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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서 한국 분위기에 빠져본다

호주 시골 생활: 한국 여행기(마지막 회)

등록|2017.09.30 16:52 수정|2017.09.30 16:52

▲ 목포는 항구다. 노래 가사를 실감할 수 있는 항구 모습 ⓒ 이강진


호젓한 호주 시골에 익숙해서인지 복잡한 서울에서 벗어나고 싶다. 기차 여행을 생각한다. 기차로 끝까지 갈 수 있는 곳이 어딜까. 목포가 눈에 들어온다. 아는 사람이 없어 더 끌린다. 목포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목포 방문은 처음이다.

안락한 의자에 몸을 맡기고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고층아파트가 즐비한 대도시를 서서히 벗어난다. 논밭이 보이고 정겨운 개울물이 흐른다. 그러나 중소도시에 가까워지면 어김없이 고층아파트가 나타난다. 택지를 조성하는 불도저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개발에는 끝이 없어 보인다. 

목포 종착역에 도착했다. 대기실에 있는 관광안내소를 찾아가 숙소와 가볼 만한 곳을 문의한다. 나이 지긋한 여직원이 관광지도에 숙소와 볼거리가 있는 곳을 볼펜으로 표시해 준다. 목포는 작은 도시라 택시를 타도 요금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도 곁들인다.

역전에 줄지어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를 타고 평화광장으로 향한다. 나이 지긋한 택시 기사는 목포를 처음 방문한다는 나에게 목포를 소개한다. 지금은 육지가 되었다는 삼학도를 시작으로 차창 밖을 가리키며 관광안내원 이상으로 설명해 준다.

목포는 인구가 늘지 않는다는 푸념도 한다. 다른 도시에 비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치적으로 푸대접받은 지역이라는 서운함을 숨기지 않는다. 개발되었으면 경제가 좋아지고, 경제가 좋아지면 인구가 늘어나 대도시로 발전했을 것이라는 논리다.

숙소를 정하고 평화광장으로 나온다. 바다 앞으로 넓은 산책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산책길을 걸어 택시 기사가 소개해준 갓바위에 도착했다. 바다와 바람이 조각한 작품이다. 갓을 쓴 사람을 연상하는 모습이라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호주에 이 조각품이 있다면 호주를 대표하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갓바위를 돌아 높지 않은 산에 오른다. 고층 아파트가 끝없이 줄지어 있다. 멀리 바다 건너편에는 큰 규모의 공장도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뒤처졌다고 하는 목포도 발전과 개발이라는 단어에 익숙한 도시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저녁을 먹으러 평화광장에 나오니 시끌벅적하다. 광장 한복판에 있는 무대에서 가수가 귀에 익은 가요를 부르고 관중들은 무대 앞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낮에 걸었던 널찍한 산책로에는 갖가지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 손을 잡고 걷는 연인들 그리고 대어를 꿈꾸며 낚싯대 앞에 앉아있는 강태공도 많다. 

바다에 설치러 분수에서 물을 뿜을 시간이 되었다. 호주거리에서는 맡을 수 없는 구수한 냄새에 취해 군밤 한 봉지 사 들고 관중석에 앉는다. 멀리 떨어진 바다 건너편 공장에서 나오는 불빛이 보인다. 관중석에 신문지 펼쳐 놓고 술상을 벌이는 그룹도 있다. 하늘에는 막 올라온 발갛게 물든 보름달이 분위기를 돋운다.

바다분수에서 힘찬 물줄기가 현란한 조명을 받으며 밤하늘을 배경으로 춤을 춘다. 귀에 익은 팝송과 한국 노래에 맞추어 조명과 물줄기의 모습도 달라진다. '춤추는 바다분수'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밤거리를 조금 더 걸어본다. 조금은 어수선하기도 하면서도 한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평화광장이다. 호주에 살면서 잊고 살았던 한국 특유의 분위기에 젖어 든다.

유달산에서 이난영을 만나다

▲ 유달산 산행에서 만난 귀여운 다람쥐. ⓒ 이강진


목포에 왔으니 유행가에서 수없이 들었던 유달산을 외면할 수 없다. 유달산을 찾아 나선다. 노적봉에 도착했다. 바위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다. 노적봉을 이용해 왜군을 격퇴한 이순신 장군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다. 

유달산을 조금 올라가니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이난영 가수의 기념비가 있다. 이별과 눈물로 대변되는 애절한 가사도 돌에 깊이 새겨있다. 한 많은 한민족의 피가 섞여 있어서일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일까, 기념비에 쓰인 글을 읽으며 걸음을 멈춘다.

잘 가꾸어 놓은 등산로를 따라 올라간다. 유달산에서 제일 높다는 일등바위에 도달했다. 큼지막한 목포 대교가 보인다. 크고 작은 섬들이 모여 있는 다도해도 한눈에 들어온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으나 시야는 깨끗하지 않다. 공해가 다도해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이 든다.

일등바위에서 심호흡하고 이등바위로 향한다. 두 번째로 높은 산봉우리다. 봉우리의 높고 낮음에 따라 일등과 이등으로 구분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등과 이등으로 등급을 매기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등바위를 떠나 등산로를 계속 걷는다. 둘레 길도 걷는다. 산행하는 많은 사람과 마주친다. 호주와 다른 점은 만나는 사람들이 무덤덤하게 지나친다는 것이다. 호주에서는 지나치는 사람과는 예외 없이 인사를 주고받느라 귀찮기까지 했는데...

하루 종일 걸었다. 유달산에 살다 철거한 주민을 기리기 위한 철거민 탑을 사진기에 담았다. 멋지게 가꾼 조각공원에서 잠시 쉬기도 했다. 호주 산행에서는 보기 어려운 술(동동주) 파는 가게, 할머니들이 정자에 모여 떠들썩하게 음식을 나누던 모습도 생각난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고 평화광장으로 나온다. 어제와 다름없이 바닷바람에 몸을 식히는 사람들로 붐빈다. 춤추는 바다분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현란한 조명과 물줄기로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삶이 넘치는 목포를 본다.

목포가 개발되지 않았다고 불평하던 택시 기사, 개발이 꼭 좋은 것일까? 이번 여행에 가지고 온 시집을 펼친다. 현대인을 비꼬는 시구가 눈에 들어온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더 모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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