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국민이 죽어갈 때, 당신들은 무얼했나?

[공영방송파업연대기고] 정미정 광운대학교 강사

등록|2017.10.16 15:48 수정|2017.10.16 15:48

▲ 지난 2014년 4월 16일 오후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승객에 대한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일흔 한 명이야. 사회 보호막이 되어야 할 사람들 중 누구 하나라도 눈 똑바로 뜨고 있었으면 죽지 않을 목숨이. 우리도 그 보호막이었다."

이건 드라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아르곤>에서 건물이 붕괴되어 사람들이 죽고 다쳤던 사건에 대해 한 기자가 했던 말이었다.

일반적으로 드라마는 세상을 투영한다. 이 드라마가 말하고 싶었던 현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살아온 세상이다. 실제 세계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 드라마에서 픽션으로 다뤄진 세상은 오히려 지나치게 축소되어 있었다. 현실 이상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힘들 정도로 우리 세상은 그 어떤 픽션보다 끔찍했다.

드라마 속 기자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 보호막이었다'. 공영방송. 당신들이 보호막이었다. 보호막이 없는 세상에서 약한 자들은 계속해서 죽어갔다. 죽어가고 있을 때 당신들은 무엇을 했나.

국가가 국민에 대한 생명안전 보장을 실패했을 때, 당신들은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한 축으로 침묵하고 협력하는 쪽을 택했다. 지난 시간 동안 발생했던 수많은 불행한 사태는 모두 당신들의 책임방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 슬픈 배보다, 당신들은 먼저 침몰해있었다. 아이들이 그렇게 죽었을 때만이라도 당신들은 달랐어야 했다. 힘 있는 자들이 무서워서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더라도 그 슬픔만은 담아냈어야 했다.

싸우고 다치고 쫓겨나고. 수많은 기자들이 애를 써왔던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회사의 노동자들도 파업을 하고 해고를 당했을 때 당신들처럼 돌아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밥벌이를 위해 굴종하고 참아내고 버티다가 목숨을 걸고 파업을 하고 해고되고 차가운 거리에서 지쳐간다. 당신들의 파업에 많은 국민들이 관심이 없다고, 불편함조차 느끼지 못한다고 억울해 할 일이 아니다. 그 누구의 파업도 당신들의 그것처럼 관심을 받지 못한다.

왜 더 다치지 않았는가. 나쁜 사람이 사장이었고, 나쁜 사람들이 이사여서. 나쁜 사람들이 간부여서 시키는 대로 기사를 썼던 건가. 왜 더 싸우지 않았는가.

이번 파업으로 사장이 물러나고 이사진이 교체된다면 우리 공영방송은 보호막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영방송 거버넌스가 지금보다 나은 방향으로 개선된다면 우리 공영방송이 훨씬 좋아진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좋은 사람이 사장이 되고, 좋은 사람이 이사가 되고, 좋은 사람이 간부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각 정치세력별로 이사들을 추천하는 구조가 존속할 것이고 그들은 각자의 전문성이나 가치관 보다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자신을 지명한 정당에 충성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역할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이 천박한 수준을 끌어올리지 않는 한 그 어떤 제도도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애초에. 완벽한 시스템이란 불가능한 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파업을 지지한다. 과거의 일에 대한 반성과 뉘우침과 절망만으로 오늘을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한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어떤 지점에서는 시작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시작이 이번 파업이라고 믿고 싶다. 그렇지만 침몰한 언론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은 오랜 시간과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 슬픈 배를 바다 위로 올려 내는 데는 거의 3년이 걸렸다.

수많은 약한 자들이 보호막 없이 광장으로 나가 변화를 일구었다. 이제 당신들의 차례이다. 스스로를 입증하라.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해라. 길고 외로운 싸움이 되더라도.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