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입은 '남성 팬티'... 이것은 신세계다
SNS에 입소문 난 남성 팬티 사서 입어봤더니... 여자 팬티도 편하게 만들면 안될까?
▲ 한 의류매장의 남자 속옷 진열대 ⓒ 남지우
어느 여름 날, 편하고 짧은 면바지를 입고 밖에 나갔는데 이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뭐야~ 아빠팬티 입고 왔냐~"
친구의 장난스러운 놀림이었지만, 실제로 내 바지는 아빠 팬티(이른바 '트렁크')의 생김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원한 면 재질에, 과하지 않고 적당히 들어간 패턴, 펑퍼짐한 사각형, 고무줄 허리... 뭐, 아빠 팬티를 빌려 입어본 적은 없지만 비슷한 생김새 덕분에 착용감도 엇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일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올해, '팬티 담론'이 소셜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여성의 몸을 옥죄는 여성용 속옷'에 대한 의심을 브래지어가 온몸으로 받아내던 와중에, 여성용 팬티에 까지 혐의 입증에 대한 요구가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 이용자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성용 팬티는 기본적으로 사이즈가 너무 작다', '사타구니 사이를 조여서 불편하다', '탄력적인 재질의 팬티는 엉덩이를 다 덮지 못하고 4등분 낸다'는 등. 여성용 팬티를 입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민망하게 들릴지 몰라도, 쫀쫀한 삼각팬티와 함께 십수년을 보내온 이들은 그 불평을 순식간에 이해할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친구의 놀림이 생각났다. 솔직히 면 반바지나 아빠 팬티나 크게 다르지 않게 생겼는데, 한번 입어보면 안되나? 그 길로 한 SPA 브랜드 매장으로 달려갔다. 한 쪽 벽면에 남성용 팬티가 가득 걸려있었다. 브랜드 라인별로, 기능성 종류별로, 다양한 제품들이 있었으나, 남성용 팬티를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앞섬의 생김새'였다. 남성 성기가 닿는 부분이 트여있는 '개방형'과 그렇지 않은 '기본형'이 있었다. 남성들에게는 전자의 것이 더 편할 것 같았지만, 내게는 그리 필요한 기능은 아닌 듯해 기본형 제품을 구입했다.
이른바 '아빠 팬티'의 대명사인 '트렁크'와, 탄력적인 재질의 '드로즈', 그리고 여성용 팬티와 닮은 '삼각 브리프' 등의 종류가 있었는데, 치마를 즐겨 입는 내게 트렁크는 영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었다. 나는 치마를 입을 때 입는 속바지와 비슷하게 생긴 네이비 색상의 '드로즈'를 택했다.
야심차게 남성용 팬티를 사들고 집에 가서 샤워를 했다. 삼각 팬티에 온 생을 바쳐오다가, 사각 팬티에 다리를 넣으려니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됐다. 착장을 완료한 순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헉, 이것은 신세계다.
생에 처음 입어본 남성용 팬티, 나는 놀랐다
▲ 트위터 등에선 같은 브랜드 여성용 제품보다 남성용 제품이 더 편하다는 이용자들이 많다. 사진은 여성용 팬티가 진열된 모습. ⓒ 오마이뉴스
블라우스와 짧은 치마를 입고 집을 나섰다. 원래 스커트를 입을 때는 속바지를 입는데, 밑에 드로즈를 입고 있으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 자체가 팬티 겸 속바지의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면 팬티 위에 속바지를 덧대어 입는 느낌은 그리 유쾌한 종류의 것이 아닌데, 그 어색함으로부터 해방된 기분이었다. 남성 팬티 위에 스타킹을 신어도 불편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남성 팬티는 기본적으로 성기가 닿는 부분의 공간을 넉넉하게 측정해 제작한다. '외부 돌출형 성기'를 지닌 남성들의 선천적 구조를 고려한 디자인인데, 반대로 돌출형 성기를 지니지 않은 여성들의 팬티는 그렇게 제작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여성 팬티는 성기 표면에 최대한 착 달라붙을 수 있게 제작된다.
하지만 이 지점은 여성들의 최대 불만 지점이다. 여성기의 소음순의 크기, 모양이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다. 소음순이 크거나 길면 충분히 외부로 돌출될 수 있고, 이것을 팬티가 압박하면 통증을 유발한다. 그런 여성들에게 남성 팬티는 아주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성기가 위치한 부분의 공간이 넉넉하게 제작되어, '성기가 숨을 쉰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다만, 허벅지를 감싸는 밴드의 느낌은 조금 아쉽다. 사각 팬티를 처음 입어봐서 아직 내 몸이 적응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사타구니에서 허벅지를 연결하는 그 부분까지 닿는 남성용 팬티의 느낌은 초심자들에게는 어색하게 다가올 수 있음을 유의한다.
잠잘 때는 드로즈보다 트렁크!
남성 팬티가 지닌 극도의 편안함은 잠자리에서 그 빛을 발휘했다. 잠잘 때 하체의 편안한 상태를 중시하는 나는, 바지보다 원피스 잠옷 입고 자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 원피스 잠옷과 남성 팬티는 가히 '찰떡 궁합'을 이루었다.
특히나, 잠을 잘 때는 드로즈보다 더 편한 트렁크를 입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드로즈는 트렁크에 비해 피부에 밀착되기 때문에, 일상에서 치마, 스타킹 등 여성들이 주로 입는 아이템과 함께 입기 좋다. 반면 드로즈보다 넉넉하고 펑퍼짐하게 제작되는 트렁크는 실내에서 착용하기에 무리가 없고, 압박이 훨씬 덜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만 생리 기간에는 남성 팬티를 입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패드형 생리대를 사용하는 여성들은, 팬티에 생리대를 붙여야하기 때문에 남성용 사각팬티는 마땅치 않다. 또한 생리대가 움직이면 안 되기 때문에, 그 기간에는 생리대를 고정할 수 있는 팬티를 택하는 것이 좋다.
여성들은 생리기간에 잠을 잘 때, 혹시라도 생리혈이 샐까 몸을 마음대로 뒤척이기조차 힘들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압박을 주는 여성용 팬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성용 팬티 중에서도 '생리 전용 팬티'가 있는데, 이는 기존의 팬티보다 더욱 탄력있는 소재로 제작되어 생리대의 고정을 돕는다. 이 기간에는 편안한 남성 팬티는 잠시 넣어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성(異性)의 독점을 빼앗아보자
▲ 남성 팬티를 입어본 순간, 나는 그 편안함에 놀랐다. ⓒ 오마이뉴스
여성용 팬티에 대한 의문을 갖고, 남성 팬티를 구매하고, 남성 팬티를 생에 처음으로 착장하기까지의 과정, '그게 뭐라고' 왜 한 번도 시도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각 팬티는 사각 팬티다. 단지 '남성용'이라 명명하는 그것이, 우리가 손댈 수 없게 만든 장애물이었을 뿐이다.
남성과 여성, 그리고 제 n의 성이 서로 다른 생물학적 특성을 지닌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하지만 '남성용' 혹은 '여성용' 착장 구분은, 생물학적 차이에 대한 사려 깊은 반영이라기보다는 발작적인 사회화의 반영이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유두가 있지만, 여성의 것만 가리라고 명령하는 사회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애초에 '생물학적 차이'는 명목일 뿐, 그 어떠한 효과도 발휘하지 못한다.
'여성 전용'과 '남성 전용'은 그래서 위험하다. 여성 전용 브래지어는, '유두 가리개'의 기능을 넘어 가슴을 풍만하게 연출하기 위한 코르셋이 되었다. 인공의 장치가 덧대지면서, 속옷은 속옷 그 자체로 남지 못했다. 여성용 팬티도 이런 맥락에서 같은 의심을 공유하게 됐다. 여성 팬티는 지나치게 작고, 압박적이며, (쓸데없는 레이스-리본 장식 때문인지는 몰라도) 더 비싸다. '성기를 청결하고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입는 속옷인 팬티는 그저 그 기능만을 수행하면 되는데, '여성 전용' 팬티는 그러지 못했다. 더 큰 억압과 불편함을 야기했다.
'여성용 속옷'을 벗어던지는 결심을 환영한다. 결심 그 자체는 페미니즘 운동의 연장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저 우리 몸을 옥죄고 있었던 불편함을 이제야 알아채고, 그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당연한 욕망일 수 있다. 마치 우리가 '숨을 쉰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숨쉬기가 불편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자각하는 데엔 페미니즘 서사의 공이 컸다. 페미니즘 정신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에 기반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입어왔던 저 리본 달린 조그만 팬티. 그것을 한 번 벗어볼까라는 명랑한 호기심을 갖는 것 자체가, 내가 써내려가는 페미니즘 서사의 시작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성용 팬티에도 삼각이 있듯이, 누군가에게는 이 형태가 편하게 느껴질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렇다면 더욱이 성별을 구분하는 팬티가 불필요하다 생각했다. 우리가 고려할 것이 고작 '삼각형이냐, 사각형이냐'라면, '여성용' '남성용'이라는 말이 추방되어도 우리 세상에는 그리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