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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가끔 하늘을 마시자

빠르게 가고 있는 그대, 행복하신가요?

등록|2017.10.24 14:16 수정|2017.10.24 14:16

▲ 문득 고개 들어 보면 손에 잡힐 듯 파아란 가을 하늘이 다가온다 ⓒ 임영열


늘 그렇듯이 도시의 삶은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지 못한다. 지난여름 치열하게 살았던 삶의 흔적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벌써 계절은 가을의 마지막 절기,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을 지났다. 상강은 24절기 중 18번째 절기로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寒露)와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立冬) 사이에 있는 절기이다. 양력으로 10월 23~24일경부터 약 보름간이 상강의 시기이다.

이 시기가 되면 단풍이 절정에 이르며, 국화도 활짝 피는 만추의 계절이다. 가을의 쾌청한 날씨가 이어지는 대신에 밤의 기온은 매우 낮아지는 때이다. 일교차가 큰 탓에 수증기가 지표면에 엉겨 서리가 내리며 얼음이 얼기도 한다. 올해도 방송에서는 설악산에 상고대가 피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여름 동안 기세를 떨쳤던 풀들은 더 이상 뻗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는 겨우살이 풀들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이때쯤 옛 조상들은 풍류와 단풍놀이를 즐기며 국화주와 국화차·국화전을 만들어 먹는 전통이 있었다. 이러한 풍습들은 지금도 전해져 내려와 많은 사람들이 이 시기에 여행을 떠난다. 이처럼 상강은 가을의 절정을 만끽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을의 끝자락이 멀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시간 이기도 하다.

▲ 무등산 억새, 가을에는내면에서 우러나는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알갈 하고 있다. ⓒ 임영열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도시의 삶을 핑계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도 시작도 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계절을 잃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문득 고개 들어보면 손에 잡힐 듯 파아란 가을 하늘이 있음을 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추(反芻)해 볼 때이다.

죽기 살기로 앞만 보고 달리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가을 속으로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 가을에는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억새들이 일갈하고 있지 않은가. "외부로 열린 문을 닫으면 내면의 뜰이 넓어진다"는 박범신 작가의 말이 가슴을 치고 지나간다.

빠르게 가고 있는 그대, 행복하신가요. 가을의 너른 품에 안겨 가끔은 하늘의 생명수를 마시자!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박두진의 시 <하늘> 전문. 박두진 시집 <해> 중에서. 1949

▲ 박두진 시집 <해> 1949. 청만사 초판 ⓒ 상현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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