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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천사'가 기자에 1000만 원 건네며 막으려 한 기사

'제2 노벨상' 만드는 이종환 삼영화학 명예회장, 다시 고소당한 까닭은?

등록|2017.10.25 21:02 수정|2017.10.25 21:02

▲ 관정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의 자서전 '정도' 3판. ⓒ 안홍기


두 시간이 넘어 대화가 마무리될 무렵, 95세의 명예회장은 배석했던 측근들을 물리고 <오마이뉴스> 기자 2명과 마주 앉았다. 잠시 후 그는 가방에서 돈 뭉치를 꺼내 왼손에 들었다.

"받아라. 어른이 주면 받아."

100장 단위 띠로 묶여진 10만 원권 자기앞수표 한 다발, 1000만 원이었다. 기자들은 "절대 받을 수 없다"며 일어섰다. 명예회장도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돈다발을 거부하고 방을 나오는 기자들 뒤로 "내가 이야기한 거 그대로 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기사를) 안 쓰는 게 좋다"는 의미였다. 지난 9월 18일 오후 서울 명륜동 '관정 이종환 교육재단'(아래 관정재단)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은 기부천사, 기부왕으로 통한다. 평생 삼영화학·고려애자 등 중견기업을 일궈 모은 재산을 장학재단에 출연했다. 재단경영에서도 기업경영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 운영자산 8000억 원 규모로 키워 한 해 120억 원가량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지난 2012년엔 서울대학교에 600억 원을 기부해 최첨단 시설의 관정도서관을 탄생시켰다. 경남 의령군에 세워진 생가 일대를 둘러본 방문객들은 이 회장의 장학정신에 감복했다는 내용의 글을 방명록에 남기고 있다.

이 회장의 목표는 '1조 원 장학재단'을 이룬 뒤 세계적인 과학·기술 분야 공로상을 제정하는 것이다. 시행은 2019년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상금 규모로는 노벨상을 능가한다. '관정상'이 시행되면, 매년 상의 제정자로서 이 회장의 공로를 기리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듯 능력 있는 기업가이자, 기부가로 추앙받는 이 회장이 기자들에게 보도 무마를 목적으로 돈을 건네려 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이 회장을 찾아간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기부천사의 이미지와 달리, 두 여성이 제기한 이 회장의 도덕성 관련 문제, 형사 절차 중 거짓 증거를 내세워 처벌을 피한 의혹 등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서였다.

2013년 사기 폭행 미성년자강제추행 피고... 검찰, '혐의 없음' 결론

▲ 이종환 삼영화학 명예회장의 의령 생가에 걸린 사진. 이 회장은 장학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3월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했다. ⓒ 김종훈


지난 2013년 5월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사무실 청소와 이종환 회장 집 가사도우미로 일하던  A씨가 이 회장을 고소했다. 사기와 미성년자 강제추행 혐의였다. A씨는 이 회장이 성관계를 제안하면서 전세금을 내주고, 빚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자신의 초등학교 6학년 딸을 수차례 강제추행 했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수사결과는 '혐의 없음'. A씨가 스스로 고소를 취하했기 때문이다. 이후 A씨는 '사건을 크게 만들어 합의금을 많이 받아내기 위해 거짓말을 했고 딸에게도 거짓진술을 시켰다'고 증언했고, 이 때문에 무고죄로 벌금형 500만 원을 선고받았다.

A씨가 고소를 제기할 때, 이 회장과 가깝게 지낸 B씨도 함께 이 회장을 고소했다. B씨는 자신의 지하수 개발 사업에 투자해줄 투자자를 찾는 과정에서 이 회장을 만났고, 2013년 2월 이 회장의 고향인 의령에서 투자를 전제로 성관계를 맺게 됐다고 주장했다.

B씨는 "당시 이 회장은 '내가 네게 투자를 하려면 내 사람이 돼야 한다' '내 부인 역할 정도는 해줘야 내가 너를 믿지 않겠냐'고 말했고, 고심했지만 이 회장의 말을 믿고 100억 원 상당의 투자를 약속받았다고 생각해 성관계를 맺었다"고 말했다. B씨는 또 "이 회장이 아파트 소유권을 비롯해 채무 등을 대신 갚아줄 것처럼 거짓말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해 (약속을 믿고) 들어줬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회장은 투자를 하지 않았다. '약속 이행'을 요구하던 B씨는 2013년 4월 이 회장에게 폭행을 당해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B씨는 이 회장을 사기와 상해로 고소했다.

검찰은 B씨의 고소에 대해서도 '혐의 없음' 결정을 내렸다. ▲ 남녀관계의 대가로 100억 투자를 약속하는 게 상식에 반하고, 투자를 약속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 ▲ B씨가 증거로 내놓은 공장 매입의향서가 조작된 흔적이 있는 점 ▲ 폭행이 일어난 당시 출동 경찰관 등의 진술이 B씨의 주장과는 다른 점 등이 불기소 이유였다. 

또 하나 검찰이 주요하게 본 증거는 당시 91세로 연로한 이 회장에게 성기능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 회장은 '15년 전 이미 성기능을 상실했다'고 주장하며 의사의 진단서를 증거로 제출했고, 이는 A씨와 B씨의 사건 모두 이 회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인정됐다.

여기까지는 '부유한 기업인에 미성년자 강제추행 혐의까지 덮어씌우려 한 가사도우미, 성관계를 빌미로 투자금을 뜯어내려 한 여성 중소기업인의 말로'로 보인다.

성관계 녹음 증거로 다시 제기된 고소와 맞고소

하지만 B씨는 최근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며 이 회장을 다시 고소했다. 증거는 지난 2016년 12월 4일, 이 회장과 B씨가 성관계를 하면서 나눈 대화 녹음 내용이다.

여기에는 이종환 회장이 2013년 2월 B씨와 처음 성관계 할 당시를 회상하면서 약물 도움 없이도 성관계가 가능했다고 스스로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회장은 또 B씨에 '여보'라는 호칭을 썼고, B씨가 자신의 소유라는 걸 반복해서 확인했다.

2013년 1차 고소 때 이 회장 측이 '15년 전에 남성기능을 상실했다'고 주장한 데에 반박 증거가 제시된 것이다. B씨는 지난 5월 이 회장에게 진단서를 발급한 의사와 이 회장을 거짓 증거로 수사를 방해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B씨가 이 같은 녹음을 남길 수 있었던 건, 2013년 11월 이 회장에 대한 고소가 '혐의 없음'으로 결론난 뒤에도 두 사람의 관계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B씨는 2015년 9월 초 "이 회장이 다시 자기한테 잘하면 투자 약속을 지키겠다고 접근해 왔다"며 이를 계기로 관계가 다시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이 회장과 해외 여행을 가거나 주기적으로 성관계를 맺고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는 등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주장했다.

관계가 회복되면서 B씨는 '물 사업 100억 투자'를 기대했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B씨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에 지난 4월 30일 이 회장에게 지금까지 미뤄온 투자 약속을 이행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모욕 그리고 폭행이었다고 B씨는 주장한다.

이 회장은 지난 4월 30일 제주시 B씨의 집 인근에서 B씨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주먹으로 가슴 부근을 구타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 회장 역시 B씨를 폭행·감금·강요·공갈미수·무고 혐의로 맞고소했다.

▲ 이종환 삼영화학 명예회장이 지난 4월 30일 제주시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B씨를 손으로 밀치는 장면 ⓒ CCTV영상 캡처


가사도우미 A씨 "'아들 좀 돌봐라' 연락 왔다"

B씨가 성관계 녹음을 제시하며 이 회장을 고소하자 이 회장을 고소했다가 무고죄로 처벌받은 A씨도 다시 진실을 밝히겠다고 나섰다. 지난 8월 초 <오마이뉴스> 기자를 만난 A씨는 2013년 당시 이 회장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고 스스로 무고 혐의를 인정한 이유에 대해 "너무 불안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종환 회장은 직원들을 통해 저를 찾아내 딸의 장래를 보장해준다며 회유했어요. 결국 제가 받아들였죠. 그러면서 (이 회장측은) 당시 고소 건에 대해 그냥 취하해선 안 되며, 돈을 목적으로 없던 사실을 꾸며냈다는 내용으로 자수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무고죄에 대해서는 이종환 회장이 자기가 알아서 사건을 처리해 준다고 말했고요."

무고죄로 벌금형을 받은 A씨는 벌금을 못내 구치소 노역을 하다 가까스로 돈을 빌려 벌금을 내고 풀려났다. 이후 이 회장에게 벌금이라도 받기 위해 찾아갔지만 '변호사가 벌금을 내줘선 안 된다고 했다'는 말을 듣고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B씨가 이 회장을 다시 만난 것처럼, A씨와 이 회장의 관계도 끊어지지 않았다.

A씨에 따르면, 2013년 8월 중순 이 회장은 다시 A씨에게 연락해 일을 맡겼다. 병환이 있는 둘째 아들을 간병해달라는 것이었다. A씨는 이 회장이 '한 달에 500만 원을 준다'고 했고 이를 받아들여 경남 의령으로 갔다.

A씨가 의령에 내려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약속한 생활비를 달라고 했지만, 이 회장이 거절했다고 한다. A씨는 2013년 10월 9일 다시 서울로 왔다. 그 뒤로도 이 회장은 "와서 일을 하라"는 요구를 몇 차례 했고 A씨는 2015년 11월 이 회장 집에서 한 달여 일하면서 호주 여행에 동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A씨는 "이 회장이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여러 차례 했고,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고 말했다. A씨는 2015년 12월 어느날 자정에 이 회장의 집을 나왔다.

이 회장 측 "녹음은 연출된 것, 허위진단서 발급 불가능"

▲ 서울 명륜동에 위치한 관정이종환교육재단 ⓒ 김종훈


지난달 11일 <오마이뉴스> 기자를 만난 관정재단 측 인사들은 A씨와 B씨의 주장이 날조이며, 돈을 뜯어내기 위한 모략이라고 반박했다.

우선, B씨가 제시한 성관계 녹음에 대해 관정재단 측은 "그 여자가 상황을 연출해 만든 것"이라며 "편집을 안 했다고 어떻게 보장을 하느냐"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이 회장은 성생활이 가능하지 않은 것이 확실하며 2013년의 고소 내용은 검찰의 수사로 이미 악의적인 날조로 결론이 났다'고 강조했다.  

관정재단 측은 "진단서를 발급한 의사가 개인병원 의사가 아니고 한국에서 비뇨기과로는 가장 권위 있는 분이다. 그런 분이 어떻게 조작을 하며 허위 진단서를 내겠는가"라면서 "이번 고소 사건에 대해서 수사결과가 나올 텐데, 결과가 나오는 대로 (B씨를) 무고죄로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 측근들은 B씨에 대해 "사업을 미끼로 한 전형적인 꽃뱀"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B씨를) 2013년 고소 사건 때 무고죄로 처벌하지 않은 게 천추의 한"이라며 "그 여자가 이 회장에게 싹싹 빌어서 그냥 넘어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회장 측근들은 "자기가 중소기업을 하는데, (이 회장을) 존경한다면서 접근했고, 한 두 차례 더 연락이 와서 회장님이 만나 주니까 생수개발 이야기를 꺼냈다"면서 "그런데 그게 사업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큰 돈을 투자할 대상이 전혀 안 됐다. 돈 한 푼 허투루 쓰지 않는 회장님이 그런 약속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서울대 관정도서관 입구에 있는 관정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의 흉상. ⓒ 김종훈


2013년의 고소 사건이 끝난 뒤 이 회장이 B씨를 다시 만난 일에 대해 측근들은 "회장님이 연락을 한 것이 아니라 B씨가 다시 연락을 해서 도움을 청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B씨가 주장하듯 2015년 9월초가 아니라 2016년 10월 두 사람이 서울에 있는 관정재단 소유 호텔에서 다시 만났다고 했다. 또한, 당시 호텔 지배인 입회 하에 B씨한테서 '2013년에 고소를 제기한 일을 반성하고 비슷한 일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아냈다는 것이다. 이 회장 측은 이때 B씨에게 500만  원을 건넸다고 했다.

이 회장 측은 '물사업 투자를 하진 않았지만 이 회장이 B씨가 요구하는 아파트 전세금, 교통사고 보상금 등으로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사람에게 1억 원이 넘는 돈을 이미 대줬는데, 고마워 하긴커녕 여전히 더 큰 돈을 바라고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폭행 아니라 B씨 집에서 탈출, 밀친 게 때린 것처럼 나왔다"

지난 4월에 일어난 폭행 사건에 대해 이 회장 측은 "사실이 다르다. (투자하겠다는) 각서를 써달라는 강요에 못 이겨 실랑이를 하다가 (이 회장이 B씨의 집에서) 탈출을 한 것"이라며 "그 여자(B씨)가 상황을 연출하고 만들었다. 회장님 허리춤을 꽉 붙들고 있으니 꼼짝할 수 없었던 회장님이 밀치는 모습이 (CCTV에) 찍힌 건데, 마치 때리는 것처럼 나온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들은 A씨에 대해서도 "처음 회장님 댁에서 일할 당시에도 (A씨는) 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다"며 "(A씨는) 현재 '악'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느냐. 그 사람이 말하는 건 심각하게 의심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건강 문제와 업무능력으로 인해 A씨를 해고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A씨가 무고죄로 처벌받은 뒤 이 회장이 다시 불러 둘째 아들을 돌보는 일을 시킨 데 대해서는 "사건이 끝난 뒤 A씨가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렵다고 사정을 하니 호구지책으로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도록 보낸 것이고 그 뒤에도 그 쪽을 불쌍하게 생각해서 불렀지만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어 "회장님은 연세가 많고 돈이 많아서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라며 "강제추행에 관한 결정적인 증거 하나 없이 그것을 역이용해 (돈을) 뜯어내려 한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 회장 측과 A씨, B씨의 말을 종합해보면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는다. 두 사람이 이 회장과 별다른 관계도 아니었고 2013년의 고소가 전적으로 두 사람의 날조에 의한 것이었다면, 이 회장이 이들의 경제적 사정을 해결해주면서까지 다시 만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회장은 두 사람을 다시 만났고 해외 여행에도 동행시켰다.

이 회장 측근들은 "고령인 회장님이 해외출장을 가면 가까이서 불편한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데 재단이나 회사 직원에 맡길 수 없어 할 수 없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자신을 음해하려 한 여성들을 가장 가까이 두고 수발을 맡겼다는 얘기다. 돈을 많이 벌어 활발한 자선사업을 벌이고 있는 한 기업가의 사생활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 이종환 삼영화학 명예회장은 장학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3월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했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훈장을 직접 수여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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