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번 버스' 무차별 사냥, 왜 이리 분노하는가
[주장] 증오의 에너지를 멈추고, 240번 버스를 잊자
'가해자'는 누구인가?
첫 날은 애를 잃어버릴 뻔한 엄마가 불쌍하다며 버스기사님을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로 만들며 해고해야 한다더니, 하루 만에 규정대로 운행한 기사님이 무슨 죄가 있냐며 엄마가 무개념 맘충이라 쌍욕을 한다.
단순히 정류장을 놓친 손님인 줄 알았다는 버스기사와 아이가 내리고 바로 소리치며 하차 요구를 했기 때문에 운전기사가 못 들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엄마의 상황 설명이 엇갈리고, 심지어 같은 버스를 타고 있던 목격자들 간의 진술도 상이하여 진실공방이 치열하다.
"아이 엄마가 CCTV 공개를 반대한다는데... 뭔가 찔리는 게 있겠지! 스마트폰 보다가 애 내리는 것도 못 본 거 아냐? 기사님이 사과하긴 왜 사과를 해! 자기 애 안보고 딴 짓을 한 무개념 엄마가 기사님께 정신적 피해보상을 해야지!"
분위기가 바뀌자 사건 당사자인 아이 엄마가 "마치 제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나온 데 정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며 CCTV 공개는 아이의 노출을 염려하여 거부한 것이고, 손에 짐이 있었기 때문에 딸에게 먼저 내리라고 했는데 아이가 내리고 문이 닫혀 문을 열어달라고 말했으나 기사분이 아무 말씀 않고 다음 정류장까지 가셨다고 반박에 나섰다. 그러나 이미 찍힌 맘충이란 낙인은 지워지기 힘들어 보인다.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어 기사님은 맘충에 의한 피해자가 되었고, 최초 SNS에 글을 작성한 목격자 또한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최초 글쓴이를 잡아 허위사실유포죄와 기사님의 명예훼손죄를 물어 처벌해야 한다는 거다. 아이 엄마와 글쓴이는 기사님께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으니 명백히 이 사건의 가해자라는 입장이다.
버스기사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글쓴이로 마녀사냥은 대상을 바꾸며 계속되고 있다.
최초 유포자는 자신의 글로 시작한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자 <버스 글쓴이입니다>라는 해명 글을 올렸다. 구구절절 죄송하다는 말인데 일부 옮기면 이렇다.
아이 나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글을 써서 죄송합니다.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아이 엄마에게만 감정이입을 해서 죄송합니다. 아이와 엄마가 만나지 못할까봐 걱정되어서 급하게 글을 올렸습니다. 기사님께 너무 죄송하고, 아이 어머님께도 너무 죄송합니다. 무엇보다 저의 미숙한 판단과 오해로 같이 동요했던 분들에게 너무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제가 꼭 기사님 따로 찾아뵙고 사과드리겠습니다.
나는 이 사건이 왜 이렇게 논란이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최초 유포자의 글이 얼마나 사실적인지, 글대로 아이가 사람들에 의해 떠밀려 내려갔는지, 스스로 폴짝 뛰어 내린 건지, 엄마가 울부짖었는지 아닌지, 기사님이 욕설을 퍼부었는지 아닌지, 아이 나이가 5살인지 7살인지, 엄마가 게임을 하고 있었는지 수다를 떨고 앉아 있었는지, 기사님은 상황 파악을 언제 정확히 했는지, 진실이 뭔지... 그게 왜 중요한지 도무지 모르겠다.
내가 처음 이 사건을 접했을 때는 최초 유포자의 글과 함께 아이 엄마가 곧바로 아이를 만났다는 글을 함께 봤기 때문에 "아이를 찾아서 다행이다!" 안도를 하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맘카페에는 황당하고 놀랍고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아찔한 사연들이 늘 쏟아지기 때문에 딱히 인상적인 사건이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 국민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갖더니 너도나도 대법관이 되어 상황을 분석하고 가해자를 판정하기 시작했다. 아니 애를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누가 죽거나 한 것도 아닌데 이게 왜 이렇게까지 이슈가 되었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비난의 대상을 순식간에 바꿔가면서 정의감에 불타올라 맹렬히 시비를 가리는 모습은 광기에 가까웠다. 이게 왜... 우리 사회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걸까? 왜 이렇게 사소한 이해심도 발휘하기 힘든 걸까? 도대체 왜 이렇게 쉽게 증오에 휩쓸려 분노하는 걸까? 왜 이렇게 폭력적인 걸까.
사냥을 멈추자
기사님도 사람이고, 엄마도 사람이고, 최초 유포자도 사람이다.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란 말이다. 이들이 국민 세금 수십조 원씩을 날려먹은 정치범도 아니고, 아무 이유 없이 길가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찌르는 묻지마 살인범도 아니고, 자기 회사 이익을 높이기 위해 유해물질이 있는 줄 알면서도 판매를 강행해 몇십 억씩 벌어들인 기업인도 아니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없이 지극히 평범하게 살면서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사는 사람들이다. 가끔은 아차 하는 실수도 하고, 가끔은 짜증도 내고, 가끔은 욕도 하고, 가끔은 진상도 부리면서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란 말이다.
처음 알려진 대로, 기사님이 엄마의 하차 요구를 '무시'했다고 치자. 그 이유만으로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고 해고 당해 마땅한가? 기사님에게도 흔치 않은 경우였을 거고 당황스러웠을 거다. 충분히 내려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자신이 교통법규 위반으로 징계 받을까 걱정되어 아이 엄마의 처절한 부탁을 거절했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정의를 실현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엄마가 아이의 손을 안 잡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벌레만도 못한 존재가 되었다. 이 지긋지긋한 맘충 딱지. 엄마의 사정은 아무도 모른다. 아마 살면서 이런 일이 처음일 거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고가 생긴다는 것은 익히 들어왔기에 잘 알고 있었겠지만 본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거다.
같은 엄마지만 이해가 안 된다거나, 자기 애 하나 간수 못 할거면 버스를 타지 말라거나, '맘충이 또 한 건 했다'며 기다렸다는 듯이 이기적인 무개념 엄마로 만들 일이 아니다. 누구나 살다보면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을 맞이하게 될 날이 있다. 아이와 함께라면 더더욱. 아이와 헤어져 홀로 버스에 남겨진 엄마의 심정이 어떨지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맘충이라는 비난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가?
최초 유포자가 냉정하게 판단하지 않고 감정에 치우쳐 글을 써서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했다. 현장 목격담을 자신이 보고 느낀 감정대로 전달한 게 그렇게도 죽을 죄인가? 객관적 글쓰기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은 말할 자유도 없는가? 자신의 일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그나마 이렇게 타인의 문제에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나는 확신한다. 허위사실과 과장이 지나친 글을 유포했다며 그녀를 강력 처벌해야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보다 그녀의 마음이 훨씬 더 따뜻하리라. 혐오와 무관심보다는 부족하게나마 공감하려는 모습이 훨씬 더 낫지 않은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기적이고, 실수도 하고, 과장된 감정이입도 하며 산다. 사소한 실수하나 용납 못하는 우리 사회는 얼마나 완벽한가? 당신이 원하는 세상은 타인이 어려움에 빠져 고통을 호소해도 못 본 척 외면하는 세상인가? 최초 글쓴이를 잡아서 공개처형을 하고나면 그 이후 우리 사회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사리분별 잘하는 사회로 거듭날까? 아니면 지금보다 더 무관심해지고 삭막해질까?
240번 버스 사건이 남긴 교훈
교통사고가 나거나 본인이 불이익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멈춰달라는 승객의 말은 무조건 따를 것? 아이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두 손을 꼭 맞잡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을 것? 공공장소에서 괜히 남의 일에 오지랖 부리다가는 구설수에 휘말려 고소당할 수도 있으니 사리판단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할 능력이 없거든 나대지 말고 신경끌 것?
사건의 가해자는 최초 유포자도, 엄마도, 버스기사도 아니다. 인간 대 인간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려는 마음 없이 평범한 누군가의 실수를 용납하기 힘든 사람들의 좁은 마음이 문제다. 각자 다른 잣대로 서로를 증오하고 있는 모두가 가해자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엄격하게 심판하며 처벌을 내리는 행위는 정의로운 행동이 아니다. 우리가 손가락질 하는 그 사람이 사실은 나처럼 평범한 사람임을 기억하자. 증오의 에너지를 거두자. 이제 그만 240번 버스는 잊자. 대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 기형적인 폭력성에 대해 240번씩 성찰해보자. 잘잘못을 가려 정의를 실현하는 일보다 따뜻한 이해와 공감이 필요한 시점이다.
▲ YTN 뉴스 화면 캡처 ⓒ YTN
첫 날은 애를 잃어버릴 뻔한 엄마가 불쌍하다며 버스기사님을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로 만들며 해고해야 한다더니, 하루 만에 규정대로 운행한 기사님이 무슨 죄가 있냐며 엄마가 무개념 맘충이라 쌍욕을 한다.
단순히 정류장을 놓친 손님인 줄 알았다는 버스기사와 아이가 내리고 바로 소리치며 하차 요구를 했기 때문에 운전기사가 못 들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엄마의 상황 설명이 엇갈리고, 심지어 같은 버스를 타고 있던 목격자들 간의 진술도 상이하여 진실공방이 치열하다.
"아이 엄마가 CCTV 공개를 반대한다는데... 뭔가 찔리는 게 있겠지! 스마트폰 보다가 애 내리는 것도 못 본 거 아냐? 기사님이 사과하긴 왜 사과를 해! 자기 애 안보고 딴 짓을 한 무개념 엄마가 기사님께 정신적 피해보상을 해야지!"
분위기가 바뀌자 사건 당사자인 아이 엄마가 "마치 제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나온 데 정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며 CCTV 공개는 아이의 노출을 염려하여 거부한 것이고, 손에 짐이 있었기 때문에 딸에게 먼저 내리라고 했는데 아이가 내리고 문이 닫혀 문을 열어달라고 말했으나 기사분이 아무 말씀 않고 다음 정류장까지 가셨다고 반박에 나섰다. 그러나 이미 찍힌 맘충이란 낙인은 지워지기 힘들어 보인다.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어 기사님은 맘충에 의한 피해자가 되었고, 최초 SNS에 글을 작성한 목격자 또한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최초 글쓴이를 잡아 허위사실유포죄와 기사님의 명예훼손죄를 물어 처벌해야 한다는 거다. 아이 엄마와 글쓴이는 기사님께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으니 명백히 이 사건의 가해자라는 입장이다.
버스기사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글쓴이로 마녀사냥은 대상을 바꾸며 계속되고 있다.
최초 유포자는 자신의 글로 시작한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자 <버스 글쓴이입니다>라는 해명 글을 올렸다. 구구절절 죄송하다는 말인데 일부 옮기면 이렇다.
아이 나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글을 써서 죄송합니다.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아이 엄마에게만 감정이입을 해서 죄송합니다. 아이와 엄마가 만나지 못할까봐 걱정되어서 급하게 글을 올렸습니다. 기사님께 너무 죄송하고, 아이 어머님께도 너무 죄송합니다. 무엇보다 저의 미숙한 판단과 오해로 같이 동요했던 분들에게 너무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제가 꼭 기사님 따로 찾아뵙고 사과드리겠습니다.
나는 이 사건이 왜 이렇게 논란이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최초 유포자의 글이 얼마나 사실적인지, 글대로 아이가 사람들에 의해 떠밀려 내려갔는지, 스스로 폴짝 뛰어 내린 건지, 엄마가 울부짖었는지 아닌지, 기사님이 욕설을 퍼부었는지 아닌지, 아이 나이가 5살인지 7살인지, 엄마가 게임을 하고 있었는지 수다를 떨고 앉아 있었는지, 기사님은 상황 파악을 언제 정확히 했는지, 진실이 뭔지... 그게 왜 중요한지 도무지 모르겠다.
내가 처음 이 사건을 접했을 때는 최초 유포자의 글과 함께 아이 엄마가 곧바로 아이를 만났다는 글을 함께 봤기 때문에 "아이를 찾아서 다행이다!" 안도를 하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맘카페에는 황당하고 놀랍고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아찔한 사연들이 늘 쏟아지기 때문에 딱히 인상적인 사건이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 국민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갖더니 너도나도 대법관이 되어 상황을 분석하고 가해자를 판정하기 시작했다. 아니 애를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누가 죽거나 한 것도 아닌데 이게 왜 이렇게까지 이슈가 되었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비난의 대상을 순식간에 바꿔가면서 정의감에 불타올라 맹렬히 시비를 가리는 모습은 광기에 가까웠다. 이게 왜... 우리 사회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걸까? 왜 이렇게 사소한 이해심도 발휘하기 힘든 걸까? 도대체 왜 이렇게 쉽게 증오에 휩쓸려 분노하는 걸까? 왜 이렇게 폭력적인 걸까.
사냥을 멈추자
▲ 240번 버스 최초 유포자를 잡아내자는 이들도 등장했다 ⓒ 화면캡처
기사님도 사람이고, 엄마도 사람이고, 최초 유포자도 사람이다.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란 말이다. 이들이 국민 세금 수십조 원씩을 날려먹은 정치범도 아니고, 아무 이유 없이 길가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찌르는 묻지마 살인범도 아니고, 자기 회사 이익을 높이기 위해 유해물질이 있는 줄 알면서도 판매를 강행해 몇십 억씩 벌어들인 기업인도 아니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없이 지극히 평범하게 살면서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사는 사람들이다. 가끔은 아차 하는 실수도 하고, 가끔은 짜증도 내고, 가끔은 욕도 하고, 가끔은 진상도 부리면서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란 말이다.
처음 알려진 대로, 기사님이 엄마의 하차 요구를 '무시'했다고 치자. 그 이유만으로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고 해고 당해 마땅한가? 기사님에게도 흔치 않은 경우였을 거고 당황스러웠을 거다. 충분히 내려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자신이 교통법규 위반으로 징계 받을까 걱정되어 아이 엄마의 처절한 부탁을 거절했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정의를 실현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엄마가 아이의 손을 안 잡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벌레만도 못한 존재가 되었다. 이 지긋지긋한 맘충 딱지. 엄마의 사정은 아무도 모른다. 아마 살면서 이런 일이 처음일 거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고가 생긴다는 것은 익히 들어왔기에 잘 알고 있었겠지만 본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거다.
같은 엄마지만 이해가 안 된다거나, 자기 애 하나 간수 못 할거면 버스를 타지 말라거나, '맘충이 또 한 건 했다'며 기다렸다는 듯이 이기적인 무개념 엄마로 만들 일이 아니다. 누구나 살다보면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을 맞이하게 될 날이 있다. 아이와 함께라면 더더욱. 아이와 헤어져 홀로 버스에 남겨진 엄마의 심정이 어떨지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맘충이라는 비난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가?
최초 유포자가 냉정하게 판단하지 않고 감정에 치우쳐 글을 써서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했다. 현장 목격담을 자신이 보고 느낀 감정대로 전달한 게 그렇게도 죽을 죄인가? 객관적 글쓰기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은 말할 자유도 없는가? 자신의 일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그나마 이렇게 타인의 문제에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나는 확신한다. 허위사실과 과장이 지나친 글을 유포했다며 그녀를 강력 처벌해야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보다 그녀의 마음이 훨씬 더 따뜻하리라. 혐오와 무관심보다는 부족하게나마 공감하려는 모습이 훨씬 더 낫지 않은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기적이고, 실수도 하고, 과장된 감정이입도 하며 산다. 사소한 실수하나 용납 못하는 우리 사회는 얼마나 완벽한가? 당신이 원하는 세상은 타인이 어려움에 빠져 고통을 호소해도 못 본 척 외면하는 세상인가? 최초 글쓴이를 잡아서 공개처형을 하고나면 그 이후 우리 사회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사리분별 잘하는 사회로 거듭날까? 아니면 지금보다 더 무관심해지고 삭막해질까?
240번 버스 사건이 남긴 교훈
교통사고가 나거나 본인이 불이익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멈춰달라는 승객의 말은 무조건 따를 것? 아이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두 손을 꼭 맞잡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을 것? 공공장소에서 괜히 남의 일에 오지랖 부리다가는 구설수에 휘말려 고소당할 수도 있으니 사리판단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할 능력이 없거든 나대지 말고 신경끌 것?
사건의 가해자는 최초 유포자도, 엄마도, 버스기사도 아니다. 인간 대 인간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려는 마음 없이 평범한 누군가의 실수를 용납하기 힘든 사람들의 좁은 마음이 문제다. 각자 다른 잣대로 서로를 증오하고 있는 모두가 가해자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엄격하게 심판하며 처벌을 내리는 행위는 정의로운 행동이 아니다. 우리가 손가락질 하는 그 사람이 사실은 나처럼 평범한 사람임을 기억하자. 증오의 에너지를 거두자. 이제 그만 240번 버스는 잊자. 대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 기형적인 폭력성에 대해 240번씩 성찰해보자. 잘잘못을 가려 정의를 실현하는 일보다 따뜻한 이해와 공감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