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리 두 번 죽인 '요즘' 댓글, 그 배경이 무섭다
[하성태의 사이드뷰] 국가차원에서 확산시킨 '여성혐오', 블랙리스트가 남긴 후과
▲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김규리. ⓒ SBS
"김민선 배우는 한창 자신을 키워갈 20대 후반~30대 초반에 집중적으로 배제 불이익을 받았다. 이미 세월은 흘러갔고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 피해를 받았다. 어제 통화해보니 피해 상황에 대해 증언하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국정원 공격조가 그를 공격했던 논리가 일반 누리꾼에게 아직 남아서 여전히 공격받고 있다.
그러니까 두렵고 힘들어서 나올 생각을 못한다. 그동안 오래 활동을 못했는데 앞으로는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얻길 바란다. 피해여성에게 따뜻한 격려를 해주시길 바란다. 악성 댓글은 폭력이다. 멈춰주시길 부탁드린다."
이게 '핵심'이고, '현실'이다. 지난 18일 'MB 블랙리스트' 피해자 조사차 검찰에 출석했던 배우 문성근. 그는 '최대 피해자'로 배우 김규리(김민선)를 언급하며, "피해여성에 대한 격려"와 함께 "악성 댓글은 폭력"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규리는 지난 2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해 오열하며 그간의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간 국정원과 군은 '좌파척결'이란 MB정부의 기조 아래 '밥줄'을 끊는 방식도 모자라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는 공작들에 심혈을 기울였다. "국정원이 일베"라는 한탄어린 비판이 창궐하는 이유다.
이들은 합성사진을 포함, 여성 피해자들에게 가장 세고 거친 표현으로 선제 타격을 가했고, 이를 대형 커뮤니티 등에 퍼날랐다. 심지어 댓글조차 그들이 직접 '생산'했다. 문성근의 말마따나, 이후 '일반 누리꾼'들에게 이러한 공격 논리가 깊게 각인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공격과 공격의 논리는 여전히 잔존한다.
이러한 흐름으로 볼 때, 박근혜 정권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여성 혐오' 반대의 목소리는 이러한 'MB 블랙리스트'와 '댓글 부대'를 비롯해 이명박 정부이후 벌어진 '국가 폭력'이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국정원과 군 심리전단 등의 '공작' 자체가 이러한 '여성 혐오'란 약자를 향한 공격과 폭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은가. 이들 정권 하에서 '일간베스트' 등 소수자와 약자를 향한 공격과 '여성 혐오'를 확대재생산한 사이트들이 창궐했고, 이들 정권의 묵인 하에 그 '혐오'와 '차별'의 스피커를 키워갔다. 정권 자체가 '일베'와 '악성 댓글'을 키우고 장려했다고밖에 볼 수 없지 않겠는가.
김규리를 향한 여전한 댓글 폭력
▲ 김규리가 지난 2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 ⓒ 김민선
지난 25일 김규리는 문성근, 김미화 등과 함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국가정보원법 위반, 강요, 업무방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에 출석해 4시간 넘게 참고인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에 앞서 아래와 같은 심경을 밝혔다.
"2008년 5월 1일에 썼던 글 전문입니다. 국민의 건강권은 보수적으로 지켰으면 했고 검역주권 포기한 것이 (미국과) 내내 마음에 걸려서 썼던 글입니다. 초등학교에서도 배우는 '수사법'... 수사법으로 이뤄진 문장은 제 글의 전체가 아닙니다. 저는 그저..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의 혼란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걱정 끼쳐 드리고 또 부족해서 늘 죄송합니다...^^;;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살아도 부족한 세상입니다. 그러니 모두 화이팅!!! 글에도 썼지만 저는 그저 그런 사람입니다."
지난 24일 김규리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후 10년 전 썼던 글과 함께 자신의 심경을 남긴 것이다. 그러자 또 다시 악성 댓글이 달렸다. 여전히 '청산가리' 운운하는 댓글부터 배우 활동와 블랙리스트와의 상관관계를 따지는 댓글까지, 김규리의 인스타그램 댓글 창은 또다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 댓글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예의 그 과격한 공격을 담고 있다. 이러한 공격이 근절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김규리가 '여성 배우'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과연 지난 10년간 정치인과 보수언론, 일반 누리꾼들로부터 이렇게까지 공격받았을까. 일부 누리꾼들의 주장처럼, 김규리가 '톱배우'가 아니어서라면 더더욱 문제다.
국정원의 블랙리스트 중 배우 명단을 보면 명확해진다. 정치 활동 일선에 나섰던 문성근을 제외하고, 지명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누가 더 '악질적'인 댓글 세례를 받았고, 누가 더 '일반 누리꾼들'의 집중 포화를 맞아야 했는지가 중요하다. 이 시발이 바로 국정원이 뿌려 놓은 '나쁜 씨앗'에서 출발한 셈이다.
김여진과 문근영의 경우
▲ 배우 문성근과 김여진 ⓒ 남소연·노동과세계 이명익
여성 연예인과 유명인을 향한 부끄러운 '공작'의 단적인 예는 바로 배우 김여진이 등장한 합성 이미지일 것이다. 국정원 심리전단이 지난 2011년 5월 만들었다는 나체 합성 사진 말이다. 최근 국정원 심리전단이 이를 스스로 제작하고 보수 성향의 인터넷 카페 등에 직접 배포까지 한 사실은 충격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이를 의식한 듯, 지난 22일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판사는 전 심리전단 팀장 A씨에 대해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구속을 결정했다. 앞서 검찰은 A씨에 대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상 명예훼손과 국정원법상 정치관여 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청구한 바 있다. 이런 예는 또 있다.
"좌익 메뚜기 떼들이 문근영으로 하여금 확고한 천사의 지위를 차지하도록 한 후에, 바로 그 위대한 천사가 빨치산의 손녀라는 것을 연결해 빨치산은 천사와 같은 사람이라고 이미지화 하려는 심리전을 펼치고 있다."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 중인 군사평론가 지만원씨가 지난 2008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2008년 11월 배우 문근영이 한 복지단체에 몰래 기부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지만원은 수차례 이러한 주장을 제기한 바 있다. 그리고, 국정원이 이러한 주장을 '받아' 썼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국정원 심리전단은 지만원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한 인터넷 게시물도 게시했다. 문근영에 대해 "빨치산 손녀", "빨갱이 핏줄"이란 표현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검찰은 지난 20일 이러한 작업에 가담했던 국정원 직원 2명에게도 정보통신망이용촉진법상 명예훼손과 국정원법상 정치관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82명의 블랙리스트 명단에, 문근영의 이름은 없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당시 지만원씨가 지속적으로 '빨갱이'라는 이미를 덧씌웠고, 국정원이 이를 확대재생산하는데 가담했다. 이것이야말로 현대화된 '국가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국가가 자행한 여성을 향한 폭력
▲ 블랙리스트 피해사례 증언하는 김미화개그맨 김미화씨가 25일 오전 소설가 황석영씨와 함께 서울 세종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민관합동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사무실을 찾아 조사신청을 한 뒤 블랙리스트 피해사례를 밝히고 있다. ⓒ 권우성
심지어, 이러한 공격과 비방에 국정원에 이어 군이 가세한 정황도 포착됐다. 26일 SBS에 따르면, 군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도 연예인 비방물을 만들면서 방송인 김미화와 소설가 공지영, 이른바 '고대녀'로 알려졌던 김지윤씨의 비방 작업에 몰두했다. (관련 기사 : 국정원도 모자라…軍도 김미화·공지영 비방물 제작)
SBS에 따르면, 지난 2012년 김미화는 천안함 2주기를 맞아 추모곡을 헌정했다. 그러자 비난 댓글이 상당수 달렸다. 그해 총선을 앞두고, 인터넷엔 김미화가 북한 지시를 받아 추모곡을 만든 것처럼 비방한 게시물이 등장했다. 이를 제작한 것이 바로 국군 사이버사 심리전단이었다.
"(아이가) 우울증을 호소했는데 그 이유가 엄마의 사회적 활동으로 그런 댓글이 달리고, 그런 댓글을 아이들이 보고 얘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썼다는 거예요. 이런 것들을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은 정말 살인행위예요."
소설가 공지영은 26일 SBS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는 결국 여성들에 대한 공격이 큰 사회적 피해를 낳을 수 있는가하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철저한 수사를 촉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에 따르는 응당한 처벌은 물론, 국정원과 육군 등 이와 관련된 국가기관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참담하다. '여성 혐오'를 조장하고, 이를 확대재생산했던 것이 국가였다니. 이명박 정권의 폐해가, 이러한 기조와 행태를 그대로 계승한 박근혜 정권의 폐해가 이 정도다. 만연한 '여성 혐오'의 시대를 부추기고 조장한 것도 결국 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벌인 폐해다. 김미화의 바람처럼 블랙리스트 피해자는 물론 '여성 혐오'의 직간접 피해자들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서라도, '살인행위'는 이제 멈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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