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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드라마에 이런 대화가? 날 두번 울린 <아르곤>

[TV리뷰] 개인적 취향과 사회적 메시지 모두 만족시킨, 이런 드라마 반갑다

등록|2017.09.13 17:31 수정|2017.09.13 17:35
12일 오후 방송된 tvN 월화드라마 <아르곤> 4회를 보면서 두 번 울컥했다. 먼저 존 덴버의 명곡 'Take me home country roads' 'Annie's song'이 극 중간에 흐르는 걸 듣고 울컥했다. 같은 회차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존 덴버의 곡이 나왔으니 작가가 그의 팬인 듯하다.

두 곡을 듣고 있자니 자연과 사랑을 노래했고, 우주비행사를 꿈꿨으나 1997년 비행기 사고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존 덴버가 문득 그리워진다. 대학 시절 유독 그의 곡을 좋아했고, 그래서 그가 남긴 음반은 모두 사들였다. 뿐만 아니라 악보를 구해 그의 곡을 열심히 연주하고 불렀다. 지금도 'Take me home country roads'와 'Annie's song'은 언제든 부를 수 있다.

두 번째는 HBC 메인앵커 최근화(이경영)와 탐사보도팀 '아르곤' 김백진(김주혁) 팀장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다. 최근화는 갑작스레이 은퇴를 선언한다. 이러자 사내에서는 정계입문 소문이 돈다. 최근화는 김백진을 불러 이 소문을 해명한다. 최근화는 김백진에게 자신이 대장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털어 놓는다. 그러면서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꺼낸다. 아래는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다.

▲ 12일 방송된 tvN 월화드라마 <아르곤>에서 메인앵커 최근화는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꺼내며 김백진에게 메인 앵커에 도전해보라고 독려한다. ⓒ tvN 화면갈무리


최근화 : 80년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때 사람들이 제일 먼저 어딜 불태웠는지 알지?

김백진 : 방송사죠
최근화 : 이대로 가면 방송국 또 불타는 날이 올지도 몰라. 뉴스가 권력의 대변인이 되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이 대목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최근화의 말처럼 80년 5월 거리로 쏟아져 나온 광주 시민들은 언론이 진실을 알려주기를 또 갈구했다. 그러나 언론은 이 같은 바람을 무참히 외면했다. 이에 성난 광주 시민들은 광주 MBC를 불태웠다. 이게 다 신문·방송이 권력자의 입을 자처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최근화는 광주 이야기를 끄집어내면서 김백진에게 메인 앵커에 도전하라고 독려한다. 그가 김백진을 독려하는 이유는 편향 보도, 조작 보도를 일삼은 HBC가 제 자리를 찾기를 간절히 염원했기 때문이었다. 마침 공영방송 KBS·MBC 노조는 방송정상화를 요구하며 파업 중이다. 최근화의 독려는 현 상황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그러나 언론정상화라는 당위적 과제보다 더 진한 감동을 준 대목은 따로 있다. 방송 정상화 필요성은 이 드라마에 앞서 다큐영화 <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공범자들>에 더 강하게 드러난다. 이에 비하면 <아르곤>은 다소 말랑말랑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보다 케이블 TV 드라마에 광주가 직접 거론됐다는 데에서 감격을 느낀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뉴스만 통제한 게 아니었다는 게 최근 드러나고 있다. 정권은 TV에 자주 등장하는 연예인이 시민으로서 현 시국에 대해 발언하는 것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고, 정부에 쓴 소리를 하는 영화감독과 배우를 대중의 시야에서 없애버렸다.

이 시절이 불과 1년 전이다. 그런데 지금은 80년 5월의 광주가 버젓이(?) 드라마 대사로 나오니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연화 짝으로 여성 팀장은 안 됐을까? 

그러나 몇 가지 설정은 아쉽다. 드라마에서 여성들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존재다. 심지어 막내작가는 아르곤을 호시탐탐 견제하는 유명호 보도국장(이승준)의 첩자 노릇을 한다. 이연화(천우희) 역시 팀장 김백진에겐 주변적 존재에 머무른다. 앞으로 극이 어떻게 흐를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리고 카리스마 넘치는 팀장은 남성(김백진)의 몫이다.

▲ tvN 월화드라마 <아르곤> ⓒ tvN


'아르곤'은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다. 탐사보도가 남성의 전유물일까? 3회차에서 이연화는 이재윤 검사가 복수의 여성들에게 접근한 정황을 취재한다. 이 과정에서 이 검사가 접근한 여성들이 모두 피의자 주변의 여성이었다는 점, 그리고 이들을 유혹하기 위해 같은 코스에서 밀회를 즐기고 같은 향수를 선물했다는 사실을 발견해 낸다. 모두 이연화가 섬세한 취재로 건져올린 진실들이다. 처음엔 이연화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김백진도 감탄을 금치 못한다.

편향보도를 일삼는 회사에 맞서 방송을 바로세우는 일이 꼭 남성 언론인에게 한정되어야 할까? 오히려 섬세함을 갖춘 여성 팀장을 이연화의 짝으로 내세웠으면 안 됐을까?

요사이 tvN 드라마의 기세가 대단하다. 주말엔 <명불허전>으로 눈길을 잡더니 월화엔 <아르곤>으로 또 다시 시청자를 감동시킨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아르곤>은 최근 진행 중인 공영방송 노조 파업과 맞물려 방송정상화 필요성을 일깨운다.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흐를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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