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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죽음이 '준법'? 섬뜩한 도덕교과서

[중등 도덕교과서 비판①] 준법만 강조... 법치주의의 오독

등록|2017.11.02 20:52 수정|2017.11.02 20:52
중학생들에게 도덕을 가르치면서 느낀 도덕교과서의 문제점을 비판하고자 합니다. 현행 중등교육에서 교과서는 도덕①·② 두 권입니다. 이중 심화과정인 도덕② 교과서(미래엔 출판)를 텍스트로 다룹니다.-기자 말 

"개인의 바람직한 가치관 확립과 나아가 우리사회와 세계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과" 우리나라 교육과정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설정한 도덕 교과의 목적이다. 하지만 현행 도덕교과서로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다는 게 내 생각이다.

도덕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교과서가 가르치는 사회도덕의 내용이 너무 수동적이고 비주체적이라는 것이다. 그 수준이 오늘날 민주사회에서 요구되는 시민의 책임과 권리에 미치지 못한다. 

법에 관한 도덕교과서의 서술을 살펴보자. 교과서에서 법을 주제로 다루는 단원은 소단원 <준법은 왜 중요한가?> 뿐이다. 교과서는 법에 대한 시민의 태도로서 준법의 의무만을 소개한다. 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열거하는 것으로 법 설명을 끝낸다. 그러나 이는 법치주의의 오독이다.

법의 주인은 시민이다


'유시민이 말하는 법치', '유시민의 법치 강의' 등으로 불리며 화제가 됐던 영상을 보자. 당시 나경원 의원은 이명박정부 때 진보·시민단체의 집회를 '불법시위'로 규정한 후, 법질서를 지키는 법치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유시민 작가의 대답이다.

"'국민이 법 지키라' 하는 게 법치주의가 아니고.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나라를 운영하고 국민을 통치하는 것이 법치주의다. 이건 아마 법률 이론을 공부한 사람이면 아무도 이의제기를 안할 겁니다. … 자꾸만 대통령부터 관료들, 정무수석, 국회의원 등이 다 (준법을 강조하는) 법치만 얘기하면 국민들이 겁 먹습니다." (2009년 11월 19일, MBC 백분토론 중)

유시민 작가의 말대로, 국민의 준법 의무를 강조하는 것은 법치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고대 제자백가 시대의 법치를 혼동한 것이다. 민주국가의 법치주의란, 주권자인 시민이 법에 의거해 나라를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법은 소수의 권력자를 견제하고 시민이 주권자가 되기 위한 도구이지, 시민을 다스리는 규율이 아니다.

그래서 민주국가에서는 시민이 법을 만들고 해석하고 실행한다. 입법·사법·행정이다. 의회와 법원과 행정기관 등은 단지 시민의 뜻을 대의할 뿐이다. 법을 결정하는 주체는 시민이다. 시민이 법을 통해 국가를 통치하고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덕교과서는 오직 시민의 준법 의무만을 강조한다. 물론 준법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가르쳐야 할 것이 법에 대한 시민의 권리다. 준법만을 강조하는 것은 굳이 민주사회가 아니라도 가능하다. 과거 왕조시대에도 준법 의무는 백성에게 충분히 강조됐다.

게다가 교과서에서 드는 준법의 실례라고는 교통 신호 지키기, 급식실에서 새치기 하지 않기, 수업 시간에 핸드폰 하지 않기 등 매우 사소한 것뿐이다. 정작 국가권력자들에게 주로 부과되어야 하는 준법과, 따라서 시민이 감시해야 할 위법성에 대한 언급은 찾기 어렵다.

소크라테스 '사법 살인'이 준법이라고?

▲ 현행 중학교 도덕② 교과서(미래엔 출판)의 교사용 지도서 212쪽. 본문 문장마다 아래 적힌 파란색 작은 글씨는 교사용 지도서에만 있다. 나머지는 일반 학생용 교과서와 일치한다. ⓒ 신영수



더 심각한 것은, 교과서가 준법의 사례로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소개한다는 것이다. 교과서는 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서술하면서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준법의 이유'를 자료로 든다. 악법임에도 사형 선고를 수용한 소크라테스의 일화를 교과서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소크라테스는 탈출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에 따른 판결을 받아들였다. 그는 법을 준수하는 것이 국가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며, 나라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 (중학교 도덕② 212쪽, 미래엔 출판)

정의를 탐구하고 실천했던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권력자들에게 있어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법을 이용해 사형 판결을 이끌었고, 이에 순응한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이는 명백한 사법 살인이다.

그런데 악법임에도 사형을 받아들인 고대의 사법 살인 이야기를, 오늘날 법을 지켜야하는 이유로 교과서가 중학생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악법에 순종해 죽는 것이 "국가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며, 나라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는 교과서의 서술이 섬뜩하다.

악법에 순종하는 것은 교과서의 해석마냥 "국가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도 "나라의 질서를 유지하는 길"도 될 수 없다. 주권자인 시민이 존재할 뿐, 약속을 지켜야 할 관념으로서의 국가는 없다. 또한 악법을 그대로 방관하는 것은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공동체의 질서를 해치는 결과를 낳는다.

게다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국가에 대한 약속과 질서의 차원으로 명토박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큰 해석이다. 서강대 강정인 교수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맹목적인 법 준수의식 때문에 죽음을 택한 게 아니다. 정의를 탐구하고 전파하는 일을 사명으로 여겼던 그는, 이를 포기하고 도망갈 바에는 차라리 결연히 죽겠다는 '철학적 순교'를 단행한 것이다.

이미 2004년 헌법재판소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준법의 사례로 교과서에 드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오늘날 헌법체계에서는, 준법이란 정당한 법과 정당한 법 집행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13년이 지난 현재도 단지 '악법도 법'이라는 직접적인 문구가 사라졌을 뿐, 바뀐 것은 없다.

이처럼 법에 대한 시민의 권리는 가르치지 않는 교과서. 준법의 의무만을 강조한 채, 권력자가 지켜야 할 의무는 기술하지 않는 교과서. 소크라테스의 사례를 들어 사법 살인까지도 준법으로 미화하는 교과서. 이런 도덕교과서는 학생을 노예와 백성으로 길들이려 든다. 시민과 주권자를 위한 새로운 교과서가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도덕교과서는 소단원 <준법은 왜 중요한가?> 다음에 <시민 불복종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다룹니다. 마치 시민불복종을 소개함으로써 준법 단원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은밀한 장치’가 감춰져있습니다. 다음 기사 [도덕교과서 비판②]에서 이를 비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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