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서 받은 '2가지 선물'
[터키 여행기] 종교와 인종을 넘어선 우정을 위해
▲ 이스탄불에서 배에 오르면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가 한눈에 들어온다. ⓒ 류태규 제공
터키의 이스탄불은 묘한 도시다. 5분만 배를 타면 유럽에서 아시아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는 게 가능하고, 낚시꾼들로 가득한 갈라타 다리 밑 카페에 앉아 터키 전통주 라키(Rakı)를 마시고 있자면 좌와 우로 유럽과 아시아가 한눈에 들어온다.
몇 해 전 봄. 이 '묘한 매력의 도시' 이스탄불에서 보름쯤을 머물렀다. 어느 날은 무료함을 견디기가 힘들어 어디를 가겠다는 계획도 없이 숙소를 나와 배를 타고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외관이 썩 근사한 하이다르파샤역(驛)에 도착했다.
그 역은 동서(東西)로 수십 시간을 달리는 국제열차의 출발지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까지 가는 기차도 일주일에 한 번 다니는데 소요 시간은 자그마치 70시간. 연착이라도 할라치면 나흘을 기차 안에서 먹고 자야 한다.
하지만 그런 장거리 열차만 있는 건 아니고, 한국식으로 말하면 짧은 거리를 왕복하는 '교외선 기차'도 오간다. 어차피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기에 가장 먼저 출발하는 전철에 무작정 올랐다.
그게 내 여행 스타일이기도 하다. 이스탄불에 오는 관광객은 모두 다 세인트 소피아 성당(Hagia Sophia)과 블루 모스크(Blue Mosque), 토카프 궁전을 본다. 하지만, 그것만 보고 도시를 떠난다면 대체 무슨 재미인가? 그곳들은 사진으로 이미 여러 차례 봐온 것인데... 게다가 나는 사람 우글거리는 공간을 싫어한다.
▲ 이스탄불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방문하는 세인트 소피아 성당. ⓒ 류태규 제공
▲ 국민의 거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인 터키에선 곳곳에서 모스크를 볼 수 있다. ⓒ 류태규 제공
이스탄불 예술고등학교 학생들과 친구가 되다
기대 없이 올라탄 기차. 그런데 재밌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차에 이스탄불 예술고등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하는 열일곱, 열여덟 예쁘장한 여고생들이 40명이나 탔던 것.
'달리는 열차 안에서 승객들 모습 크로키 하기' 따위의 특이한 사생대회를 하는 모양인데, 꽤 유명한 학교인지 방송국에서 취재까지 나와 있었다. 녹화용 TV 카메라가 여러 대 보였다. 기차에 오른 아이들 중 맹랑한 꼬마 아가씨 둘(튜바와 제랄드)이 다가와 망설임 없이 물었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에서 왔는데."
"우리랑 함께 앉아서 갈래요?"
그 질문에 보통의 40대 아저씨라면 당연히 이렇게 답해야 옳다.
"아니야. 나는 여기서 경치를 보며 가는 게 편해. 너희는 가서 그림 그리렴."
그런데, 기자는 보통이나 보편을 거부하는 성정. 해서 이렇게 대답했다.
"Sure. Why not?"
이런 날이 아니면 언제 친구 딸 또래의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볼 것인가. 둘은 복잡한 기차 안에서 완성한 그림들을 보여준다. 거기엔 내 얼굴도 있었다.
그림의 미적 완성도와 솜씨를 떠나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방인에 대한 따스한 관심이 담겨 있는 그림이니 말이다. '페이스북 친구'가 되자며 이메일 주소를 알려준 튜바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제랄드.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해줬다.
'오냐, 친구 하자. 뭐 어떠냐. 우정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라고.'
그날 이후 둘은 페이스북 친구가 됐고,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여전히 나의 가장 어린 친구들로 남아 있다. 10년 후쯤 다시 이스탄불을 찾아 재회할 땐 튜바와 제랄드 모두 렘브란트와 살바도르 달리를 뛰어넘는 멋진 화가가 되어있기를.
▲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아시아와 유럽 사이를 오가는 이스탄불의 유람선. ⓒ 류태규 제공
▲ 향신료를 듬뿍 넣어 구운 양고기와 선명한 빛깔의 채소로 차려진 먹음직한 터키 요리. ⓒ 류태규 제공
아이들 사이엔 '종교'와 '인종'을 가르는 벽이 없다
이스탄불 교외선 기차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터키 친구들을 얻었다면, 이스탄불 바다 위를 떠가는 배 위에선 인종과 종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았다.
해질 무렵. 유럽 지역을 출발해 아시아 지역을 한 바퀴 경유한 후 다시 출발지로 돌아오는 보트 투어를 했다. 터키에서만 맛볼 수 있는 드라마틱한 대륙 넘나들기. 승선 요금은 12리라. 우리 돈으로 대략 4~5천 원. 소요 시간은 1시간 30분.
바다건, 강이건, 호수건 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배 타는 걸 좋아하는 내겐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이스탄불에서 지내는 동안 무려 4번을 같은 배에 올랐다.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국경을 넘지 못하는 나라에서 살아온 국민인지라 잠깐 동안에 '대륙을 넘나드는' 생경한 매력에 흠뻑 빠졌던 것 같다.
각설하고. 그날 배의 객실. 이스라엘에서 놀러 온 여행객들과 마주 보는 좌석에 앉았다. 똘똘해 보이는 여섯 살 사내아이가 귀여웠다. 엄마와 이모도 친절했고, 꼬마를 안고 함께 사진을 찍은 아저씨 역시 서글서글 사람이 좋았다. 그들은 두말할 것 없이 유대인.
내 좌석 뒤에는 히잡(Hijab)을 쓴 무슬림 가족이 탔다. 그 가족 중엔 이스라엘 꼬마 아이와 동갑인 여섯 살 소녀도 있었다. 그 아이도 너무 귀여웠다. "같이 사진 한 장 찍자"고 하니 부끄러워하면서도 깜찍하게 포즈를 잡는다.
▲ 이스탄불 유람선에서 만난 이슬람 국가의 꼬마숙녀. ⓒ 홍성식
▲ 이스탄불 유람선에서 만난 이스라엘 꼬마. ⓒ 홍성식
그런데 두 꼬마 아이, 그러니까 유대인 소년과 무슬림 소녀 사이엔 종교와 인종이라는 무섭고, 무거운 벽이 존재하지 않았다. 빨간색 사탕과 뻥튀기 과자를 서로 건네며 마치 어린 연인들 인양 손을 잡고 놀았다.
갑작스러운 깨달음이 눈앞으로 휙 지나갔다. 우리가 모두 아이였다면 인종과 종교가 불러들인 전쟁과 학살, 탐욕과 엇나간 욕망이 초래한 수많은 비극들이 애초에 없었을 것을.
그날, 나는 인류가 화해와 상호 이해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아이들의 크고 맑은 눈동자에서 보았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시원했고,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며 본 이스탄불의 석양은 아름다웠다.
맞다. 우리는 모두 한때 '아이'였다. 인류의 불행은 '아이의 마음'을 잃거나, 잊어버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하니, 탐욕을 버리지 못하는 어른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