조금이라도 불만을 드러내거나 사측의 눈 밖에 나면 바로 방출됐다. 경력기자와 사소한 언쟁을 하거나, 인사를 하지 않으면 조직 분위기를 해친다며 인사발령을 냈다. 주요 부서에는 조합원이 거의 남지 않았다. 보도국은 비정상적으로 조용해 졌고, 비정상적으로 박근혜 정부에 우호적인 뉴스가 매일 <뉴스데스크>를 채웠다. 그런 뉴스 때문인지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는 아무런 법의 제재도 받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김장겸 보도본부장은 사장의 자리에 올랐다.
김장겸 사장은 촛불집회로 시민의 정치개혁 열망이 뜨거웠던 올해 초 사장이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던 바로 그날, 탄핵 발표가 나기 30분 전 모두가 텔레비전 화면에 눈이 쏠려 있던 그 때, 김장겸 사장은 또 한 번 핀셋 인사발령을 냈다. 탄핵다큐를 제작하던 PD 등 기자와 PD를 구로에 사무실이 있는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로 쫓아낸 것이다.
▲ MBC상암 사옥 집결 '총파업 승리' 다짐‘김장겸 체제 퇴장, 공영방송 MBC 재건을 위한 언론노조 MBC본부 합동출정식’이 4일 오후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 광장에서 전국에서 모인 2천여명의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 ⓒ 권우성
유배지의 고통... 모욕감은 나눈다고 작아지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세상이 바뀌는 분위기 속에 김장겸 사장의 인사폭이 매우 소심해졌다는 것이었다. 수십 명 씩 쫓아내던 전과는 달리 십여 명이 방출됐다. 나도 이 인사발령에 포함돼 드라마본부에서 구로로 쫓겨났다. 부서장은 매일 아침 사무실을 살피며 근태 체크를 했다. 아무런 업무도 주어지지 않았다. 구로 사무실의 유배 동료들은 서로 의지했지만, 모욕감은 나눈다고 작아지지 않았다. 우리는 이 부당한 행위를 더 이상 참고 견디지 않기로 했다.
마침내 총파업에 돌입해 유배지 폐쇄 선언을 하고 상암동으로 돌아오던 날, 나와 같은 처지의 유배자들이 수백명 조합원들 앞에 섰다. 울지 않겠다고 했지만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지난 5년을 요약한 영상물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리에 앉아 있던 동료들이 우리를 박수로 환영하며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에 남아있든 밖으로 내쫓겼든 우리는 다 같은 피해자였던 것이다.
이제 이 싸움을 승리로 끝내야 한다. 한 국장급 간부는 총파업 출정식을 앞둔 4일 오전에 "싸움이 길어질수록 불리한 것은 노동조합"이라고 말했다. 김장겸 사장과 간부들은 파업이 길어지면 월급을 못 받는 조합원들이 이탈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듯하다. 끝까지 자리를 뺏기지 않겠다며 어색한 투쟁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MBC 조합원들은 5년 전 170일을 싸운 경험이 있다. 이에 더해 지난 겨울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우리 편에 서 있다. MBC는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 MBC 김수진 기자 ⓒ 김수진
* 김수진 기자는 2001년 12월 MBC에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 경제부, 정치부 등을 거쳤으며, 아침뉴스 <뉴스투데이>와 마감뉴스 <뉴스24> 앵커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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