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값에 해외여행... 자본이 부추긴 탐욕에 뒤통수 맞다
가이드 노동착취, 베트남에서 본 패키지 여행의 쓴맛 ④ (마지막 회)
▲ 석회암 지대인 하롱베이의 섬들은 침식으로 인해 곳곳에 커다란 구멍이 난 곳이 많다. 저 구멍이 깊어지면 석회암 동굴이 만들어진다. ⓒ 임은경
따지고 보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볼 것은 다 봤다. 현지 사정에 빠삭한 가이드만 졸졸 따라다니면 되었고, 우리를 위해 상시 대기한 버스를 타고 포인트만 콕콕 집어 돌아다녔으니까. 하지만 두 번 다시 이런 식의 여행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현지의 문물 속으로 들어가 현지인처럼 살아보고 그들의 삶과 일상을 체험하고 느껴보는 것이어야 한다. 한국 식당에서 밥을 먹고, 한국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오로지 인증샷을 찍기 위해 유명 관광지만 전력질주 식으로 찾아다니는 것이 무슨 여행인가. 그것은 '나도 여기 다녀왔다'하고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쇼일 뿐이다.
영어도 되지 않고 혼자 나설 용기도 없어서 도저히 자기 스스로 돌아다닐 수 없는 이들이나 기력 없는 노인들이 그래도 꼭 해외여행을 가보고 싶다면, 패키지 여행을 선택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젊고 체력과 용기가 되는 사람이 진정한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패키지 관광은 답이 아니다. 조금 귀찮더라도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고, 조금 고생이 되더라도 자신의 두발로 걸어 다녀야 한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다.
힘들여 어딘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흘린 땀,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발견한 맘에 쏙 드는 집밥, 때로는 길을 잃거나 예기치 못한 고생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문이 꽝꽝 닫힌 호텔이 아니라 조금 불편하게 부대끼는 민박집에서 사귀게 된 외국인 친구들, 그것이 진짜 여행이기 때문이다.
내 발로 찾아가는 고생, 거기서 흘린 땀, 그게 여행이다
언뜻 계산해 보니 우리 부부가 3일간의 패키지 여행에 쓴 돈이면 베트남에서 한 달 동안 머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저가 항공과 저렴한 숙소를 이용하고 큰 낭비 없이 알뜰하게 다닌다면 말이다.
현지에서 알아볼 경우 하노이에서 하롱베이까지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관광 상품은 50달러부터 있었다. 차량, 가이드비, 점심식사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쌀국수 등을 실컷 사먹고 다녀도 한 끼 식사에 2천 원 남짓이면 충분하고, 깨끗하면서도 하룻밤에 1만 원대로 저렴한 숙소도 얼마든지 있었다.
play
▲ 베트남 하노이의 36거리 중 불교용품점 거리 풍경 ⓒ 임은경
강요에 가까운 선택 관광과 쇼핑센터 방문도 불편했지만, 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여행이 주는 홀가분한 자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물건이었고, 가이드에게는 재빨리 통으로 처리해내야 하는 업무의 대상일 뿐이었다.
단체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무척 편리했지만, 사흘 내내 약장수 버스를 탄 기분이었다.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거나 이국의 정취를 느끼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이드는 잠시도 쉬지 않고 마이크를 잡고 떠들었다. 베트남의 역사와 문물을 설명해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쇼핑센터에서 판매하는 물건에 대한 홍보와 '부디 돈을 써주십사' 하는 읍소였다.
처음에는 정말이지 이 가이드가 사기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런 패키지 관광의 이면에는 뿌리 깊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지난 7월에 보도된 <오마이뉴스> 기사를 찾아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투어'라는 이름의 한국 여행사들은 사실은 비행기 티켓 판매 대행업체나 다름없단다. 우리가 처음에 구매하는 여행상품이 그렇게 쌀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숙박, 식사, 차량, 관광지 입장료 등 현지에서의 비용(그것을 '지상비'라고 한단다)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손해 떠안고 손님 받은 다음 '메꾸기', 혹독한 가이드 노동
우리가 현지에서 만나는 가이드들은 심지어 **투어 소속도 아니다. 그들은 현지 여행사(이들을 '랜드사'라고 부른다)에 소속되어 있다. 한국 여행사들이 비행기 티켓만 끊어서 손님을 보내면, 이들은 손해를 감수하고 손님들을 받는다. 그 다음 '메꾸기'가 시작된다.
'메꾸기'란 어떻게든 손님들이 선택 관광이나 쇼핑센터 구매를 하도록 유도해서 처음에 떠안았던 손실을 만회하는 것이다. 한국의 **투어에서는 선택 관광이나 쇼핑센터는 말 그대로 선택 사항일 뿐이라며 '대박 특가'로 여행객을 유혹한다. 하지만 사실은 손님이 선택 관광이나 쇼핑을 하지 않으면 가이드들은 노동의 대가조차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 '하루동안 평생 볼 오토바이를 다 본다'는 하노이는 오토바이의 천국이다. 수백 대의 오토바이가 자동차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다닌다. 비가 오면 저렇게 전용 덮개를 씌우고 탄다. ⓒ 임은경
그제야 비로소 여행 기간 동안 보여준 가이드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그의 가혹한 노동 조건이 그제야 너무 안쓰러웠다. 뭔가 우리가 모르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이러니 가이드는 어떻게든 손님이 돈을 쓰게 하기 위해 온갖 알랑방구를 뀌어야 하고, 바가지 씌우기는 기본이고 때로는 거짓말까지 불사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 결제한 금액이 싸든 비싸든 지상비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란다. 값이 비싼 여행 상품은 성수기라서 비행기 티켓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소위 '노 팁, 노 옵션'을 내거는 좀 더 고급 상품도 기본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패키지 관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옵션은 딱 둘 중 하나다. 끝까지 짠돌이, 짠순이로 남아 여행사의 악랄한 가이드 착취에 편승하거나, 가이드의 뜻대로 훨훨 지갑을 열어 '호갱님'이 되는 것.
그동안 여행은 내게 어떤 식으로든 삶에 대한 통찰과 깨달음을 주곤 했다. 돌아보니 이번 베트남 여행에서도 얻은 것이 없지는 않다. 우리 주변에서 누구나 쉽게 떠나곤 하는 패키지 여행의 실상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게 된 것. 그리고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의 상당 부분이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으리라는 것.
play
▲ 하노이 거리에 흔한 닭과 오토바이 행렬 ⓒ 임은경
싼값에 해외여행.. 자본이 부추기는 탐욕에 뒤통수 맞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즉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 막장드라마인 줄은 몰랐다. 패키지 해외여행은 명백한 자본의 노동 착취 위에 세워진 모래성이었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이것은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비슷비슷한 모순의 한 단면일 뿐일 것이다.
자본만 욕할 것이 아니다. 애초에 값싼 패키지 여행상품을 결제한 우리 모두가 사실은 대기업 여행사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심보로 출발했다. 내 돈은 적게 들이고 이익은 많이 보겠다는 탐욕 말이다.
1+1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에 혹해 지갑이 줄줄 새는 줄도 모르고 틈만 나면 대형마트로 달려가는 모습과 뭐가 다른가. 되도록 안 가려고 하지만, 가끔 부득이하게 대형마트에 갈 때가 있다. 그곳의 주차장 입구로 개미처럼 빨려 들어가는 차들을 보면 나는 늘 먼지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진공청소기가 떠오른다.
나와 남편은 앞으로도 종종 해외여행을 나갈 것이다. 여행이 주는 기쁨은 우리 삶의 큰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 일이 없는 한, 앞으로는 패키지 관광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내 두 발로 걷고, 내 노력을 들여 찾아보는 여행을 다닐 것이다. 때론 행복하고 때론 괴로운 여행의 달고 짠 시간들을 모두 천천히 맛보는 그런 여행 말이다.
▲ 일본에서 만들었다는 하롱파크의 화려한 내부 시설. ⓒ 임은경
▲ 성요셉성당 앞 콩카페는 커피도 맛있지만 오래된 소품을 사용한 인테리어도 감각적이다. 꼭 서울의 어느 카페에 온 듯 세련된 느낌이다. ⓒ 임은경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