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만든 구엘공원에서 헨젤과 그레텔을 만나다
[2017 스페인 여행 이야기, 여섯]
▲ 장소, 갈 길을 알려주는 구엘 공원안내도구엘 공원내에 게시된 공원안내도 ⓒ 유명숙
오늘의 여정은 인연을 따라가는 시간으로부터 시작한다. 사람의 인연은 '겁'이라는 시간을 지나야만 만날 수 있는 관계이다. 겁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겁'의 시간이란 '거리로 한산하여 둘레가 40리나 되는 커다란 원통에 성경과 불경에서 가장 작다는 것으로 표현되는 겨자씨를 가득 담아서 100리에 하나씩 꺼내서 다 없어지는 시간'이라고 한다. 그 숱한 시간을 지나야 만들어지는 인연의 관계로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와 후안 구엘이 만났다.
'건축의 시인'으로 불리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는 누구보다 자신을 지지하는 최대의 후원자 구엘을 만났다. 그리고 그의 후원으로 탄생한 작품들이 바로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 명소가 되었다. 요사이 흔히 스페인하면 가우디를 연상하고 또 가우디하면 스페인을 떠오르게 된다고 말한다. 스페인에 방문하면 누구나 가우디를, 아닌 가우디의 작품을 보고 싶어 갈증을 느낀다.
▲ 구엘공원의 앞 층계세게 각국의 사람들 구엘공원에서 가우디를 만나다. ⓒ 유명숙
바르셀로나 시내 외곽으로 가우디의 작품을 만나러 간다. 그곳은 까딸루냐 광장에서 20분 거리에 있다. 구엘 공원이다. 공원은 전원도시를 꿈꾸며 만들었다는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았다. 만일 공원에 방문객이 없었다면 너무나도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올 만했다. 아름다웠다.
공원이정표 앞에 섰다. 길을 잃었다. 한참을 길 잃은 자리에서 서성거린다. 남쪽으로 북쪽으로 동쪽으로 서쪽으로 어느 곳으로 가야할지 방향감각을 상실했다. 그러다 친절하게 갈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 앞에 선다. 이정표, 사전적 의미는 '주로 도로 상에서 어느 곳까지의 거리 및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 또는 '어떤 일이나 목적의 기준'이라고 정의된다. 허나 이것은 약간의 오류를 불러내는 말이다. 현재 자신이 길을 잃은 그 지점, 시점에서는 '위치한 원점에서 도로 원표에서부터의 거리를 적어서 길가에 세운 푯말'이라는 뜻의 '도로이정표'가 더 합당한 의미가 될 것 같다.
▲ 구엘공원의 이정표방향을 제시해 주는 이정표 ⓒ 유명숙
▲ 가우디 작품이 주차표시로주차표시 조형으로 변한 가우디 작품 ⓒ 유명숙
이정표를 보며 '언어는 존재의 집'으로 유명한 하이데거를 불러냈다. 그의 존재적 사유는 하나의 별을 향해 가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철학적 도정인 그의 <이정표>에서 사유는 존재론의 도정이라고 피력한다. 도정에서 마주하는 존재가 발현되는 장소, 그 존재적 장소로의 귀환을 가우디와 구엘은 구엘공원으로 재현해내었다.
처음 구엘을 만난 것은 공원안내도이다. 안내도의 명시된 장소 곳곳에서 가우디와 구엘의 인연이 되어 세월의 흔적으로 탄생한 작품들이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낯선 이방인에게 세심하게 장소를 찾아가는 길을 안내한다. 그 손짓을 따라 한 눈에 자신이 찾아가고자 하는 장소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발을 옮긴다.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있다. 주차구역 표시조형물이다. '아니 이렇게도 주차구역을 표시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에 후후 웃음이 나왔다. 비행기, 구름, 파란하늘 그리고 가운데 검은 원 안에 도마뱀 문양이 바탕을 채운다. 도마뱀 문양 속에 빛나는 주차번호 4가 있다. 이 그림은 마치 방문객에게 '이제부터 동화 속으로 들어오실 준비를 하세요'하는 듯하다.
태양이 바로 내리쬐는 긴 의자에 앉는다. 의자는 도마뱀 문양으로 만들어졌다. 의자에 앉아 손으로 색채의 문양을 따라가 본다. 허리를 펴고 가슴을 펴고 의자에 등을 기댄다. 앉은 자세에서 정확히 허리 위치를 따라 허리받이가 한 줄로 길게 죽 이어져 있다. 인체공학적 관점으로 작품을 설계한 그의 섬세함이 드러난다.
▲ 많은 기둥으로 이루어진 다주방의 뜬 태양다주방의 태양 ⓒ 유명숙
▲ 허리를 받쳐주는 도마뱀 문양의 긴 의자 긴 의자가 한 줄로 이어져 있다. ⓒ 유명숙
다시 상상력의 기초한 그를 느낄 수 있었던 곳은 hypostyle Room이다. hypostyle Room을 많은 기둥으로 이루어진 방(다주방)으로 번역한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가우디가 형상화한 태양을 보인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너도나도 태양을 가슴에 담는다. 아마 모두의 열망일 것이다. 슬며시 자신도 태양을 마음에 품는다. 천장에 있는 선명한 태양이 '아무것도 걱정 말아라' 어디든지 다 비출 것이며, 어디든지 빛을 발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태양을 사진에 담는다. 이 태양처럼 어디를 가도 빛나기를 바라는 간절함 마음을 담으며….
▲ 헨젤과 크레텔을 아시나요구엘공원의 재현된 헨젤과 크레텔 ⓒ 유명숙
발길은 어느새 동화 속의 시간으로 이끄는 장소로 향한다. 어떤 곳보다도 가장 존재적 순간으로 만들어 주는 장소다. 어릴 적에 만났던 헨젤과 그레텔이 안내자가 되어 길을 안내할 것이다. 헨젤과 그레텔은 독일의 언어학자이자 작가인 그림형제(Brüder Grimm)가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집>(Kinder-und Hausmärchen)에 수록한 <헨젤과 그레텔>의 주인공이다. 지금 그들이 <헨젤과 그레텔>의 배경이 그대로 재현된 장소, 그림 같은 과자집 앞에 서 있다.
가우디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탄생한 헨젤과 그레텔은 어떤 모습일까 너무 궁금했었다. 궁금증은 곧 해결되었다. 그저 상상으로만 생각했던 헨젤과 그레텔이 너무 배가 고파 한 입 한 입 떼어 먹을 수밖에 없었다던 동화 속의 과자집을 실제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허기진 채로 숲 속을 헤매던 중 남매가 과자집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아마 지금 자신이 느끼는 환희의 감정과 비슷했을까 생각해봤다. 오래 전 이야기를 읽고 느꼈던 교훈,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헤쳐 나가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우디의 헨젤과 그레텔을 보며 되새긴다.
뜨거운 햇살과 친구가 되어 산책한 구엘공원은 공원으로서만이 아니라 가우디 작품의 보고로 느껴졌다. 마치 특유의 색을 가진 카멜레온이 되어 가우디가 도마뱀 문양의 색으로 표현한 구엘공원의 모든 작품이 초목과 꽃들과 조화를 이루어 더욱 의미를 주었다. 가슴에 그들이 보여준 깊은 인연의 관계를 새기며 가우디를 더 더듬어보고자 다음 여정으로 발길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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