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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법 개정? 아이들은 어른들의 '미러링'

[주장] 최근 문제가 된 청소년 범죄, 처벌 강화가 해법은 아니다

등록|2017.09.15 14:29 수정|2017.09.15 14:29
최근 부산, 강릉에서 벌어진 여중생 폭행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인터넷을 떠도는 동영상을 보고 느낀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같은 느낌을 받아서일까. 소년법을 폐지하라는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이에 국회의원들은 형사 처벌 대상인 미성년자의 연령을 낮추는 법안, 소년 보호 처분의 기간을 늘리는 법안 등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불쾌 혹은 불편해지기만 한다. 과연 형사미성년자의 연령이 높은가? 10호 처분이라 불리는 최장 2년의 소년원 수용기간이 짧은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일례를 하나 들어보자. 몇 달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사건이 있다. 내연녀를 때려 숨지게 한 후, 매장하고 그 위를 콘크리트로 덮어버린 사람이 있었다. 1심에서 그에게 내려진 형량은 징역 5년. 그 후 항소심에서 감형되어 징역 3년. 두 재판 사이에 범인은 19년 동안 연을 끊고 살았던 내연녀의 아버지에게 합의금을 지불했을 뿐이다. 결국 성인이 사람을 때려서 숨지게 하고 받은 처벌이 고작 3년간의 옥살이인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대법원 양형기준 때문이다. 양형기준에는 폭행치사죄의 경우 징역 3~5년으로 정하고 있다. 이 글에서 양형기준의 옳고 그름을 얘기할 생각은 없다. 단지 어떤 판사에게 재판을 받느냐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는 일은 없어야 하기에 양형기준이란 것이 필요하다는 정도로 넘어가려 한다.

주목할 것은, '성인의 경우에도 사람을 때려서 숨지게 한 경우 3~5년의 옥살이인데, 아이들에게 2년이란 기간이 과연 짧은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무리 "학교"라고 이름이 붙어있지만 소년원 역시 감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어쩌면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아이들에겐 더 큰 고통, 더 큰 형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2년간의 옥살이는 결코 짧은 것이 아니다.

만 14세 미만을 형사 미성년자로 하고 있는 것이 시민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높은 것인가? 만 14세 미만이라고 하면 중학생까지의 아이들이다. 중학생, 주위로 눈을 돌려 그 아이들을 보자. 예전에 비해 육체적으로 성숙했다고 하더라도 그저 아이들일 뿐이다. 학교를 마치면 학원을 가야 하고, 잠시 틈이 나면 친구들과 게임을 즐기며, 연예인의 이야기로 한참 동안 수다를 떠는, 예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은 아이들일 뿐이다.

이번처럼 간혹 벌어지는 흉측한 사건들 속 아이들은 극히 예외적일 뿐이다. 예외적인 경우는 비단 아이들이 등장하는 사건만이 아니다. 우린 지금껏 수없이 많은 참혹하고 황당한 사건들을 목격했다. 게다가 지난 10년의 정 권동안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을 보았고, 지금도 보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예외적인 사건들이 벌어질 때마다 처벌수위를 올리거나 법률을 바꾸지는 않는다. 만약 박근혜, 최순실 같은 인물이 밉다고 해서 뇌물죄 하나만으로 사형을 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더욱이 만 14세를 13세 또는 12세로 낮추는 것이 적당한가? 중3이 저지른 범죄와 중2 혹은 중1이 저지른 범죄가 얼마나 다르기에...

최근 '메갈리안'과 같은 사이트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일베'에 대응하는, 즉 남성의 여성혐오에 대한 미러링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아이들이 저지른 흉측한 사건들, 그건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대한 미러링은 아닐까.

옆에 있는 친구와 끊임없이 경쟁하기를 강요해온, 자유·정의·인간의 존엄과 같은 숭고한 가치가 아닌 성공과 돈이 최고라고 주입해온 지난날들을 거울에 비춰보니, 괴물이 되어버린 아이들이 보이는 게 아닐까.

아이들을 무겁게 처벌하는 게 문제의 해결방법이 될 수는 없다. 아마도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처벌만 강화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을 것이다. 애초에 죄를 짓는 사람들은 그 순간 뒤에 처벌받을 상황을 생각하지 않기에.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 같은 반 친구들을 밟고 일어서지 않아도 되는, 서로 손잡고 같이 나갈 수 있는, 그렇게 자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

어른들의 세상을 언제나 아이들이 보고 있다는 걸 잊지 말자.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이 삐뚤어진 세상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삐뚤어질 수밖에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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