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경력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본 문제점
[주장] 반복되는 타워크레인 사고, '깜깜이 신호수'부터 바꿔야... 신호수 국가 자격증 제도 필요
▲ 지난 5월 1일 오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 사고로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진은 2일 오후 사고현장의 휜 크레인. ⓒ 윤성효
잊을 만하면 건설 현장의 대형 타워크레인이 넘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오늘(10일)도 경기도 의정부시 낙양동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철거작업 중이던 타워크레인이 쓰러졌다. 이 사고로 작업 인부 3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처럼 타워크레인 사고는 여러 사람의 생명까지 빼앗아 가는 것은 물론, 엄청난 물적 피해를 입힌다. 지난 5월 YTN 보도에 따르면, 전국의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타워크레인은 5800여 대에 이른다. 그런데 일선 건설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을까?
삼면의 사각지대, 100% 신호수 무전에 의존해 작업하지만...
어느 현장이건 타워크레인을 원활하게 사용하려면 경험이 풍부한 타워크레인 조종사뿐만 아니라 유능한 신호수가 있어야 한다. 신호수는 한쪽에서 물건을 잘 매달아 주고 필요한 곳에서 곧바로 되받아 주는 역할을 한다.
이번에 일어난 의정부 사고의 경우 고용노동부와 경찰이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 사고 원인을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난 5월 1일 일어난 거제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 사고의 경우, '소통의 부재'가 사고 원인이었다. 신호가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현재 건설 현장에서 이런 업무를 맡는 사람은 신호를 전문으로 하는 이가 아닌 경우가 많다. 흔히 알고 있는 철근, 목수 반장이나 현장의 팀장들이 무전기로 대충 신호수 역할을 한다. 이마저도 자신의 작업을 위해 마지 못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전문성이 극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은 신규 현장일수록 더욱 심각하다. 신호수의 경험이 부족한 것은 둘째 치고라도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어떤 식으로 무전 신호를 보내야 하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어떤 이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를 향해 "여보세요!"라고 말한다. 그리곤 마치 전화를 받는 것처럼 자기 귀에다 무전기를 대고 기다린다. 이런 사람은 보나마나 완전 초보다.
신호를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겐 무전기를 건네주지 말아야 하고, 또 잡지도 말아야 한다. 아무런 요령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신호를 보냈다간 뜻하지 않은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사 초기라면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지정된 신호수에게 맞춤 교육을 몇 차례 시도하면 어느 정도 작업이 가능하다.
그러나 건설 현장의 특성상, 자신과 관련이 없는 분야의 일은 신호를 잘 안 해주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각 분야별로 신호수를 한 명씩 지정하여 작업을 진행하지만, 그런 중요한 사람이 수시로 그만두고 새로 충원되는 변수가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매번 신호수 교육을 시키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시각으로는 건물 층수가 더 높이 올라 갈수록 잘 보이지 않는 곳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타워크레인은 신축 중인 건물 외벽에 가까이 세워져 있다. 그러므로 조종석에서 훤히 보이는 곳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마저도 꽤 높은 곳에 떨어져 있다 보니 신호수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외 나머지 삼면의 사각지대는 100% 신호수가 휴대한 무전기 신호에 의존해 가며 작업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신호수가 제대로 된 신호를 전달하지 못하게 되면 어찌 될까.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이어지고 있는 고공 작업 중에 단 한 차례도 신호수의 실수가 있어선 안 된다. 어느 곳이든 공사현장 바로 옆 인도엔 많은 행인과 자동차가 수시로 지나다닌다. 그런 곳에서 유능하지 못한 신호수가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작업 신호를 보낸다면 100%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현실이 이런데, 무수히 많은 건설현장에서 아직도 신호를 잘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등을 떠밀려 타워크레인 신호 업무를 맡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종사의 손발이 되어주는 신호수, 아무나 맡긴다니
▲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지난 5월 1일 오후 타워크레인 붕괴사고가 발생했다. ⓒ 경남소방본부
타워크레인은 사각의 철재 기둥 위에 얹혀 있는 거대한 철 구조물이다. 공중에 설치된 타워크레인 조종석을 기준으로 했을 때 뒤쪽 구조물 끝부분엔 사각형 모양의 무거운 콘크리트가 몇 개씩 얹혀 있다. 콘크리트 수량은 매번 조금씩 달라진다. 콘크리트 블록이 뒤에 얹혀 있는 이유는 앞쪽에 있는 붐의 어느 위치에서나 정해진 중량물을 보다 안정적으로 들어 올리도록 밸런스 역할을 해주기 위해서다.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손과 발이 되어 주는 신호수의 역할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신호수는 운반하고자 하는 물건을 꼼꼼하게 잘 매단 뒤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들어 올리라는 무전 신호를 보내야 한다. 타워크레인 조종사 역시 신호수의 지시대로 호이스트(무거운 물체를 상하로 이동시키는 데 사용하는 장치) 상승 레버를 최대한 천천히 작동시켜야 한다. 신호수는 도중에 들어 올리려고 하는 물건의 정중앙에 훅이 위치해 있는가를 확인하고, 잘못됐을 때는 언제든 정지 신호를 보내 바로 잡아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고 함부로 물건을 들어 올렸다가는 큰 사고를 불러 올 수도 있다. 적게는 몇백 Kg에서 수십 톤까지 나가는 물건이다. 만약 신호수가 실수라도 하게 되면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 갑자기 중량물이 움직일 수도 있다.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원칙을 무시하고 작업을 진행하면 신호수는 물론 그 근처에서 함께 일을 거들고 있는 사람까지 순식간에 협착 또는 압착 사고를 당할 수 있다. 경험이 없는 신호수는 타워크레인으로 이동해야 할 물건과 해선 안 될 물건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서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일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훅에 매달 중량물에 비하여 줄걸이용 와이어나 샤클(체인 등의 연결에 쓰는 경철구 일종)이 규정에 미달해도 그냥 매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작업 도중 긴박한 상황이 발생할 때 대처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늘 신경 쓰고 있다고 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사각지대에선 힘들다. 미숙하더라도 전적으로 무전기를 갖고 있는 사람의 신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타워크레인은 그 어떤 장비보다 정교하고 예민한 기계다. 그래서 성격이 차분한 사람이 타워크레인 조종 레버를 잡아야 훨씬 더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매번 빈 훅이 힘을 받아 물건이 바닥에서 살짝 떠오를 때까지는 최대한 저속으로 들어 올려야 한다.
위로 올려야 할 물건이 타워크레인 운전석에서 가까우냐 머냐에 따라서 상당한 시간 차이가 생긴다. 앞쪽 붐 전체가 마치 낚시대의 끝에 물고기가 매달려 있는 것처럼 되기 때문이다. 인양하고자 하는 물건의 무게만큼 자연스럽게 밑으로 숙여진다. 물건의 중량이 많이 나가는 것을 들어 올릴 땐 타워크레인 기둥도 앞으로 조금 당겨지면서 앞쪽 붐 끝 부분은 최대 2미터까지 숙여진다.
그러므로 타워크레인 조종사와 신호수는 물건이 땅에서 살짝 떠오를 때까지 매번 그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지 않고 처음부터 빠른 속도로 물건을 들어 올리게 되면 50톤 이상 나가는 타워크레인 상부 전체가 갑자기 앞으로 당겨지게 된다. 또 그와 동시에 붐이 밑으로 빠르게 숙여지면서 장비가 심하게 흔들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와 반대로 공중에서 고속으로 물건을 내릴 때에도 땅바닥에 닿기 몇 미터 전부터 속도를 충분히 줄여서 매우 느리게 닿도록 신호를 보내야 안전하다. 이렇게 하지 않고 고속으로 땅바닥에 물건이 닿도록 신호를 보내면 타워크레인 상부 전체가 뒤로 넘어가며 앞 붐이 물건을 매달 때 숙여졌던만큼 위로 튀어 오르게 된다.
이때 심한 충격을 받게 된 타워크레인은 앞뒤로 계속 흔들리면서 쉽게 멈추질 않는다. 타워크레인은 이런 식으로 흔들리게 되면 끝내는 약한 부위의 볼트가 절단되어서 중심을 잃고 밑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그뿐 아니라 타워크레인 기사는 이상한 소음이 들리거나 장비가 조금씩 흔들릴 때마다 무슨 일인가 하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어떨 땐 자신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걸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사고를 미리 예방하기 위해 신호수의 충분한 사전 지식과 숙련도가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지금 비전문 신호수들이 전국의 건설현장을 누비고 있다.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타워크레인 사고가 계속 이어진다.
국내 건설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을 대체할 만한 효율적인 중장비는 아직 없다. 예전보다 층수가 훨씬 더 높이 올라가고 갈수록 규모가 큰 현장이 많아지기 때문에 타워크레인의 수요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신호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타워크레인 신호수 국가 자격증 제도를 하루빨리 신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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