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영이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에 붙인 '이념 딱지'가 부끄럽다
창립멤버가 밝힌 국제인권법학회의 실체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지 3년이 되어간다. 3년 동안이 힘들었는지 17년 동안의 법원 생활이 아득한 먼 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법원의 일이 그저 남의 일은 아니어서 늘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나간 과거의 일 중에는 직접 참여하고 경험하기도 한 일인데도 까맣게 잊는 것들이 있다. 2~3주 전에 어느 일간지 기자가 쓴 칼럼도 나의 기억에서 사라진 일을 상기시켜주는 내용이었다. 그 칼럼의 일부에 '이옥형 판사가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임시간사였다'는 부분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 글을 보고서야 '아, 그랬었지!'하면서 지난 일의 일부가 다시 생각났다.
최근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마치 법원 내 특정 이념을 가진 법관들의 모임인 것처럼 보는 시각이 있다. 필자는 이미 법원을 떠난 몸이지만, 법관들이 직접 해명하기는 어려울 듯하여 비교적 자유로운 본인이 기억나는 바를 몇 자 적었다.
법관이 재판 과정에서 자괴감이 들 때
우리 헌법 제6조는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제법(질서) 존중주의를 천명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한편 '너희는 사실을 말하라, 그러면 내가 권리를 주겠다'라는 법언이 있다. 법률가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표현이다. 이 법언은 법관이 법규범을 잘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법관은 응당 헌법, 법률, 규칙 등의 법규범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구체적인 사실에 적용할 올바른 법규범을 찾아내서 정당한 결론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관이 선발되고 양성되는 과정에서 많은 시험과 검증, 그리고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덕택에, 물론 부족함과 국민들의 불만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비교적 훌륭한 인적 자원이 법관으로 충원되고 있다.
그러나 법관이 재판 과정에서 국제법규의 존재와 내용, 구체적인 해석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당혹스러움과 곤란함, 더 나아가서 자괴감이 드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 법관은 대학교육과정과 사법시험, 법학전문대학원 등의 과정에서 충분한 국제법 교육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최소한 나와 비슷한 세대는 대학에서 국제법을 수강한 적이 있긴 하지만 매우 관념적이고 현실과는 먼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런데 세계가 통합되고, 국제적인 법률문제가 등장하며, 우리 사회에 다른 법률문화 속에 살던 사람들이 다수 편입되다 보니 문제는 조금 복잡한 양상으로 발전하였다. 당사자나 대리인, 변호인들이 국제법규를 변론의 논거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국제법을 해석하여야 할 법관은 국제법규의 존재, 내용, 나아가 국제적인 해석과 국내적인 해석에 있어서 어려움에 직면하곤 하였다. 법관들은 이런 어려움을 피하여 유사한 국내법 체계로 돌아오거나 소극적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규범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국내의 재판에 적용하여야 할 필요성이 매우 컸고, 이를 위한 법원의 연구과제도 산적해 있었다.
유럽, 아프리카, 미주에 비해 더뎠던 아시아 인권의제
한편, 21세기 인권 문제는 진보나 보수의 의제가 아닌 보편적인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소송 당사자나 그를 지원하는 시민단체들이 사회운동을 넘어 법정에서까지 인권의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였다. 잠시 눈을 세계로 돌려보니 이미 각 대륙별로 국제인권기구가 설립되어 있었고, 회원국에 대한 인권후견인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단순한 인권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넘어 급기야 유럽인권법원이라는 초국적 법원까지 설립되어 있었다. 유럽연합 회원국의 시민이라면 개인의 자격으로도 유럽인권법원에 인권침해의 구제를 청구할 수 있고, 실제로 유럽인권법원은 회원국에 배상과 시정을 명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인권의제는 상대적으로 유럽, 아프리카, 미주에 비하여 발전이 더뎠다. 아시아의 특수성, 즉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 중국의 인권후진국의 상황, 서아시아 지역의 종교적 상황, 북한의 극단적 인권침해 등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인권상황을 외교적으로 이슈화하고 인권개선에 역할을 할 수 있는 아시아의 국가는 어디인가? 앞에서 본 모든 문제에서 자유로운 나라, 그 나라는 대한민국이었다.
그래서 주변의 동료 법관들에게 나의 이러한 문제의식을 이야기하였다. 즉, 국제인권규범을 연구할 필요가 있고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인권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쥐고서 아시아지역 인권선진국으로서 '아시아인권법원' 설립을 주도하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많은 동료법관들이 이에 흔쾌히 동의하였고, 그렇게 해서 대법원 산하에 국제인권법연구회가 탄생하였다. 대법원으로부터 전문분야연구회로 설립승인을 받자, 그 동안 국제규범 연구에 목말라하였던 많은 법관들이 가입하였다. 이와 같은 배경 아래 국제인권규범에 관심을 갖고 회원으로 가입한 법관들에게 보수나 진보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21세기 문명국가에서 상상하기 부끄러운 일이다.
국민 인권신장 위해 노력하는 법관들의 연구모임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설립 초기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대법원의 전문분야연구회는 관행적으로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회장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구색을 맞추기 위하여 당시 서울고등법원에 근무하고 있던 김명수 부장판사에게 찾아가 참여를 부탁하였다. 이것이 김명수 후보자가 국제인권법연구회에 관여하게 된 계기이다.
법원 내 대부분의 연구회가 그러하듯이, 국제인권법연구회 역시 회장이 연구회 활동 내용이나 세미나, 학술활동에 관여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묵묵히 연구회 뒤에서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거나 속칭 '얼굴 마담' 역할을 할 뿐이다. 특히나 국제인권법연구회는 법관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한 연구회였으므로 회원들의 관심과 스스로 수립한 연구계획에 따라 세미나나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인권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이듯이, 특정한 이념이나 성향을 가진 법관들의 모임이 전혀 아니다. 헌법 정신에 입각하여 국제적으로 승인된 보편적인 인권규범을 연구하고, 이를 우리나라 재판 실무에서 반영하여 종국적으로는 국민의 인권신장 위하여 노력하는 법관들의 연구모임이다. 최근에 벌어지는 정치적인 공방들로 국민들이 법원과 법관들에 대해서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스런 마음이다. 부디 지금의 불필요한 오해와 혼란을 극복하고 국민의 곁으로 가는, 국민의 신뢰를 받는 사법부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지나간 과거의 일 중에는 직접 참여하고 경험하기도 한 일인데도 까맣게 잊는 것들이 있다. 2~3주 전에 어느 일간지 기자가 쓴 칼럼도 나의 기억에서 사라진 일을 상기시켜주는 내용이었다. 그 칼럼의 일부에 '이옥형 판사가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임시간사였다'는 부분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 글을 보고서야 '아, 그랬었지!'하면서 지난 일의 일부가 다시 생각났다.
최근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마치 법원 내 특정 이념을 가진 법관들의 모임인 것처럼 보는 시각이 있다. 필자는 이미 법원을 떠난 몸이지만, 법관들이 직접 해명하기는 어려울 듯하여 비교적 자유로운 본인이 기억나는 바를 몇 자 적었다.
법관이 재판 과정에서 자괴감이 들 때
▲ 김명수 대법원장 인사청문회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여야 의원들의 법원 독립성과 개혁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우리 헌법 제6조는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제법(질서) 존중주의를 천명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한편 '너희는 사실을 말하라, 그러면 내가 권리를 주겠다'라는 법언이 있다. 법률가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표현이다. 이 법언은 법관이 법규범을 잘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법관은 응당 헌법, 법률, 규칙 등의 법규범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구체적인 사실에 적용할 올바른 법규범을 찾아내서 정당한 결론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관이 선발되고 양성되는 과정에서 많은 시험과 검증, 그리고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덕택에, 물론 부족함과 국민들의 불만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비교적 훌륭한 인적 자원이 법관으로 충원되고 있다.
그러나 법관이 재판 과정에서 국제법규의 존재와 내용, 구체적인 해석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당혹스러움과 곤란함, 더 나아가서 자괴감이 드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 법관은 대학교육과정과 사법시험, 법학전문대학원 등의 과정에서 충분한 국제법 교육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최소한 나와 비슷한 세대는 대학에서 국제법을 수강한 적이 있긴 하지만 매우 관념적이고 현실과는 먼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런데 세계가 통합되고, 국제적인 법률문제가 등장하며, 우리 사회에 다른 법률문화 속에 살던 사람들이 다수 편입되다 보니 문제는 조금 복잡한 양상으로 발전하였다. 당사자나 대리인, 변호인들이 국제법규를 변론의 논거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국제법을 해석하여야 할 법관은 국제법규의 존재, 내용, 나아가 국제적인 해석과 국내적인 해석에 있어서 어려움에 직면하곤 하였다. 법관들은 이런 어려움을 피하여 유사한 국내법 체계로 돌아오거나 소극적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규범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국내의 재판에 적용하여야 할 필요성이 매우 컸고, 이를 위한 법원의 연구과제도 산적해 있었다.
유럽, 아프리카, 미주에 비해 더뎠던 아시아 인권의제
한편, 21세기 인권 문제는 진보나 보수의 의제가 아닌 보편적인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소송 당사자나 그를 지원하는 시민단체들이 사회운동을 넘어 법정에서까지 인권의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였다. 잠시 눈을 세계로 돌려보니 이미 각 대륙별로 국제인권기구가 설립되어 있었고, 회원국에 대한 인권후견인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단순한 인권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넘어 급기야 유럽인권법원이라는 초국적 법원까지 설립되어 있었다. 유럽연합 회원국의 시민이라면 개인의 자격으로도 유럽인권법원에 인권침해의 구제를 청구할 수 있고, 실제로 유럽인권법원은 회원국에 배상과 시정을 명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인권의제는 상대적으로 유럽, 아프리카, 미주에 비하여 발전이 더뎠다. 아시아의 특수성, 즉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 중국의 인권후진국의 상황, 서아시아 지역의 종교적 상황, 북한의 극단적 인권침해 등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인권상황을 외교적으로 이슈화하고 인권개선에 역할을 할 수 있는 아시아의 국가는 어디인가? 앞에서 본 모든 문제에서 자유로운 나라, 그 나라는 대한민국이었다.
그래서 주변의 동료 법관들에게 나의 이러한 문제의식을 이야기하였다. 즉, 국제인권규범을 연구할 필요가 있고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인권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쥐고서 아시아지역 인권선진국으로서 '아시아인권법원' 설립을 주도하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많은 동료법관들이 이에 흔쾌히 동의하였고, 그렇게 해서 대법원 산하에 국제인권법연구회가 탄생하였다. 대법원으로부터 전문분야연구회로 설립승인을 받자, 그 동안 국제규범 연구에 목말라하였던 많은 법관들이 가입하였다. 이와 같은 배경 아래 국제인권규범에 관심을 갖고 회원으로 가입한 법관들에게 보수나 진보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21세기 문명국가에서 상상하기 부끄러운 일이다.
국민 인권신장 위해 노력하는 법관들의 연구모임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설립 초기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대법원의 전문분야연구회는 관행적으로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회장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구색을 맞추기 위하여 당시 서울고등법원에 근무하고 있던 김명수 부장판사에게 찾아가 참여를 부탁하였다. 이것이 김명수 후보자가 국제인권법연구회에 관여하게 된 계기이다.
법원 내 대부분의 연구회가 그러하듯이, 국제인권법연구회 역시 회장이 연구회 활동 내용이나 세미나, 학술활동에 관여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묵묵히 연구회 뒤에서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거나 속칭 '얼굴 마담' 역할을 할 뿐이다. 특히나 국제인권법연구회는 법관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한 연구회였으므로 회원들의 관심과 스스로 수립한 연구계획에 따라 세미나나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인권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이듯이, 특정한 이념이나 성향을 가진 법관들의 모임이 전혀 아니다. 헌법 정신에 입각하여 국제적으로 승인된 보편적인 인권규범을 연구하고, 이를 우리나라 재판 실무에서 반영하여 종국적으로는 국민의 인권신장 위하여 노력하는 법관들의 연구모임이다. 최근에 벌어지는 정치적인 공방들로 국민들이 법원과 법관들에 대해서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스런 마음이다. 부디 지금의 불필요한 오해와 혼란을 극복하고 국민의 곁으로 가는, 국민의 신뢰를 받는 사법부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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