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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가 된 구청장님, 식당에서 녹음하는 사연

[현장] 차성수 금천구청장 팟캐스트 방송 시작

등록|2017.09.17 16:15 수정|2017.09.17 17:04

▲ 차성수 금천구청장이 15일 오전 시흥5동 목포오리낙지 식당에서 팟캐스트 <차성수의 차차차>를 녹음하고 있다. ⓒ 금천구제공


"청장님, 후딱 합시다. 12시에 예약 손님 받아야 해요."

지난 15일 오전 9시 반 서울 금천구의 한 식당.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식당이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로 북적인다.

상 위에는 방송장비와 헤드폰이 놓여있고, 페이스북 생중계를 위한 스마트폰 거치용 삼각대까지 준비돼있다.

이 날은 차성수 금천구청장이 직접 사회자가 되어 금천구에 오랜 기간 뿌리내리고 살아온 지역 상인들을 소개하는 팟캐스트 방송 <차성수의 차차차> 첫회분을 녹음하는 날이다.

주인공은 금천구 시흥5동 '목포오리낙지' 김홍기(72), 나길자(71)씨 부부. 매일 전남 무안에서 가져오는 싱싱한 재료를 사용하는 지역의 맛집으로 유명하다는 후문이다. 43년 전 전남 목포에서 올라와 22년째 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녹음 시작 전 차 청장에게 첫 번째 집으로 이 집을 고른 이유를 물었더니 "22년 금천구청 개청 역사와 함께 해온 금천의 정서를 제일 닮아있는 집"이라며 "제가 6개월에 한번쯤 오는데 사장님하고 제일 친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곧바로 안주인 나길자씨한테서 반론이 들어왔다. "친하기는 뭘 친해요. 6개월에 한번 오는데. 잘 팔아줘야 친할텐데 안 팔아주는데 뭘. 청장님 보기가 별똥별 보기보다 힘들어요."

주위에 지켜보고 있는 방송 관계자들과 구청 직원들이 '까르르' 웃자 차 청장도 따라 웃으며 "이따가 방송 시작하면 그런 얘기 하시면 됩니다"고 부드럽게 넘겼다.

▲ 15일 오전 금천구 목포오리낙지 식당에서 차성수 금천구청장의 팟캐스트 방송을 녹음하고 있다. ⓒ 금천구제공


목포에서 의상실 하다 큰 도둑 맞고 무작정 상경

"안녕하세요, 첫인사 드립니다. <차성수의 차차차> 진행을 맡은 우리동네 구청장 차성수입니다."

부산에서 대학교수 할 때 방송경험이 좀 있었다는 차 청장은 단 한번 연습을 해보더니만 유경험자답게 바로 방송에 들어가 오프닝멘트를 능숙하게 처리했다. 헤드폰을 쓰고 마이크를 든 김씨 부부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앉았다.

차 청장은 부부에게 어떻게 금천에서 40년 넘게 살게 됐는지 먼저 물었다.

"원래 목포에서 의상실을 꽤 크게 했지요. 그런데 도둑을 맞은 거예요. 원단에다가 금고까지 몽땅 가져갔어요. 도저히 다시 시작할 힘이 안 나더라고요. 다행히 전화기는 남아있어 그거 판 돈 50만원 들고 애 셋 데리고 무조건 서울로 온 거예요. 여기가 당시는 영등포구였는데 구로구로 됐다가 22년 전에 금천구로 바뀌었지요."

그러나 물정 모르는 시골 출신 부부가 서울에서 장사하기는 녹록지 않았다.

경험을 살려 의상실을 냈으나 맞춤옷 대신 기성복 시대가 되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고, 뒤이어 향어를 잡아 회떠먹는 실내낚시터를 열었으나 '향어를 그냥 먹으면 건강에 문제있다'는 방송이 나와 문을 닫아야 했다.

"자식에게 먹을 것이라면 어떻게 중국산을 섞나"

낚시터를 닫고 그 자리에 당구장을 열었으나 손님들이 뿜어대는 담배연기를 고스란히 마셔야하고 당구장에서 고스톱을 치는 손님 때문에 고역이었다.

지난 세월 살았던 굴곡진 삶을 풀어나가던 부인 나씨는 급기야 당시 군대에 간 아들이 편지를 보내 '엄마 아빠 지하실에서 이제 그만 나오시라'더란 얘길 할 땐 눈시울을 붉혔다.

당구장 운영이 힘들었으나 소득도 있었다. 손님에게 밥을 해줬더니 '이 요리 실력으로 식당을 하지 왜 당구장을 하냐'고 한 것. 그후 오리집을 열었다가 낙지집을 하던 이웃집이 장사를 접자 낙지로 주업종을 바꿔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라는 게 부부의 설명.

15년 전부터 부모의 권유로 식당일을 같이 하고 있다는 딸 지선(48)씨는 "부모님이 20년을 넘게 식당일을 했는데도 돈을 못번 이유를 알게됐다"며 "고춧가루를 국산만 고집하지 말고 남처럼 중국산도 반 정도 섞어 단가를 맞출 수 있었을 텐데 그걸 못하신다"고 말했다.

그러자 나씨는 "중국산 고춧가루를 먹어보니 국산과 달리 끝에 쓴맛이 나더라"며 "자식에게 먹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것을 섞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 목포오리낙지 안주인 나길자씨가 어려웠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딸 지선씨를 안아주고 있다. ⓒ 금천구제공


차 구청장 "구구절절한 사연에 코끝이 시큰했다"

차 청장이 금천구에 바라고 싶은 것을 묻자, 주인 김씨는 "금천구에는 주차장이 없다고 말하는 손님이 많다"며 "저녁 식당 주변에 노상주차를 허용하고 시설관리공단에서 관리하면 일자리도 생기지 않겠냐"고 아이디어까지 제공했다.

이날 녹음은 나씨와 딸 지선씨가 같이 부른 <만남> 노래를 끝으로 한번의 NG도 없이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차 청장은 "금천구의 구석구석에 이런 감동적이고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 많다"며 "김씨 부부와 딸 지선씨가 지난날 힘들었던 시기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힐 땐 저도 코끝이 시큰했다"고 말했다.

이번 방송은 오는 18일(월)부터 팟캐스트 앱 '팟빵'에서 들을 수 있으며, 다음주 방송은 차 구청장이 결혼 예물을 맞췄던 금은방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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