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최저임금 170불로 인상, 훈센 총리의 '당근책' 통할까
최대산업 유권자 표심잡기 위한 훈센 총리의 행보, 내년 7월 총선에 미칠 영향은?
▲ 봉제근로자들 앞에서 연설중인 캄보디아 훈센총리캄보디아 근로자 내년도 최저임금이 170불로 최종 결정됐다. ⓒ 박정연
캄보디아 최대산업인 섬유신발봉제기업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지난 10월 5일 열린 내년도 노사정 임금협상에서 금년 대비 11% 증가한 170불로 최종 확정됐다.
섬유신발봉제업은 관광산업과 더불어 이 나라 국가경제를 책임지는 버팀목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정부통계자료에 따르면, 연간 우리 돈 8조 원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로자 약 75만명이 일하며, 관련업종까지 따지면 최소 90만여 명이 종사하고 있다. 현지에 진출한 우리나라 봉제기업들도 40~50개에 이른다.
당초 고용주측은 162불 정부는 165불, 노조측은 170불 인상을 요구했다. 5일 열린 노사정임금협상 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165불이 확정짓고, 여기에 훈센 총리가 5불을 보태는 의례적인 방식을 통해 170불로 최종 결정했다.
금년도 최저임금은 153불이었으며, 지난 2012년 당시 최저임금이 61불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최저임금이 5년 만에 무려 150%나 인상된 셈이다.
▲ 내년 7월 총선을 대비 섬유봉제산업 근로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행보가 지난 8월부터 거의 매주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한 봉제공장 현장을 찾은 훈센총리의 모습. ⓒ 박정연
▲ 섬유봉제회사 근로자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대화에 나선 훈센총리의 모습 ⓒ 박정연
32년째 장기 집권중인 훈센 총리는 내년 7월 총선을 의식, 지난 8월부터 매주 전국 섬유봉제공장 근로자들과의 만남을 이어왔다. 지난 4일에는 한국기업이 운영하는 프놈펜소재 섬유봉제회사를 방문, 근로자들을 격려하고 이들과 점심식사도 함께했다.
총리는 또한 그동안 근로자들이 절반을 부담해온 의료보험비용을 내년부터 사측이 100% 부담토록 지시한 바 있다. 모든 근로자들이 프놈펜 시내버스를 앞으로 2년간 무료로 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고, 교통 및 주거보조비로 월 7불, 정규직 근로자들에 대한 인센티브로 10불을 추가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임신한 근로여성들에게는 출산장려차원의 보너스 지급약속과 더불어, 건물 임대주들에게는 임금 인상 때마다 이어져 온 집세 인상을 못하도록 권고했다. 뿐만 아니다. 수도세를 줄여주는 방식으로 단칸방 도시근로자들의 표심까지 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이 같은 선심성 공약과 행보는 내년 7월 29일 치러지는 총선을 대비하는 동시에 지난 2013년 총선이 끝난 후 야당과 함께 섬유봉제노조가 합세해 임금인상 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최소 5명의 시위 근로자들이 목숨을 잃었던 당시 전철을 되밟지 않으려는 사전차단 효과까지 함께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최저임금 인상, 내년 총선 앞두고 유권자 마음 잡으려는 포석?
이번 최저임금협상 결과에 대해 노조 측은 대체로 만족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봉제회사 근로자 소치엇(25)씨는 "기대했던 만큼 인상이 돼서 기쁘다. 훈센 총리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대외경쟁력이 크게 도전을 받게 됐다"며 우려감을 표시했다. 한 기업관계자는 "생산성이 베트남 등 주변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상태에서 가파른 임금인상이 원가상승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 이로 인해 해외 바이어들이 다른 나라로 거래처를 옮길 수도 있다"며 조바심을 냈다.
카엥 모니카 캄보디아섬유봉제협회(GMAC) 부사무총장은 <로이터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새로 인상된 최저임금은 국가 경쟁력 수준에도 맞지 않고, 일부 우리 회원사들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훈센 정부는 기업들의 불만을 의식한 듯 곧바로 당근책을 내놓았다. 수출기업들의 수출관리수수료(EMF)를 없애는 한편, 앞으로 5년간 선납 법인세를 유예해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훈센 총리는 한 지방 연설에선 "만약 너무 임금이 올라 외국기업들이 모두 떠나면, 국가경제는 물론이고, 우리 근로자들도 살기 힘들어진다"며 기업들의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모습도 보인 바 있다. 총선이 앞으로 10개월이나 남아 있지만, 미리부터 봉제근로자들뿐만 아니라 전체 유권자들의 표심까지 두 마리 토끼모두를 잡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 현지 기업 관계자들은 이번 임금인상에 불만을 표시하며, "가파른 임금인상으로 인해 기업경영이 더욱 어렵게 되었을 뿐더러 임금대비 낮은 생산성 때문에 대외 경쟁력 측면에서 갈수록 뒤쳐지고 있다"며 우려감을 표했다. ⓒ 박정연
이렇듯 전체 유권자들에게는 다양한 선심성 선물보따리를 풀어놓는 등 당근책을 펴고 있지만, 훈센 총리는 유독 자신의 정적들에게 만큼은 사정없이 칼날을 휘두르며 극단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총리는 지난 9월 3일 미국 CIA와 정부 전복을 공모했다는 협의로 켐 소카 제1야당(CNRP) 총재를 한밤중 긴급구속시킨 데 이어, 정부를 비판해온 독립언론 <캄보디아데일리>를 세금체납을 이유로 폐쇄시키는가 하면, 여당주도로 개정된 선거법을 빌미로 삼아 야당을 해체시키겠다는 협박까지 한 상태다.
이도 모자라 국가전복 음모에 남은 야당 지도부가 연루되어 있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언제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전체 야당의원 55명중 무려 절반에 해당되는 의원 22명과 야당 총재의 두 딸도 이미 해외로 도피한 상태다. 그중에는 여성 부총재로 대중적 인기가 높은 무 소쿠아 의원도 포함되어 있다. 이 야당국회위원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정부고위관료로부터 다음주 중 체포될 것이란 경고메시지를 받은 후 지난 3일 급거 미국으로 떠났다.
이로써 야당은 남은 구심점마저 모두 잃고만 상태다. 내년 선거는 여당만 단독으로 치르는 선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앞으로 최소 10년은 더 집권하겠다는 훈센총리의 의지는 전혀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총리의 유권자표심잡기 행보는 내년 7월 총선 전까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참고로, 월 최저임금 170불로 인상은 내년 1월부터 적용된다.
▲ 섬유봉제회사 근로자들과 함께 한 훈센총리야당이 해산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내년 7월 총선 승리를 염두에 둔 캄보디아 최장기 집권자의 유권자 표심잡기 행보는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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