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죽어갈 때, 당신들은 무얼했나?
[공영방송파업연대기고] 정미정 광운대학교 강사
▲ 지난 2014년 4월 16일 오후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승객에 대한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일흔 한 명이야. 사회 보호막이 되어야 할 사람들 중 누구 하나라도 눈 똑바로 뜨고 있었으면 죽지 않을 목숨이. 우리도 그 보호막이었다."
이건 드라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아르곤>에서 건물이 붕괴되어 사람들이 죽고 다쳤던 사건에 대해 한 기자가 했던 말이었다.
일반적으로 드라마는 세상을 투영한다. 이 드라마가 말하고 싶었던 현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살아온 세상이다. 실제 세계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 드라마에서 픽션으로 다뤄진 세상은 오히려 지나치게 축소되어 있었다. 현실 이상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힘들 정도로 우리 세상은 그 어떤 픽션보다 끔찍했다.
드라마 속 기자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 보호막이었다'. 공영방송. 당신들이 보호막이었다. 보호막이 없는 세상에서 약한 자들은 계속해서 죽어갔다. 죽어가고 있을 때 당신들은 무엇을 했나.
국가가 국민에 대한 생명안전 보장을 실패했을 때, 당신들은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한 축으로 침묵하고 협력하는 쪽을 택했다. 지난 시간 동안 발생했던 수많은 불행한 사태는 모두 당신들의 책임방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 슬픈 배보다, 당신들은 먼저 침몰해있었다. 아이들이 그렇게 죽었을 때만이라도 당신들은 달랐어야 했다. 힘 있는 자들이 무서워서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더라도 그 슬픔만은 담아냈어야 했다.
싸우고 다치고 쫓겨나고. 수많은 기자들이 애를 써왔던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회사의 노동자들도 파업을 하고 해고를 당했을 때 당신들처럼 돌아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밥벌이를 위해 굴종하고 참아내고 버티다가 목숨을 걸고 파업을 하고 해고되고 차가운 거리에서 지쳐간다. 당신들의 파업에 많은 국민들이 관심이 없다고, 불편함조차 느끼지 못한다고 억울해 할 일이 아니다. 그 누구의 파업도 당신들의 그것처럼 관심을 받지 못한다.
왜 더 다치지 않았는가. 나쁜 사람이 사장이었고, 나쁜 사람들이 이사여서. 나쁜 사람들이 간부여서 시키는 대로 기사를 썼던 건가. 왜 더 싸우지 않았는가.
이번 파업으로 사장이 물러나고 이사진이 교체된다면 우리 공영방송은 보호막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영방송 거버넌스가 지금보다 나은 방향으로 개선된다면 우리 공영방송이 훨씬 좋아진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좋은 사람이 사장이 되고, 좋은 사람이 이사가 되고, 좋은 사람이 간부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각 정치세력별로 이사들을 추천하는 구조가 존속할 것이고 그들은 각자의 전문성이나 가치관 보다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자신을 지명한 정당에 충성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역할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이 천박한 수준을 끌어올리지 않는 한 그 어떤 제도도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애초에. 완벽한 시스템이란 불가능한 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파업을 지지한다. 과거의 일에 대한 반성과 뉘우침과 절망만으로 오늘을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한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어떤 지점에서는 시작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시작이 이번 파업이라고 믿고 싶다. 그렇지만 침몰한 언론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은 오랜 시간과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 슬픈 배를 바다 위로 올려 내는 데는 거의 3년이 걸렸다.
수많은 약한 자들이 보호막 없이 광장으로 나가 변화를 일구었다. 이제 당신들의 차례이다. 스스로를 입증하라.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해라. 길고 외로운 싸움이 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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