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생물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북한 생물학자
일본인 저자 엔도 키미오가 쓴 원홍구·원병오 가족 이야기 <아리랑의 파랑새>
▲ <아리랑의 파랑새> 책표지. ⓒ 컵앤캡
경술국치(1910년)에 그는 23세의 청년이었다. 그 무렵 일본 유학을 했다. 그것도 관비 유학생으로. 그는 일본 유학 경험으로 일본말은 기본, 일본인들조차 기가 눌릴 정도로 일본에 대한 지식이 많았다고 한다. 일본을 향한 긍정적인 관심도 많았고, 일본인들과의 교류도 자연스러웠으며 빈번했을 것은 당연했다.
우리나라 1세대 조류학자이자 북한을 대표하는 생물학자인 원홍구 선생에 대한 간략이다. 여기까지 읽으며 '친일파' 또는' 매국노'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시대가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거나,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와 같은 구차한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이나 매국을 면죄 받으려했던 사람들의 환경이나 조건과도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홍구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친일' 혹은 '매국'이란 단어와 함께 발견되는 글은 없다. 그보다 조류학자(또는 북한의 조류학자), 생물학자. 원병오 부친. 찌르레기 등과 같은 단어(이름)들과 함께 그의 생애나 업적에 대해 설명한 글들이 대부분이다. 비록 사전적인, 그래서 거기서 거기, 비슷한 설명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식민지 백성으로서, 그것도 일본인 교사들 속에 끼인 조선인 교사로서 어느 정도는 일본의 요구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없는 것은 그가 당시 방치되었던 이 땅의 동식물들을 위해 헌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 곧은 지식인이었다는 방증일 것이다.
원홍구 선생이 한창 이상을 펼치던 1920~1940년대, '아무나 갖는 게 임자'식으로 조선의 유물들이나 동식물 등이 방치, 서양인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이 땅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일부 동식물들은 일본인들이 제멋대로 이름을 붙이거나 해석되고 있었다. 어떤 동식물들이 이 땅에 살아가고 있고 어떤 유물들이 있는지, 그 실태조차 명확하지 않은 때였다. 관련 학문 기초조차 없던, 아니 필요성조차 느끼는 사람들이 거의 없던 때였다.
이런 시기, 선생은 이 땅의 식물들과 조류 등과 그 생태에 뜻을 두고 연구, 그 기초를 만들었다. 선생이 당시 붙인 이름 그대로 불리는 것들이 많다고 한다. 현재 우리가 접하는 여러 동식물 이름에는 식민지 백성으로 외로운 길을 걸었던 원홍구 선생의 소명과 열정이 스미어 있는 것이다.
그가 죽은 것은 1970년. 한국전쟁 이후에도 북한의 독보적인 생물학자로 관련 많은 업적이 있다. 북한의 조류와 포유류와 파충류 관련 몇 권의 책과 수많은 논문들을 남기기도 했다. 그가 일제강점기에 이어 구축한 자료들은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과 러시아 등 아시아의 생물들과 생태 등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중요한 역할은 휴전 이후 폐쇄된 북한의 생물들을 연구 기록함으로써 그 생태를 알린 것. 그리고 마땅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 학자인 동시에 자연보호주의자였던 그에 의해 북한의 많은 지역들이 국가적 자연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고, 그가 요청한 여러 종의 조류나 포유류들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많은 제자들을 배출, 한국동란 전후 활동한 인사들도 많다는데, 그가 배출한 학자 중 가장 유명한 이름들은 석주명과 원병오. 그리고 정준택(북한)이다. 그중 우리나라 조류학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존재인 원병오 박사는 선생의 막내아들로, 선생이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 교사이던 1929년에 태어났다.
▲ 한국동란 중에 이산가족이 된 원홍구 일가의 생사를 서로에게 확인시켜준 것은 이 북방쇠찌르레기였다. 전쟁 전, 원홍구 선생과 함께 어린 원병오가 만났던 새이기도 하다. ⓒ 이용상
6·25로 원홍구 일가는 얼떨결에 이산가족이 된다. 원병오 형제들이 남한으로 피난하면서였다. 아버지처럼 조류학자가 된 원병오 박사가 1963년, 서울에서 연구용 가락지를 채워 날려 보낸 새 한 마리가 이듬해 평양에서 발견되어 서로의 생사를 알게 된다.
전쟁으로 분단이 된 한반도에서 이산가족이 생사를 확인한 최초의 사건으로 세계인들에게 알려져 큰 화제가 됐다. 당시 북한도 크게 보도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사건이기도 했다.
나는 모스크바에서 돌아가다 도쿄에 들른 원병오를 만날 수 있었다. 국제조류학회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의 가족 이야기를 쓰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지금까지 그는 계속 거절해 왔다. 그해 여름 일본 고등학교의 일본사 교과서 때문에 중국과 한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격렬한 항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유야무야하려는 세력이 커지면서 일본의 교과서 검정을 왜곡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또 다시, 그들이 일제강점기 때처럼 아시아의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아리랑의 파랑새>-마침내 펜을 들 수가 있었다. 나는 둘로 나뉜 한반도 사람들의 고통을 세계인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리하여 모두가 이 비극을 해결하기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 210~211 쪽에서.
이런 내용 등이 담긴 <아리랑의 파랑새>(컵앤캡 펴냄)는 원홍구·원병오 가족 이야기다. 1977년 어느 날, 동물학자로 오래전부터 학문 교류를 해온 저자(엔도 키미오)가 원병오 박사와 함께 낙동강을 답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원홍구 일가의 안주행, 일제강점기 교사로서의 삶과 조류연구, 원병오와 그의 형제들 이야기, 한국전쟁 전후 정황 등을 시대 순으로 들려준다.
원홍구·원병오 일가의 가족사 정도로 생각할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실은 책을 읽기 전 내가 그랬다. 좀 가볍게 읽을 책으로 선택한 책이기도 했다. 그런데 반갑고 고맙게도 그동안 원병오 박사 또는 조류 관련 이야기를 할 때 간단하게, 그것도 지극히 사전식으로 설명되곤 해 늘 아쉽기만 했던 원홍구 선생에 대한 참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일본 식민지화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과 비판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오전 중에 원폭을 떨굴 거라고 했다고!"
"라디오에서 속보라고 발표했다니까! 진짜야!"
"한반도 중앙부에 50발 정도의 원폭을 떨어뜨린다던데"
병오는 B-29가 머리 위를 날 때마다 목을 움츠렸다. 언제 원폭이 떨어질지 몰라 살아있는 기분이 아니었다. 트루먼 미국 대통령의 원폭투하 위협은 세계의 비난을 샀다. 영국 애틀리 수상은 워싱턴으로 날아와 명령 중지를 강하게 요청했고, 인도 및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도 반대했다. 트루먼은 높아져가는 비난에 결국 원자폭탄 투하 명령을 철회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연합군의 후퇴에 도망가는 사람들은 원폭투하의 소문이 진짜일 거라고 믿고 있었다. - 168쪽.
또한 놀라운 것은 북한에서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입장과 당시 평양을 비롯한 북한의 상황을 자세히 들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들을 다분히 알려주고 있는 책인 것이다. 9월 30일, 출판사(컵앤캡)에 전화를 했다. 추석을 앞둔 휴일이라 망설였으나, 짐작만으로 해소하지 못할 궁금한 것들 때문이었다.
▲ 평안도 안주 시절의 원홍구 일가. 왼쪽부터 원홍구와 아내, 4남 2녀의 자식들이다. 가장 어린 아이가 원병오다. 오른쪽의 아이를 안은 여자는 이웃이고 그 여픠 여자는 원홍구 집안일을 돕던 사람이다(책속 설명) 사진 한장 없이 서울로 피난 온 원병오 형제가 우연히 서울에서 사진 속 집안 일을 도와주던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형제에게 사진 한장 없음을 알고 건네준 귀한 사진이라고. 책을 통해 최초 공개라고 한다. ⓒ 출판사 제공
-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순수 일본인이 쓴 한국인 이야기. 그리고 일본인이 보는 일제침략과 한국동란, 흥미롭다. 신선하기도 했다.
"저자 엔도 키미오는 동물연구가로 일본에서 관련 여러 책을 냈다.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한반도 야생동물의 멸종 과정을 추적해 책으로 쓰기도 했다(<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이담북스, 2009), <한국의 마지막 표범>(이담북스, 2014) 등). 원병오 박사와는 1960년대부터 학문적 교류를 했고, 친분도 깊어 해마다 우리나라에 올 정도로 자주 왔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그가 한국동란이나 그로 인한 분단은 일제의 조선침략과 식민통치 때문이란 책임을 통감, 일제강점기와 한국동란 당시를 제대로 알릴 필요성으로 쓴 책이라고 한다.
원홍구 선생 일가의 이야기는 굵직한 사건들이 압축된 우리의 근현대사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런 원홍구 선생 일가에 대해 섬세하게 들려주는 동시에, 남북한 문제 그 당사자인 까닭에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들까지 매우 객관적으로, 그리고 사실적으로 들려준다. 일본인이라 가능할 그런 이야기들을 말이다. 이런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이념적인 문제 등으로 책 제목 고민이 많았다고). 1984년에 이미 일본에서 출간됐다. 그동안 우리의 정치상황이나 북한과의 문제 등으로 출판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 낯익은 이름이나 자료가 한정적인 원홍구란 인물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다.
"원홍구 선생은 북한을 대표하는 생물학자지만 우리나라 생물학사에도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한국전쟁 전후 세대 생물학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존재로 기억될 것이나 젊은 학자들에게는 아무래도 다소 낯선 이름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도 깊이 들어가다 보면 결국 만나게 되는 이름이다.
우리의 조류는 물론 생물들과 그 생태, 그 연구는 그가 기초한 자료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가 북한에서 생존하며 쓴 <조선 양서파충류지>, <조선 짐승류지> 같은 책들은 남한 연구자들도 어떻게든지(조총련 등을 통해) 구해 볼 정도로 중요하다고 한다. 그동안 원병오 박사 이야기를 하거나 할 때 사전식으로, 그것도 짧게 언급되었을 뿐. 이처럼 자세히 다룬 책은 이 <아리랑의 파랑새>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 원홍구 선생 일가 가까이서 본 것처럼 생생하다. 선생에 대해 얼마나 담았다고 생각하나.
"70%는 담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많이 담은 것 아닌가? 워낙 중요한 존재인데도 그가 북한에서 삶을 마무리했고, 그런 이유들로 지극히 기본적인 것들만 이야기되곤 했다. 게다가 휴전 이후 선생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북한이란 장치를 거치면서다. 많은 사실들이 묻히거나 사실과 달리 알려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다. 1960년대만도 일제강점기에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 많이 생존해 있었다. 이 책 때문에 선생이 배출한 제자들이나, 원홍구 일가나, 일제강점기와 6·25나 전후 당시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인터뷰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저자는 동물학자로 논픽션 작가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아리랑의 파랑새>(엔도 키미오 씀) | 이은옥 정유진 옮김) | 컵앤캡 | 2017-08-25 ㅣ정가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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